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이 경계해야 하는 것...과거 추모하고 현재 침묵하는 ‘역사 박제’

제주 4.3을 바라보는 현재의 지배적인 시각은 이 사건을 제주의 지리적 고립성이나 특정 시기의 비극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4.3 진상규명 운동이 진정한 '운동'으로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개별적인 과거사로 박제하려는 '인식의 제도화'에 맞서야 한다. 4.3은 해방 정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분출된 민족적 열망을 억압하기 위해 국가라는 거대 기구가 작동한 '구조적 폭력'의 서막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제주만의 특수한 고통으로 치부하는 것은, 학살을 주도한 반공 전체주의 세력이 설계한 '기억의 격리' 전략에 스스로 발을 들이는 것과 다름없다.
제주 4.3을 현재적 의미이자, 언제나 새로운 현재를 창조하기 위한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주권 개념에 대한 바디우적 반전을 꾀해야 한다. 칼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정의내린 바 있다. 주권을 평상시의 법 집행 능력이 아니라, 예외상태를 선포하며 법질서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킨다는 칼 슈미트의 지적을 감안할 때 제주 4.3은 예외상태를 선포한 국가에 의한 법-외부의 폭력이자, 국가-주권의 폭력적 실행이었다. 알랭 바디우는 '사건'을 기존의 지식이나 질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예외적인 단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도 바울'에서 바디우가 지적한대로 '예수의 부활'은 바울에게 예외적인 '사건'이자 예외적 단절이었다. 제주 4.3 역시 해방 정국에서 벌어졌던 통일독립운동의 열망이 반공냉전주의와 분단체제로 왜곡된 예외적인 단절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주 4.3을 '사건'(이 때의 사건은 특별법이 말하듯 중립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라고 명명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섬광처럼 지나버린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났음을 계속해서 선언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태도의 견지이다. 즉 분절적 사건이자 예외적 사건으로서 제주4.3을 인식하고 그것을 하나의 역사적 진리로 받아들일때에야만 비로소 역사적 주체의 탄생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하자면 제주 4.3 항쟁은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분단(바디우가 말하는 율법과 죽음)에 맞서 통일 독립국가라는 보편적 진리(사건)을 선언한 주체들이다. 제주 4.3은 분단체제라는 '죽음의 율법'을 거부하고 '삶(통일)'을 선택한 투사의 역사이자, '사건'이다.
따라서 국가의 율법을 거부하고 주체로서의 자각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사건'들은 제주 4.3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4.3이 보도연맹 학살, 거창 학살, 그리고 멀리 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주체의 연대로서 등극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가폭력의 문제로 제주 4.3을 바라볼 때 아렌트가 지적한 전체주의의 속성은 특정 집단을 '불필요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체제의 안정을 꾀하는 데 있다. 4.3 당시 제주를 향해 쏟아부었던 초토화 작전의 논리는 이후 독재 정권이 민주화 요구를 탄압할 때 사용했던 '비상사태'와 '국가 안보'라는 명분의 원형이 되었다. 따라서 4.3의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제주의 억울함을 푸는 일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장치가 시민을 대상으로 휘둘러온 폭력의 메커니즘을 해체하는 보편적 투쟁이어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사건'을 선포하며 국가의 율법을 거부해온 현재와 맞닿아 있을 수 있다.
알랭 바디우가 '사도 바울'에서 설파했듯, 주체는 율법(제도)에 순종할 때가 아니라 사건의 진리에 충실할 때 탄생한다. 현재의 4.3 담론이 빠진 함정은, 국가가 규정한 '희생자 심사'라는 율법(Law) 안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면서 스스로의 주체성을 반납했다는 데 있다. 바디우에게 '부활'이 죽음의 법칙을 이기는 생명의 승리였듯, 4.3의 진정한 부활은 희생자로 박제된 무덤에서 걸어 나와, 1948년 당시 불의한 권력에 "아니오"라고 외쳤던 그들의 '선언'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디우가 말한 '주체의 부활' '운동으로서의 4.3'의 본질이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화된 기억은 운동으로서의 제주 4.3을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 4.3 특별법을 통한 개별적 배보상은 피해자들을 국가의 '시혜' 대상으로 묶어둠으로써, 다른 국가 폭력 피해자들과의 수평적 연대보다는 국가와의 수직적 관계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분절화는 4.3을 과거의 박물관 속에 가두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국가 폭력-강정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갈등,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서 보여준 국가의 부재와 책임 회피 등-을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게 한다. 4.3의 폭력을 구조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과거의 비극을 추모하면서도 현재 진행형인 폭력에는 침묵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예술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진다. 예술은 제도가 그어놓은 분절된 기억의 경계를 횡단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4.3 예술은 당시의 처참한 광경을 재현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신, 4.3의 학살을 가능케 했던 군경우익 단체의 결탁, 그 배후에 존재했던 냉전의 논리,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국가보안법이나 권위주의적 통제 장치로 어떻게 치환되어 살아남았는지를 연결해 보여주어야 한다. 4.3의 기억이 5.18의 기억과 만나고, 나아가 국가 폭력에 신음하는 지구촌 곳곳의 기억과 맞닿을 때, 4.3 진상규명 운동은 비로소 지역적 한계를 넘어 인류 보편의 존엄을 수호하는 살아있는 운동으로 거듭날 수 있다. (4편에서 계속)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국민대학교에서 '로컬리티의 발견과 내부식민지로서의 제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단법인 제주민예총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문학평론가로서 제주4.3문학과 오키나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욕망의 섬 비통의 언어',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공저),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공저), '김석범×김시종-4·3항쟁과 평화적 통일독립운동'(공저),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공저), '전후 오키나와문학과 동아시아-반폭력의 감수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공저), '비판적 4.3 연구'(공저), '언어전쟁'(공저) 등이 있다. 제주4.3 뮤지컬 '사월-The Great April'의 대본을 쓰기도 했으며 제주4.3 예술운동과 제주 제2공항 반대 투쟁에도 손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