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묵묵히 극단생활… 한땐 호시절이었지만 이젠 굶을판”[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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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병인년(丙寅年)이 시작되자 동아일보에는 '10년을 하루같이'라는 제목으로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을 한결같은 길을 가는 이들이 소개된다.
"생각하면 참말이지 무정세월 약류(若流)랍니다. 내가 극계(劇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즉 조선의 연극이 처음 생기던 때는 내 나이 32세로 아직 청년이라는 말을 듣던 때인데, 어느덧 16년이란 세월이 뜻 없이 지나가고 내 나이는 47세가 되었습니다. 그 후 조선에 맨 처음 극단이라고 생긴 것이 임성구를 단장으로 한 혁신단(革新團)이요, 혁신단의 첫 무대가 지금은 일본 사람의 여관(旅館)이 되었습니다마는 남대문 밖 어성정에 있던 남성사(南成社)이었답니다. 그때에는 극장세가 15원밖에 되지 아니하고 관람료도 10전, 20전, 30전에 학생, 소아, 군인은 반액으로 하였었답니다. 그때는 밤마다 만원(滿員)의 성황을 이루어 우리 배우들에게도 상당한 배당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그 당시 일등 배당으로 평균 80∼90전씩을 받았지요마는 그다음이 3, 4등 배당도 그때 돈으로는 상당했었지요. 제일 말석 배우로 4등 배당을 받는 사람들도 15∼16전씩은 손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15전으로는 담배 한 갑이나 겨우 살 수 있을 것이나 그때는 쌀 한 되 값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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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병인년(丙寅年)이 시작되자 동아일보에는 ‘10년을 하루같이’라는 제목으로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을 한결같은 길을 가는 이들이 소개된다. 그중 1926년 1월 4일에 실린 희극 배우 이원규(李元奎)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생각하면 참말이지 무정세월 약류(若流)랍니다. 내가 극계(劇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즉 조선의 연극이 처음 생기던 때는 내 나이 32세로 아직 청년이라는 말을 듣던 때인데, 어느덧 16년이란 세월이 뜻 없이 지나가고 내 나이는 47세가 되었습니다. 그 후 조선에 맨 처음 극단이라고 생긴 것이 임성구를 단장으로 한 혁신단(革新團)이요, 혁신단의 첫 무대가 지금은 일본 사람의 여관(旅館)이 되었습니다마는 남대문 밖 어성정에 있던 남성사(南成社)이었답니다. 그때에는 극장세가 15원밖에 되지 아니하고 관람료도 10전, 20전, 30전에 학생, 소아, 군인은 반액으로 하였었답니다. 그때는 밤마다 만원(滿員)의 성황을 이루어 우리 배우들에게도 상당한 배당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그 당시 일등 배당으로 평균 80∼90전씩을 받았지요마는 그다음이 3, 4등 배당도 그때 돈으로는 상당했었지요. 제일 말석 배우로 4등 배당을 받는 사람들도 15∼16전씩은 손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15전으로는 담배 한 갑이나 겨우 살 수 있을 것이나 그때는 쌀 한 되 값이니까요.”
이 배우는 “그렇게 좋던 시절도 한때였다”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후 신파 연극 단체는 자꾸 생기기를 시작했습지요. 혁신단 다음에 생긴 극단이 지금 매일신보사에 있는 이기세 씨가 단장으로 조직된 문수성(文秀星)이었는데 윤백남, 조일재 등 제씨가 극계에 나서게 되던 때도 이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생긴 것이 지금 조선일보 인천지국에 있는 박창한 씨가 단장으로 조직되었던 청년파(靑年波)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청년파가 지금 이 조선극장의 전신인 연흥사(演興社)에서 첫 막을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상당한 수입을 보았었건마는 일조(一朝)에 재계(財界) 공황이 생기자 그 단체가 남성사에서 흥행을 할 때에는 참으로 기막힌 경우도 많이 당했습니다. 어찌했던 하룻밤 입장하는 관객의 수효가 70∼80명으로 수입은 7∼8원밖에 아니 되었으니 배우들이 온종일 굶고 연극을 하다가 무대에 나가서 그대로 쓰러진 일까지도 있었으며, 경찰에서 그리고 어찌 하느냐고 권고까지 하였었습니다.(중략) 신극좌가 단성사에서 흥행을 하여 어찌나 수입이 많았던지 내가 1등 배당으로 하룻밤에 20원 내지 30원의 배당을 얻던 일도 있었답니다. 신파 연쇄극이 조선에 처음 나타나기도 이 덕택이었었지요. (중략) 이야기를 이루 다 할 수야 있습니까. 없어진 극단의 수효로만 해도 놀라지 마십시오. 한 50개 단체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하던 사람으로 발을 빼 나가는 사람도 적거니와 있다 해도 이때껏 상당한 지위를 얻은 사람이 없습니다그려. 어찌 된 셈일까요. 세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 까닭일까요. 그러나 그뿐입니까. 이것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장수(長壽)를 못 하는 모양입니다. 고수철, 한창렬, 임성구, 김도산, 박희천, 이창규 등을 위시하여 청춘에 죽은 배우들이 그동안 10여 명이나 된답니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방탕한 여자들에게 받는 염서(艶書)를 못 잊어 발을 못 뽑는다고 비평을 하지요. 그런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어느 잡놈이 그것으로 이 노릇을 하겠습니까.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으니 모두 그만두겠습니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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