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괴물을 마주하며, 어떤 무기를 가질 것인가 [.txt]
미 독립선언 250돌, 백범 김구 탄생 150돌
다양한 역사서·평전·전집류 줄이을 예정
한국사회 비평·극우 청년 분석서 쏟아져

2026년은 미국 독립선언 250돌, 백범 김구 탄생 150돌, 한나 아렌트 탄생 120돌, 쇠귀 신영복 타계 10주기가 되는 해다. 이를 맞아 출판계는 다양한 역사서와 평전, 전집류를 준비하고 있다. 적어도 최근 10년 이상 독서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젠더, 퀴어, 장애를 다룬 책들은 내년에도 각 출판사의 기대작으로 꼽힌다. 2025년에 이어 극우와 청년 남성 분석에 대한 책들 역시 다수 준비되고 있다. 독보적인 과학 저술가 정재승, 이정모 등의 새 책 또한 기대감을 높이고, 그간 가뭄에 콩 나듯 나오던 한국 사회 분석서 또한 여럿 출간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경제학과 환경 분야에서는 과거를 돌아보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상 속 수시로 출몰하는 ‘괴물’을 마주하며 책에서 길을 찾자는 뜻으로, 2026년 각 출판사가 뽑은 기대작을 소개한다. 책 제목과 출간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
미래를 구하는 경제학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의 대표작 ‘자유주의’(생각의힘)는 오늘날 자유주의라는 정치 체제의 성공과 실패를 살핀다. 대안으로 저자는 공동체의 번영을 최우선으로 하는 ‘노동계급 자유주의’를 제시한다. 경제사회학자 미셸 칼롱의 ‘만들어지는 시장’(사월의책)은 지배력이 강한 ‘시장’을 재설계하자며 대안을 제시한다. 중국계 캐나다 출신 기술분석가 댄 왕의 ‘돌진’(웅진지식하우스)은 2월 초 번역서가 나올 예정. 중국이 빠른 속도로 기술을 혁신하면서 ‘엔지니어 국가’가 된 반면, 미국은 규제와 절차에 집착해 발전을 가로막는 ‘변호사 국가’가 되었다고 분석해 화제가 된 책이다.

주경철과 ‘호동칸’의 귀환
역사와 사상의 재해석
창비는 대기획 ‘창비 한국사상선’ 2~3차분 각 10권을 펴내며 사상선을 완료한다. 이이, 김구, 여운형, 한용운, 나혜석, 신채호, 염상섭, 정약용, 함석헌, 유영모, 신동엽, 김수영, 임화, 김대중까지 현대적 위기에 대한 답을 이들의 사상에서 찾는다는 계획이다. 반면 갈무리 출판사는 ‘거목들’의 정전에 도전한다. 이어령, 김윤식, 김지하, 최원식 등 이른바 한국의 ‘포스트식민 남성 엘리트’ 지식인들에게 동아시아란 무엇이었는지 묻는 ‘취약함의 정신사, 숭고함의 서사들’(전성욱)을 낸다. 1950년생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와 1988년생 한국의 철학연구자 배세진이 주고받은 대화를 엮은 ‘한일 맑시안의 대화’는 2026년 하반기 유유에서 발간할 예정이다.
미국 독립선언 250돌을 맞아 어느 해보다 다양한 미국학 책들이 준비되고 있다. 2023년 전미도서상을 받은 ‘아메리카의 재발견’(책과함께)은 아메리카 선주민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500년사를 재구성한 역작. 저자 네드 블랙호크는 서부 쇼쇼니 인디언 테모악 부족 출신의 역사학자로 미국사 서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역사학자 고든 우드가 쓴 ‘미국 혁명의 급진주의’(글항아리)는 이 ‘혁명’이 미국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사건이었다고 규정했다. 1993년 퓰리처상을 받고 논쟁도 치열했던 유명한 책이다. 노엄 촘스키가 ‘밀레니얼 사회주의자’ 네이선 로빈슨과 함께 쓴 ‘미국 이상주의의 신화’(메디치)는 미국이 패권 유지를 위해 얼마나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타국의 정치에 개입해왔는지 폭로한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도 미국 독립기념일이 있는 7월 초에 맞춰 ‘가장 짧고 본질적인 미국 수업’(사이드웨이)을 펴낸다.

‘정치적 올바름’의 어려움
장애학 분야에서는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기획하고 번역한 ‘장애의 발명’(세라 로즈 지음, 동아시아)이 눈에 띈다. 184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미국 유급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이 서서히 배제된 과정을 다루며 장애인 보호 정책이 역차별로 이어진 역설을 짚는다. ‘매드스터디즈로의 초대’(메릭 대니얼 필링, 동녘)는 ‘광기학’을 한국에 본격 소개하는 입문서. 정신장애 당사자 운동의 경험을 살피며, 선주민 유색인 퀴어트랜스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의 소수자적 경험과 광기학이 깊은 관련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기록활동가이자 작가인 홍은전이 탈시설운동 20년을 기록한 책(오월의봄)을 준비하고 있으며, 정치인 장혜영이 ‘너에게 주고 싶은 차별금지법’(후마니타스)을 발간할 예정이다.
‘스티븐 호킹 지식회사’(동녘)는 장애연구, 민족지학, 철학, 과학 등을 연결해 새로운 초상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랜 시간 호킹의 연구실을 관찰한 인류학자 엘렌 미알레가 통속적인 ‘천재 신화’를 반박하며 수많은 주변 사람들, 곧 ‘행위자 간의 얽힘’ 가운데 호킹의 신체와 지성이 있었다고 밝힌다.
‘고속노화’ 한국 사회와 극우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12·3 내란 이후 ‘이대남’의 극우화 현상과 더불어 나타난 극우 여성의 움직임을 추적하며 ‘여성 극우의 탄생’(오월의봄)을 낸다. ‘남자 되기라는 낡은 꿈’(한겨레출판)은 작가 겸 문화인류학 연구자 안희제의 책. 결혼과 가부장제 속 ‘남성’이라는 이상이 청년 남성들에게 어떤 불안과 좌절을 낳았는지 추적한다. 평론가 리타(이연숙)와 문학평론가 이희우는 ‘남자, 사람 친구가 될 수 있을까?’(동녘)라는 질문을 통해 타인과의 공존을 함께 고민한다. 파시스트 남성 사회화 연구의 중요한 레퍼런스가 되어온 독일 사회학자 클라우스 테벨라이트의 ‘남성 판타지’(글항아리)도 기억해둘 만한 작품. 자전적 역사물로 남성이 어떤 양육 환경에서 파시스트로 자라는지 살피고 프로이트와 멜라니 클라인 등 정신분석학 이론을 경유하여 설명한다.
고전에서 구하는 지혜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2003)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던 주디스 버틀러의 주저(‘Bodies That Matter’)가 여러 연구자의 논의를 거쳐 드디어 ‘중요한 몸’(이승준 번역, 알렙)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번역된다. 가사노동 논쟁을 촉발한 미국 페미니스트 작가 셀마 제임스의 선집 ‘성, 인종, 그리고 계급’(갈무리)은 1952년부터 2011년까지 60년에 걸친 글을 모은 것이다. 인도 출신 인류학자 비나 다스의 대표작 ‘삶과 말’(동녘)도 출간된다. 이 책은 1947년 인도 분할 당시 벌어진 극단적 폭력과 인디라 간디 암살 직후 잇따른 시크교도 학살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등 사례 연구를 통해 폭력이 피해자의 일상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분석한 인류학의 고전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 시리즈는 ‘신화학4: 벌거벗은 인간’(한길사)으로 시원섭섭하게 막을 내린다. 한나 아렌트 탄생 120돌을 맞아 20년 만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전면 개정판이 역시 한길사에서 나오며, 아렌트의 글을 제자 제롬 콘이 엮은 ‘정치의 약속’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다.

시대의 어른과 집안의 어른
저자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오토에스노그라피’도 내년 출판 흐름을 이끌 전망이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은 광산노동자 가족이자 양양광업소의 마지막 노조위원장의 자녀로서 기록한 광산, 폐광, 이후의 이야기를 ‘쇳돌’(동녘)에 담아 낸다. 아룬다티 로이의 인생 첫 회고록인 ‘어머니 내게 오시네’(문학동네)는 생생한 모녀 서사와 스토리텔링을 보여줄 계획이다. 중국 저널리스트 출신인 장샤오만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도시 선전에서 청소 노동자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을 기록해 출간 직후 큰 반향을 일으킨 에세이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도 준비 중이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일본으로 이주한 인류학자 이리나 그레고레가 쓴 가족 이야기 ‘다정한 지옥’(다다서재)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를 경험한 루마니아 가족 3대의 현대사를 보여준다.
과학을 뒤집어야 과학이 산다
털보 생물학자 이정모의 ‘멸종열전’(사월의책)은 멸종 생물들의 생활사와 멸종 과정을 손에 잡힐 듯이 보여준다. 역시 이정모가 선보일 ‘극한 진화의 세계’(다산북스)는 반대로 멸종을 피해 영리하게, 열정적으로 살아남은 동식물을 통해 진화의 비밀을 밝힌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열두 발자국’ 이후 8년 만에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설명하는 ‘미래 학교’(어크로스)를 펴낸다. 환경공학 전문가 곽재식 교수는 ‘쓰레기 과학’(문학과지성사)으로 인간이 하찮게 여기는 쓰레기의 모든 것을 살핀다. 한국 인공지능 대중화의 대표 강연자 박태웅은 ‘박태웅의 AI 강의 2026’(한빛비즈)으로 돌아온다. 인공지능은 ‘몸을 가진 지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슈퍼 인텔리전스’의 저자 닉 보스트롬은 신작 ‘딥 유토피아’(까치글방)를 통해 인공지능이 올바르게 작동한다면 어떻게 될지 가정하고 인공지능과 인류의 장밋빛 미래를 상상해본다.
생태적 지혜로 위기 넘기기
만화와 그림책 속으로 풍덩!
정리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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