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도 안 말랐는데, ‘휴지 조각’ 위기된 태·캄 휴전

안준현 기자 2026. 1. 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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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빠르고 공정한 평화가 왔다”고 했던 태국과 캄보디아의 휴전 협정이 지난주 체결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파기 위기를 맞고 있다. 양국은 지난달 27일 태국 국경 일대에서 휴전에 합의했으나, 협정 발효 72시간 만에 국경 지역에서 대규모 드론(무인기) 침범과 지뢰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영토 불법 점령 논란까지 불거지며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포격을 당한 촉 체이 마을/AKP 연합뉴스

양측의 영유권 주장이 엇갈리는 국경 마을 ‘촉 체이(Chhok Chey)’가 갈등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 3일(현지 시각) AFP통신에 따르면 넷 피크트라 캄보디아 정보부 장관은 “태국군이 촉 체이 마을에 진입해 민간 건물을 파괴하고 철조망과 국기를 설치해 불법 합병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태국군은 “원래 태국 영토였으나 캄보디아인들이 내전 당시 난민으로 유입돼 거주하던 곳을 수복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지역은 1907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도와 이후의 실효 지배 이력이 충돌하는 곳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명확한 판결이 없는 대표적인 ‘미확정 분쟁 지역’이다.

하늘에서는 대규모 드론 침범 사태가 발생하며 휴전 합의의 실효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태국군은 지난달 28일부터 29일 사이 캄보디아 측에서 날아온 드론 250여 대가 부리람과 시사껫 등 태국 영공을 침범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는 “상대 영공에 대한 정찰과 군사 행동을 중단한다”는 지난주 휴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태국 정부는 당초 30일로 예정됐던 캄보디아군 포로 18명의 송환을 무기한 연기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29일 중국 윈난성 위시에서 시하삭 푸앙케케오 태국 외무장관, 프라크 소콘 캄보디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상에서는 지뢰 폭발 사고로 인한 상호 비방전이 거세다. 휴전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태국 군인이 국경 작전 중 지뢰를 밟아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자 태국 외교부는 “캄보디아가 휴전 기간 중 새로 매설한 지뢰”라고 비난했다. 캄보디아 측은 “과거 크메르루주 내전 시절 묻힌 낡은 지뢰가 터진 것”이라며 책임을 부인했으나, 이번 교전 기간에만 11번째 지뢰 사고가 발생하며 양국 군의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다.

안보 불안이 가중되자 태국 정부는 국경 장벽 건설이라는 강경책을 공식화했다. 아누틴 찬위라쿨 태국 총리는 “집권이 유지된다면 캄보디아 국경에 물리적인 콘크리트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하며, 범죄 조직 이동 경로로 알려진 55㎞ 구간에 대한 우선 건설 계획을 밝혔다. 현지 정가에서는 2월 총선을 앞둔 태국 집권당이 안보 이슈를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태국 찬타부리주 프룸-반팍카드 국경검문소에서 낫타폰 낙파니트(오른쪽) 태국 국방 장관과 티아 세하 캄보디아 부총리 겸 국방 장관이 양국 간 휴전 합의 후 악수하고 있다. 양국은 이날 낮 12시를 기해 지난 7일부터 이어진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AF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중재 노력이 무색해진 가운데 국경 지역의 인도적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각기 자국의 외교적 성과를 과시했으나, 현장에서는 20일간의 교전으로 이미 101명이 사망하고 100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다. 이러한 강대국의 섣부른 ‘평화 선언’만으로는 100년 넘은 분쟁을 봉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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