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2026년, AI 시대의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6. 1. 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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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일어난 사건이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회사는 대출 심사 과정을 혁신하기 위해 최첨단 AI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과거 수십만 건의 거래 데이터와 신용 이력을 기반으로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시스템 가동 몇 달 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드러났다. 특정 지역과 연령대의 고객들이 반복적으로 대출 심사에서 탈락하는 패턴이 발견된 것이다. 고객들이 그 이유를 묻자, 회사는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 “AI 시스템이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라는 애매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결국 이 문제는 규제 당국의 본격적인 조사로 이어졌고, 기업은 알고리즘 차별 논란과 함께 고객 신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사례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를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다. AI 기술이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한 오늘날, “과연 누가 이 결정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알고리즘이 판단하는 새로운 현실

현재 AI는 금융, 인사관리, 마케팅, 보안관리 등 기업 경영의 핵심 영역 전반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채용 후보자 선별부터 시작해서 이상 거래 탐지, 내부 감사 대상 선정, 상품 가격 책정까지, 과거에는 오롯이 사람의 경험과 판단에 의존했던 수많은 의사결정이 이제 알고리즘의 손으로 넘어갔다.

AI가 가져온 변화는 분명 혁신이다. 대량의 복잡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하고, 인간의 직관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미묘한 패턴까지 찾아내는 능력은 기업 경쟁력의 새로운 원천이 되고 있다. 24시간 지치지 않고 일관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사실이 있다. 판단 과정의 자동화가 곧 책임 소재까지의 자동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은 명확한 결과만을 남길 뿐, 그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은 대개 ‘블랙박스’ 상태로 남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자주 “이것은 AI의 판단입니다”라는 말 뒤에 숨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고객과 규제기관, 그리고 사회 전체가 더 이상 그런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책임의 주체는 기술이 아닌 조직

여기서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알고리즘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데이터를 선택하고, 모델을 어떻게 설계하며, 어느 범위까지 적용할 것인지를 결정한 주체는 결국 인간이고 조직이다. 따라서 AI 기반 의사결정이 가져온 모든 결과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그 시스템을 도입하고 운영하는 기업과 경영진에게 돌아간다.

바로 이런점에서 ‘책임 있는 AI(Responsible AI)’의 개념을 생각하게 한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 선언문을 작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영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구조 속에 책임 체계를 구체적으로 내재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조직 차원의 명확하고 실행 가능한 답변이 마련되어야 한다.

• 어떤 종류의 의사결정에 AI를 활용할 것이며, 어떤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전유 영역으로 남겨둘 것인가?

• 중요한 결정에서 최종 승인 권한을 인간에게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자동화할 것인가?

• AI 시스템에 오류나 편향, 차별이 발견되었을 때 즉시 수정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치와 절차가 마련되어 있는가?

•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 체계가 갖춰져 있는가?

설명 가능성과 인간 개입의 원칙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구현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설명 가능성이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어떤 요소들이 판단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 결정은 아무리 정확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 바로 설명 가능한 AI(XAI, Explainable AI)다. 이는 복잡한 알고리즘의 판단 근거와 과정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시화함으로써, ‘블랙박스’ 문제를 완화하려는 기술적 시도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Human-in-the-loop’, 즉 인간의 적극적 개입이다. 모든 판단을 AI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이 아니라, 특히 중요하거나 민감한 결정일수록 반드시 인간이 최종 검토하고 승인하는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처리 속도나 효율성을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책임성과 신뢰성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안전장치로 봐야 한다.

AI 거버넌스, 경영진의 새로운 과제

이제 AI는 더 이상 IT 부서나 기술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사회와 최고경영진이 직접 관심을 갖고 관여해야 할 핵심적인 거버넌스 이슈로 부상했다. 데이터 활용 원칙, 알고리즘 관리 체계, 의사결정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내부 규정과 절차는 앞으로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다.

특히 규제 환경의 변화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유럽연합의 AI Act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AI 활용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법적 리스크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앞으로 AI를 도입하는 기업들 간의 진정한 차별화 포인트는 “누가 더 최신 기술을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책임감 있게, 지속 가능하게 그 기술을 활용하느냐”에서 나올 것이다.

결국 알고리즘은 우리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강력한 도구일 뿐, 그 결과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기술의 힘을 빌리되, 그 책임은 끝까지 스스로 지는 조직이 될 것이다.

[이형용 한성대 교수,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장,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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