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면 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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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기획회의를 앞두고 달력을 펼쳤다. 내년엔 무슨 일이 있으려나, 당장 시의성 있는 주제가 있을까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인 달력은 아니고, 트렌드에 가장 빠삭한 미디어 '캐릿'이 배포한 달력이었다. 기획안 작성을 앞두면 때때로 머리속이 하얘진다. 매달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싶지만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니까. Z세대 콘텐츠를 다루는 미디어인 만큼 '무언가 다른 게 있겠지' 하는 마음과 '그래 봐야 매년 돌아오는 날이 비슷하겠지'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런데 웬걸, 월별로 처음 보는 일정이 빼곡했다.
1월만 해도 신정을 제외하고, '세계 내향인의 날(1/2)' '다이어리 데이(1/14)' '국제 뜨겁고 매운 음식의 날(1/16)' '팝콘의 날(1/19)' '땅콩버터의 날(1/24)'까지 생소한 날들이 군데군데 칸을 채웠다. 기존에 알던 기념일이라곤 신정뿐이었다. 세계 내향인의 날은 언제 생겼지? 국제 뜨겁고 매운 음식의 날은 또 뭐람. 거기서부터 독특한 기념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조금 더 집중해서 달력을 살펴봤다. 1월에 있는 기념일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특이한 기념일은 어느 정도 공통된 주제로 분류됐다. 특정 음식 이름이 붙은 날, 명명함으로써 특별해지는 날, 자연을 위한 날 등이었다. 먼저 특정 음식 이름이 붙은 날.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당연히 빼빼로데이나 블랙데이는 아니다. 여러 음식을 기념하는 날들이 있지만 그중 새롭게 눈에 들어온 건 '당근 케이크의 날(2/3)' '국제 맥주의 날(8/7)' '치즈버거의 날(9/18)'이었다.
"일상에 숨겨진 기념일은 인생에 묘미를 더한다.
어쩌면 명명하지 않았을 뿐 우리 일상은 매일 특별할지도 모른다."
음식 기념일, 흥미롭다
당근 케이크는 생각보다 사랑받은 역사가 깊다. 당근 케이크의 날이 2월 3일로 지정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장 오래된 당근 케이크 레시피가 1827년 출판한 프랑스 요리책에 나온다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당근 케이크는 설탕이 귀한 시절, 단맛 나는 당근을 대신 갈아 만든 것이 시초다. 이후 '채소 케이크'임에도 맛있다는 이유로 1970년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 베스트 5'에도 올랐다. 재미있고 독특한 기념일을 소개하는 미국 '내셔널 데이 캘린더'는 당근 케이크의 날을 소개하는 페이지에 '만약 우리가 당근을 제시한다면 이 기념일을 만든 사람이 나타날까 궁금하다'고 적었다. 담백한 시트에 은은한 시나몬 향, 거기에 달콤한 크림치즈를 더한 케이크는 당근을 싫어할 사람도 좋아하게 만들 만한 기특한 디저트다. 무엇보다 그 디저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날이 2월 3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국제 맥주의 날. 애주가라면 이름만 들어도 설렐 날이다. 2008년 제시 아브샬로모프가 친구들과 만든 기념일로, 처음에는 전 세계 맥주를 한자리에 모아 즐기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샌타크루즈에서 열린 작은 행사는 점점 성장해 수많은 나라 및 도시에서도 진행 중이다. 사실 국제 맥주의 날은 고정된 날짜가 없는 기념일이다. 제정된 날 이후 2012년까지는 8월 5일로 정해두었으나, 창립자들이 설문조사를 통해 매년 8월 첫째 주 금요일로 변경했다. 그래서 올해는 8월 7일에 열지만 내년에는 8월 6일이 국제 맥주의 날이다. 이날은 맥주를 선물로 주고받고, 다른 문화권의 맥주나 희귀한 맥주를 시음한다. 양조장, 펍 관계자까지 맥주를 사랑하는 이라면 모두가 한데 모여 즐길 수 있다.
9월 18일은 치즈버거의 날이다. 처음 치즈버거가 등장한 날인가 싶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여러 가지 설 중에 1926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있는 아버지 샌드위치 가게에서 라이오넬 스턴버거가 갓 나온 햄버거 위에 아메리칸 치즈 한 조각을 올려본 것에서 기원했다는 일화가 유력하다. 많은 인물과 레스토랑에서 자신들이 발명했다며 상표권을 주장했으나, 9월 18일은 관습적인 약속하에 생겼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이날은 마케팅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각종 버거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반값에 치즈버거를 제공하거나 공짜 버거까지 내세워 브랜드를 홍보하기 때문. 9월 15일 더블 치즈버거의 날도 따로 있다.
이런 날도 있었어?
명명함으로써 특별해지는 날은 뭐가 있을까. 1월 2일인 '세계 내향인의 날'이다. 이날은 독일의 한 심리학자가 10여 년 전, 자신의 블로그에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을 주목하고자 제안한 기념일이다. 날짜가 1월 2일인 이유도 연말 모임 이후 지친 내향인을 격려하는 의미가 있다. 재밌는 사실은 세계 외향인의 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향인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매일 자신의 날처럼 살아간다. 세계 내향인의 날은 외향인이 내향인을 모임으로 끌어내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아호이(Ahoy)! '국제 해적처럼 말하기 날'도 있다. 이름도 길고 생소한 기념일은 1995년 9월 19일 미국 코미디언 존 바우어와 마크 서머스가 만들었다. 제정 계기는 다소 즉흥적이다. 두 사람이 스쿼시를 하다가 실수로 공에 맞아 소리를 질렀는데, 그게 해적의 비명 같았다고 한다. 이날만큼은 해적어를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으며, 친구를 만나도 "헬로(Hello)"가 아닌 "아호이(Ahoy)"라고 인사해야 한다. 언어는 <보물섬> 같은 해적 소설에서 쓰는 말투를 사용하고, 해적 행위가 증가했던 1650~1730년대 해적의 황금시대를 주제로 한다. 코미디언이 제정한 엉뚱한 기념일 같지만 알고 보면 마크 서머스의 전 아내 생일로 로맨티시스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6월 20일은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다. 그런 날이 정해져 있는 거였나? 생각이 들지만, 여기에는 꽤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영국 심리학자 클리프 아널이 행복한 날짜 방정식인 'O+(N×S)+Cpm÷T+He(O는 야외 활동, N은 자연의 상태, S는 친구와의 교류, Cpm은 어린 시절의 긍정적인 기억, T는 기온, He는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감)'을 바탕으로, 날씨와 자연환경이 야외 활동하기 좋고 여름휴가를 앞둔 시기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진리도 무시할 수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
꽤 많은 날들이 자연을 생각했다. 2월 27일은 지구 온난화로 서식지가 사라지는 북극곰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세계 북극곰의 날'이다. 4월에는 식목일을 앞두고 4일 '종이 안 쓰는 날', 5일 나무를 심는 '식목일', 22일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지구의 날'까지 연달아 있다. 7월 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도 인상적이다. 스페인 환경단체 가이아에서 분해에는 100~500년이 걸리지만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비닐봉투를 줄여보자는 취지로 이날을 제정했다. 이 외에도 '민트 초코의 날(2/19)' '직장에 강아지 데리고 가는 날(6/26)' '페퍼로니 피자의 날(9/20)'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날(10/22)' '세계 친절의 날(11/13)' 등 수많은 기념일이 숨어 있으니 궁금하다면 찾아봐도 좋겠다.
누군가는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든데 쓸데없이 의미 부여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돈 벌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살아내는 것 자체로 가치 있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명대사와 함께.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뭘 고를지 알 수 없지." 매일이 까마득하기에 상자 속 초콜릿처럼 일상에 숨겨진 기념일은 인생에 묘미를 더한다. 어쩌면 명명하지 않았을 뿐 우리 일상은 매일 특별할지도 모른다.
2월 19일 민트 초코의 날
3월 21일 세계 시의 날
3월 23일 국제 강아지의 날
8월 7일 국제 맥주의 날
9월 7일 푸른 하늘의 날
9월 20일 페퍼로니 피자의 날
CREDIT INFO
Edito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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