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워너브라더스 합병, 한국 콘텐츠 업계는?

2025년 12월23일 서울 성수동 한 갤러리 카페에서 ‘넷플릭스 인사이트’ 행사가 열렸다. K컬처를 주제로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는 이 자리의 참석자들에게 도시락이 제공됐다. 넷플릭스가 준비한 도시락에는 일곱 가지 음식이 두 입 분량씩 담겨 있었다.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개점복(개전복)으로 만든 주먹밥, 〈중증외상센터〉의 회식 메뉴를 재현한 칠리새우, 〈피지컬 아시아〉 결승 진출팀 몽골이 연상되는 몽골리안 비프 등 모두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가져온 아이디어였다. 1년 흥행작이 한 도시락에 담긴 셈이다. 넷플릭스는 2025년 한 해, 한국 콘텐츠 31개를 선보이며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2026년 1월은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10년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미디어 산업의 판도를 바꿔온 넷플릭스가 다시 한번 중대한 분기점에 섰다. 2025년 12월9일 넷플릭스 구독자들은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워너브라더스)를 인수한다는 내용이었다. 넷플릭스 측은 “넷플릭스의 선도적인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와 워너브라더스의 독보적인 이야기들이 만날 수 있게 된다. 〈해리 포터〉 〈프렌즈〉 〈빅뱅 이론〉 〈카사블랑카〉 〈왕좌의 게임〉과 DC 유니버스 등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랜차이즈들이 〈기묘한 이야기〉 〈웬즈데이〉 〈오징어 게임〉 〈브리저튼〉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결합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2025년 12월5일,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의 핵심 사업 부문인 영화·TV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 ‘HBO’를 720억 달러(약 106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1위 스트리밍 기업이 102년 역사의 유서 깊은 미국 스튜디오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업계가 들썩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 리서치’ 보고서는 이번 인수전을 “단순한 거래가 아닌 ‘산업 재편(industry realignment)’”이라고 묘사했다.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와 더 넓은 미디어 지형 전반에 충격파를 일으킬 사건”이라 정의하며 “기술 기업들이 할리우드를 장악해온 과정의 종착점이 될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플랫폼’의 위치에 있던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의 소유주가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1923년 영화 제작과 배급을 시작한 워너브라더스는 할리우드 메이저 5대 스튜디오 가운데 하나로, ‘해리 포터’ ‘DC 유니버스’ ‘프렌즈’ ‘왕좌의 게임’ 등 굵직한 지식재산권(IP)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왔다는 점에서 희소성을 지닌다. 2025년에도 〈슈퍼맨〉을 통해 DC 유니버스의 재도약을 알렸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출연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비롯해 여러 흥행작을 선보였다. 일부 작품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2022년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의 합병으로 출범한 지 3년,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부채와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매각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경쟁자 HBO 맥스 제거하려고?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넷플릭스의 독과점을 우려한다. 이미 스트리밍 시장의 절대 강자인 넷플릭스가 HBO 콘텐츠까지 확보할 경우, 시장지배력이 한층 강화되기 때문이다. 두 플랫폼이 합병되면 미국의 구독형 스트리밍 시장 점유율은 3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스트리밍 중심의 넷플릭스가 영화산업을 약화시킬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영화·방송 산업 전반의 권력구조가 재편될 거라는 시나리오도 힘을 얻고 있다. 〈아바타〉 시리즈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이를 두고 “재앙(disaster)”이라 표현했다. 미국 감독조합(DGA)과 미국작가조합(WGA)은 일자리 감소와 다양성 저하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다. 미국 극장 소유주 단체 ‘시네마 유나이티드’도 반대 성명을 내고 “전 세계 영화 상영 사업에 전례 없는 위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를 사려는 가장 큰 이유는 HBO 맥스라는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이며, 더 나아가 사람들이 가끔 집 밖으로 나가 오락을 즐기는 행위 자체(영화관 방문)를 장기적으로는 경쟁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워너브라더스를 인수한 뒤에도 극장 개봉 사업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2025년 12월15일 넷플릭스의 CEO 그레그 피터스와 테드 사란도스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과거에는 극장 개봉이 넷플릭스의 사업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선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우리는 극장 개봉 사업에 집중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독과점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워너브라더스와 합병하더라도 미국 내 시청 점유율은 8%에서 9%로 소폭 상승할 뿐이며, 이는 유튜브(13%)와 파라마운트·워너브라더스 합병 시 예상되는 점유율(14%)에 여전히 크게 못 미친다”라고 밝혔다. 경쟁 대상을 유튜브로 지목하면서 시장 독점 논란을 피해 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여러 우려와 전망이 교차하지만 워너브라더스의 넷플릭스 편입 가능성을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2025년 12월8일, 워너브라더스 인수전에 참여해온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파라마운트)가 인수 금액을 1080억 달러로 끌어올리며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섰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주당 27.75달러를 현금과 주식으로 지급하는 조건을 내건 반면, 파라마운트는 주당 30달러 전액 현금을 제시하며 CNN·TNT·TBS·디스커버리 등 워너브라더스의 케이블 채널까지 인수 대상에 포함했다. 2025년 12월17일 워너브라더스 이사회가 자금 조달에 대한 보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제안을 거부하며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의 부친이자 오라클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이 404억 달러에 달하는 개인 보증을 제공하기로 결정하며 재차 인수 의지를 다졌다.
파라마운트가 아니어도 넷플릭스와 워너브라더스의 최종 합병까지는 갈 길이 멀다. 미국 연방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를 비롯한 주요 규제 당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국 법무부는 이번 인수전이 넷플릭스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보고 심사에 돌입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 및 그의 아버지 래리 엘리슨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도 합병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해 인수전의 향배를 섣불리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거래가 무산될 경우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 측에 물어야 할 위약금은 58억 달러다.
최근 5년간 스트리밍 플랫폼은 미디어 기업 간 인수합병을 거치며 성장해왔다. 2019년 디즈니가 21세기 폭스를 인수하고 2022년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의 합병으로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가 출범했다. 2024년에는 파라마운트가 스카이댄스를 인수하는 등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추구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인수전도 마찬가지다.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미국 콘텐츠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작부터 상영까지 한 기업이 일괄적으로 수행하던 수직 통합 구조가 있었다. 1940년대 반독점법이 시행되며 이 구조는 해체됐고, 제작·유통·상영은 분리됐다. 반면 OTT 시장에는 유사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가 메이저 스튜디오까지 흡수할 경우,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빅 브라더’로 비대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미 넷플릭스 가입자는 3억명을 넘어섰고, 디즈니 역시 1억명을 돌파했다. 결과적으로 경쟁자가 정리되고 가입자 1억명 이상을 확보한 소수 사업자들만 남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소수 사업자만 남는 구조로 재편되는 중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를 인수할 경우 한국 콘텐츠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넷플릭스는 2023년부터 4년간 약 3조원(25억 달러) 이상을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6년이 그 계획의 마지막 해다. 2025년까지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투자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건식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초빙교수는 “넷플릭스의 워너브라더스 인수가 현실화될 경우, 인수 자체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데다 한국의 제작비가 과거보다 크게 상승한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콘텐츠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일본이나 타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들 국가는 한국보다 제작비가 훨씬 낮아 넷플릭스가 보다 효율적인 시장을 다시 모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독과점 구조가 형성되면 이용료 역시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덧붙였다.

넷플릭스는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과 제작 규모 확대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제작비 급등과 수익 배분 구조의 왜곡, 지식재산권(IP) 종속의 심화라는 한계도 드러냈다. 한정훈 대표는 이제 한국도 ‘콘텐츠 공급 기지’에 머물게 아니라 IP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넷플릭스 투자가 예전과 달리 검증된 작품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콘텐츠 판매보다 IP를 확보하는 전략으로 가는 게 맞다. 또 ‘레지듀얼(넷플릭스 콘텐츠가 공개된 뒤 구독자 이용 시간이나 성과에 따라 추가 보상이 분배되는 방식)’도 논의가 필요한데 이건 개별 제작사가 자율적으로 도입하기 어렵고, 정부나 제도 차원의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망 사용료 문제나 ‘홀드백’(극장 개봉 뒤 OTT나 VOD 공개까지 일정 기간을 두는 것) 논의 등도 남아 있다.
‘넷플릭스 인사이트’ 행사에 참석한 김숙영 UCLA 교수는 K컬처 열풍에 대해 “(코로나19를 계기로) 모든 문화 소비가 디지털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온라인 소비에 강점을 지닌 한국 콘텐츠가 결정적인 기회를 맞았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의 80% 이상이 K콘텐츠를 최소 한 편 이상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반면 2025년 극장에서 관객 300만명을 돌파한 한국 영화는 〈좀비딸〉과 〈야당〉 두 편에 그쳤다.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미디어 환경 속에서, 넷플릭스를 둘러싼 인수합병 논의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취약성을 돌아보게 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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