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원 “수사 필요성 이유로 무작정 ‘출국 금지’ 연장하면 안 돼”

이민준 기자 2026. 1. 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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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회사를 운영 중인 30대 중반의 사업가 최모씨는 지난 2024년 10월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최씨가 연루됐다고 보고 출국 금지 조치를 해놨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를 시작한 것은 그해 6월. 대검찰청이 최씨가 가상화폐 플랫폼을 만든다고 속여 투자자들에게 170억원을 가로챘다는 수사 첩보를 서울남부지검에 보냈고, 남부지검은 3개월 뒤 최씨를 출국 금지 조치했다. 이후 검찰은 최씨를 참고인으로 두 차례 조사한 뒤, 1년 넘게 출국 금지 상태를 유지했다. 현행법에서 수사 중일 때 출국 금지 기간은 최장 1개월인데, 수사 필요에 따라 매달 연장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미국 영주권자인 최씨는 1년 이상 해외에 머물 경우 영주권이 박탈될 수 있는 데다 미국에서 회사 2곳을 운영하고 있어 피해가 막대한 상황이었다. 이에 최씨는 지난해 2월 법무장관을 상대로 출국 금지 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법원은 “헌법상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출국 금지 조치에 제동을 건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1-2부(재판장 차문호)는 지난해 10월 말 최씨에 대한 법무부의 출국 금지 연장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조사 종료 시기를 예정하거나 조사 일정을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조사 종료 시까지 장기간 출국 금지를 유지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되는 자유를 현저하게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최씨는 1년 넘는 출국 금지로 헌법상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사업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출국의 자유는 헌법이 기본권으로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에 해당해 그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했다. 앞서 1심이 출입국관리법을 근거로 “장기간 수사가 필요하다면 출국 금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 판결은 법무부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최근 확정됐다.

이처럼 무작정 ‘발 묶기’식의 출국 금지는 지난해 3대 특검 수사 때도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반년 동안 출국이 금지됐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김건희 특검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작년 7월 수사 착수 직후 원 전 장관을 출국 금지한 뒤 5차례나 출국 금지를 연장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수사를 종료할 때까지 원 전 장관을 소환 한 번 하지 않고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

해병 특검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주(駐)호주 대사 임명 도피’ 의혹에 관여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3개월간 그를 출국 금지했으나, 조사 한 번 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경영 실패로 배임 혐의로 수사받던 기업 대표가 검찰의 출국 금지 때문에 해외 기업의 인수 제안 미팅에 참석하지 못했다”며 “검찰에 출장 일정을 설명했는데도 출국 금지를 풀어주지 않아 계약이 물거품이 된 일도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수사기관의 출국 금지 남발을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출국 금지는 검찰·경찰이 요청하면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며 “대상자가 무혐의를 받더라도 수사기관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수사의 편의를 위해 출국부터 금지하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함석천 변호사는 “3개월 이상 출국 금지를 연장할 때 법원의 심문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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