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다선일체(茶禪一體) 골선일체(高禪一體)

방민준 2026. 1. 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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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관련 없는 참고 사진입니다. 프로 골프선수가 경기에서 벙커샷을 하는 모습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차의 경지가 선의 경지와 다르지 않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골프의 세계로 스며든다. 지극한 골프 또한 선의 한 갈래이며 어쩌면 선보다 더 집요하고 가혹한 마음 수련일지도 모른다.



 



차를 우려내는 일은 단순해 보인다. 물을 끓이고, 잎을 넣고,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그 '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는 셀 수 없는 반복과 절제가 필요하다.



 



골프도 다르지 않다. 클럽을 잡고 공을 치는 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욕심이 빠지고, 두려움이 사라지고, 계산이 침묵하는 순간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선에서는 벽을 마주한다. 면벽좌선(面壁坐禪)은 바깥 세계를 차단하고 마음의 그림자를 응시하는 수행이다. 반면 골프는 벽이 없다. 대신 끝없이 열려 있는 필드가 있다. 그 개방성이 오히려 골프 수행자를 더 괴롭힌다. 바람, 경사, 잔디, 동반자의 시선, 어제의 스코어, 내일의 약속까지. 골프는 마음이 기댈 수 있는 벽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핑계가 제거된 자리에서 오롯이 '나'만 남는다.



 



선 수행자는 방석 위에서 번뇌와 싸운다. 골퍼는 티잉그라운드 위에서 번뇌와 만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은 가만히 있다. 흔들리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다. 잘 쳐야 한다는 기대, 망치면 안 된다는 공포, 남보다 앞서고 싶다는 쟁투심. 이 모든 것이 스윙의 미세한 틈으로 스며들어 결과를 왜곡한다. 그래서 골프는 기술의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음의 미세한 떨림을 증폭시켜 보여주는 거울이다.



 



선에서는 '깨달음'을 말한다. 그러나 골프에서는 그 단어를 쓰기가 조심스럽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제의 깨달음이 오늘의 미혹이 되기 때문이다. 



 



한때 찾아온 완벽한 임팩트, 모든 것이 해소된 듯한 라운드는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골프는 성취를 허락하되, 소유는 허락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이 점에서 골프는 선보다 더 냉정하다.



 



그래서 골프는 평생 수행이다. 어느 날 문득 "아, 알겠다!"는 순간이 와도 다음 라운드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골프가 고귀해진다. 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골프는 더 이상 괴로움이 아니라 길이 되기 때문이다.



 



품격 있는 골퍼란 결코 잘 치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 그것을 알아차릴 줄 아는 사람이다. 실수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행운 앞에서 교만하지 않으며, 결과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태도는 스코어카드에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골퍼의 눈빛과 걸음, 클럽을 내려놓는 손끝에 그대로 남는다. 



 



차 한 잔을 마시듯 한 샷을 대할 수 있다면 골프는 이미 수행이 된다. 힘을 덜고, 욕심을 비우고, '지금 이 순간'의 감각에만 머무르는 일이 골프다. 그때 비로소 공은 멀리 날아가든 짧게 멈추든 상관없이 제자리를 찾는다. 



 



다선일체가 있다면 골선일체(高禪一體)가 없을 수 없다. 골프를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자로 표기할 때 '高爾夫(고루푸)'라고 쓴다. 외래어를 한자로 표기할 때 뜻은 없이 음만 차용해 쓴 탓이다. 



 



지극한 골프는 선과 다르지 않고, 지극한 선은 한 샷의 침묵 속에도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깨닫지 못해도 괜찮다. 오늘도 필드에 서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수행이니까.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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