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연대 하면 '룰 메이커' 된다"

후쿠오카(일본)=조철희 기자 2026. 1. 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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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생존의 연대]<2-⑩>
왕종이 세이난가쿠인대학 교수 인터뷰 "한일 공급망 분리 정책 실패…경제통합 필요한 이유"
[편집자주] 2025년은 갈라진 세계, 갈라진 경제를 체험한 해다. 세계 경제는 보호무역 확산과 다자주의 붕괴로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놓였다. '지경학(geoeconomics)의 시대', 한국 경제는 생존을 걱정한다. 일본 상황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 등 핵심 밸류체인을 공유하고 저성장·고령화라는 난제를 함께 안고 있는 두 나라. 한일 경제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불확실성 시대에 생존을 위한 새로운 모델로 거론된다.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요하네스버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엑스포 센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양자 회담을 하며 손을 잡고 있다. (공동취재) 2025.11.24. photocdj@newsis.com /사진=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는 지금 한국과 일본은 두 강대국의 주변을 맴도는 관찰자 처지와 다름없다. 한일은 각자 자급적인 산업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그 결과 성장의 분절과 기술 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왕종이(王忠毅) 일본 세이난가쿠인대학 상학부 교수 겸 국제센터장은 "소재·장치 기술을 가진 일본과 양산·스케일 능력이 강점인 한국은 원래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직적 분업 구조를 구축해왔지만 지금은 동일한 파이를 나누어 먹는 경합 관계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왕 교수는 지난달 30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 상황을 바꾸는 해법은 단순한 경제협력 수준을 넘어선 제도화된 경제연대"라며 "미국이 강제하는 대미투자와 중국의 기술 추격이라는 구조적 압력 속에서 한일 양국이 생존하기 위한 합리적 방정식은 이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가 흔들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협력은 의미가 없다"며 "자본과 기술이 얽힌 불가역적 협력 관계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해상풍력 공급망 특구 지정, 상호 규제 면제, 첨단기술 공동 표준화 등 단순 무역이 아닌 산업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경제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왕종이 세이난가쿠인대학 교수 /사진=조철희 기자

왕 교수는 한일 경제연대를 단순한 성장 전략이 아니라 경제안보의 방정식으로 규정했다. 각자도생에 머문다면 한일은 미중이 설계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룰 테이커'(rule-taker)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권이 통합될 경우 한일은 7조 달러 규모의 공급망 블록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룰 메이커'(rule-maker)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는 "정치적 갈등의 변수는 언제든 돌아오지만 경제적 이익의 제도화는 쉽게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만 출신인 왕 교수는 일본 동아시아학회장도 맡고 있으며 일본, 대만,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 기업들을 심층 연구하고 있다. 다음은 왕 교수와의 일문일답.

기술의 블랙박스화가 만드는 협상력
-최근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며 실질적인 관계 개선 방안은 무엇인가.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가 방한했던 2023년 이후 셔틀외교 재개 등 한일 간의 관계 개선은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양국의 정권 교체에 의해 관계가 다시 흔들릴 수 있는 반동의 리스크는 항상 지적된다. 현재의 한일관계를 '친일·반일'이나 '역사 문제의 해결'과 같은 기존의 잣대로 파악해서는 더 이상 실태를 포착할 수 없다. 최근의 국제정세에 근거한 가장 적절하고 합리적인 시각은 한일관계가 '선택 가능한 우호 관계'에서 '구조적 생존 동맹'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은 현재 정치적 관계 개선은 진행되고 있지만 국민적 차원의 신뢰는 여전히 취약하다. 구체적으로 역사적 요인은 양국 국민에 뿌리 깊은 불신감을 형성시키고 있다. 한때 한일은 미국 시장과 중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라이벌이었지만 최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블록경제화로 인해 한일은 운명공동체의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역사적 화해'라는 높은 허들을 넘은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안보적 공생'이라는 현실적 목표를 향해 강제적으로 동기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현재의 한일관계는 역사적 문제 등을 해결한 '양호한 관계'라고 평가하기보다, 많은 문제를 보류해둔 채 생존을 위한 파트너 체제에 들어간 우호관계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보류해둔 문제를 표면화시키지 않고 이 '우호관계'를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실리'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

즉, 정치 주도의 협력은 취약하다. 기업이 이익을 낳기 위한 협력 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정치가 협력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라는 물리적 결합에 의한 '이익의 제도화'를 완성하고 정치가 이를 되돌릴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한국과 일본이 경제연대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일의 경제협력 강화는 단순한 '성장 전략'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유효한 '생존 전략'이다. 현재 양국은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눌려 부서질 수도 있는 딜레마에 빠져 있고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에 달해 있다.

첫 번째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 보호주의'가 가져오고 있는 문제는 세계 각국은 물론 한일도 대응에 곤란을 겪고 있다. 미국은 상호관세를 무기로 동맹국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시장 개방과 거액의 대미(對美) 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일이 개별적으로 협상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거액의 투자를 약속하게 됐다. 그러나 미국에 약속한 투자를 자국 내에 한다면 고용과 성장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한일이 시장을 통합해 약 7조 달러 규모의 경제 블록으로 공동보조를 맞추면 대미 협상에 있어서 협상력은 극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두 번째로 중국의 '질적 전환'도 큰 도전이다. 한때 중국은 '값싼 조립 공장'으로서 한일의 '하류'에 위치해 있었지만 현재는 EV(전기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일의 기술적 우위를 침식하며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더 이상 한일은 중국보다 기술적으로 높은 곳에 서 있지 않고 가격 경쟁력도 열세에 있다.

이 두 위기를 돌파하는 열쇠는 한일 다국적 기업의 '기업 내(內) 무역'(모기업과 해외 현지 법인 간 무역) 네트워크를 국가 전략 레벨의 '수직 통합'으로 레벨업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소재·부품·장치'(상류)와 한국의 '제조·양산 능력'(하류)을 국경을 넘은 하나의 공급망으로 완전하게 융합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모방하기 어려운 블랙박스화한 기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고,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도 '대체 불가능한 공급원'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딜'의 무기도 된다. 즉, 한일은 '공멸'을 피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와 '기술의 보완성'을 무기로 한 '공동경제권'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한일 경제연대의 핵심 분야는 무엇인가.
▶한일관계 개선을 불가역적으로 만들려면 경제협력의 심화가 필수불가결하다. 특히 관계 안정화의 열쇠는 철퇴(撤退)가 용이한 '국제무역'보다 장기적인 자본과 인재의 투입이 수반되는 '해외직접투자'(FDI)다. 이는 경제적 결속을 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업 문화 레벨에서의 상호 이해를 깊게 하는 토대가 된다.

현시점에서 협력해야 할 핵심 분야는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 '소재·장치'와 한국 '제조능력'의 결합이 급선무일 것이다. 2019년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강화조치 이후 정치 리스크에 노출된 이 공급망을 단순한 매매관계로부터 자본제휴를 포함한 전략적 제휴로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급속한 고령화에 직면한 양국에 '실버경제'는 협력의 프런티어다. 돌봄 로봇, 헬스케어 AI 등 고령화 문제 해결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구미나 중국에 앞서 과제 해결 모델을 세계 시장에서 수출 산업화하는 것은 양국에 남겨진 얼마 안 되는 성장 영역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협력 모델의 범용성이다. 일본 기업이 가진 '기술적 우위성'(FSA)과 한국 기업이 가진 '시장적응력·스피드'가 결합했을 때 기업의 퍼포먼스는 최대화된다. 즉, 반도체나 실버 경제와 같은 특정의 '핵심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산업에서 양국 기업의 '특기'를 퍼즐처럼 조합하는 '기능적 통합'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이고 유효한 생존 전략이다.

-반도체 및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생산 능력과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을 결합하는 것은 어떠한가.
▶2019년 일본 정부의 수출 관리 강화 조치가 남긴 최대의 교훈은 정치적 대립에 의한 공급망의 분단이 일본에는 중요한 고객(한국 기업)의 이탈을, 한국에는 수율 저하와 불확실성을 초래한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은 '마이너스의 합'일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경험을 살려 양국이 지향해야 할 것은 단순히 거래 관계의 회복과 유지가 아니라 양국의 산업 특성을 전략적으로 융합한 강고한 공급망의 구축이다.

우선 지향해야 할 것은 서로의 경쟁 우위를 결합하는 것이다. 일본 기업의 강점은 전통적으로 축적해 온 정밀 기술이나 소재 개발의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다. 한국 기업의 강점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대규모 투자에 의한 '상용화 스피드', 즉 형식지(形式知, Explicit Knowledge)다.

지금까지는 이들 우위성이 별개로 기능했지만, 중국이 기술 추격을 하는 현시점에서 일본의 '기술의 깊이'와 한국의 '시장화의 빠름'을 결합하는 것은 중국 기업의 공세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일본의 '기술의 깊이'와 한국의 '시장화의 빠름'이 완전하게 결합했을 때 그것은 중국이 모방하기 어려운 블랙박스가 되고, 또한 미국에도 '한일이 없으면 공급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강력한 협상력이 된다.

그러나 현장의 기업들엔 이러한 전략이 합리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현실적인 장벽이 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요 리스크들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정치적·지정학적 변동 리스크다. 정권 교체에 의한 한일 관계의 악화나 미중 대립의 격화에 의해 공급망이 다시 정치적 무기로 이용되는 리스크다. 두 번째, 기술 유출과 부메랑 효과다. 공동 개발한 기술이 유출돼 미래의 강력한 경쟁 상대를 스스로 키워버리는 것이다. 세 번째, 비대칭적 의존이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져 기업 경영의 자율성이 상실되는 리스크다.

이러한 리스크들을 신뢰 관계만으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뢰 관계가 무너지는 순간 비즈니스는 멈추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뢰를 제도로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실제로 단순한 계약에 기초한 거래보다 합작회사 설립이나 자본제휴와 같은 자본의 커미트먼트(commitment)를 수반하는 관계가 정치적 쇼크에 대한 내구성이 높다는 것이 실증되어 있다. 자본 관계를 맺음으로써 배신하는 쪽이 스스로도 손해를 보는 '운명 공동체'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전면적인 통합은 어렵기 때문에 우선은 특정 프로젝트를 토대로 전략적 제휴라는 일시적 협력 체제부터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서 실적을 만들고 점차 상호 이해와 공통 이익을 쌓아 올린 뒤 최종적으로는 자본을 얽은 불가역적 관계로 진화시켜야 한다.

반도체 협력은 단순한 비즈니스 기회가 아니라 경제적 안전보장의 핵심이기도 하다. 양국의 기술과 자본을 불가역적으로 결합시키고 정치가 흔들려도 경제는 흔들리지 않는 구조, 즉 이익의 제도화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신뢰 형성의 길이다.

바다를 발전소로 바꾸는 해양 협력
-한일 간 LNG 공동 구매, 수소·원전 등 에너지 기술 공동 개발을 통해 양국이 각기 에너지 안전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은 어떠한가.
▶LNG 공동 구매나 원전 수출 협력은 에너지 조달 비용 감축에는 유효하겠지만 본질적인 에너지 안전보장의 해결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에너지를 해외에 의존하는 모델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해양 국가로서의 지리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무한히 존재하는 풍력 자원 등을 개발하는 '해양 그린 에너지'의 적극적 협력이다. 즉, 에너지를 '수입하는 것'에서 '자국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진정한 에너지 자급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궁극적인 에너지 안전보장 전략이다.

일본은 2040년까지 최대 45GW 규모의 야심적인 해상풍력 도입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일본은 거액의 프로젝트 파이낸스 조성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풍차 본체나 거대한 기초 구조물을 제조하는 국내 공급망은 부족하다.

한국은 한화오션이나 CS Wind와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을 비롯해 훌륭한 조선·중공업 기반과 제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시장·자금과 한국의 제조·시공능력을 결합시키면 유럽이나 중국 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한일 역내에서 완결하는 강고한 에너지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양국의 깊은 해역에 적합한 부유식 해상풍력은 세계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협력의 프런티어다. 태풍이나 급격하고 험준한 해저 지형 등 아시아 특유의 혹독한 환경에 견딜 수 있는 기술 기준(표준화)을 한일 공동으로 책정해 유럽 주도에 대항할 수 있다.

즉, LNG나 원전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의 연결(つなぎ)'이다. 한일이 협력해 바다라는 공유 재산을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자원을 갖지 못한 양국이 타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 국가로서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장기적 전략이다.

-이같은 에너지 경제 협력을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정책을 취하면 좋은가.
▶'한일 해양 에너지 개발 협정(Joint Development Zone 2.0)' 체결과 '해양 산업 공급망 특구' 창설이다. 이는 에너지를 수입하기 위한 협력을 넘어 양국의 공유 재산인 바다를 통해 에너지를 자국에서 생산하기 위한 통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한일 사이에는 규슈 서부 지역부터 제주도 남부 지역에 걸쳐 있는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구역(JDZ)'이 존재하지만 이 협정은 2028년이 기한으로 존속이 위태롭다. 석유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종료를 검토하고 있지만 종료하면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선을 둘러싼 심각한 대립이 재연된다.

이 협정을 종료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화석 연료로부터 해상풍력 및 수소 생산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토 문제의 불씨가 될 수도 있는 해역을 세계 최대급의 한일 공동 부유식 윈드팜(Wind Farm, 풍력발전단지)로 공동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치적 대립의 씨앗을 물리적인 에너지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은 2040년까지 거대한 해상풍력 도입 목표(수요)를 가지고 있지만 풍차나 기초 구조물을 만드는 국내 공급망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대로 한국은 세계 최강의 조선·철강업(공급)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 시장(수요)이 너무 좁다.

이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해상풍력 공급망 특구'를 지정해야 한다. '일본에서 전력을 발전하는 풍차의 부품은 제로 관세, 자유 통관으로 한국의 공장에서 즉시 납품한다', '한국의 설치선(WTIV)이 일본 해역에서 자유롭게 공사할 수 있도록 카보타주 규제(연안 내 무역을 자국선이 독점하는 관례)를 상호 면제한다'와 같은 조치를 선행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유럽이나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한일 완결형의 강고한 에너지 공급망을 즉시 구축할 수 있다.

에너지 공동구매(수입) 같은 것은 결국 타국의 자원 가격에 휘둘리게 되지만 해양 에너지 개발(생산)은 에너지 가격의 결정권을 스스로 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일이 공통의 기술 기준(표준화)을 만들고 부품을 함께 써 비용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 이는 중동의 석유에 의존해 살아온 양국이 처음으로 자국의 바다에서 에너지를 조달하는 '자립한 국가'로 진화하기 위한 가장 실리적인 첫걸음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경제연대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역사 문제의 해결이나 정치적 악수가 아니다. 양국을 가르고 있는 바다를, 양국을 잇는 발전소로 바꾸기 위한 '해양 규범의 통합'이다. 이야말로 외부의 쇼크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공동체의 물리적이고 불가역적인 기반이다.

-스타트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 펀드를 만들고 자본 이동의 장벽을 낮추는 것은 어떠한가.
▶그러한 구상은 축소하는 국내 시장이라는 한일 공통의 문제를 극복하는 처방전으로서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실행에는 과거의 실패(정치에 의한 경제의 단절)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파제가 필요하다. 단순한 자금 상호 출자가 아니라 '정치로부터 절연된 거버넌스'와 '경제안전보장의 내재화'가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일본의 자금, 기초연구와 한국의 사회적 적용 능력, 글로벌 확장 역량의 결합은 최강의 보완 관계다. 예를 들어 '한일 딥테크 공동 펀드'와 '규제 샌드박스의 자동 적용(상호 인증)'이 실현되면 양국의 스타트업은 창업 첫날부터 1.7억 인구의 시장에 접근할 수 있고 유니콘 기업으로의 성장 확률이 극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일본 투자자가 성장성이 높은 한국 스타트업으로 일제히 자금을 옮기면 일본에선 국내 스타트업이 자금난에 빠지는 '공동화(空洞化)' 리스크가 있다. 반대로 한국에선 과잉 유동성에 의한 버블이나 일본 자본에 의한 지배에 대한 경계감(경제 내셔널리즘)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

아울러 한일의 공급망은 중국과 깊게 연결돼 있다. 공동 펀드를 통해 공유한 기술(AI, 양자, 반도체)이 의도하지 않게 중국과 같은 제3국으로 유출되는 '백도어' 리스크가 있다.

또한 과거 '위안부 재단' 해산 사례가 보여주듯 정권 교체나 외교 마찰에 의해 펀드가 일방적으로 동결·해산되는 '컨트리 리스크'가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양국 정부가 출자하는 기금을 설립할 때 정관에 '외교 분쟁에 의한 동결·해산의 금지'를 명기하거나 정치가 개입할 수 없는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펀드의 지원 대상 기업과 인재에 대해 한일 공통의 '시큐리티 클리어런스(적격성 평가)'를 실시하는 등 엄격한 심사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즉, 한일 공동 펀드는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대담하게 시장을 통합하는 것이 자본 이동의 장벽을 낮추는 중요한 조건이다.

-한일이 어느 정도 수준의 경제연대를 형성하면 좋은가.
▶EU와 같은 '운명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질적으로 심화시킨 '전략적 경제 동맹'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한일 양국은 '관세 철폐 레벨'(FTA)을 넘어서면서도 정치통합(EU)은 아닌 '제3의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U 모델은 부분적으로 주권을 이양하기 때문에 현재 한일의 정치적 토양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서로의 주권과 독립성을 완전히 유지한 채 특정의 전략 분야(에너지, 반도체, 공급망)에서만 운명을 함께 하는 '국가 레벨의 전략적 동맹'이다. 감정이나 이념으로 결속하는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 이익은 크고 리스크는 작은' 국익에 기초한 관계야말로 외부 환경의 변화에 견딜 수 있는 가장 강인한 유대가 된다.

NAFTA는 주로 무역 장벽 철폐와 경제 활동의 광범위한 자유화였지만 한일에 필요한 것은 미중 패권 경쟁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이다. 단지 시장을 개방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술 표준의 통일이나 자원의 공동 조달과 해양 자원 공동 개발 등을 하고, 한일이 하나가 돼 세계 시장에서 협상력을 최대화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무역 협정을 넘은 '경제안전보장의 준동맹'으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한일이 제각각인 채라면 미국이나 중국이 정한 룰에 따르는 '룰 테이커'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일이 이 전략적 동맹을 통해 7조 달러 규모의 경제 블록으로서 기능하면 독자적인 기술 기준이나 통상 규범을 세계에 제시하는 '룰 메이커'로 진화할 수 있다.

한일 공동체는 정서적 통합일 필요는 없다. 혹독한 국제 정세를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등 뒤를 맡기고 공통의 무기(경제력)로 싸우는 '프로페셔널한 전략적 동맹 관계'야말로 가장 현실적 모델이다.

룰 테이커에서 룰 메이커로
-한일 경제연대의 최대 장애는 무엇인가.
▶양국의 현 산업 정책 그 자체에 잠재한 '경제안전보장'의 이름을 빌린 '보완성의 파괴'다. 한때 한일의 경제적 관계는 일본이 소재·장치를 공급하고 한국이 완제품(반도체·자동차)을 만든다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직적 국제 분업(보완 관계)'였다. 이것이 통합의 경제적 기초였다.

그러나 2019년 일본 정부의 수출 관리 강화, 그리고 코로나 사태 이후 양국은 '상대에 의존하는 것은 리스크'라고 판단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소재·부품·장치의 국산화'를 맹렬히 진행하고 있고, 일본은 거액의 보조금으로 '반도체 제조 거점(TSMC, 라피더스)'을 만들고 있다. 그 결과 한일은 파트너가 아니라 같은 산업 구조를 가지고 같은 파이를 빼앗아 먹는 '완전한 라이벌(경합 관계)'이 되어 가고 있다. '상대가 없어도 자국만으로 완결할 수 있는' 상태를 서로 지향하는 현재의 산업 정책이야말로 한일 경제연대가 창출할 시너지를 물리적으로 소멸시키는 최대의 장애이다.

한일 양국은 항상 시선이 '위'(미중)를 향하고, '옆'(한일)'을 보지 않는다. '미국에 어떻게 평가될까', '중국의 압력을 어떻게 피할까'라는 수직 방향의 생존 전략에는 필사적이지만 '한일이 손잡고 지역을 주도한다'는 수평 방향의 전략적 상상력이 결여돼 있다. '미국하고만 손잡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환상이 한일 독자 경제권이라는 플랜B에 대한 절박감을 약화시키고 있다.

제도적인 최대 장애는 의사결정의 '타임스팬'(timespan, 시간적 범위)의 어긋남이다. 일본의 관료 기구는 한 번 정한 정책을 오래 유지하는 장기·안정형을 중시하지만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5년마다의 대통령 선거로 국가 전략이 극적으로 바뀌는 단기·리셋형이다. 일본은 '힘들게 공동체를 합의해도 5년 후에 또 리셋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영속성에 대한 구조적 불신이 있다. 이것이 조약 레벨의 불가역적 통합(공동체)으로 내디딜 때의 심리적·실무적 브레이크가 된다.

즉, 최대의 장애는 역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책에 있다. '상대에 의지하는 것'이라는 리스크를 강조하며 비효율적인 이중투자로 서로의 산업 가치를 깎아 먹고 있는 '현 산업 정책의 벡터'가 최대 장애다.

물론 '상대에 의지하는 것'은 리스크이지만 대등하게 협상할 수 없는 초강대국 미중에 의지하는 것보다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이웃 나라에 의지하는 쪽이 훨씬 리스크가 낮다고 생각한다. 이 '자국완결주의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전략적으로 의존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야말로 최강의 안전보장이라고 생각하는, 벽을 넘는 '제도 만들기'가 중요하다.

-경제연대의 실익이 있다면 역사 문제를 일부분 감수할 수 있다고 보는가.
▶역사 문제에 의한 마찰이라는 '아픔'(코스트)을 감수하고, 그것을 관리하면서라도 경제협력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편이 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청산을 경제협력의 전제 조건으로 하는 것은 국익을 지킬 수 없고,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협력할 수 없다'가 아니라 '협력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일이 에너지나 반도체 공급망에서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NAFTA 수준의 통합을 이뤘다면 어떻게 될까. 한일의 정치가가 지금까지의 약속이나 신뢰 관계를 파탄시키려 하면 즉시 자국의 경제가 큰 손해를 입는다. 일부러 깊은 상호 의존 관계를 만들어 지금까지의 역사 대립이 국익 전체를 파괴하지 않도록 경제의 틀 안에 앞으로 100년의 '좋은 이웃'을 만드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즉,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과거의 정의'만이 아니다. '미래의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지켜야 한다. 역사 문제만을 고집해 한일이 6G 표준화나 AI 규제, 자원 공동 생산을 협력하지 못하고 국제적 주도권을 잃는다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지금의 정치가가 아니라 다음 세대다. '과거의 아픔' 때문에 젊은이의 '미래의 밥줄'을 빼앗는 것은 어른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역사의 아픔은 현재의 우리가 떠안고 경제의 열매만을 다음 세대에 건넨다는 각오야말로 진정한 국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역사를 협력할 수 없는 이유, 신뢰할 수 없는 이유로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 '아픔을 껴안은 채 달린다'는 각오야말로 지금의 국제적 현실을 돌파하는 최선의 선택이다.

-한일 경제연대는 궁극적으로 양국에 어떤 국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는가.
▶한일 경제공동체가 장기적으로 양국 국익에 가져오는 영향은 단순한 무역액 증가(GDP의 플러스 성장) 같은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가장 본질적인 국익은 21세기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일 양국이 '주변국'(원자재나 노동력을 제공하고 착취되는 국가)으로의 몰락을 회피하고, '핵심국'(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고 이익을 독점하는 선진국)으로서의 '전략적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

현재 한일은 개별 국력의 한계로 미중의 영향에 자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종속 변수'가 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공동체가 실현되면 한일은 미중 어느 진영에도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을 수 있는 '거부권'과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쥘 수 있다. '대국의 눈치를 보는 나라'에서 대국이 '무시할 수 없는 파트너'로 국가의 지정학적 지위가 한 단계 올라간다.

또한 장기적 리스크인 저출산·고령화에 대해 공동체는 국내 시장의 축소를 보완하는 이상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나아가 한일이 통합된 기술 표준(탈탄소, 디지털 규제, 6G)을 갖는 것은 성장하는 ASEAN이나 인도(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구미가 정한 룰에 따르는 '룰 테이커'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룰 메이커'로 진화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산업적 국익이 된다.

후쿠오카(일본)=조철희 기자 samsar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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