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美 베네수 거래제재에 즉각 반발…중남미로 번진 ‘미중 패권경쟁’

서지연 2026. 1. 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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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中기업·유조선 첫 정조준…“마두로 자금줄 차단”
中 “일방적 괴롭힘”…정책·외교·안보전선까지 확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년 10월 30일 한국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양자 회담을 마친 뒤 자리를 떠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로이터]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 거래에 관여한 중국 기업을 제재하자 중국이 즉각 반발했다. 미국의 제재가 베네수엘라를 고리로 중국의 중남미 영향력 확대를 정면 겨냥하면서, 미·중 패권 경쟁의 전선이 중남미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에너지 거래를 둘러싼 제재 공방을 넘어 외교·안보 영역까지 맞물리며 경쟁 구도가 한층 전면화하는 양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중국·홍콩 등에 사무실을 둔 원유 트레이딩 업체 4곳과 이들과 연계된 유조선 4척을 특별제재대상(SDN)으로 지정했다고 전했다. SDN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이 전면 동결되고, 미국 기업 및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미국은 이들 기업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에 자금을 공급했으며, 일부 선박은 국제 제재를 회피해 원유를 운반하는 ‘그림자 선단’ 성격이라고 밝혔다. 재무부는 베네수엘라 원유 거래에 관여하는 주체들은 추가 제재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제재를 이어오는 과정에서도 중국 기업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미국은 그간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와 연계된 기업과 선박을 주로 제재해왔지만, 중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은 사례는 많지 않았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베네수엘라 제재를 넘어 중국의 중남미 에너지 네트워크를 차단하려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성조기(왼쪽)과 중국 오성홍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

중국의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제재와 유조선 나포 조치를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제재”이자 “패권주의적 괴롭힘”으로 규정하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미국의 병력 투입과 원유 수출 봉쇄 중단을 촉구하는 등 외교전 수위를 끌어올렸다. 베네수엘라가 다른 국가들과 합법적으로 에너지 협력을 할 권리가 있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베네수엘라가 차지하는 전략적 비중이 있다. 중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꼽히며, 베네수엘라 정부 세수의 상당 부분이 중국으로 향하는 원유 수출 대금에서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미·친중 성향의 마두로 정권 퇴진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을 통한 원유 거래까지 차단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은 중국 입장에선 핵심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제재는 중국이 중남미 전반에서 영향력을 넓혀온 흐름과도 맞물린다. 중국은 2015년 ‘중국-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 공동체 포럼’을 출범시키며 중남미를 제도권 외교 무대로 끌어들였고, 브릭스(BRICS)와 일대일로를 외교·경제적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심화된 이후에는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줄이는 대신 브라질산 대두를 대거 수입하는 등 공급망 재편에도 적극 나섰다.

2019년 미·중 정상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 양국의 무역전쟁이 연일 치열해지는 가운데, 두 정상은 이달 말 정상회담에서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의 경계심은 이런 흐름 전반을 겨냥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국가안보전략에서 “서반구에서 미국의 패권을 회복하고 역외 경쟁자를 배제하겠다”고 공언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사실상 중국을 염두에 둔 선언으로 본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 거래를 문제 삼아 중국 기업까지 제재한 것은,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중국도 이에 맞서 정책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WSJ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발표 직후 중국은 중남미·카리브해 지역에 대한 새로운 정책 문서를 공개했다. 중국이 이 지역을 대상으로 공식 정책 문서를 발표한 것은 약 10년 만이다. 중국은 문서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변함없는 연대를 유지해왔다”며 “국제 세력 균형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안보 영역에서도 미묘한 긴장 신호가 감지된다. 최근 중국 국영방송은 쿠바와 멕시코 인근 해역을 배경으로 한 모의 전쟁 장면을 공개하며 상징적 군사 메시지를 던졌다. 미국 국방부 자문을 지낸 전직 외교관들은 중국이 쿠바 등을 군사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해 워싱턴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의회 보고서에서 중국이 미주 지역에서 군사 거점을 검토했을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쿠바를 지목한 바 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중남미에서의 강대국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며, 중국의 정책 문서가 외교·경제 관계를 확대해 미국의 대안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핵심 광물과 에너지·천연자원 확보에 나서는 방식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 외교관들이 현지 대사관을 중심으로 정치·경제 엘리트들과 접촉하는 과정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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