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로비·김앤장 방패로 맞선 쿠팡…한국 정부와 ‘정면충돌’ 불가피해졌다

정윤성 기자 2026. 1. 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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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조사·국정원까지 가세했지만…한국에선 ‘버티기’, 미국에선 ‘수습’ 전략
법무·대관·로비 네트워크 총동원…“책임 인정하면 美 소송 리스크” 계산 깔려
이 대통령의 강공 메시지 속 규제 전면전 예고… ‘장기전’의 서막 오르다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전형적인 '전략적 기억상실' 및 '회피형' 태도입니다." 지난해 12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개인정보 침해 사고 관련 청문회에 처음 출석한 해롤드 로저스 한국 쿠팡 임시대표의 발언 전체를 구글 생성형 인공지능(AI) 제미나이에게 평가하도록 한 결과다. 제미나이는 국회 회의록에 기록된 총 234회의 발언 내내, 로저스 대표가 단 한 차례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인정하거나 설명하지 않았고, 능동적으로 상황을 해명하거나 정정하려는 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는 AI만의 해석에 그치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30~31일 6개 상임위가 참여한 초유의 연석 청문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로저스 대표는 수차례 목소리를 높이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첫 청문회에서부터 나타난 동문서답과 회피성 답변도 되풀이되면서, 여야 청문위원들과의 실랑이가 청문회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로저스 대표의 이러한 태도는 정보 유출 사태 이후 쿠팡이 선택한 이례적인 위기 대응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3370만 명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공개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쿠팡은 국내에서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기보다는 미국 증시 상장사로서 현지의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 뒤엔 거대한 법무·대관 조직과 미국 내 로비 네트워크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쿠팡과 정부가 모두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만큼 양측의 대립 구도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김범석 쿠팡 의장 ⓒ연합뉴스

"양보는 없다" 쿠팡과 정부의 정면충돌

쿠팡과 정부의 대립은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민관 합동 조사에 협조하던 쿠팡이 지난해 12월25일 단독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쿠팡은 개인 직원이 약 3300만 명의 개인정보에 접근했지만 실제로 저장한 데이터는 3000건에 불과하다며 접근 규모에 비해 실질적인 피해는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이 조사 결과가 쿠팡의 '자체 조사'가 아니라, 수 주 동안 정부와 매일 긴밀히 협력해 진행한 조사라는 점을 부각했다.

문제는 쿠팡의 이 같은 주장이 현재 조사를 한창 진행 중인 민관합동조사단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됐다는 점이다. 쿠팡 사태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 속한 과기정통부는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경찰도 "쿠팡과 사전에 연락하거나 협의한 적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쿠팡은 범행에 사용된 장비 회수 사진과 회수 장면이 담긴 영상까지 공개하며 정부와의 공조를 재차 강조했다. 정보 유출 사태가 어느새 사실관계 확인을 넘어 정부와 쿠팡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진실 공방' 양상으로 번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열린 국회 연석 청문회에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로저스 대표는 "자체 조사가 아닌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조사한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새로운 대립 축으로 떠올랐다. 로저스 대표는 "저희는 피의자와 연락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그 기관(국정원)에서 피의자와 연락하기를 요청했다"며 "한국 법에 따라 사실 협조 요청은 구속력이 있고 지시에 따라야 된다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쿠팡의 조사 전반이 국정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국정원은 "명백한 허위"라며 즉각 반박했고, 국회에 위증 혐의로 고발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정부와 국회를 비롯해 경찰, 국정원까지 쿠팡의 주장이 '일방적'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쿠팡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음 날 이어진 청문회에서도 로저스 대표는 국정원의 지시 등에 의해 조사를 진행한 결과라는 기존 주장을 거듭 강조했다. 한술 더 떠 그는 "저희는 성공적으로 정부와 조사에 협력했다"며 "민간기업과 정부가 같이 협력해 (수사한) 성공 사례가 드물다. 왜 이를 한국 국민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청문회는 점차 진상 규명보다는 로저스 대표와 청문위원들 간 신경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로저스 대표는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고 사과를 거부하는 등 불만을 드러내는 태도를 보였고, 의원들도 이런 태도 자체를 문제 삼느라 충분한 질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의원들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사실상 일방적으로 고성을 퍼붓고 기싸움만 이어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이처럼 쿠팡이 정부와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배경에는 향후 법적 분쟁을 염두에 둔 '버티기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김범석 의장이 불출석한 가운데, 결국 핵심 쟁점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이번 청문회는 결과적으로 쿠팡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도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다. 실질적인 책임 인정이나 결정적 발언 없이 실랑이만 조명을 받으며 청문회가 종료된 만큼 쿠팡이 시간을 벌고 화제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는 해석이다.

2025년 12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 사고 관련 연석 청문회에서 해롤드로저스 쿠팡 임시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감 왜? 150억 쏟은 美 로비·김앤장까지

특히 이 같은 대응 전략은 한국보다는 미국에서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산으로 풀이된다. 미 증시 상장사인 쿠팡으로서는 국내 여론이나 행정 제재보다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재나 현지 사법 리스크가 한층 치명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책임을 순순히 인정하거나 비판적 여론을 그대로 수용해 고개를 숙일 경우 미국 법정에서 불리한 정황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쿠팡은 현재 미국에서 현지 주주들의 집단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의 정면충돌도 불사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쿠팡이 과거 급성장 과정에서 각종 규제, 공정거래 논란, 산업재해 문제 등을 겪으며 일찌감치 '방어체계'를 구축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간 쿠팡은 단순히 규제 대응 차원을 넘어 정부와 정치권,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일반 기업들이 지원 조직으로 두는 법무·대관 조직을 경영 전면에 배치하며 사법적 방어의 핵심축으로 삼아온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쿠팡과 계열사 임원진의 면면에서 자세히 나타난다. 지난해 5월까지 2인 각자대표 체제에서 한 축을 맡았던 강한승 전 쿠팡 대표는 서울고등법원 판사 출신으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도 7년 이상 일했다. 강 전 대표가 물러난 뒤 쿠팡을 단독으로 총괄한 박대준 전 대표는 대기업 대관 업무로 커리어를 시작해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베테랑 대관 전문가로 분류된다. 정보 유출 사태 이후 박 대표가 물러난 시점 또한 쿠팡 본사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대관 조직의 비밀 사무실이 알려진 직후였다는 점에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계열사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쿠팡 국내 계열사 16곳의 등기임원 47명 중 10명이 김앤장 출신이다. 그중 3명은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쿠팡파이낸셜 등 3곳의 대표이사다. 국내에서 김앤장이 충실한 협력자라면 미국에선 세계 10대 로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글로벌 로펌 시들리 오스틴이 그 역할을 한다. 로저스 대표 역시 이 로펌에서 일하다 2020년 쿠팡에 합류한 법률 전문가다. 이 같은 인적 구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사법적 책임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뒷받침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내 로비에 공을 들여왔다는 점도 쿠팡의 자신감을 떠받치는 요소로 꼽힌다. 쿠팡이 미 상·하원에 제출한 로비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3분기까지 쿠팡이 집행한 로비 자금은 총 1039만5000달러(약 150억7275만원·환율 1450원 기준)에 달한다. 최근 미국 공화당 인사들과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이 한국 정부의 조치를 두고 "미국 테크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며 공개 비판에 나선 것도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해석된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만 입증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취지의 서한을 국회에 보내기도 했다. 정부 역시 이 사안이 통상·안보 문제로까지 비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시장에서 쿠팡을 대체할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는 점 역시 쿠팡의 대응 전략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쿠팡은 전국 96곳의 풀필먼트센터(FC)와 중간 거점인 '캠프' 등을 포함해 200여 곳에 이르는 물류망을 구축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탈팡(쿠팡 탈퇴)' 움직임이 나타나고 네이버 등 경쟁사들이 틈새 공략에 나섰지만, 이미 소비자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쿠팡 생태계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 "과징금 대대적 때리고 돈 뺏어라"

물론 정부와 정치권 역시 물러설 기미가 없다. 여당은 정보 유출에 더해 노동자 사망 문제, 미국 로비, 탈세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정보 유출 논란을 넘어, 그간 쿠팡을 둘러싸고 누적돼온 각종 논란을 전면적으로 짚는 장기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다만 업계에서는 쿠팡이 이미 국내 정부 차원의 국정조사나 제재 리스크는 제한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국내 행정 제재 수위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절차와 요건도 복잡해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영업정지에도 현실적 장벽이 만만치 않다. 공정위의 영업정지는 사업자가 시정조치 명령을 반복적으로 위반하거나 피해가 복구 불가능한 수준까지 치달아야 논의가 가능하다는 게 현행 제도의 틀이다. 영업정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곧바로 영업정지를 명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금까지 개인정보 유출이나 관련 피해를 이유로 공정위가 대형 플랫폼 기업에 전면 영업정지를 부과한 사례도 없어서다.

정부가 과징금과 손해배상 등 금전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제재 수위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과징금 상한은 기업의 최근 3년 평균 매출액의 3%다. 쿠팡의 지난해 매출이 41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론상 최대 1조2000억원까지 부과가 가능하다. 다만 유사 사례에서 법정 상한에 근접한 과징금이 실제로 부과된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최대 과징금의 현실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강공 기조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행정 제재의 칼자루를 쥔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쿠팡에 대한 영업정지 가능성을 포함해 집단소송제 도입 검토, 국내 플랫폼 규제 전반의 재정비를 시사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해 12월19일 공정위 업무보고에서 꼭 쿠팡을 겨냥하진 않았지만 "과징금을 대대적으로 때리고 돈을 뺏으라"며 경제 형벌 수위를 대폭 높일 것을 주문했다. 쿠팡을 둘러싼 이번 충돌이 단순한 기업 제재를 넘어, 플랫폼 규제의 분기점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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