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AI 앞에 무너진 원격 시험… 英 최대 회계사 단체, 다시 대면으로
어니스트앤영 ·PwC 등도 스캔들 연루
“회계사 신뢰성 저하, 기업 불신 이어져”
세계 최대 회계 전문 단체 영국 공인회계사협회(ACCA)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부터 시작했던 원격 시험 제도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기술 발달이 가져온 편의보다 자격증 자체에 대한 신뢰성 붕괴가 더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는 분석이다.

30일(현지시각) ACCA는 내년 3월부터 모든 원격 시험을 중단하고 대면 시험 체제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모든 수험생은 시험장에 직접 출석해야 한다. ACCA는 전 세계 25만 7900명 회원과 50만 명 이상 학생을 보유한 세계 최대 회계 단체다. 헬렌 브랜드 ACCA 최고경영자(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부정행위 시스템이 정교해지는 속도가 우리가 구축할 수 있는 보안 시스템 발전 속도를 앞질렀다”고 했다.
ACCA에 따르면 최근 원격 회계 시험 관련 부정행위 양상은 과거에 비해 훨씬 적발이 어려워졌다. 기존 원격 감독 기술은 웹캠을 통한 시선 추적이나 키보드 입력 패턴 분석에 의존했다. 시스템상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부정행위는 막지 못했다. 수험생들은 이 점을 노려 스마트폰으로 시험 문제를 촬영한 뒤 이를 챗GPT 같은 AI 챗봇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들은 AI가 실시간으로 제공한 복잡한 회계 풀이와 해설을 촬영해 그대로 입력하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회계업계에서 ‘빅4’로 불리는 대형 회계법인 소속 직원들도 내부 시험에서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다 적발된 사례가 잇따랐다. 언스트앤영(EY) 소속 감사 인력 수십 명은 2022년 공인회계사(CPA) 자격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윤리 시험에서 답안을 공유하며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EY는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허위 진술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 결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인 1억 달러(약 1448억 2200만 원) 벌금을 부과 받았다.
PwC, KPMG, 딜로이트 역시 미국과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등 전 세계 직원 수천 명이 연루된 부정행위로 각 수백만 달러 규모 벌금 처분을 받았다. 미국 상장회사 회계감독위원회(PCAOB) 조사 결과, 이들 법인 임직원 수백 명은 내부 교육 시험 답안을 수년간 공유했다. 특히 집행부 임원들까지 부정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회계업계 도덕성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개인 윤리를 넘어 회계사 신뢰성을 좌우할 만큼 제도적인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브랜드 CEO는 “고위험·고부담 시험 중에서 원격 감독을 여전히 허용하는 경우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회계 전문 단체 잉글랜드·웨일스 공인회계사협회(ICAEW)도 엔데믹 이후 지속적으로 부정행위에 대해 경고음을 냈다. ICAEW는 지난해 “시험 부정행위 보고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ICAEW는 구체적인 통계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보도자료에서 “(부정행위가) 계속 증가(increasing)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부적으로 이미 부정행위에 관한 유의미한 추세 변화가 감지됐고,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ACCA는 회계사라는 직업의 공공성을 감안해 보수적인 선택을 내렸다고 했다. 회계 전문 자격은 기업 재무제표 신뢰성을 보증한다. 이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며 자본시장 질서를 유지한다. 회계사 시험 신뢰성이 흔들리면 감사보고서와 기업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다른 전문 자격시험 분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영국 가디언은 “빅4 회계법인 스캔들 이후 부정행위는 개인 일탈을 넘어 회계 산업 전체 리스크로 격상됐다”며 “이번 ACCA 결정은 자본시장 최후 보루인 회계 전문직 신뢰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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