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쏘고 가라’ 국민 배우 안성기…70년 동안 영화계 지킨 천의 얼굴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영화계를 지켰던 그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

안성기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1957년 아역 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안성기는 소매치기 소년부터 비리 경찰, 빈민촌의 서민, 조직폭력배 보스, 한물간 가수의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70년 가까이 우리나라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지난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 아역 배우로 발탁돼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1960년대까지 ‘하녀’(1960)와 ‘얄개전’(1965) 등 70여편의 영화에서 아역 배우로 활약했다.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것은 군 제대 후인 1977년이었다. 안성기는 김기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을 통해 성인 배우로 돌아왔다.
아역 배우는 배우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던 시절이었지만, 안성기는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문제작’으로 꼽히는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우려를 잠재웠다.
그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안개마을’·‘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그해겨울은 따뜻했네‘(1984), ‘깊고 푸른 밤’(1985), ‘성공시대’·‘칠수와만수‘(1988) 등에 출연했다.
그가 임권택, 배창호, 이장호, 이두용 등 당대 거장들의 선택을 받은 이유로는 폭넓은 캐릭터 소화 능력과 뛰어난 연기가 꼽힌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날’(1980)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차기작인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에선 승려역을 소화하며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연기상을 받았다.
안성기는 이후 배창호 감독의 ‘철인들’(1982)에선 산업일꾼 역할로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코믹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안성기는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에서 박중훈과의 버디 연기로 호평받았다. 두 배우는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1990년대에 안성기는 예술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다.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에서 한국전쟁 시기 빨치산으로 활약한 남자를, ‘하얀전쟁’(1992)에선 베트남전 참전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소설가를 연기했다.
51세에는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2003)에서 원칙주의자 군인 역을 맡았다. 실미도는 한국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됐다. “날 쏘고 가라”는 안성기의 대사는 여러 방송에서 인용돼 유행어가 됐다.
2006년에는 ‘라디오스타’로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줬고, 2011년에는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에 출연해 법정 다툼을 벌이는 교수 역으로 분했다. 이후로도 ‘화장’(2014), ‘사냥’(2015), ‘사자’(2018), ‘한산: 용의 출현’(2022)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안성기의 마지막 작품은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이었다. 안성기는 아역으로 70여편, 성인 배우로서 1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한평생 영화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 영화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선봉에 섰다. 2000년부터 스크린쿼터(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하도록 한 제도) 수호천사단 단장을 맡고, 2006년에는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안성기는 지난 2017년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인터뷰에서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배우가 맞는 것 같다. (웃음) 국민 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국민 배우로서 잘 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혈액암으로 지난 2019년부터 투병을 이어간 중에도 연기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기도 했다.
안성기는 2022년 제58회 대종상 공로상을 받은 뒤 전한 영상에서 “오래오래 영화배우로 살면서 늙지 않을 줄 알았고, 또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새로운 영화로 여러분들 뵙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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