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로 남은 사람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은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창업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300년전 인물이 플래너에 들어간 이유
다이어트, 영어 공부, 내집마련하기…. 새해가 되면 누구든 그럴싸한 새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뒤 한 해를 뒤돌아보면 이 중 상당수는 공수표가 된 경우가 다반사다. “올해는 좀 다르게 살아보자”는 다짐은 매년 실패하지만 어김없이 새해면 또다시 세우는게 당연지사다.
프랭클린 코비 로고
계획은 많아지는데 방향은 흐릿하고, 하루는 분주한데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다는 느낌만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나 플래너를 구매하는 이유 역시 이처럼 계획에 좀더 공을 들이고 체계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플래너의 대명사격인 프랭클린 플래너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고민에서 탄생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바쁜데, 삶은 정리되지 않는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64년간 지킨 철학
프랭클린 플래너에는 유명인사의 실명이 들어가있다. 바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자 초기 미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정치가, 외교관, 과학자, 발명가 등 다재다능함을 뽐냈던 그는 무엇보다 자기 삶을 가장 집요하게 관리한 인간으로도 이름난 인물이다.
프랭클린은 1706년 1월 17일,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비누·양초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오래 받지 못했고, 열두 살부터 인쇄소 견습공으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았다. 프랭클린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오늘 나는 어떤 인간이었는가.”
벤저민 프랭클린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13가지 덕목을 부여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검약, 근면, 성실, 정의, 절도, 청결, 평정, 순결, 겸손. 그는 매일 밤 하루를 뒤돌아보며 무엇을 지켰는지, 어겼는지를 체크했다. 프랭클린은 무려 64년 동안 이 점검을 반복했다. 실패하면 표시했고, 다음 날 다시 도전했다.
흥미로운 점은 프랭클린이 스스로 가장 지키기 어려웠던 덕목으로 ‘질서’를 꼽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 다만 매일 스스로를 관리했다. 프랭클린에게 자기계발은 동기부여가 아니라 관리였다. 시간을 썼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긴 삶과 연결돼 있었는지를 따졌다. 이 태도는 훗날 정치적 업적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는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
“바쁜데 왜 공허한가”라는 현대적 질문
시간이 흘러 미국은 전세계의 중심에 섰다. 산업국가이자 조직사회로 전세계를 이끌어가는 미국 사회 내부적으로는 성과와 효율이 최우선시 됐다. 20세기 후반, 현대화된 미국사회에서 ‘시간 관리’는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일정표와 할 일 목록은 점점 정교해졌지만, 사람들은 점점 같은 질문에 부딪혔다. 왜 이렇게 바쁜데, 삶은 정리되지 않는가.
프랭클린 플래너의 창업자, 하이럼 스미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히며 정답을 찾으려는 한 사내가 있었다. 바로 사업가 하이럼 스미스다. 1943년 미국 유타주에서 태어난 그는 성실한 사업가였다. 그가 태어난 유타는 미국에서도 독특한 지역이다. 몰몬 문화의 영향으로 자기 절제, 계획적 삶, 역할과 책임을 중시하는 공동체적 가치가 강하게 자리 잡은 곳이다. 스미스는 이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스미스의 일정은 늘 가득 차 있었고, 누구보다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하루는 꽉 찼는데, 인생은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할 일은 많은데, 그 일들이 어떤 삶으로 이어지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플래너를 사용해왔던 스미스는 기존 다이어리의 한계를 정확히 짚었다. 모두가 할 일 목록에 집착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 일은 왜 중요한가” 그의 고민은 깊어졌고 그의 머리속엔 한 인물이 떠올랐다.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그리고 그는 프랭클린이 시간을 관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관리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한 사업가의 손에서 탄생한 독특한 플래너
1984년, 스미스는 유타주에 ‘프랭클린 플래너’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그가 만든 프랭클린 플래너는 기존 다이어리와 완전히 달랐다. 일정 앞에 목표가 있었고, 목표 앞에 가치와 역할이 놓였다. 할 일을 적기 전에 왜 이 일을 하는지를 먼저 쓰게 만들었다. 쓰기 불편했고, 귀찮았으며, 생각하지 않으면 한 장도 채울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사람들을 붙잡았다.
초창기 프랭클린 플래너
프랭클린 플래너는 수첩이 아니라 삶의 운영체계였다. 바쁘게 사는 법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먼저 정하는 법을 요구하는 도구였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관리자, 전문직, 교육자, 종교 지도자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며 프랭클린 플래너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자기관리 철학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동시기에 같은 유타 출신의 걸출한 인재가 그의 사업에 불을 붙였다.
도구에 철학을 보탠 사상가의 등장
이 시기 유타에는 또 한 명의 인물이 같은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1932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태어난 스티븐 코비가 주인공이다. 역시 몰몬 문화권에서 성장한 그는 성공을 요령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성품과 원칙의 문제로 바라봤다. 특히 그가 1989년 출간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효율과 속도에 집착하던 자기계발 시장의 흐름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스티븐 코비
코비는 “당신은 얼마나 효율적인지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일곱 가지 습관은 요령이 아니라 태도였고, 방법론이 아니라 인간관에 가까웠다. 주도성, 목적의식, 중요성 중심 사고, 상호 이익, 공감, 협력, 자기 쇄신. 모두 “어떻게 빨리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를 묻는 언어였다. 이 지점에서 코비의 사상은 프랭클린 플래너가 이미 품고 있던 철학과 정확히 맞물린다. 스미스가 가치에 방점을 찍은 도구를 개발했다면, 코비는 그 구조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주는 철학을 제공했다.
플래너 회사에서 ‘기준을 파는 회사’로
1997년, 프랭클린 플래너 회사와 코비 리더십 센터가 합병하며 ‘프랭클린코비’가 탄생한다. 이 합병은 단순한 사업 결합이 아니었다. 18세기 프랭클린이 남긴 자기관리의 질문, 20세기 스미스가 이를 구조로 구현한 시스템, 그리고 코비가 원칙 중심 리더십이라는 언어로 정제한 사상이 하나의 조직 안에서 이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프랭클린 플래너는 ‘잘 쓰는 수첩’이 아니라 리더십·조직문화·교육 브랜드로 성격이 바뀐다.
프랭클린 플래너 속지
합병 이후 프랭클린코비는 개인용 플래너 판매에 머물지 않았다. 기업, 정부, 군,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리더십·신뢰·실행력 프로그램을 본격화한다. 1990년대에는 리더십 회사로, 2000년대에는 글로벌 조직 교육 기업으로, 2010년대에는 디지털 플랫폼 기반 회사로 확장했다. 스마트폰과 일정 관리 앱이 쏟아졌지만, 프랭클린코비는 도구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다. 이 회사는 효율을 팔지 않았다. 판단의 기준을 팔았다. 종이는 줄었지만, “중요한 것부터 하라”는 질문 구조는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프랭클린, 스미스, 코비.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누구도 시간을 아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그 시간이, 당신이 중요하다고 말한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작심삼일을 피하는 관점의 전환
새해를 맞아 프랭클린 플래너의 이야기는 단순히 목표를 세우는데 집착하는 대신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또 새 다이어리를 펼칠 것이다. 하지만 이 브랜드의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계획이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 계획을 바꾼다. 올해의 첫 장에, 당신은 무엇을 적을 것인가. 일정인가, 아니면 당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기준인가.
프랭클린 플래너
[흥부전]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