69년 연기 인생 마침표… '한국 영화의 큰 별' 안성기 별세(종합)
2020년대까지 60년 간 배우 생활
한국 영화사의 굴곡과 함께 성장해
180여 편 출연…유실작 포함 200편
충무로 얼굴이자 국민배우 자리매김
BIFF 부집행위원장 맡아 깊은 인연

영화가 곧 삶이었던 배우 안성기 씨가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안성기 배우 장례위원회는 이날 아침 9시께 안성기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며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자택 인근 순천향대병원 응급실에 이송돼 치료를 받아왔다. 앞서 고인은 2019년 혈액암 판정을 받고 투병해 왔다.


안 씨는 한국 영화사의 굴곡과 함께 성장한 배우였다.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기부터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시간들을 스크린 안에 고스란히 남겼다. 아역 배우로 출발해 충무로의 대표 배우로 자리 잡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한국 영화사의 연대기였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1984),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 등 한국 영화의 분기점이 된 1980년대 주요 작품에서 주인공을 도맡았다.
1990년대 이후엔 정지영 감독의 사회파 영화 ‘남부군’(1990) ‘부러진 화살’(2012), 강우석 감독의 코미디 영화 ‘투캅스’(1993), 첫 천만 흥행 영화 ‘실미도’(2003)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 거지에서 군인, 소시민과 권력자에 이르기까지, 안성기는 특정 이미지를 고착시키지 않는 배우였다. 한국영상자료원 집계 기준 출연작은 180여 편에 이른다. 유실된 작품까지 포함하면 200편에 가깝다.

2019년 혈액암 진단 이후에도 고인은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완치 판정을 받은 뒤 재발을 겪으면서도 그는 영화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노량: 죽음의 바다’ 등에 출연했다. 항암 치료를 병행하며 촬영장에 섰고, 병세가 악화된 이후에도 영화인 자녀 장학사업과 단편영화 제작 지원, 유니세프 친선대사 활동 등 공적 역할을 이어갔다.
안성기 씨는 생전 자신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영화 ‘라디오 스타’를 꼽았다. 그는 그 이유로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라서 좋다”고 들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연기는 곧 배우 안성기 자신이기도 했다. 스크린 안에서는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얼굴로, 스크린 밖에서는 영화의 가치를 지켜온 영화인으로 살아온 그는 그렇게 한국 영화의 한 시대를 견인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장남 다빈 씨, 차남 필립 씨가 있다.
한편 정부는 이날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금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분야의 정부 포상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영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