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4.3% ‘깜짝 성장’에도 불안한 이유…‘K자형 경제’ 심화에 ‘물가’는 뇌관
소득 그대로인데 고소득층 소비만 늘어…“관세가 양극화 가속” 지적도
(시사저널=김하늬 미국 통신원)
미국 경제는 지금 '성장은 괴물, 물가는 뇌관'이라는 기묘한 국면에 서있다. 2025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율 기준 4.3%다. 시장 예상치(3.2%)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자 2년 만의 최고 성장이다. 월가에서는 "침체는 없었다(No Landing)"는 선언이 공공연히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술 더 떠 "관세 덕분에 미국 경제가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자화자찬에 나섰다. 이 숫자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며 세계 경제의 혼란 속에서도 미국만은 예외라고 주장한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역시 "미국은 3% 성장도 가능하다"며 낙관론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성장의 겉 표면을 조금만 벗겨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성장의 동력은 넓지 않고, 물가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용과 소득의 온기는 한정적 계층과 일부 기업에만 머물러 체감 경기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성장은 괴물처럼 커지고 있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뇌관이 조용히 작동 중이다. 2026년의 미국 경제가 '시계 제로'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성장세를 관세 정책의 성과로 떠벌린다. 무역적자가 줄어들었고, 수입이 감소했으며 그 결과 GDP가 상승했다는 논리다. 실제로 3분기 GDP 성장률 4.3% 가운데 약 1.6%포인트는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에서 나왔다. 하지만 주요 외신과 경제학자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이는 경제가 더 많이 생산해 얻은 성장이라기보다, 덜 수입했기 때문에 발생한 '회계적 효과'에 가깝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관세가 성장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장 통계를 왜곡했다"고 표현했다.

성장·고용의 온기, 고소득층·기업만 누려
관세 인상을 앞두고 기업들은 2분기에 수입을 앞당겼고 그 반작용으로 3분기에는 수입이 급감했다. GDP 산식상 수입은 차감 항목이기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면 성장률은 자동으로 높아진다. 이는 일회성 효과이며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GDP를 무역 점수판처럼 해석하는 오류"라고 지적했다. 관세는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 오히려 가격을 통해 소비자의 구매력을 잠식한다. 단기 숫자는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장기 체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미국의 상대적 선방은 세계 경제의 부진 위에서 더 두드러졌다. 중국은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유럽은 고금리와 에너지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역시 구조적 저성장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FT는 "미국의 성장이 다른 나라의 약화를 대가로 한 것이라면, 그 지속 가능성은 더욱 낮다"고 꼬집었다. 세계 경제가 함께 둔화하는 상황에서 한 나라만 장기적으로 질주하기는 어렵다는 해석이다.
이번 미국 성장의 핵심 동력은 명확하다. 고소득층 소비와 인공지능(AI) 투자다.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고, 이는 설비투자와 생산성 지표를 끌어올리고 있다. 고소득층 소비 역시 견조하다. 주식시장 상승과 주택 가격 강세가 자산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이들은 고금리와 물가 상승 속에서도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지난해 S&P500과 나스닥 지수는 각각 12월30일 기준 17.3%, 21.3% 뛰었다.
문제는 이 성장 엔진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이다. 중·저소득층 소비는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다. 외신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키워드는 'K자형 경제'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은 성장의 수혜를 누리는 반면, 저소득층과 소기업은 점점 더 뒤처진다. 미국 민간 고용 조사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직원 수 50명 미만 소기업은 지속적으로 고용을 줄였다. 지난해 11월 한 달에만 약 12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반면 중견기업과 대기업에서는 고용이 증가했다. 실적 격차도 뚜렷하다. S&P500에 포함된 대형 상장사들의 3분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소기업에는 소비 위축과 비용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美 경제 키워드는 '모순'…성장하는데 질 나빠
가장 위험한 변수는 인플레이션이다. 겉으로 보이는 물가 상승률은 2%대 후반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데이터 수집이 지연됐고, 일부 항목은 과거 수치를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외신과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2026년 물가가 다시 3%대를 웃돌 가능성을 경고한다. 관세 인상분의 가격 전가, 감세에 따른 소비 자극, 현금성 환급 정책이 동시에 작동할 경우 수요 압력은 급증할 수 있다. 월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미 관세 부담을 가격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가구당 2000달러 관세 환급 수표' 같은 정치적 아이디어까지 더해질 경우, 인플레이션의 불씨는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방준비제도(Fed)는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재점화할 수 있고, 금리를 유지하거나 올리면 고용과 소비가 급격히 꺾일 수 있다. 문제는 통화 정책의 정치화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연준 인선을 통해 통화 정책을 완화 쪽으로 기울게 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성장과 자산시장을 지지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연준의 신뢰와 물가 안정 목표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재정과 통화가 동시에 완화되는 시점에 인플레이션이 다시 살아날 경우, 정책 대응의 여지는 거의 남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26년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모순'이다. 성장은 강하지만, 질은 나쁘다. 소비는 견조하지만, 계층 간 격차는 확대된다. 자산은 오르지만, 체감 경기는 악화된다. 2026년 미국 경제는 붕괴 직전도, 안착 국면도 아니다. 대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멈춰선 시계에 가깝다. 성장이라는 괴물은 계속 움직이지만 물가라는 뇌관이 언제 폭발할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결국 2026년 세계 경제의 최대 변수는 여전히 미국이며 그 중심에는 트럼프와 연준이 있다. 2026년 미국 경제는 그렇게 시계 제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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