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베테랑 기자는 왜 노무사가 되었나 [.txt]
사회부·문화부 거친 숙련된 기자였고
인척 산업재해 사망 이후 노동법에 관심
기사 쓰기보다 분쟁 해결 택해 현장으로
“소송·다툼보단 상처 덜 주는 타협 필요”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그런데 소송이 최선일까. 일례로 임금체불 민사소송은 1심 판결 선고에만 최소 몇개월이 걸린다. 그동안 소송 당사자는 많은 스트레스를 겪고, 만만치 않은 소송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소송 대신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은 노동자가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을 근로감독관에게 알리고 조처해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로, 비용 부담에서 자유롭고 소요 기간이 짧은 대신 강제력이 약하다. 소송이든 진정이든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번져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결과만 남기기도 한다. 이런 지경까지 이르기 전에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그 고민의 한복판에 공인노무사(이하 노무사)가 있다.
노무사는 사용자·노동자·기업·노조 등을 대신해 분쟁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노동관계 법률 전문가다. 최근 문화방송(MBC)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 때문에 화제를 모았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낯선 직업이다. 지난 12월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지무노동법률사무소에서 만난 박도제(51) 노무사는 자기 직업의 의미를 새로운 해석으로 풀어내 이해를 도왔다.
“노무사는 노동자를 위해 힘을 쓴다는 의미가 있는 ‘노’(勞)와 ‘무’(務)에 선비를 뜻하는 ‘사’(士)를 합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노(勞) 외에 나머지 두 글자를 없다는 뜻을 가진 ‘무’(無)와 사용자를 가리키는 ‘사’(使)로 뜻을 풀이하곤 합니다. 1인 사업자를 보시면 노동자와 사용자를 구별할 수 없듯이, 둘은 본디 한 몸입니다. 뿌리가 같으므로 둘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이 없습니다. 노무사는 둘 사이를 넘나들며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없음을 안다’는 의미가 있는 사무소 이름 ‘지무’(知無)도 그런 제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박 노무사는 다른 노무사와 구별되는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20년 넘게 기자로 일하며 사회부, 문화부 등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친 베테랑 언론인 출신이다. 그랬던 그가 뒤늦게 노무사로 전업한 계기가 궁금했다. 기자는 전업할 때 경력을 살리고자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홍보실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그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과거의 아픈 경험을 털어놓았다.
“2010년에 인척 한분이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했습니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며 기자로서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하나도 없더군요. 산업재해보상보험, 무과실책임주의와 같은 중요한 개념과 제도가 내 일상에선 왜 비어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노동법을 찾아보고 공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사건 이후 주위를 바라보는 박 노무사의 시선이 달라졌다. 대한민국 사회의 부정부패를 기사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내부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상황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순.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자기가 몸담은 조직의 결핍을 느꼈던 그는 노무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건과 사고에는 노동 이슈가 어떻게든 연결돼 있더군요. 고용노동부 출입 기자로 일하면서 노무사를 알게 됐습니다. 이를 기사로 보도하는 일도 의미 있지만, 노무사로서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해결해보고 싶었습니다. 바쁜 기자 생활 중에 시간을 쪼개 시험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객관식으로 치러지는 1차 시험에 어찌어찌 붙어도, 서술형으로 치러지는 2차 시험의 벽은 정말 높았습니다. 5년 넘게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2016년 제25회 시험에 합격한 박 노무사의 선택은 눈에 띄는 곳부터 바꾸기였다. 사내에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기자 직군을 대표하는 노조는 없다는 점이 그에게 결핍으로 다가왔다. 그는 우선 기자협의회장을 맡아 노조의 필요성에 관해 후배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청취했다.
“노조와 달리 기자협의회는 임의 조직이어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편집권이 보장되지 않은 채 보도되는 기사는 윗선의 입장만 반영하니까 균형을 유지할 수 없어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없어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편집권을 지키려면 노조라는 법적인 보호망이 필요하다는 데 많은 후배 기자들이 공감했어요. 기자 직군을 대표하는 노조를 설립한 계기였어요.”
박 노무사는 굳이 나서서 가시밭길을 걸었던 이유로 전태일 열사를 꼽았다. 2023년 노조 설립 과정을 담은 르포 ‘애완견이 된 감시견’으로 제3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전 열사의 생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전 열사는 생전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면서도 영업이익을 내 노동자와 사용자가 모두 잘살 수 있는 기업인 ‘태일피복’을 구상했어요. 대한민국에 전 열사의 구상에 동의하는 사용자가 많아지고, 제대로 대우받으며 보람을 느끼고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가 많아진다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워질까요. 대한민국에서 밥벌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전 열사를 향한 고마움을 조금씩이라도 느끼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 관련 법률 문제에 있어서 의뢰인은 노무사와 변호사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노무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변호사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호사는 노무사와 달리 소송 대리권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변호사에게 문제 해결을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에 관해 박 노무사는 현실적인 분쟁 해결에 있어서 노무사의 역할이 변호사보다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종합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와 달리 노무사는 노동 사건에 특화돼 있습니다. 노동위원회, 노동청 단계에선 노무사의 실무 경험이 변호사보다 풍부한 경우가 많고요. 진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필요 이상인 소송으로 대응하면 더 큰 비용과 감정 소비로 이어집니다. 또한 상담 비용도 변호사보다 노무사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어서 노동자의 접근성도 유리하고요.”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노무사는 최근에 해결한 ‘권고사직 사건’을 꼽았다. 대전에 있는 아이티(IT)업체에서 근무했던 30대 에이(A)씨가 경영상의 이유로 사측에서 사직을 권고받았다. 권고사직은 노동자가 수용해야 성립되는데, A씨는 이를 거부했고, 사쪽은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아 징계해고로 대응했다. 징계해고는 이직할 때 평판 조회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서 A씨는 절박한 마음으로 박 노무사를 찾았다.
“징계해고가 취소됐더라도 A씨가 마음 편하게 회사에 다니긴 어려웠을 거예요. 회사도 굳이 징계해고로 떠나는 직원의 앞길을 막을 필요가 없고요. 회사는 징계해고에서 권고사직으로 바꿨고, A씨는 이를 수락했지요. 며칠 전 A씨가 이직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주었습니다. 소송에 들어가 법적 다툼을 벌여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호받는 일도 의미 있죠. 하지만 그런 다툼을 벌이기 전에 서로에게 상처를 덜 주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고 타협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국론 통합에 힘써야 할 정치권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균형 감각을 강조하는 박 노무사의 태도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노무사라는 직업의 장점을 물을 때도 그는 노쪽 노무사와 사쪽 노무사로서의 측면을 나눠서 설명하는 등 한쪽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경계했다.
“노동자 측 노무사라고 해서 마냥 노동자의 편을 들 순 없습니다. 노동자에게 공감하지만 동감하기 어려운 상황도 많이 있으니까요.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게 이 직업의 장점이지만, 분쟁의 중심에 뛰어드는 직업이다 보니 감정 소진이 상당합니다. 사용자 측 노무사라고 해서 노동자에게 마냥 불리한 쪽으로 일하진 않습니다. 사용자가 근로조건을 결정할 때 노무사의 자문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거기서도 보람을 얻습니다.”
박 노무사의 오랜 기자 경력도 업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같은 질문에 그는 오랜 세월 기사를 작성했던 경험이 서면으로 많은 일을 진행하는 노무사 업무에 신뢰감을 주고, 더불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 경력이 사안을 입체적으로 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노무사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서면으로 사안을 잘 정리하는 건데, 일선 취재기자로서 기사를 작성하고 데스크로서 기사를 살폈던 경험이 이유서나 답변서를 쓸 때 도움이 됩니다. 과거에 썼던 기사가 의뢰인에게 신뢰감을 줄 때도 있고요.”
한국고용정보원이 2024년에 발표한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2028년부터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 전망이다. 다가올 미래가 노무사 업계에도 위협이 되지 않을까. 박 노무사는 경제활동인구 감소가 노무사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고 내다봤다.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상황을 부당하다고 인식하는 감수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송으로 법적 다툼을 벌일 만한 사건은 한정적입니다. 어떻게 힘 조절을 해야 하는지 살피는 노무사의 역할은 앞으로 더 필요하면 필요하지 줄어들진 않을 겁니다.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상담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향후 에이아이(AI)가 대체하기도 어렵다고 봅니다.”
박 노무사는 올봄 출간을 목표로 ‘노조위원장 핸드북’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언론사 노조위원장 경험, 노동 담당 기자로 일했던 경험, 노무사로 일하며 쌓은 다양한 분쟁 해결 사례와 전문 지식을 책에 담을 계획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오랜 기자 경력을 접고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들었을 때 두렵지 않았을까. 그럴 때마다 박 노무사는 전업하며 이루고 싶었던 목표 두가지를 떠올리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2024년 기준 노동조합 조직률은 13%에 불과합니다. 30%까지 조직률이 높아지면 세상이 더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그런 변화를 이루는 데 저도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학교에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돼보고 싶습니다. 졸업하고 취직하면 가장 필요해질 지식인데, 이를 충분하게 가르치지 않는 교육 현장이 이상하지 않나요?”
정진영 l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왓 어 원더풀 월드’ 등을 썼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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