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느림보’ 에스컬레이터, 왜 양동시장에만 있을까?

김현수 수습기자 2026. 1. 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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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찾는 고령 인구 안전 고려한 설계
“분당 12m 느린 속도·80cm 좁은 폭"
'빨리빨리' 대신 '안전'…국내 한 곳 뿐
“안전사고 감소…유의미한 결과 도출”
4일 찾은 양동시장역. 에스컬레이터 핸드레일을 잡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시민. 김현수 수습기자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시장역 출입구의 에스컬레이터가 일반 에스컬레이터의 절반 수준 속도로 움직이면서 이용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성인 1명이 겨우 설 만큼 폭도 좁은 이 에스컬레이터는 급한 걸음엔 답답할 수 있지만, 역을 오르내리는 시민들의 안전과 보행 부담을 덜기 위한 '느린 배려' 때문이다.

4일 광주교통공사에 따르면 양동시장역 에스컬레이터의 운행 속도는 분당 12m다. 통상적인 에스컬레이터 속도(분당 30m)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폭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없는 수준인 80cm로, 일반 규격(120cm)보다 약 40cm나 좁다.

이는 고장이나 노후화 문제가 아닌, 당초부터 '안전'을 고려한 의도된 설계다. 양동시장역은 전통시장 특성상 고령층 이용객이 많아 전도 사고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양동시장역 에스컬레이터의 층고는 7.7m, 길이는 15.4m에 달해 타 역사 대비 높고 긴 편이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언제든지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인근에 대형 전통시장을 둔 다른 역사와 비교하면 이 설계가 더욱 도드라진다. 또다른 지하철 역인 남광주역은 시장과 맞닿아 있지만 속도와 폭은 일반 수준으로 설치됐다. 전남대학교병원과 조선대학교 캠퍼스가 인접해 이용객 연령층이 다양하고 유동 인구가 많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이용객 대다수가 고령의 시장 방문객인 양동시장역은 '효율' 대신 '안전'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 광주교통공사 측의 설명이다.
양동시장역 에스컬레이터와 지상을 연결하는 잔여 계단. 김현수 수습기자

실제 양동시장역 에스컬레이터로 지상까지 이동하는 데는 약 75초가 소요된다. 비슷한 높이를 일반 성인이 걸어 올라갈 때 약 20초가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3배 이상 늦다. 하지만 속도가 느린 덕에 짐을 든 어르신들이 안정적으로 탑승할 수 있고, 폭이 좁은 덕에 양쪽 손잡이(핸드레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어 거동이 불편한 이들도 안심하고 이용한다. 침수 방지를 위해 에스컬레이터와 지상 사이에 놓인 잔여 계단이 타 역사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적은 것도 큰 역할을 한다.

양동시장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던 김옥란(74)씨는 "비나 눈이 와서 미끄러워도 에스컬레이터가 천천히 움직여서 불안하지 않다"며, "지팡이나 보행기를 짚은 사람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어 안심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의도를 가지고 느리게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지하철 역은 전국에서 단 한 곳도 없다.
짐을 들고 양동시장역 에스컬레이터를 탑승중인 시민의 모습. 김현수 수습기자

광주교통공사 관계자는 "양동시장 이용객 대부분이 어르신인 만큼, 지상을 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느리고 좁게 운행 중이다"며 "다른 역이었다면 느리고 좁아서 불편하다는 민원이 쏟아졌을 텐데, 오히려 역 특성을 잘 고려한 에스컬레이터라는 호평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처음엔 표준 속도로 운영했으나, 사고 발생 추이를 모니터링한 끝에 현재의 속도로 하향했다"며 "속도를 줄인 후 안전사고 발생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등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만 세심한 노력과 설계에도 불구하고 연간 66만명이 이용하는 양동시장역 에스컬레이터는 올해 14건의 전도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광주교통공사는 오는 5월 완공을 목표로 역사 외부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