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보상까지 나아간 제주4.3, 이제 정말 다 끝난 일인가?

김동현 2026. 1. 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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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으로서 4.3은 가능한가] ① 오늘의 자리에서 던지는 비수
2026년은 제주4.3 78주년을 맞는 해다. 어느새 80년이라는 세월을 바라보면서 4.3 진상규명은 다른 국가폭력 피해와 비교해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법과 제도로의 해결 단계에 접어들면서 4.3을 바라보는 더욱 진전된 인식 또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토론회 '4.3예술운동 : 기억투쟁에서 기억의 공유로'는 이런 문제인식을 공유하는 의미있는 자리로 평가된다. [제주의소리]는 2026년 새해를 맞아 김동현 문학평론가의 토론회 발제문 '운동으로서의 4.3은 가능한가'를 4회로 나눠 소개한다. 4.3 80주년을 맞아 제주사회에 필요한 화두가 되리라 확신한다. [편집자 주] 
제주4.3평화공원 평화기념관에 있는 백비. 비석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고, 안내문에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고 적혀 있는 것이 전부다.

이것은 질문이다. 말할 수 없었던 시절을 지나,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의 자리에서 던지는 비수이고, 창이다. 

제주 4.3운동은 여전히 가능한가. 이 질문은 당연하지만 무력하다. 87년 체제를 만들었던 민주화 운동의 주역 중 일부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깃발군중을 기다리지 말자"고 하던 정태춘의 노래가사처럼, 지금 우리는 운동의 대의만으로는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가 일상이 되어 버렸고, 지속가능한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로, '새벽 배송'의 편의가 부끄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공존과 연대는 너무 먼 거리의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

'각자도생'의 악다구니 앞에서 뒤처지지 않는 평범한 일상조차 버거운 시대에 여전히 운동을 말하는 것이 유효한 일인가. 점점 노골화되고 있는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의 삷조차 버거운데 왜 하필이면 이다지 무력하기만 한 과거의 언어에 매달리고 있는가라는 비아냥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공동체를 보다 나은 삶의 연대로 충만하게 만들어야 하는, 최소한의 시민적 연대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 '운동의 언어'를 꺼내들어야 한다. 

제주4.3진상규명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운동'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제주4.3평화재단이 펴낸 진상규명운동사의 제목이 '어둠에서 빛으로'라는 것만 보아도 제주 4.3 진상규명운동은 역사의 어둠 속에서 놓여있었던 4.3의 진실을 역사적 사실로 천명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명백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오래도록 이름없는 역사였던 제주4.3을 공동의 기억으로 호명하는 일이자, 공동체의 역사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제주 4.3운동은 말을 빼앗긴 자들이 언어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입 없는 자들의 섬인 제주는 그렇게 말하는 입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말하는 입을 가지게 된 오늘, 우리는 여전히 말하고 있는가. 모방이 아니라, 흉내가 아니라, 동어반복이 아니라, 여전히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제주 4.3은 오랫동안 '이름 없는 역사'였다. 1948년의 비극 이후 반세기 동안 제주는 거대한 공동묘지였다. 입 없는 자들의 침묵으로 존재하는 섬이었다. 국가 폭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은 반공이라는 서슬 퍼런 국시 아래 '폭동'으로 명명되었고, 생존자들은 연좌제의 쇠사슬에 묶여 자신의 고통을 발화할 언어조차 갖지 못했다. 이러한 침묵의 벽을 깨뜨린 것이 바로 4.3 진상규명 운동이었다. 2002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공식 채택되고, 이듬해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하며 이어진 희생자 배보상의 과정은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른바 '역사 기입'의 승리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슬로건이 제주 4.3 70주년에 회자된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이다.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변방의 역사가 국가의 공식 기록이라는 중앙의 무대로 진입한 것이다.
2018년 4월 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주 4.3항쟁 70주년 국민문화제' 현장에 걸린 현수막.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하지만 이 눈부신 성취의 이면에는 '역사 기입의 역설'이 도사리고 있다. 과거를 법제화하고 제도권 내부로 편입시키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그 역사가 지닌 생생한 운동성을 거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진상규명이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수행되면서, 4.3은 이제 '투쟁하여 쟁취해야 할 진실'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기억'의 영역으로 이행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억의 관료화'라는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 '기억의 관료화'란 국가가 허용한 매뉴얼에 따라 슬퍼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보상하며, 규격화된 기념비 아래 과거를 박제한다. 

이러한 제도화된 기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위험성을 내포한다. 첫째는 '기억의 매뉴얼'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보상까지, 이행기 정의의 원칙이 이뤄지는 순간, 제주4.3은 이미 해결된 과제로 간주된다. 한동안 유행하던 '완전한 해결'이라는 담론이 '정의로운 해결'로 치환되고 있지만, 이러한 명명조차 제주4.3을 '해결해야 할 과거'로 박제화해 버린다. 해결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윤리적 해방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다. 국가폭력의 문제가 '해결'되어버린 이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무엇을 추념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해결이라는 용어 뒤로 숨어버린다. 매년 제사지내듯이 4.3을 추념하고, 4.3의 전국화 세계화라는 용어를 내세우며 기억의 계승을 이야기하지만 무엇을 이어가야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기억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이제 다 끝난 일 아니냐"라는 안일한 인식은 4.3이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을 차단한다. 둘째는 '기억의 선별'이다. 법-제도는 필연적으로 경계를 짓는다.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순결한 희생자'와 법의 외부로 밀려나는 '불온한 존재'를 분리한다. 최근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박진경 논란에서 보듯,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폭력에 대한 저항, 이른바 반폭력으로서의 항쟁의 의미는 기억될 수 없는 미완의 영역으로 남아 버린다.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성과는 달콤했지만, 그 달콤함은 또 다른 독이기도 하였다. 4.3 진상규명 운동이 예술의 영역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여전히 '운동'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제도화가 주는 안락한 침묵을 거부해야 한다. 관료적 기억이 만들어낸 매끄러운 표면 밑에 여전히 요동치고 있는, 법이 포착하지 못한 파편화된 진실들을 다시 호출해야 하는 것이다. 4.3은 '완결된 보고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의 여백, 그리고 제도 밖으로 밀려난 비명 속에 여전히 비존재로 존재하고 있다. 프리모 레비가 이야기했듯 우리가 정작 들어야 할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여전히 죽은 자들은 법-제도의 외부에서 죽음을 살고 있다. 기억되지 못한 채, 기록되지 않은 죽음이 존재하는 한, 제주4.3의 해결은 불가능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여전히 운동으로서의 제주4.3은 가능한가. 운동의 당위성과 법-제도의 언어로 포섭되어버린 운동의 무기력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운동으로서 제주4.3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2편에서 계속)

김동현
김동현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국민대학교에서 '로컬리티의 발견과 내부식민지로서의 제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단법인 제주민예총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문학평론가로서 제주4.3문학과 오키나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욕망의 섬 비통의 언어',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공저),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공저), '김석범×김시종-4·3항쟁과 평화적 통일독립운동'(공저),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공저), '전후 오키나와문학과 동아시아-반폭력의 감수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공저), '비판적 4.3 연구'(공저), '언어전쟁'(공저) 등이 있다. 제주4.3 뮤지컬 '사월-The Great April'의 대본을 쓰기도 했으며 제주4.3 예술운동과 제주 제2공항 반대 투쟁에도 손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