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소급감정 과세’ 시행령, 법원 “조세법률주의 위반” [허란의 판례 읽기]
“과세관청과 납세자 다른 기준 적용, 법적 안정성 저해”
[법알못 판례 읽기]

국세청이 2020년부터 시행 중인 ‘꼬마빌딩 감정평가사업’의 근거 법령인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이 위헌·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과세관청에만 평가 기간 경과 후에도 감정평가를 허용하면서 납세자는 6개월 내 신고해야 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있다”며 시행령 규정이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시했다.
법원이 과세관청의 부동산 감정평가 관련 소송에서 시행령 자체의 위법성을 정면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세청은 올해부터 감정평가 대상을 초고가 아파트, 호화주택까지 확대했는데 법령 자체가 위법 판정을 받으면서 행정상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남세무서, 상속세 부과 취소하라”
서울행정법원(법원장 김국현)은 2025년 12월 15일 A씨 등 상속인들이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세 부과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시행령 규정이 무효이고 국세청 감정가액도 시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164억원의 추가 상속세 부과 처분 전부를 취소했다. A씨 등 상속인들은 2019년 부친 사망으로 서울 소재 토지와 건물 등을 공동 상속받았다.
상속 전후 6개월 이내 매매사례나 감정가액이 없어 상증세법에 따른 보충적 평가 방법(공시가격)으로 부동산 가액을 약 400억원으로 산정해 2019년 10월 전체 상속재산에 대해 상속세 약 800억원을 신고·납부했다.
그러나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상속세 조사를 실시하면서 2019년 개정된 시행령 제49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상속개시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9년 10월 3일을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실시했다.
강남세무서장은 2020년 6월 두 곳의 감정평가법인으로부터 받은 감정가액을 시가로 인정해 2020년 9월 추가 상속세 164억원(가산세 포함)을 부과했으며 A씨 등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시행령 규정 자체가 위법”
재판부는 먼저 국세청 감정평가사업의 법적 근거인 시행령 규정 자체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2019년 2월 12일 개정된 상증세법 시행령 제49조 제1항 단서는 “평가 기간(상속 전후 6개월)이 지난 후부터 법정 결정 기한(신고 기한+9개월)까지의 기간에 감정이 있는 경우”에도 평가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시가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규정이 과세관청이 평가 기간 경과 후 9개월까지 감정평가를 실시해 시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상속인은 상속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규정은 납세의무자가 활용할 가능성이 없는 기간을 과세관청에 대해서만 감정을 추가로 허용함으로써 시가 인정 범위에 관한 기준이 과세관청과 납세의무자 사이에서 다르게 적용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또 납세의무자가 과세관청이 언제, 어떠한 재산을 대상으로 감정을 실시할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시가와의 차이가 큰 부동산’이라는 기준에 따라 대상을 선정해 감정평가를 했다고 하나 이에 해당하게 되는 부동산의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과세관청이 상속세 과세표준 신고 기한부터 9개월 이내에 실시되는 감정평가 결과에 따라 세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납세의무자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저해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규정이 실질적으로 상증세법 제60조 제3항의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보충적 평가 방법을 사용’하도록 한 법률 규정보다 하위 시행령을 우선 적용하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개별공시지가 등이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는 개별공시지가 등을 현실화하거나 보충적 평가 방법에서 사용할 개별공시지가 등의 산정기준을 별도로 정해 해결해야 하지 하위 법령인 대통령령의 개정을 통해 법률의 적용을 무력화해 해결할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국세청 감정가액도 시가로 인정 못해”
재판부는 시행령 규정이 무효라는 판단과 별개로 국세청 감정가액 자체도 시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시행령 제49조 제1항 단서는 평가 기간이 지난 후의 감정 등에 대해 ‘가격변동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 한해 시가로 평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가격변동의 특별한 사정’이라 함은 형질변경, 도시계획 변경, 토지의 분할·합병, 멸실·훼손, 용도변경 등 상속재산의 가격에 변동을 일으키는 이례적인 사유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상속개시일부터 가격산정기준일, 감정가액평가서 작성일까지 기간에 상속재산 가격의 유의미한 변동이 발생해 해당 감정가액이 상속개시일 당시 상속재산의 객관적인 교환가치를 적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만한 제반 사정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법원이 이 소송에서 별도로 실시한 감정 결과를 보면 해당 부동산의 개별공시지가는 2019년 1월 1일 기준 대비 2020년 1월 1일 기준으로 2.2~5.5% 상승했다.
또 부동산 소재지의 지가변동률은 상속개시일인 2019년 4월 2일부터 가격산정 기준일인 2019년 10월 3일까지 3.098%로 산정됐다. 국세청 감정가액은 상속개시일인 2019년 4월 2일을 기준으로 한 법원 감정가액에 비해 2.6~10.5% 높았다.
재판부는 “평가위원회의 심의는 상증세법 시행령 제49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시가를 인정하기 위한 별개의 요건일 뿐이므로 그러한 심의가 있었다고 해서 가격변동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는 점에 관해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돋보기]
조세법률주의 위반 주장, 14건 모두 기각
이번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국세청 감정가액의 적정성이 아닌 감정평가사업의 법적 근거 자체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동안 법원은 주로 △국세청 감정가액을 시가로 인정할 수 있는지 △감정평가 수행 절차가 적법한지 △가격변동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등 개별 사안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데 그쳤다. 시행령 규정 자체가 조세법률주의나 법률 우위 원칙에 위배되는지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김태훈 한국부동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22~2024년 각급 법원에서 선고된 상속·증여 부동산의 감정가액 적용 관련 판례 35건을 분석한 결과 총 124개 쟁점 유형별로는 △‘시가로 인정되는 감정가액의 의미 해석’ 관련 쟁점 59개(48%) △‘감정평가 대상 선정 및 과세처분에 따른 조세원칙 위배 여부’ 관련 쟁점 47개(38%) △‘감정평가 수행 관련’ 쟁점 18개(15%)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조세법률주의 위반을 다룬 14개 쟁점 모두에서 법원이 “조세법률주의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는 점이다. 법조계는 이번 1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100여 건의 유사 소송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소송을 이끈 김다애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시행령의 위헌성과 위법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라며 “상급심에서도 같은 취지로 판단하면 국세청 감정평가사업의 법적 토대가 전면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국세청이 2025년부터 확대 시행 중인 초고가 아파트, 호화주택 감정평가사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꼬마빌딩 896건을 감정평가해 신고액(5조5000억원)보다 75% 높은 9조7000억원에 대해 과세했다. 올해는 감정평가 대상을 고가 주거용 부동산까지 확대하고 선정 기준도 신고가액과 추정 시가 차액을 10억원에서 5억원으로 낮췄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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