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리학자가 들려주는 ‘인천의 길’ 이야기 [인천에서 산 책]
조선 후기 핵심 길 ‘인천로’는 ‘강화로’ 지선
문학동서 서울까지 이어진 ‘인천로’ 복원해
개항, 일제시기, 철도 등으로 바뀐 인천의 길
역사지리학 관점으로 읽는 인천 도시 발달사

경인전철, 수인분당선, 경인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제3경인고속화도로, 수도권 제1외곽순환고속도로,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공항고속도로….
우선 제가 생각나는 인천의 굵직한 광역교통로는 이 정도입니다. 이 길들이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김종혁 강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가 인천문화재단 ‘역사의 길’ 시리즈 12번째 책으로 쓴 ‘역사지리학자가 들려주는 인천의 길 이야기’(선인·2024)를 읽고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교통로의 역사를 모두 설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인천의 길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는 조선 후기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철도가 생기기까지 역사적 변천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입니다.
근대 이전 인천에서 가장 중요한 길은 어디였을까요?
전국 도로망 체계를 처음으로 기술한 문헌은 여암 신경준(1712~1781)이 1770년 펴낸 ‘도로고’(道路考)입니다. 이 책은 조선의 간선 도로망을 6개 대로로 정리했는데요. 이 가운데 제6로로 ‘강화로’가 포함됐다는 것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각 대로의 출발점은 수도 한성이었고, 종점은 노선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집중해 다루는 조선 시대 인천의 길은 강화로 본선이 아닌 지선 ‘인천로’입니다. 인천에서 서울 가는 길이 이때는 강화로의 지선이었던 것입니다.
인천로의 시작은 옛 인천도호부의 읍치인 문학동입니다. 지금의 인명여자고등학교, 중앙어린이교통공원, 옛 구월동농수산물도매시장, 만수동을 지나 한남정맥 위에 있는 성현(별고개 또는 벼리고개)를 넘습니다. 이후 무네미로 448번길(부평구 구산동), 부천로, 원미로, 소사로를 지나 곰달래고개를 넘어 신월동, 목동을 거쳐 철곶포에서 ‘강화로’ 본선을 만납니다. 강화로는 양화도를 건너 도성으로 들어갑니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하면서 지금 남아 있는 인천로의 흔적을 찾아 걸었습니다. 그렇게 복원한 근대 이전 인천로는 1883년 제물포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이 된 현 중구 일대부터 서울까지 새로 생겨난 인천개항로, 인천신작로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890년대의 인천개항로는 오늘날 46번국도 즉, 일명 ‘경인로’의 모태가 된다. 제물포와 영등포가 인천과 서울의 상업중심지로 부상하면서 곰달래고개를 넘던 조선의 인천로 노선은 기탄을 경유하는, 현재의 경인로에 더 가까운 인천개항로로 변모한 것이다. 1890년대에는 상품유통경제의 진전과 근대 문물의 도입으로 인천로 역시 노선의 수정 및 노폭의 확대 등과 같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인천로는 경인철도가 부설되고 경인신작로가 정비되는 20세기 초에 좀 더 획기적인 근대적 변화를 맞이한다.” (93쪽)
‘길의 기원과 발전’ ‘조선 도로망’ ‘개항기의 도로망’ ‘일제 시기의 도로망’을 1~4장에 걸쳐 다룬 저자는 5장 ‘인천, 조선의 철도를 개창하다’에서 경인선의 역과 경로를 개통한 1899년 9월18일부터 경인철도를 복원합니다. 도로와 철도 전반을 연구한 후 6장 ‘인구와 취락’에서는 인천 도시 발달사와 길의 관계를 분석합니다.
이 책은 역사지리학적 관점에서 본 도시 발달사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계기도 눈에 띕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30년 동안 서울에서 산 저자는 인천에 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서울(중앙)중심적 사고에 빠져 살았는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후 저자는 지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저자가 전공을 살려 인천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입니다.
현재 ‘인천의 길’에만 익숙한 분들이 읽어 봐도 좋겠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길 이야기에서 몰랐던 역사가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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