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 빈 터만 덩그러니

기호일보 2026. 1. 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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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아방궁 터에 남아 있는 성벽.
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아방궁'이라고 하면 천하의 시황제가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 세운 궁전으로서 아마도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궁전의 대명사처럼 언급되곤 한다. 1991년에는 아방궁의 터만으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았다.

 아방궁의 위치는 서안 시내에서 서쪽으로 15km 떨어진 아방촌(阿房村)에 있다. 시황제는 6국을 멸망시킨 다음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일한 다음 '천하제일궁(天下第一宮)'이라고 할 만한 크고 화려한 궁전을 짓고 싶어 했다. 실제로 아방궁이 시황제의 생전에 완성되지는 못했는데, 그나마도 B.C. 207년에 항우(項羽)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에 들어와 궁궐에 불을 질렀다. 그 불길이 3개월 동안 꺼지지 않았을 정도로 궁궐의 위용은 대단하였다고 한다.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서 아방궁의 규모를 언급하기를, "앞쪽의 전각이 동서로는 500보(步)이고 남북으로 50장(丈)으로 한꺼번에 1만 명이 앉을 수 있었고, 사방으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궁전 아래부터 남산(南山)에 이르기까지 통하게 했으며, 남산 봉우리에 궁궐의 누각을 세워서 표지로 삼았다."라고 쓰여 있다. 남산이라면 현재 서안에서 남쪽으로 7~80km 떨어진 종남산(終南山)을 말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최근의 발굴 조사에 의하면, 앞쪽 전각만의 크기가 대략 가로 1,320m, 폭 426m, 높이 12m로서 면적은 54만㎥나 되는 매우 큰 규모의 궁전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이만한 규모의 목재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지금은 중국 정부에서 아방궁 유적지 가운데 약 12.5㎢ 규모의 지역만을 지정하여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그처럼 대단했던 아방궁의 자취를 상세히 찾아볼 수는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현장에는 '아방궁유지(阿房宮遺阯)'라는 팻말만이 세워져 있고, 이곳이 옛날 화려했던 아방궁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알 만한 유적이 남아 있지는 않다. 

아방궁 유적지라고 적힌 버스 정거장에 내리면 한적한 공원이 맞아줄 뿐이다. 수년 전까지는 유적지 공원의 큰길 건너편에 아방궁 기념관이 있어서 그 시절 화려했던 궁궐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19년 여름에 다시 찾아갔을 때는 임시로나마 지어놨던 아방궁 시설물들을 모두 폐쇄하고 그 자리에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서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한창 개발되는 중이었다. 

재개발 현장 주변 약 200m가량 떨어진 길가에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 있길래 들어가 보았더니, 병마용 모조품과 진나라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청동기와 몇 가지 유물이 조촐하게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전시관 직원에게 길 건너 아방궁 유적 공원에 진나라 당시 아방궁이 관련된 유적이 남아 있는지를 물었더니, 근래에 아방궁 전체를 숲으로 조성하였고, 지금과 같이 일부만 공원으로 조성하여 기념하고 있는데, 공원의 서쪽 끄트머리에 아방궁을 세웠던 진나라 당시 성벽의 축대가 일부 남아 있기는 하다고 다고 박물관 직원이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왜냐하면 예전에 왔을 때도 그 옛날 화려함의 극치였다는 아방궁의 자취가 모두 없어져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쉬웠었는데, 궁궐터의 성벽이 지금 일부나마 남아 있다고 하니 말이다. 공원 터의 서쪽 끝에 있다는 궁궐터의 성벽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길을 건너갔다. 공원을 산책하는 몇몇 사람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시원스럽게 대답해 주는 이는 없었다.

너무 후미진 곳에 있어서 이 동네 사람들조차 진나라 당시 성벽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인데, 한참을 여기저기 허탕을 치고 빙빙 돌다가 나이 지극한 어르신이 성벽의 위치를 알려주어 겨우 찾아갈 수 있었다.

2,200여 년의 세월이 느껴질 만큼 다 스러져가는 모습인데, 역시 세월의 무상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운 진나라 귀족들이 당시 이 누런 성벽 안쪽에서 누렸을 온갖 호사는 또 어떠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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