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심화하는 연준, ‘합의 문화’ 깨지나
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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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체제(Regime)는 명확히 바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양적완화(QE) 도입이다. 양적완화란 유동성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시중 증권을 매입하는 것을 말한다. 그 전에는 일일 유동성 상황에 따라 증권을 매수하거나 매도했다.
이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통화정책의 핵심이 연방기금에서 지급준비금 잔액에 대한 이자율(IORB)로 이동했다는 것을 뜻한다. IORB는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지급준비금 잔액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율을 말한다.
IORB의 주된 목적은 단기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중앙은행이 설정한 목표 범위 내로 유도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다. 중앙은행이 IORB 금리를 올리면, 은행들은 대출하거나 다른 은행에 빌려주는 것보다 중앙은행에 준비금을 예치함으로써 더 높은 무위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은행 간 거래 금리인 연방기금금리의 하한선 구실을 해서 단기금리를 상승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IORB 금리를 내리면 은행들은 준비금을 보유하기보다 대출이나 투자를 통해 더 높을 수익을 추구하게 돼서 단기금리를 하락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IORB는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공개시장 조작 대신 IORB 조정을 통해 단기금리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정책 도구다. 결론적으로 양적완화 이후 세계에서는 은행 준비금 수준과 연준의 IORB 금리가 당일 유동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됐다.
하지만 일반과 언론의 관심은 여전히 연방기금금리에 집중한다. IORB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아닌 연준이 정한다. 회의록이나 의결권 행사 내용도 공개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FOMC 회의만큼 주목을 덜 받을 수밖에 없다. 연준의 체제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지만, 아직 대중과 언론은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전문 영역이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연준의 운영 패러다임 혹은 체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혼란은 불가피하다.
기존의 규범 ‘집단사고’
집단사고(Groupthink)는 연준의 표준이자 규범이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FOMC는 6주마다 회의를 열어 통화정책을 설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를 논의한다. 목표는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고용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FOMC는 이사회 위원 7명, 4명의 지역 연방은행 총재, 뉴욕 연방은행 총재 등 총 12명으로 구성된다. 회의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표명되고 논쟁도 치열하지만, 발표되는 결과는 항상 합의에 도달한 듯한 인상을 준다. 결정된 통화정책 조처에 찬성표를 던진 위원과 반대표를 던진 위원 명단을 나열한 성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936년 이래 평균적으로 반대표는 회의당 5% 정도에 불과했다. 2000년 이후로 보면 가장 많은 반대표는 3표였다. 결론적으로, 반대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정책 결정은 합의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준은 지난 100년 동안 집단사고 체제를 유지해왔다.
FOMC 위원들의 출신 지역과 학력, 배경은 다양하고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천차만별이다.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경제와 통화정책의 방향에 합의를 이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만 이런 현상은 보수 색채가 짙은 회의체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판결이나 특정 위원회의 결정은 수많은 논쟁과 엇갈린 의견 속에서도 결과물은 합의에 기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회의체를 주관하는 의장의 입김이 합의된 견해를 제시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집단사고에 기초한 합의가 결과물의 신뢰성과 지위를 담보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체제 변화
이제까지 연준은 독립성을 강조했다. 위원들 개개인의 신념이나 사고체계가 어떻든 최소한 겉으로는 독립성이란 가치를 옹호했다. 대통령이 연준 위원을 지명한다는 것은, 후보자의 견해가 대통령의 그것과 일치함을 뜻한다. 그럼에도 임명 뒤에는 독립성을 주요 가치로 내세워왔다.
최근 이 흐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임명한 스티븐 마이런은 임명권자의 견해를 그대로 반복한다. 트럼프 대통령 이상으로 금리 인하에 공격적이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5월 임기가 끝나는 연준 이사인 리사 쿡과 제롬 파월 의장의 후임으로 강한 비둘기파로 알려진 인물을 지명할 게 분명하다. 특히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는 케빈 해싯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대표적인 성장 위주의 통화론자이다.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주장한다.

이제 연준의 정치적 분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흥미롭게도, 연준이 완전히 트럼프 지명자들이 장악한 상태가 아닌데도 금리 인하를 놓고 연준 위원들 간 이견은 점차 가열되고 있다. 파월 의장이 집단사고를 통한 합의를 끌어내기는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반대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25년 12월 FOMC 회의에서 우리는 역사적 경험치를 훨씬 웃도는 반대표를 볼 수 있었다. 무려 3명이나 이견을 냈다.
이런 경향은 트럼프 지명자들이 연준을 장악하는 순간까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이런 분열은 과연 나쁠까? 역사적으로 연준 의장은 FOMC가 대중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권위를 원했다. 가장 좋은 수단은 ‘합의’였다. 연준 위원들이 현재의 경제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처방을 한다는 믿음을 주는 데 권위 있는 인물들의 ‘합의’만큼 좋은 수단은 없었을 것이다.
소수가 주도하는 집단사고
소수가 주도하는 집단사고는 중대한 정책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맹신을 부를 수 있어서다. 전문가 다수가 합의했으니 최소한 흠결은 없으리라 믿게 된다. 함정이 여기에 있다. 결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사라지면서 종교적 맹신만 자리하게 된다. 반대표와 소수 의견이 있으면서 그것이 적당한 수준을 유지할 때 결정은 의미가 있다. 결정을 보는 대중에게 반대 의견이 상당함을 인식시켜 연준의 정책 방향에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반대표가 많은 투표는 연준이 자신의 견해나 정책에 확신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현실을 정확히 인식시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걸 믿게 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편이 더 낫다.
연준의 체제 변화 가능성은 독립성 침해 논란과는 별개로 환영할 일이다. 위원 12명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하고 신념에 따라 투표하는 방식은 반가운 일이다. 어느 조직이든 한 사람의 의견이 견해와 정책을 좌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이 대통령이든 연준 의장이든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을 장악하려 한다. 성공한다면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다행히 임기 내 완전 장악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의 장악 시도가 (의도치 않게) 이견이 존재하고 논쟁할 수 있는 연준을 만들어낸 건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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