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증상으로 위장된 심혈관 질환, ‘시한부’라는 오명을 벗다 [건강한겨레]

최지현 기자 2026. 1. 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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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시한부였던 ‘폐동맥 고혈압’ 장기 생존길 열려
폐동맥 압력 비정상적으로 높은 질병
‘조금 움직여도 숨찬 호흡곤란’ 증상
질환 원인은 유전적인 요인이 많지만
치료제 발전으로 정상 수준 회복 가능
김형관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환자가 증상만으로 스스로 폐동맥 고혈압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고위험군의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를 강조했다. 최지현 기자

고혈압이 질환명에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 생명에 위협적인 희귀 난치성 질환인 병이 있다. ‘폐동맥 고혈압’이다. 한때는 진단이 곧 3년가량의 시한부를 의미하기도 했다. 심혈관 질환이지만, 증상은 쉽게 이와 연관되지 않는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쁜 호흡기 증상이나 빈혈과 같이 몸에 힘이 없는 등 특징적이지 않은 건강 문제로 보이기 쉽다. 젊은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견됐던 탓에 과거 심부전, 돌연사 등으로 사망한 20~40대 젊은 여성 중 상당수가 이 병을 앓았을 수 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와 건강한 성인의 활동 거리에 따른 호흡 곤란 증상 비교. 김형관 교수 제공

대중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낯선 병이다. 2023년 기준 국내에선 약 3600명의 환자가 보고됐고 많게는 6천여 명(인구 100만 명당 6명꼴)까지도 추산한다. 본격적으로 이 병을 연구한 것도 국제적으로 30년, 국내에선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다행히 이제는 일찍 발견하고 꾸준히 치료하면 일상을 되찾고 장기 생존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국내에 이 질환을 처음 소개하고 관련 연구와 치료를 이어온 김형관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은 치료를 빨리 시작해 가능한 한 정상 범위로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초기 상태일 때 치료할수록 훨씬 더 정상 방향에 가깝게 되돌릴 가능성이 크고 실제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해 생활하는 환자분들도 있다”고 강조한다.

폐순환계와 체순환계 모식도. 폐동맥 고혈압은 폐순환계 중 폐동맥 위치에서 혈관 근육 조절 신호균형에 이상이 생긴 병이다. 위키미디어 공용 제공

폐동맥 고혈압이 일반 고혈압과 가장 다르면서도 증상이 이질적인 까닭은 질환이 나타나는 위치의 문제가 크다. 일반적인 고혈압은 혈액의 온몸 순환 과정(체순환)의 문제인 반면, 폐동맥 고혈압은 호흡만을 위해 심장과 폐 사이의 혈관계가 별도로 분리된 길(폐순환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혈류 흐름은 사람이 이동하는 구조와 비슷하다. 집에서 나와 골목길→큰길→고속도로→다시 큰길→골목길을 거쳐 다른 집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폐순환계 역시 마찬가지인데 심장에서 나오는 폐동맥, 이어지는 폐 소동맥, 폐 모세혈관, 폐 소정맥, 마지막으로 폐정맥을 통해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여기에서 폐동맥에서 압력을 측정했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이든 측정된 압력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올라가 있으면 ‘폐고혈압’으로 진단한다. 폐고혈압은 혈압 이상 증상과 위치 등에 따라 1~5군으로 분류하고, 그중에서도 1군이 폐동맥 고혈압에 해당한다. 전체 폐고혈압 중에서도 2% 정도에 불과하다.

김형관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환자가 증상만으로 스스로 폐동맥 고혈압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고위험군의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를 강조했다. 최지현 기자

병태생리적으로 고혈압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일반적인 고혈압은 심장에서 온몸으로 피를 밀어내기 위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동맥 속 근육세포(소동맥 평활근)가 노화하면서 혈압 조절 능력이 떨어진 탓에 나타난다. 노화로 피부가 거칠어지듯 근육이 점점 뻣뻣해지며 탄력성도 떨어지는 것이다. 폐동맥 고혈압 역시 비슷하게 혈관 근육 기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폐동맥 속 평활근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근육이 뻣뻣해지고 커지면서 폐 소동맥으로 가는 길이 점점 좁아지는 변화가 핵심이다.

다만, 원인은 다르다. 혈관 속 근육은 특정 신호전달물질에 의해 수축하고 이완(확장)하도록 조절되며 균형을 이루는데, 폐동맥 고혈압에선 유전적이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균형이 과도하게 수축을 유발하도록 기울어졌다.

이러한 특징 탓에 심혈관 질환임에도 호흡기 계열의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 처음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서 힘들다고 느낀다. 거의 항상 1개층 이상의 계단이나 언덕을 오를 때 그렇다. 이러한 증상 악화는 천천히 진행되기에 어느 정도 변화에 적응하며 지낸다. 더 심해지면 평지를 조금 빨리 걸어도 숨이 차게 될 정도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흉통, 실신, 심장 소리 이상(심잡음) 등의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환자군 역시 특정하기 어렵다. 유의미한 통계 결과를 내기엔 환자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거기다 과거엔 젊은 여성층을 고위험군으로 봤지만, 최근엔 병이 알려지고 검진 기술이 발달하며 중년 여성이나 남성 환자도 거의 비슷한 비율로 진단받는다.

치료는 혈관 확장을 유도하는 약제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엔도텔린 수용체 길항제(ERA) △PDE-5 억제제(PED-5i) △프로스타사이클린 유사체(PCA) △가용성 구아닐레이트 시클라제(sGC) 자극제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혈관의 수축과 이완 신호물질을 전달하는 경로를 겨냥하는 새로운 원리의 약제인 액티빈 신호전달 억제제(ASI)도 나왔다. 이러한 발전으로 이제는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도 15년 이상 장기 생존할 수 있게 됐다. 김 교수를 찾는 환자 중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질환을 잘 관리해 거의 정상 수준까지 심장 기능을 회복한 경우도 있다.

국내에선 증상 악화에 따라 단계적으로 강한 약을 사용하나 국제 진료지침에선 고위험군 환자가 최대한 저위험 단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진단 후 3~4개월 내 조기에 치료 강도를 높이도록 권고한다.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선 이에 맞춰 건강보험 약제 급여 등 치료비 지원 체계도 설계돼 있다.

김 교수는 “초반에는 증상이 애매하고 특징적인 증상이 거의 없기에 환자가 증상만으로 스스로 폐동맥 고혈압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어떤 분들이 고위험군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고위험군에 속한다면 호흡 곤란 증상으로 조금이라도 일상이 불편해질 때 주저하지 말고 서둘러 병원을 찾아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으시길 바란다. 빨리 진단받으면 조기 치료의 기회가 열리고 오랜 기간 불편하지 않은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권고한다.

김 교수가 제시하는 고위험군은 다음과 같다. △20~40대 젊은 여성 중 느끼지 않아도 될 호흡 곤란을 느끼거나 가끔 실신하는 경우 △전신경화증, 루푸스, 류머티즘 관절염, 셰그렌증후군 등 결체조직질환(자가면역질환)이 있는 경우 △간경변 등 중증 간질환이 있는 경우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수술받았거나 선천성 심장질환을 치료하지 않은 경우 등이다.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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