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원할 땐 꽃과 새, 수험생 방엔 쏘가리

2026. 1. 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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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을 추구하는 그림 ‘민화’
도연명은 ‘구일한거(九日閑居)’라는 시에서 “생은 짧으나 시름은 늘 많고 사람들은 즐거움과 오래 살기를 바라네”라고 적고 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지복으로 삼고 살아있는 동안 행복을 간절히 추구한다. 우리 선조들은 그러한 열망을 다양한 이미지를 빌어 기원했다. 삶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물들에 그 이미지를 정성껏 덧씌었다. 매일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에도 복 복(福)자와 기쁠 희(喜)자, 묵숨 수(壽)자를 간절히 기입하는 한편 잠을 청하는 베개의 양끝(머구리)에도 화려한 색실로 무명장수, 다손다남, 부귀영화, 만수무강이라는 문자와 온갖 화려한 꽃과 새 형상을 수놓았다. 밥을 먹거나 꿈속에서도 복 받고 말겠다는 무서운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나는 그러한 마음들이 눈물겹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밥그릇 뚜껑과 숟가락·젓가락을 유심히 살피며 그 기복에 대한 염원의 도상들을 찾는다. 행복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애를 뜻하는 ‘제(悌)’자 주변에 꽃과 새를 그린 ‘문자도’. [중앙포토]
우리 조상들은 새해를 마주하며 질병과 재난이 없는 행복하고 무탈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그림, 즉 세화(歲畫)라고 불린 민화를 그렸다. 세화는 길상과 안녕을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수단으로, 정초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세시풍속의 하나다. 조선시대에는 정초가 되면 관료들이 임금의 부귀와 장수, 다남을 기원했고 왕은 정초 하례가 끝나면 잔치를 베풀고 재상과 가까운 신하들에게 세화를 하사했다.

무탈하고 행복한 한 해를 기원하는 것인데 이것이 민가에 전해져 정초에 대문간에 세화를 붙이게 되었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초 민가에서 벽에 닭·개·사자·호랑이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려 했다”고 기록돼 있다. 세화는 질병과 재앙을 일으키는 사귀(邪鬼), 즉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자 하는 벽사 행위이자 안녕과 건강·행복을 추구하는 그림이다. 인간이 힘과 의지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삶의 난제들을 이미지의 힘을 빌어 극복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세화, 민화는 결국 장생불사를 희구하는 가장 인간적인 소망이 담긴 주술용 그림인 것이다.

쏘가리 궐(鱖), 대궐 궐(闕)자와 발음 같아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감모여재도’. [사진 일본민예관]
인간적인 복을 추구하는 민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화조화’다. 우리 선조들은 지천에 깔린 다양한 식물을 통해 자연계를 인식했고 그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깨달아가면서 제 삶의 근거로 삼은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정신을 일러 받고자 했다. 식물성의 세계는 동물성의 인간 육체가 지닌 비루함을 넘어서는 모종의 경지를 교훈처럼 안겨주는 한편, 매혹적인 자태와 색채를 통해 미를 안겨준 본원적인 대상이었다. 자연은 그렇게 인간의 삶과 의식 안에 지속적인 거울의 역할, 반성과 성찰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존재다.
꽃의 왕성한 활력을 수놓은 수저집. [중앙포토]
화조화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활력적으로 순환하는 왕성한 자연의 기운을 내재화하고자 하는 열망을 꼽을 수 있다. 아름다운 자태를 갖춘 꽃과 새를 그린 화조화에는 덧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움을 내내 영원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간절함도 스며들어 있다. 아름다운 꽃과 함께 한 쌍의 새를 배치한 화조화는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면서 많은 자손을 낳고 행복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라는 가장 인간적인 소망을 부려 놓은 것이다.
꽃과 새, 물고기와 게 등을 그린 ‘화조어해도’. [중앙포토]
물고기를 그린 ‘어해도’도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한자 그대로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물고기 그림을 지칭한다. 바다나 물속 생명체를 통해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헤아리고 각종 어류들의 생태를 통해 인간의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그림이다. 대부분 한 쌍의 물고기 그림은 부부의 화목을 상징한다.

한편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다산에 대한 기원도 담고 있다. 또한 물고기는 유유자적하며 태평한 삶의 은유다. 여유 있는 삶에 대한 희구와 출세, 승진 등 여러 기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선형의 생김새를 가진 물고기는 남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에게 주술을 믿게 하는 원리 중의 하나로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낳는다는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유사의 원리’다. 물고기는 낮이건 밤이건 눈을 뜨고 있는 특징이 있어 사악한 것을 경계할 수 있고, 밤새도록 중요한 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항상 눈을 뜨고 잘 지켜야 하는 벽장이나 광의 자물쇠를 물고기 모양을 흉내 내어 만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근거한다.

한편 한문으로 궐어(鱖魚)라고 하는 쏘가리도 즐겨 그렸다. 쏘가리 궐(鱖)이 대궐 궐(闕)자와 발음이 같다고 해서 쏘가리를 궁궐로 생각해 과거 합격의 의미로 해석했다. 입신양명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주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이의 공부방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잉어 역시 입신양명과 관계가 있다. 중국 황하 상류의 협곡에 있는 용문 지방에 용문폭포가 있는데 이른 봄철에 도화랑(복숭아꽃이 필 때면 강물이 불어나서 거슬러 흐르게 되는 물결)이 일 때면 늙은 잉어들이 용문에 모여들어 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서 폭포를 다투어 뛰어오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때 폭포를 뛰어 오른 잉어만이 용이 된다고 하며, 이때 용이 되면 만사형통 여의주를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복을 기리는 민화 중 으뜸은 호랑이 그림이다. 맹수의 왕인 호랑이의 위력이 잡귀나 재액을 물리치는 호신적 의미를 지녔기에 호랑이 형상 역시 잡귀를 막고 집안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차원에서 즐겨 그려졌다. 중국 후한 때 신도와 울루가 귀신들을 검열하여 사람을 해치는 귀신을 갈대 끈으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였다는 고사로 인해 호랑이는 이후 잡귀를 쫓는 벽사의 상징이 되었다.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묘사한 ‘호작도’ 베갯모. [중앙포토]
옛 사람들은 호랑이가 무섭기 때문에 호축삼재(虎逐三災)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삼재를 쫓기 위해 정초에 해가 뜨면 호랑이 그림을 그려 대문 위에 붙였다. 대부분 호랑이와 까치를 함께 그리는데, 이는 표범과 까치를 함께 그린 청나라 그림으로부터 연유한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 즉 희작(喜鵲)이다. 표범은 한문으로 표(豹)라고 표기한다. 희와 표를 합하면 ‘희표(喜豹)’가 되고 이는 ‘희보(喜報·기쁜 소식)’와 중국어 발음(쉬빠오)이 같다. 표범이 우리 땅으로 들어와서는 호랑이로 변하고 여기에 조선 소나무와 까치가 같이 그려지면서 ‘호작도’가 되었다. 삿된 것, 못된 귀신을 물리치는 호랑이와 하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가 어우러졌고 천상계와 지상계의 대표적인 존재인 그 둘이 소나무를 통해 연결됐다.
잉어는 용을 상징, 출세·승진욕 나타내
‘책가도’에는 산호·공작 깃털·복숭아 등 길상을 상징하는 물건이 자주 등장한다. [중앙포토]
우리는 모두 조상의 음덕으로 산다. 책거리 그림을 통해 조상에게 온갖 소원을 빈다. 책을 비롯해 다양한 기물들이 등장하는 ‘책거리(또는 책가도)’에서 책과 문방구는 선비가 대접받는 사회에서 출세의 상징이자 문기의 숭상이다. 책은 선인들의 음성이 새겨진 흔적, 고인의 음성이 기록된 것이자 진리가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감싸고 있는 책갑에는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길상무늬가 강박적일 정도로 가득하다. 모든 것을 기복적 의미로 뒤덮고 싶다는 간절한 희구다. 주변에 자리하는 수박·석류·포도·가지 등은 한결같이 다산과 생식력을 상징한다. 책은 죽은 이가 산 자들에게 전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를 향해 누웠다. 반면 편지나 씨가 많은 과일들은 산 자들이 조상에게 간절히 비는 것들이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다산과 다남, 부귀영화는 모두 조상의 음덕으로 인해서다. 조상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그것이다. 중국에선 일찍이 효도를 하거나 청렴한 사람을 천거하는 ‘거효렴(擧孝廉)’의 관리 등용 제도를 실시했기 때문에 벼슬 길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먼저 효와 관련된 명성을 얻어야 했다. 그래서 부모의 무덤을 잘 꾸미고 자신들의 효행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이는 유교문화권인 조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유교 윤리는 효도, 우애, 충성, 신의, 예의 바름, 의로움, 청렴함,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었다. 이를 일컬어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라 한다. 이렇게 인간인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 인륜의 도를 훈육하고 내재화하려는 시도가 ‘문자도’의 제작이다. 그리고 이러한 덕목을 행하면 이상적 세계에 도달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장생불사의 삶을 누리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던 도교에서는 문자도에서 강조하는 덕목을 성실히 수행하면 신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문자도는 영생을 누리려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도 연관이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돌을 그린 그림도 성행했다. 괴석은 영원히 변치 않는 자연물로 흔히 군자에 비유되었다. 중국의 문인들은 운치 있는 생활에서 정원을 빼놓지 않았고 또 이름난 정원에는 반드시 괴석이 있어야 했다. 여기에는 또한 목숨이 돌처럼 오래 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스며들어 있다. 수석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면서 도도한 생명력을 지니길 간절히 기원했다. 땅의 음기가 응결되어 솟아오른 형국인 수직으로 솟은 돌은 남근석으로 불렸다. 그러한 돌을 그린 이유는 다손에 대한 열망과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 생장력에 대한 희구이자 욕망이었다.

화려한 색실로 행복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수놓은 베개의 양끝. [중앙포토]
옛 사람들은 복과 화는 그 사람의 행실에 달려있고 그것이 하늘의 감응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리(天理), 즉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의 뜻을 받아 이 땅에 머무는 동안 그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 하늘이 삿된 것을 피하게 해주고 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소망을 지상에 힘껏 부려놓았다. 덧없이 사라지는 삶 속에서 애타게 무병장수, 수복강령, 부부금슬, 다손다남, 부귀영화, 입신양명 등 온갖 인간적인 욕망을 결코 숨기지 않고 이를 이미지와 문자의 힘을 빌어 자신의 삶의 공간에 빼곡히 장식했다.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유한한 인간이 자신들의 운명을 긍정적인 차원에서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방, 그것이 우리 민화의 세계였다.

박영택 교수. 경기대학교 교수이자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며 34년 동안 현대미술의 이론과 현장을 두루 살폈다. 『오직, 그림』 『신에게서 인간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 『민화의 맛』 등 총 39종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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