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를 '학교'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

김범수 2026. 1.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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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를 '학교'라는 은어로 부르기도 한다.

두 집단이 엄격한 규율로 운영되는 데다 구성원의 교육을 중요한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교도소의 경우 '교육'은 이중적으로 쓰일 수 있다.

유주영 대구교대 교수는 '백년의 교도소'에서 지난 100여 년간의 교도 행정에서 이 교육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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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유주영 '백년의 교도소'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서울 남부교도소 내 교육시설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소년수들이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 뉴스1

'교도소'를 '학교'라는 은어로 부르기도 한다. 두 집단이 엄격한 규율로 운영되는 데다 구성원의 교육을 중요한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교도소의 경우 '교육'은 이중적으로 쓰일 수 있다. 본디 목적은 '갱생'이지만 되레 범죄를 배워 나온다는 의미를 가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유주영 대구교대 교수는 '백년의 교도소'에서 지난 100여 년간의 교도 행정에서 이 교육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했는지 살펴본다. 저자의 시기 구분을 종합하면 감옥에서 형무소로 이름이 바뀐 일제강점기, 그 구조를 유지하면서 '교화'의 방점이 달라진 해방 후 군사정권기, 비로소 인권과 교육에 주목한 민주화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감옥'에서 '형무소'로 이름이 바뀐 일제강점기를 저자는 "식민 통치의 도구로 감옥을 적극 활용"한 시기로 받아들였다. 당시 수감된 조선인의 87%는 사상범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품성을 고치겠다는 것은 일제에 순응하도록 하겠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형무소 내 학교를 두어 산술, 수신, 창가, 조선어와 외국어 등을 가르쳤고 책을 돌려보게 했다. 최종적으로 사상 전형을 노린 것이라 할지라도 교도 행정에 처음으로 체계적인 교육이 도입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미군정기는 민주적인 형 집행을 강조했지만 법규 등은 일제 그대로였다.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만큼 당시 교육은 좌익 전향, 반공 교육에 방점을 찍었다. 교도소라는 이름이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도 이런 추세는 이어졌다. 고도성장기의 경제 논리가 반영돼 '1인1기'라며 기술교육을 강조한 것이 이 시기 특징이다. '삼청교육대'로 출발한 전두환 군사정권에서도 민주화·노동운동가 등에 대한 순화 교육이 중요 관심사였다.

민주화 물결이 거셌던 1980년대 중후반쯤부터 금서 제한이 완화되고 신문, 방송에 접할 권리가 확대되면서 교도소 내 교육의 틀이 제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수형자 고등 교육, 인문학 교육, 직업 교육과 취업의 적극 연계, 인성 교육과 출소 후 사회 적응 프로그램 강화 등의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교도소를 형벌의 공간이 아니라 학습의 장으로 재구성할 때 교정은 의미를 찾을 것"이라는 이 책의 문제의식에는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다만 저자도 지적했듯 국내 교도소는 콩나물 시루 같은 만성 과밀 상태로 수용자들의 기본 인권조차 지키지 못하는 딱한 실태다. 저자가 바라는 대로 평생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갈 길이 멀다.

백년의 교도소·유주영 지음·지식의날개 발행·276쪽·1만8,000원

김범수 선임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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