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샴페인 쇼에 스러진 알프스 새해 꿈… 원목 천장·플래시오버가 피해 키워
천장 원목 마감재, 화재 확산 결정적 요인 분석
실내 안전 기준 위반 수사 착수
“희생자 신원 확인, 수일 소요 전망”
1일 오전 1시 30분(현지시각) 스위스 남서부 발레주 크랑 몬타나 리조트 내 바 ‘르 콩스텔라시옹’에서 화재가 발생해 40명이 숨지고 115명이 다쳤다. 새해 맞이하는 축제가 벌어지던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초고가 리조트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화려한 연출을 위해 사용한 작은 불꽃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진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분석된다.

이날 스위스 현지 매체 타게스안차이거는 목격자를 인용해 사건이 바 내부에서 샴페인을 서빙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발화(發火) 당시 현장에서는 한 웨이트리스가 동료 어깨 위에 올라타 샴페인 병을 들고 이동 중이었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이 샴페인 병에는 케이크 장식이나 파티 연출에 쓰이는 축하용 불꽃 ‘폰틴 캔들(fountain candle)’이 꽂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폰틴 캔들은 불을 붙이면 분수처럼 불꽃을 수십 초 정도 위로 분출한다. 국내에서도 일명 ‘스파클링 폭죽’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팔린다.
전문가들은 샴페인 병에 꽂힌 폰틴 캔들이 바 실내 마감재로 쓰인 오래된 원목 천장에 닿으면서 순식간에 불길이 옮겨붙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현장 폐쇄회로(CC)TV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에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불꽃이 솟구치는 샴페인 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수사 당국은 테러나 방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폰틴 캔들처럼 새해를 기념하는 실내 불꽃 연출과 가연성 자재 조합이 화재를 키운 직접적인 원인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폭죽과 같은 효과를 내는 축하용 소형 불꽃을 원목이 가득한 실내에서 사용한 행위가 비극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베아트리스 필루 발레주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에서 “목격자 여러 명을 조사했으며 현장에 남겨진 휴대전화 영상 등을 정밀 분석 중”이라며 “현재 주요 가설은 광범위한 화재가 폭발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과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대형 클럽 화재들과 유사하다. 200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더 스테이션’ 나이트클럽 화재(100명 사망)와 2013년 브라질 ‘키스’ 나이트클럽 화재(242명 사망) 모두 실내 불꽃 연출이 가연성 내장재에 붙으며 발생했다.
스위스는 법으로 폭죽류 취급을 엄격히 제한한다. 특히 사고가 일어난 크랑 몬타나 칸톤(지자체)에선 지난해 12월 29일 새해맞이 야외 불꽃놀이를 전면 금지한다는 조례까지 공지했다. 지자체는 ‘강수량 부족으로 화재 위험이 높아졌다’는 이유를 들었다. 스위스 현지 매체들은 샴페인 병에 꽂거나, 손으로 끝을 잡고 흔드는 폰틴 캔들은 흔한 생일 초 정도로 취급을 받아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축하용 불꽃에서 번진 화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결정적 요인으로 ‘플래시오버(Flashover)’ 현상을 지목했다. 바 같은 밀폐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열기가 천장 부근에 쌓인다. 이 열기는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주변에 있는 모든 가연성 물질을 동시에 태워버린다. CNN은 화재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화재 당시 내부 온도가 단 10초 만에 수천 도까지 치솟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알프스 산장풍 건물 특성상 실내에 가득했던 원목 자재는 땔감 역할을 했다. 수십 년 동안 건조된 나무 천장은 불길이 닿자마자 폭발적인 연소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새해를 기념해 설치한 종이 장식물과 소음을 줄이려 벽면에 부착한 가연성 흡음재가 불길을 옮기는 도화선이 됐다.
바 내부에 있던 인원 300여명이 대피하기에 충분한 대피로도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 층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출입구는 좁고, 계단은 가팔랐다. 목격자들은 도이치발레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면서 병목 현상이 발생했고, 뒤에서 밀려오는 인파와 천장에서 떨어지는 불꽃 사이에서 아비규환이 벌어졌다”고 증언했다. 특히 화재 초기, 정전으로 인해 비상구 안내등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참사가 발생한 ‘르 콩스텔라시옹’에 대한 트립어드바이저 리뷰를 살펴보면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곳”이라는 평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평소에도 정원 관리나 안전 확보가 미흡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위치 정보 플랫폼 웨어(Wheree)는 이 바 ‘안전’ 부문에 10점 만점기준 6.5점이라는 낮은 평점을 메겼다. 바 운영진은 화재 발생 직후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했다. 구글 지도 정보도 ‘임시 휴업’으로 즉시 수정했다. 스위스 수사 당국은 해당 바가 화재 안전 점검을 마지막으로 받은 시점과 당시 지적 사항 이행 여부, 정원 초과 여부를 정밀하게 살피고 있다.

크랑 몬타나는 스위스에서도 손꼽히는 휴양 명소이자 리조트 집결지다. 고(故) 로저 무어 같은 할리우드 스타가 별장을 소유했고, 매년 3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는다. 겨울 성수기 크랑 몬타나 내 최고급 리조트 1박 숙박비는 최소 1400달러(약 205만원)를 웃돈다. 다만 이번 새해 파티는 지역 물가에 비해 입장료가 저렴하게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인근 지역 젊은이들이 대거 몰리며 인명 피해 규모를 키웠다.
관광업계에서는 이번 참사로 스위스 전역에 걸쳐 야간 업소 안전 규정이 대대적으로 개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일부 칸톤에서는 실내 불꽃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 검토에 착수했다. 관광객 비중이 높은 알프스 지역 리조트들은 이번 사건이 겨울 성수기 예약 취소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현지 안전 전문가 장 뤽 모레는 “이번 참사는 럭셔리 휴양지라는 명성 뒤에 가려진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유족들은 미국계 리조트 운영사 베일 리조트를 상대로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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