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느라 故 김주혁 잊었나…'응팔 10주년' 나영석 표 예능이 남긴 숙제 [홍동희의 시선]

홍동희 선임기자 2026. 1. 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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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이어진 '응답하라 1988' 10주년 특집, 최고 시청률 5.2% 종영

(MHN 홍동희 선임기자) 벽에 걸린 달력은 분명 2026년 1월인데, 지난 3일간 우리 마음속 시계는 1988년을 가리키고 있었다.

tvN '응답하라 1988 10주년' 특별 방송이 3회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최고 5.2%.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식지 않은 이 드라마의 온기를 증명하는 숫자다. 그 시절 촌스러운 의상을 입고 다시 모인 배우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타임머신을 탄 듯 행복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이번 특집은 우리에게 '기억'이라는 선물을 줌과 동시에 예능이라는 형식이 가진 한계와 세심하지 못했던 배려에 대한 짙은 아쉬움도 함께 남겼다.

 

돌아온 가족들, 그리고 흐르는 시간의 증거 '진주'

이번 방송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사람'이었다. 혜리, 류준열, 박보검 등 이제는 한 작품에서 보기 힘들어진 톱스타들이 '쌍문동 5인방'으로 돌아와 보여준 우정은 뭉클했다. 성동일, 이일화 등 '개딸 아빠, 엄마'들의 걸쭉한 입담은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이들이 여전히 하나의 가족처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건 '진주' 역을 맡았던 김설 양의 등장이었다. 드라마 방영 당시 볼이 통통한 5살 꼬마였던 진주가, 어느새 영재교육원을 수료한 의젓한 중학생이 되어 나타났을 때 스튜디오는 탄성으로 가득 찼다.

고경표와 혜리가 훌쩍 커버린 김설 양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이번 특집의 백미였다. 배우들의 외모는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간이 멈춘 듯했지만, 아이의 성장은 우리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이 실제로 흘러갔음"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충격적으로 체감하게 했다. 이는 우리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장치였다.

 

"또 게임인가요?"… 추억을 가로막은 '땡' 소리

하지만 반가움이 클수록, 그 소중한 시간을 채우는 방식에 대한 아쉬움은 짙었다. 나영석 PD 특유의 예능 문법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오랜만에 만난 배우들이 회포를 풀고, 촬영 당시의 못다 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길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임'과 '미션'은 몰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물론 예능적 재미를 위해 게임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응팔'이 가진 서정성과 팬들이 기대하는 '동창회'의 본질은 웃음보다는 '공감'과 '그리움'에 가깝다. 배우들이 감정에 젖어 들려 할 때마다 가차 없이 울리는 "땡!" 소리, 식재료를 걸고 퀴즈를 푸는 모습은 이것이 '응팔' 동창회인지, '신서유기'나 '출장 십오야'의 번외편인지 헷갈리게 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배우들을 모셔놓고 게임만 시키냐", "추억을 곱씹을 시간을 달라"는 볼멘소리가 줄을 이었다. 10년 만의 만남이라는 다시 오기 힘든 기회를, 너무나 익숙하고 뻔한 예능 포맷으로 소비해 버린 건 제작진의 안일한 기획력이 빚어낸 패착이다.

 

잊혀진 이름들

무엇보다 이번 방송이 남긴 가장 뼈아픈 실책은 '부재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다. 드라마의 현재 시점 내레이션을 담당하며 '어른 덕선'과 '어른 택이'를 연기했던 이미연과 故 김주혁 배우의 존재가 지워진 점은 팬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故 김주혁 배우에 대한 추모나 언급이 전무했던 것은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응답하라 1988'이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고생하며 작품을 완성했던 동료를 기억하는 건 방송의 재미를 떠나 인간적인 도리다.

화기애애한 예능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하지만 팬들이 진정 보고 싶었던 건 화려한 게임 쇼가 아니라,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고 기억해 주는 동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TV 앞에서 울고 웃었다. 5%가 넘는 시청률은 여전히 우리가 그 골목길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1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다시 모여준 배우들에게는 고마움을, 서툰 기획으로 추억의 깊이를 얕게 만든 제작진에게는 쓴소리를 보낸다.

언젠가 다시 20주년으로 만난다면, 그때는 게임보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잊혀진 이들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그 자리를 채우길 바란다. 안녕, 나의 쌍문동.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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