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향해

신강협 2026. 1. 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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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왓칼럼] 잊혀가는 ‘우리의 소원’, 다시 부르는 평화의 인사
AI 생성 이미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어릴 적 입이 닳도록 불렀던 노래다. 그런데 지금은 자주 들을 수도 없고, 부를 일도 거의 없는 노래다. 차츰 잊혀가는 우리의 소망에 대한 노래가 안타까운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한반도 남북이 분단된 이후 거의 모든 사람은 통일을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히 가져야 하는 소망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그러한 소망의 표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북한은 2023년 말부터 '조국 통일'이라는 자신들의 국시를 버리고, 소위 '상호 적대적 두 국가론'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남한을 공화국 남반부, 즉 '남조선'으로 지칭하며 한반도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했으며,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라는 적대적인 두 국가가 교전 상태에 있는 것으로 한반도의 상황을 규정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제 남조선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며,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가 명칭으로 남한을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상스러운 욕설을 붙일지언정 한 민족, 한 형제로서 인정하고 다툼을 벌였다면, 이제는 민족 간의 혈연적 관계 호칭을 버리고 아예 'OO 씨'라고 부르며 생판 남 대하듯 하는 태도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통일에 관한 생각도 변했고, 우리의 통일에 관한 생각도 변했다. '민족'이라는 혈연적 관계를 상징하는 단어에 대해 필자는 '우리 민족만'이라는 폐쇄성을 포함하고 있어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런데도 한반도에서 민족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관계를 끊임없이 이어가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서조차 두 국가론이 등장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조금 많이 어렵고 서로 많이 다투기도 하겠지만 형제자매애적 관계는 본질적으로 공존을 의미하며 적대적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1월 1일 세계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우리의 소망을 잃어버리고, '어둠과 공포로 일그러진 세상을 바라보는, 편향되고 왜곡된 관점에 휩쓸려', '많은 이들이 희망이 없고, 다른 이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을 현실적 담론으로 받아들이게 한다고 비판한다. 

왜 '우리의 소원이었던 통일'과 '조국 통일'은 그 희망의 빛을 잃었을까? 다양한 원인 분석이 있겠지만 통일을 이뤄감에 있어 평화적 방법보다는 자기방어적 폭력 수단의 확보가 우선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전쟁에 충분히 대비하고 공격에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리고 그렇게 국가와 위정자들에게 요구하고 또 그렇게 사는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폭력에 대응하는 폭력적 수단의 확보는 우리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의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서로 부정하고,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만들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북의 입장에서 보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 수 있다.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권 대한민국의 무기체계를 고려하면 북한의 선택을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상호 간의 무시무시한 무기체계 즉 국가의 폭력적 수단의 증대는 사람들이 가진 공포와 두려움을 촉발하는 동시에 그러한 공포와 두려움을 기반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에서 '민족'이라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형제자매애적 관계는 파탄이 난 것이고, 통일은 힘의 크기, 경제력의 크기로 상대를 압도하는 우월적 관계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는 암울한 현실론이 크게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한순간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 저장고로 한반도가 변화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남한은 전략 핵잠수함을 개발하고자 한다. 남한 핵잠수함의 개발은 단순한 전략적 군사 무기의 획득이 아니다. 남한이 실질적으로 무기체계에 핵을 도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자주국방, 핵억지력 증대로, 군사 강국으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남한이든 북한이든 이 작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무기를 저장하며,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다는 유혹에서 있어서 스스로 자폭할 수 있는 스위치를 만드는 것이다. 상대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고 평안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상호 간에 두려움의 크기만 더 키우는 꼴이 된다. 국가의 폭력적 무기체계에 대한 위장된 평화 안보론이 현실적 담론이라 하지만, 감춰진 현실은 가공할 핵무기가 저장된 땅 위에서 살아가는 위태로운 우리의 삶이다. 현대식 무기의 광폭함은 국가에서 선전하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고, 사실상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있는 힘의 크기를 벗어나 있다. 

교황 레오 14세는 "현대 전쟁의 독특한 위험은, 현대식 과학 무기를 보유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범죄를 자행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종의 냉혹한 연쇄 반응으로 인간 의지가 극도로 참혹한 결정을 내리도록 충동을 받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고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전쟁의 위기가 초래하고 있는 두려움이 가득해지는 세상이다. 이러한 불안과 분쟁의 시대에 있어 우리는 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의 씨앗을 무기가 아닌 평화에 대한 자기 인식, 책임 있는 연대, 비폭력적인 방식의 대화와 참여, 그리고 평화에 대한 경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최근 계속 불거지는 대만을 둘러싼 동아시아 상황을 보면서 제주에 사는 필자는 매우 큰 불안감을 느낀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이 가지는 자국 중심의 안보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발발할 수 있는 전쟁 가능성에 불안하다. 만에 하나라도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예전 난징대학살의 전초기지였던 제주의 지정학적 위치는 한반도 내의 분쟁을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의 세계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두려움을 준다.

'통일'이라는 소망을 단적으로 표현했던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통일'이라 말하고 그 무수한 폭력적 무기를 갖추는 변명으로 삼았던 위정자들과 권력자들에게 동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서로 간의 형제자매애적 관계를 확인하고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 평화를 도구로 썼으면 한다. 무기로 우월감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서 모두의 평화가 평등하게 구축되는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제주평화인권헌장 또한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야 비로소 제주에서 평화의 섬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 종교의 수장이 발표한 메시지이지만 그 메시지가 세상에 전하는 진정한 평화의 메시지가 되길 바라며, 제주의 평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오 14세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2026.1.1.)을 공유한다.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향하여...." - 레오 14세 교황,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2026년 1월 1일)

붉은 말의 해를 맞아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드린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