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 변호사의 법률공방] 바둑광 아버지와 변호사 아들의 AX

2026. 1. 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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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등장 후 바둑 '민주화'
누구나 수준 높은 대국 즐겨
변호사 업계도 마찬가지로
AI 이후 서비스 질 올라갈 것
정재민 변호사

아버지는 바둑광이었다. 아마 6단이었다. 아버지와 바둑을 두려고 우리 집을 찾는 분이 많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딱 한 판만 더!"가 오가며 자정을 넘겼다. 어머니는 "바둑판이 없어지기 전에는 우리 집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하셨다. 30년쯤 흘렀다. 2016년 이세돌이 알파고에 졌을 때 왠지 울적한 기분에 뜬금없이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보셨느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안 봤다. 기계가 이기겠지. 관심 없다" 하셨다. 그러면서도 온라인 바둑은 꾸준히 즐기셨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아버지를 새삼 이해하게 된 것은 알파고 이후 바둑계를 취재한 장강명의 논픽션 '먼저 온 미래'를 읽고서였다. 알파고로 인해 일류 기사의 위상은 추락했지만 모두에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일반 기사도 인공지능 사범에게 배워서 타고난 천재만 도달할 수 있는 줄 알았던 수준까지 넘볼 수 있었다. 과거 최신 기보는 극소수 엘리트 기사들에게만 공유됐지만 이제 그보다 월등한 인공지능 기보를 돈만 내면 얻을 수 있다. 이른바 바둑 수준의 '민주화'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민주화의 수혜자였다. 온라인 바둑 세계에서 과거 시골에서는 만날 수 없던 고수들과 대국을 즐기고 인공지능에게 교습을 받아 실력도 나아졌다. 인공지능이 이세돌을 이겨도, 아버지의 바둑 생활은 더 나아졌다.

변호사 업계도 유사하지 않을까. 우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변호사들도 위상과 수입 추락을 감수해야 한다. 더 빠르고, 정확하고, 싸고, 자주 물어봐도 짜증 안 내는 인공지능을 두고 굳이 인간 변호사에게 자문을 맡길까. 송무의 경우도 인공지능의 서면은 아직은 미흡하나 급격히 발전 중이다. 하급심 판결문이 전면 공개되면 더 위력적일 것이다. '나 홀로 소송'이 많아지고 인공지능보다 못한 변호사는 로펌에도, 의뢰인에게도 고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화도 진행될 것이다. 업계 최하한의 수준이 올라갈 것이다. 부실한 서면, 의뢰인에게 해로운 서면도 사라질 것이다. 1년 차 변호사도 10년 차와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고령 변호사의 실수 역시 줄어들 것이다. 요즘 대형 로펌들이 자신들의 서면을 학습시킨 인공지능을 개발 중이지만, 그 우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알파고제로'는 바둑의 기본 규칙만 입력하고도 최고의 바둑 기보들을 학습한 알파고를 100대0으로 이겼다. 기존 서면은 넘어서야 할 고정관념이 될 것이다.

나는 직접 서면을 쓴다. 30년간 판사로, 작가로 글을 써와서 글쓰기에 익숙하다. 관리자가 되기보다는 직접 일하고 싶다. 그래서 소수의 사건만 맡는다. 직접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도 인공지능이 도움이 된다. 초안을 쓴 뒤 "오탈자 수정해줘" "기록과 모순되는 부분 있니?" "상대편의 예상 반박은?"을 넣어본다. 이러면 글을 더 빨리 발전시킬 수 있고, 내가 더 많은 부분을 직접 쓸 수 있다.

인공지능이 결코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변호사는 단순히 법적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의뢰인이 삶의 한 토막을 최선의 방법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변호사의 힘은 의뢰인과의 특별한 신뢰 관계에서 나온다. 저 변호사와 함께하면 지금의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신뢰다. 그 신뢰는 변호사의 경력, 학식보다도 그 변호사가 진짜 삶의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는 좋은 삶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형성된다. 그래서 의뢰인은 변호사의 인상, 말투, 몸가짐을 다 보고 선임한다. 인공지능이 주는 법적 정보만 가지고는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다. 인공지능이 짜준 운동 스케줄만으로 보디빌더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은 삶을 살아본 적이 없고 신뢰 관계를 맺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번영을 이룬 인류는 이제 이성이 아닌 보다 더 인간적인 것에서 그 역할을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정재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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