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제로웨이스트'에 진심, 시장 진입에 친환경 필수

한겨레 2026. 1. 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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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세계는 지금
2004년 설립된 비영리 식량구호단체 오즈하베스트는 폐기될 식재료를 수거해 자원봉사자를 통해 취약계층에 제공한다. 오즈하베스트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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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텀블러를 들고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직장인, 생분해성 포장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점심을 즐기는 학생, 리필숍·벌크숍에 다회용기를 들고 와서 원하는 만큼만 생필품을 사가는 주부, 에코백·장바구니를 들고 주말에 마트로 장 보러 오는 아빠와 아이, 손주와 함께 빈병·빈캔 재활용센터를 방문해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어르신, 식품 기부자들의 음식을 사회 약자에게 나눠주는 자원봉사자…. 남녀노소 구분 없이 환경을 생각하는 문화가 일상에 스며든 친환경 도시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멜버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블랙 서머’가 불러온 인식 변화

호주는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2019~2020년의 ‘블랙 서머’(Black Summer) 산불로 남한 면적의 두 배에 가까운 1860만헥타르(ha)가 불탔다. 주택 3천 채 이상이 사라졌고 수십 명이 사망했다. 30억 마리의 야생동물과 곤충이 죽거나 보금자리를 잃었다. 이 산불 이후 연이어 닥친 홍수·폭염·가뭄·산불 등 기후재난으로 호주는 기후변화 위기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특히 환경문제 해결을 선택이 아니라 국가 운영 차원의 필수 생존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런 환경문제 인식 변화는 정부의 기후정책 전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호주는 화석연료 대국이며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이라는 과거의 오명을 벗고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동참하며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호주 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일원으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43% 감축, 2035년까지는 62~70% 감축, 2050년까지는 온실가스 순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Net Zero) 달성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전력의 82%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기반을 구축하는 ‘국가 전력망 재구축’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이프가드 메커니즘’이라는 규제를 통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 상한선을 설정하고, ‘호주가 만드는 미래’ 구상의 하나로 태양광·풍력·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BESS) 등 재생에너지 투자를 촉진한다. 또한 신차 연비 규제를 통해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고, 태양광 배터리 초기 설치비의 30%를 할인해주는 ‘저렴한 가정용 배터리 프로그램’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장려한다.

이런 정책 흐름과 함께 소비자의 환경 인식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이비스월드(IBIS World)에 따르면, 2025년 기준으로 환경문제를 우려하는 호주인의 비율은 전년 조사 대비 1.2%포인트 상승한 82.9%로, 환경문제 인식이 상당히 높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Statista)의 2024년 조사에서는 호주 소비자의 92%가 ‘환경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소비가 중요하다’고 답했고, 55%는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호주의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은 다양한 단체와 기업, 소비자 실천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모든 자원과 제품을 최대한 재사용하고 재활용해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삶의 방식 및 사회운동을 말한다.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환경보호를 목표로 한다.

대표적으로 2004년에 설립된 비영리 식량구호단체 오즈하베스트(OzHarvest)는 소매유통망과 호텔·식당·카페 등에서 상품성이 떨어져 판매가 어렵거나 폐기 예정인 남은 식재료를 수거한다. 수거한 식재료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음식이 필요한 취약계층과 자선기관에 배달한다. 식품 기부자와 수혜자 및 자선단체를 연결해 연간 1만 톤(t) 이상의 음식물 낭비를 줄이고 식량 불안 문제를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아예 식재료를 재활용해 푸드트럭과 ‘오즈하베스트 마켓’(OzHarvest Market)을 직영하며 취약계층에 한 끼 식사를 무료로 주기도 한다. 이때는 친환경 포장재 기업 바이오팍(BioPak)과 협력해 퇴비화가 가능한 친환경 포장용기에 음식을 제공한다. 자원순환과 사회적 약자 지원이라는 일석이조의 가치를 동시에 실천하는 셈이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굶주림에 고통받는 사람은 8억 명이 넘는다.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약 40억t의 식량이 지구촌 곳곳에서 생산되지만, 3분의 1은 유통과정이나 소비단계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쓰레기로 버려진다. 이런 음식물 쓰레기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10%에 이른다고 한다.

리필 문화 일상화

원하는 만큼만 적당한 양을 사는 리필 문화도 삶 속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호주인들에게는 익숙하다. 멜버른에서는 리필숍·벌크숍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호주 전역에 42개 매장을 보유한 ‘더 소스 벌크 푸드’(The Source Bulk Foods)는 곡물과 견과류, 말린 과일 등을 판매하는 식료품 리필숍·벌크숍으로, ‘푸드 마일리지’(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한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호주 생산자로부터 직접 식재료를 공급받는다. 또한 포장재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유기농, 비건, 글루텐프리, 로컬푸드, 견과류 등 다양한 종류의 식자재를 필요한 양만큼 소비자가 가져온 다회용기나 매장의 종이봉투에 담아 무게로 판매한다. 이 밖에 호주 전역에 16개 매장이 있는 게뷔르츠하우스(Gewürzhaus)는 허브와 향신료를 주로 판매하는 리필숍·벌크숍인데 고객은 각종 허브와 조미료, 향신료, 찻잎 등을 필요한 양만큼만 덜어 살 수 있다.

원하는 만큼만 적당한 양을 구매하는 리필 문화가 호주인들에게는 익숙하다. 리필숍·벌크숍 ‘더 소스 벌크 푸드’ 매장. ‘더 소스 벌크 푸드’ 누리집

대형 슈퍼마켓부터 중소 스타트업까지, 호주 시장 내 많은 브랜드는 정부의 엄격해진 환경정책과 소비자·투자자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수요와 지속가능성 압박에 부응하기 위해 친환경 제품 개발과 서비스모델 변화, 친환경 그린마케팅 등을 펼친다.

환경친화성을 내세워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는 그린마케팅은 이전의 틈새시장 전략에서 점차 주류 마케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형 유통기업인 울워스·콜스·알디 등은 탄소중립·친환경 인증 제품을 출시하고, 음식물 쓰레기 감소를 위해 노력하며, ‘제로 플라스틱’ 포장 캠페인을 실시하고, 친환경 전기 배송 차량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린마케팅은 기업의 크기와 상관없이 확산 중인데 이름이 다소 웃긴 화장지 브랜드 ‘후 기브스 어 크랩’(Who Gives A Crap·누가 (환경 따위에) 신경이나 쓴데?)은 반어법적인 회사명처럼 모두가 신경 써야 할 환경문제를 제시한 마케팅을 펼쳐 2025년 두 자릿수 성장을 달성했다. 2012년 호주 멜버른에서 설립된 이 기업은 100% 재활용지와 대나무로 만든 화장지·티슈·종이타월을 판매한다. 플라스틱과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포장·배송 서비스를 하고, 수익의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후 기브스 어 크랩’(Who Gives a Crap)은 100% 재활용지와 대나무로 만든 화장지를 판매하며, 플라스틱과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포장과 배송을 한다. ‘Who Gives a Crap’ 누리집

물류·유통 업계 전반에서 일회용 비닐 포장재가 사라지고 종이 포장재로 전환됐고, 제품 생산 과정에서도 많은 플라스틱 포장재가 친환경 포장재로 대체됐다. 많은 식음료·주류 업체가 필름 수축 방식의 플라스틱 포장재를 카드보드 포장재로 바꿨다. 기존 요식업계에서 사용하던 플라스틱 빨대, 컵, 포장용기, 일회용 식기 등은 바이오팍(BioPak)이나 데트팍(Detpak) 같은 회사의 종이 빨대, 천연 섬유종이컵,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 종이식기와 포장용기 등으로 교체됐다. 비닐 포장랩과 쓰레기봉투도 그레이트랩(Great Wrap)과 마이에코백(MyEcoBag) 회사의 매립하면 퇴비화가 가능한 생분해성 포장랩과 쓰레기봉투 등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호주는 지속가능성, 탄소배출 감소 등 환경적 과제가 사회 전반의 핵심 화두와 정책목표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는 제품의 기능성과 가격만이 아니라, 브랜드가 환경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그 노력이 투명하게 공개되는지를 주요 구매 기준으로 꼽는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이 호주 시장에 진입하려 한다면, 기존 제품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재사용·재활용이 가능한 포장 및 용기를 사용하며,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반영한 마케팅까지 고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환경 요구 사항 숙지해야

아울러 넷제로 달성을 위한 호주 정부 주도의 인프라 프로젝트 및 투자는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여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전환 및 탄소중립 기술 등 친환경과 탈탄소 솔루션을 갖춘 기업에는 더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 호주 정부가 공급망의 탄소배출 관리까지 강력하게 요구하는 만큼, 우리 기업도 환경 준수 요구 사항을 업데이트해 파악하고, 생산·운송·유통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호주 시장은 더는 단순히 ‘좋은 제품’만을 기대하는 시장이 아니다. 제품 공급의 전 과정에서 환경을 고려하는 책임 있는 접근과 기업의 지속가능성 전략이 곧 시장진입의 필수 관문이 될 것이다.

김동묘 KOTRA 멜버른무역관장 kimdongmyo@kotra.or.kr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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