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 ‘일상’ 됐지만 연말 1350원까지 내릴 수 있다? [2026 재테크-환율]

2025년 한국 경제를 뒤흔든 최대 변수는 단연 환율이었다. 원·달러 환율은 연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본격화하자 4월 한때 1484원까지 치솟았다가 미국의 약달러 유도 기조와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 회복, 국내 수급 요인이 맞물리며 6월에는 1350원선까지 급락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흐름은 다시 뒤집혔다. 한·미 금리 격차, 엔화 약세에 따른 동조화 흐름, 안전자산 선호 재부각, 달러 유동성 축소 등 거시 변수에 해외 투자 확대까지 겹치며 환율은 재차 상승세로 돌아섰고 연말에는 1480원대에 근접했다. 고환율이 물가 불안을 자극하고 ‘위기론’까지 확산하자 정부는 시장 안정에 나섰고 환율은 가까스로 1430원대까지 떨어졌다.
2026년 들어 시장의 시선은 다시 환율로 쏠리고 있다. “달러를 계속 보유해야 할까”, “지금이 매수 시점일까”라는 질문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연중 환율이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원·달러 환율의 연간 변동 범위는 1350~1500원 선에서 형성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400원 뉴노멀
정부의 강도 높은 개입과 수급 관리에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으며 고환율 기조가 ‘뉴노멀(정상범위)’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은 “최근 환율이 다소 내려오자 오히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지금이 달러를 살 기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 같은 심리가 환율 하락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PB는 2026년 1월 중순 이후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50~1500원 선으로 오를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정부 역시 1500원을 넘는 급격한 환율 상승에 대해서는 강한 경계감을 갖고 있다”며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역시 환율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2026년 한국 무역수지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수출 회복에 힘입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2026년 수출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7110억 달러, 수입은 0.5% 늘어난 6330억 달러로 무역수지는 78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변정규 다이와증권 FICC 본부장은 상반기 환율을 1400원대 중반으로 점치면서도 하반기에는 원화 강세(환율 하락)를 전망했다. 그는 그 배경으로 미국 정치 환경의 변화를 꼽았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6년 1분기 미국에서 관세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변 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위헌 판결을 받을 경우 11월 치러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불리해질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렇게 되면 트럼프식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의 동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고 이는 달러 약세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오건영 신한은행 패스파인더 단장도 “현재로서는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높지 않아 선거 결과가 트럼프 행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달러 역시 약세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대법원 판결이 위헌이라고 하면 관세로 번 돈을 환급해야 한다”며 “2025년 관세로 거둬들인 세수가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만큼 환급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 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 우려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달러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오 단장은 달러의 특수한 성격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러는 위기 국면에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며 일시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25년 4월 관세 이슈가 불거졌을 때 엔화나 유로화는 강세를 보인 반면 원화는 오히려 약세(환율상승)를 나타냈다가 5월 이후 급격하게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신흥국 통화에 대해선 달러는 단기적으로 강해졌다가 다시 약세로 돌아서는 양상을 보일 수 있어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PB는 “2026년에도 정부가 연말을 앞두고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등 경제지표의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환율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연말 환율은 1400~1450원 선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연말 결산과 함께 배당 지급, 인센티브 지급 등을 앞두고 기업들이 보유 달러를 일부 환전하는 수요가 발생한다”며 “이런 흐름이 겹치면서 연말연초에는 환율이 다소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원화값 하락의 원인은
전문가들은 환율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배경으로 한국 경제의 자산 포트폴리오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 단장은 “정부·기업·가계 전반에 걸친 해외 투자 확대 흐름 속에서 강달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만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해외 투자 규모만 해도 2000억 달러 수준에 이르고 기업들 역시 관세 회피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이유로 해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이 같은 구조적인 자본 유출 기대가 환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변동성이 커졌고 2025년은 특히 V자 형태의 급격한 등락이 나타난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박 PB도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수준의 흑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환율이 크게 내려오지 않는 점은 시장의 체질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확대가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대규모 해외 투자와 자본 이동이 이를 상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1~3분기 ‘일반정부’의 해외 주식투자는 총 245억1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127억8500만 달러)보다 92% 늘었다. 같은 기간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 주식투자는 95억6100만 달러에서 166억2500만 달러로 74% 증가했다. 통상 일반정부의 해외 주식투자는 국민연금, 비금융기업 등은 개인투자자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엔·달러 환율의 움직임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한국과 일본은 글로벌 시장에서 비슷한 품목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인 만큼 양국 통화의 움직임은 서로 긴밀하게 연동돼 왔다. 한쪽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 다른 한쪽도 영향을 받는 구조다. 일본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경우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원화 역시 상대적으로 약세 압력을 받는 흐름이 반복돼 왔다.
오 단장은 “최근 3개월 동안 원·엔 재정환율이 940원에서 920원으로 내려갔다는 것은 엔화 약세가 원화보다 더 가팔랐다는 의미”라며 “일본 역시 5500억 달러 규모의 해외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자본 유출 압력이 크다. 한·일 모두 해외 투자 확대라는 구조적 요인을 안고 있는 만큼 엔화와 원화의 동조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좁아지는 한·미 금리 격차
전문가들은 2026년 미국과 한국의 금리 흐름이 엇갈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공통된 인식은 “미국은 인하 국면으로, 한국은 제한적 인하 또는 동결 기조”라는 것이다.
박 PB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2026년 두 차례, 많게는 세 차례 인하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국내는 부동산 가격과 물가 부담이 여전히 큰 만큼 금리인하 여력이 크지 않다”며 “현실적으로는 한 차례 인하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한국보다 더 빠르게 금리를 내릴 경우 한·미 금리차가 축소되면서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오 단장은 미국의 금리인하 폭과 속도 모두 시장이 기대하는 수준보다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금리인하가 과도하게 빠를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시장이 먼저 과열 반응을 보이게 되고 이는 자산 가격 상승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안정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어 무리한 금리인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했다.
변 본부장은 “미국 중앙은행이 오랜 기간 긴축 정책을 이어오면서 시장의 유동성이 상당히 줄어든 상태”라며 “최근 단기 시장에 유동성을 다시 공급하는 움직임은 중앙은행 스스로도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중앙은행은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장치인 스탠딩 레포(SRF)를 통해 2025년 10월 말~11월 초, 12월 말 돈을 풀었다. SRF는 금융기관이 중앙은행의 창구에서 국채를 담보로 현금을 빌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변 본부장은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금리인하 논의는 단순한 경기 부양 차원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당장은 인하 속도가 빠르지 않더라도 2026년 하반기에는 시장 상황이 금리인하를 강하게 요구하는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기준금리가 하반기 2%대 후반까지 내려갈 경우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 중후반까지 내려갈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해외IB, 1420~1440원 전망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향후 1년간 원·달러 환율이 평균 1420~1440원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바클리 캐피탈는 1490원을 제시했지만 다수의 IB들은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는 ‘1500원 돌파’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전반적으로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일부 IB들은 환율이 점진적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함께 제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년 후 환율을 1395원, 골드만삭스는 1390원, 노무라는 1380원으로 각각 전망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선주 LG생건 사장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아…멈칫할 수 없어”[신년사]
- 오규식 LF 부회장 “고객 경험 혁신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도약”[신년사]
- LG엔솔 김동명 "ESS·원가 혁신·AX로 초격차 기술력 확보"
- “노잼 도시 탈출?” MZ세대 몰려오네
- LG화학 김동춘 "'파부침주' 결의로 위기 돌파"
- [속보]외환보유액 급감…전월比 39.7억 달러 감소
- “내 주식이 시한폭탄?” 바이오 투자 시 반드시 챙겨야 할 ‘이 숫자’ [재무제표 AI 독해]
-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 총파업 '가처분 신청'···노조 "예정대로 총파업"
- ‘전업자녀’에 돌봄수당을?…인구경제학자가 제안하는 ‘발칙한’ 복지 혁신 [캥경제학③]
- 이태리 홀린 K뷰티…유럽은 지금 '메이드 인 코리아' 천국[코스모프로프 볼로냐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