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강원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강릉 96

등장인물
우국호 (68) 전직 대한민국 육군 3군단 정보처 전투 정보 분석 장교
정만철 (68) 전직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 전투 공작 요원
박대위 (64) 전직 대한민국 육군 3군단 특공연대 대위
관리소장(61) 아파트 관리소장

1장
어둠 속. 들릴 듯 말 듯 낮은 소리로 들리는 군 헬기 프로펠러 소리. 무대 벽면에 1996년 강릉 잠수함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보도 사진이 슬라이드로 영사된다. 바다에 좌초된 북한 잠수함, 청학산에서 집단 자살한 북한 승조원 11명의 시신, 끝없이 투입되는 군경의 행렬, 속출하는 군경 민간인 부상자와 사망자,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헬기..
무대에 조명이 켜지면 우국호(67세)가 흙먼지 뒤집어쓴 전투복을 입고 우두커니 서 있다.
우국호 1996년 9월 18일 새벽 1시,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시 남쪽 대포동 앞바다에 접근합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잠수함이 바다 밑에 널려있는 암초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게 된 겁니다. 당황한 이십육 명의 북한 침투조 요원들은 잠수함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건너 괘방산으로 숨어듭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해안 도로를 달리던 택시 운전사가 좌초된 잠수함을 발견하죠. 전군에는 진돗개 하나가 발령됩니다. 최고 수준의 방어 태세죠. 군경의 추적은 집요했습니다. 도주하는 북한군의 저항도 치열했죠.
암전. 멀리서 들리던 군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더니 급기야 극장이 허물어질 듯 크게 들린다. 마치 관객 머리 위에 헬기가 떠 있는 듯 객석을 향해 집중적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탕! 타당! 사방에서는 난무하는 총소리들. 펑! 펑! 터지는 수류탄 소리, 비명, 급박한 무전 교신음. 교전 현장의 소음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조명 다시 켜진다. 말을 이어가는 우국호.
우국호 49일간 벌어진 전투로 남북한 합쳐 총 사십이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한국군은 군경 포함 십이 명이 전사했고 민간인 사 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북한 침투조는 일 명이 생포됐고, 십삼 명은 교전 중 사살됐으며, 퇴로가 막힌 십일 명은 청학산 중턱에서 전투원이 비전투원을 사살하는 방식으로 집단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생포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휘관이 저지른 행동으로 추정됩니다. 그해 강릉에서 발생한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그러더군요.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인명 피해를 기록한 비극적인 전쟁이었다고. (잠시 침묵) 난 당시 3군단 정보 분석 장교 신분으로 현장에 있었습니다. 북한군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대응책을 논의했죠. 사십구일 간의 작전.. 단풍철에 시작된 그 작전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아직도 난 강릉 산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이십오 년 전에 종료된 작전인데 모두 떠난 그곳에서 나만 혼자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전투복을 벗는 우국호. 사방에 날리는 흙먼지). 이놈의 지긋지긋한 전투복. 벗고 또 벗고 찢어서 불태워 버려도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또 이걸 입고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마누라가 이혼 도장을 찍으면서 그러더군요. 당신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강릉 산속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전투복을 벗자 일상복 차림이 된 우국호. 평범한 동네 노인의 모습이다.
머리를 빗는 우국호. 단정하게 보이려고 애써 노력한다.
우국호 마누라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겁니다. 나도 예전처럼 평범하게 한번 살아보렵니다.
2장
아파트 관리사무소.
홀로 소파에 각 잡고 앉아있던 우국호, 관리소장이 들어서자 벌떡 일어선다.
관리소장 아이고, 공사 입찰 심사 때문에 좀 늦었습니다. 이력서부터 볼까요?
우국호 (꺼내 내밀며) 컴퓨터로 쓰려다가 진심을 담기 위해 자필로 썼습니다.
관리소장 아무거면 어때요? 내용이 중요하지.
자리에 앉아 이력서 펼치는 관리소장. 대충 훑어보며 묻는다.
관리소장 뭐 면접이라고 해서 별거 없구요, 몇 가지 묻는 거에 대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우국호 (쩌렁쩌렁) 네! 알겠습니다!
관리소장 빠이팅 넘치시네? (노안 때문에 돋보기 찾으며)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
우국호 무술년 58년 개띠입니다!
관리소장 예순 여덟?
우국호 생일 전이라 만으로 육십육 세입니다.
관리소장 아파트 경비 일을 어떻게 생각해요?
우국호 아주 좋게 생각합니다.
관리소장 헤헤헤, 질문이 구리니까 대답도 구리네. 미안해요 미안해.
우국호 아닙니다! 남들은 아파트 경비가 은퇴한 남자들이 가는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남은 힘과 열정을 다해 존경하는 관리소장님 모시고 열심히 성실히 목숨 바쳐 최선을 다해서 (콜록콜록)
사래가 들린 듯 기침을 해대는 우국호. 얼른 박카스 까서 건네는 소장.
우국호 (손사래)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
관리소장 아파트 경비 일이 목숨까지 걸 일은 아니지만, 그 나이에 열정과 패기는 끝내주네요.
우국호 (신나서 꾸벅 인사) 감사합니다. 뽑아주시면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관리소장 근데 이걸 어쩌나. 엊저녁에 한 명이 면접을 보고 갔는데 형씨보다 좀 어리네.
우국호 육십 대라고 해서 다 같은 육십 대가 아닙니다!
관리소장 그 사람은 육이년 호랑이띠. 생일 지나서 예순 셋. 허리도 아직 꼿꼿하던데.
황급히 허리를 곧추세우는 우국호.
관리소장 여긴 평수도 크고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터 잡은 동네라 입주민들 요구가 아주 까다로워요. 본인들 품위 지킨답시고 겉으로 티도 안 내고 슬쩍 민원을 넣는데, 사람 아주 질리게 만든다니까. 특히 나이 든 경비들 무덤이에요 여긴. 일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비실댄다 싶으면 바로 컴플레인 들어와요.
우국호 (갑자기 생수통을 번쩍 들고) 체력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단지 한 바퀴 돌고 올까요?
관리소장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괜히 그러다 허리 다치면 서로 곤란해.
우국호 걱정 마십시오. 생수통 양 팔에 끼고 소장님 업고 뛰어도 아직은 끄떡없습니다.
관리소장 혹시 젊어서 뭐 했어요?
우국호 군에 있었습니다.
관리소장 맞죠? 각이 딱 잡힌 게 군 출신 같드만.
우국호 육군 3사 나와서 소령 예편한 지 20년 넘었습니다.
관리소장 우와~ 완전 엘리트셨네. 뭐 담당했어요?
우국호 정보처 전투 정보 분석도 하구요, 직접 작전에 투입도 됐습니다.
관리소장 (급 관심) 그럼 안 받은 훈련이 없겠네요?
우국호 그럼요. 정보부대 훈련 교관 할 때는 북한에 침투할 요원들도 교육시켰는걸요. 강하 조장 훈련, 고공 훈련, 해군정보부대 수중폭파조 훈련, 그런 거 다 제가 담당했습니다.
관리소장 와~ 내가 람보를 만났구먼. (악수 건네며) 영광입니다. 진작 군 장교 출신이라고 말을 하시지. 이리와 앉아요. 나도 오늘 애국 한번 합시다.
우국호 (영문 몰라) 네? 애국이요?
관리소장 채용계약서 쓰자고요.
입이 귀에 걸리는 우국호. 절뚝이는 다리를 끌고 소장 쪽으로 걸어간다.
관리소장 (보고는) 어? 잠깐 스톱. 다리를 저시네?
우국호 생활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관리소장 생활이고 뭐고.. (난감) 가만 있어봐, 이러면 상황이 달라지지.
우국호 잘할 수 있습니다!
관리소장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생각 좀 하게. 아, 이거 되게 난감하네.
근데 다리는 언제 다쳤어요?
우국호 96년도 강릉 잠수함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때 공비가 쏜 총에 맞았습니다.
관리소장 총상?
우국호 다리뼈가 산산 조각 나도 탄창이 바닥날 때까지 응사하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관리소장 (관심) 몇 발 맞았는데요?
우국호 세 발 맞았습니다. (손가락으로 짚으며) 요기, 요기, 요기.
관리소장 (난감) 저, 소령님. 괜히 심심하니까 소일거리나 할 겸 경비 자리 구하시나 본데, 국가 영웅이 여기서 허드렛일하면 되겠어요? 그냥 연금 아껴 쓰면서 사세요. 괜히 형편 안 좋은 노인들 일자리 뺏지 마시고.
우국호 저도 형편이 썩 좋지 않습니다.
관리소장 왜요? 군인 연금 짭짤할텐데?
우국호 (난감) 말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관리소장 일단 사정 딱하다니까 그건 오케이. 근데, 괜히 잘못 고용했다가 입주민들 민원 들어오면 피차 되게 불편해져요. 왜 굳이 멀쩡한 사람 두고 다리 불편한 사람 뽑았냐고 물어보면 내가 디펜스를 못해. 사실 이번 경비 채용건도 전임자가 화분 안고 자빠져서 엉덩이뼈가 아작 났거든. 젊은 사람이라면 툭툭 털고 일어날 텐데, 나이가 일흔에 가까워지다 보니까 자빠진 자세 그대로 앰뷸런스에 실려 가더라고. 게다가 이번 경우는 산재 보험 처리도 안 돼요. 입주민 화분 옮겨주는 게 공식적인 경비 업무가 아니거든. 괜히 오지랖 떨다가 된통 당한 거지 뭐. (공손하게 이력서 돌려주며) 미안하게 됐습니다 소령님. 존경합니다. (간다)
우국호 (붙잡고 애원) 소장님, 한 번만 더 고민해주십시오. 취직만 시켜주시면 섭섭하지 않게 사례도 할 수 있습니다.
관리소장 어허~ 이 사람 큰일 날 소리하네.
우국호 벌써 열 군데나 퇴짜 맞았고 이젠 더 갈 데도 없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소장님.
이때 안으로 들어서는 입주민 정만철(68세).
정만철 소장님 무슨 일이에요?
관리소장 아이고 동대표님, 이 분 좀 말려주세요. 지금 신입 경비 면접 중인데요, 패기가 있어서 뽑아볼까 했는데 다리가 좀 불편하시네.
정만철 아~ 그래요. 어쩌다가 다리는..
관리소장 젊을 때 군인이었답니다.
정만철 (반색하며) 군인이요?
우국호 조국과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싸우다가 상이용사가 됐습니다! 제발 받아주십시오. 충성을 다해 아파트를 사수하겠습니다!
관리소장 이 양반 아파트 단지가 군부대인지 아나?
정만철 소장님.
관리소장 네.
정만철 나라 지키다가 다치신 분 아니에요? 바꿔 말하면 우리 생명 구하다가 상이용사 된 분인데 어떻게 그걸 외면해요? (갖고 온 서류 내밀며)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입주민 화분 들어주다 뼈 부러져 직장까지 잃은 사람을 이렇게 냉대하면 되겠어요? 복직은 못 시켜도 위로금 좀 모금하자는데 (서류 보여주며) 보세요, 총 150가구 중에 열 가구만 참여했어요.
관리소장 (서류 보다가) 와~ 화분 주인 할머니도 빠졌네요?
정만철 자기 책임 아니라고 위로금 못 내겠대요.
관리소장 (발끈)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딴 사람은 몰라도 1201호가 그러시면 안 되지.
정만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누가 입주민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겠어요? 눈에 보이는 일만 대충 하고 말지.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 아파트는 반드시 이 분을 고용해야 됩니다.
관리소장 에이~ 그래도 그건 좀...
정만철 상이용사가 경비 자리 하나 못 구해서 쩔쩔 맨다는 게 말이 됩니까? 뉴스에서 보니까 미국은 6.25때 전사한 병사들 유해 찾아가려고 수억 달러를 쓴답디다.
관리소장 그건 미국 얘기죠.
정만철 우리가 걔네들 보다 못난 게 뭐 있습니까? 내가 동대표로서 책임질 테니까 그냥 채용해요.
관리소장 동대표님 뜻이 정 그렇다면야.. (확인) 그래도 주민들 컴플레인 들어오면 저 카바해 주셔야 돼요.
정만철 제가 책임진다니까요.
관리소장 우소령님 운 좋네. 뭐해요? 동대표님한테 인사 안 하고.
우국호 (꾸벅 인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목숨 바쳐 입주민들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관리소장 이 양반은 걸핏하면 목숨 건대.
정만철 (빤히 보다가) 저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우국호 글쎄요. 전 처음 뵙는 분이신데..
갸우뚱 서로를 바라보는 정만철과 우국호.
3장
이른 아침. 경비복 차림의 우국호가 화단 앞을 빗자루질 한다.
근처에 서서 아파트를 올려다보는 관리소장.
관리소장 (갸우뚱) 동대표 이 양반 무슨 일이 있나?
우국호 정선생이요?
관리소장 입주민 회의에도 안 나오고 며칠째 코빼기도 안 보이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우국호 제가 한번 올라가 볼까요?
관리소장 우편물 갖다주는 척하면서 슬쩍 보고 와요. 혹시 송장 치울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시고요.
우국호 네, 알겠습니다.
관리소장 (가며 궁시렁) 대한민국 이거, 미국 따라가려면 독거노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돼.
짧은 암전 후 켜지는 조명.
우국호가 정만철의 현관문 앞에 서 있다. 한 뼘 정도 열려 있는 현관문.
안쪽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 없자 불러본다.
우국호 동대표님! 동대표님!
문 두드려 봐도 반응 없자 조심스레 들어가 보는 우국호.
깜짝 놀라 그대로 얼어붙는다.
문틀에 목을 맨 정장 차림의 정만철이 허공에서 바둥대고 있는 게 아닌가.
컥! 컥!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고통스러워하는 정만철의 뒷모습.
구하려고 달려가던 우국호가 갑자기 우뚝 걸음을 멈춘다.
정만철은 허공에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구해줄 생각이 없는 듯 우두커니 보고만 있는 우국호.
냉담한 얼굴로 발길을 돌리더니 얼른 현관문을 빠져 나온다.
그러나 몇 걸음 못가 발길을 멈추는 우국호.
복잡한 생각이 충돌하는 듯 혼란스러운 표정.
컥! 컥! 정만철의 숨 넘어가는 소리 여전히 들리며 암전.
4장
정만철의 아파트 내부.
닫힌 욕실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국호.
잠시후 물 소리가 멈추고 정만철이 창백한 얼굴로 욕실에서 나온다.
정만철 아직 안갔어요?
우국호 나오시는거 보고 가려구요.
정만철 미안합니다. 험한 꼴을 보여드려서.
우국호 (위아래 훑어보며) 괜찮은거 맞죠?
정만철 거 살살하시지. CPR 받다가 골로 가겠네.
(몸이 뻐근) 갈빗대 금이 갔나?
우국호 (어이없다는 표정) 저 갑니다.
‘아이고 나죽네’ 어설픈 연기로 휘청거리는 정만철.
잽싸게 달려가 부축하는 우국호.
우국호 동대표님 괜찮아요?
정만철 (대뜸)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우국호 제발 정신 좀 차라세요.
정만철 (갸우뚱 빤히 보며) 이 양반을 어디서 봤지?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기억이 안나. 마트에서 봤나? 공원? 목욕탕? 기차 안?
우국호 갑니다.
정만철 (집요하게 따라가며) 술집? 등산로?
우국호 약 드세요. 차라리 교회를 나가든지.
정만철 바닷가? 강릉? 초가을.. 괘방산.
탕! 탕! 탕!
환청처럼 들리는 세 방의 총소리.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정만철을 바라보는 우국호.
한참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는다.
우국호 대한민국에 아파트가 한두 개야? 하필 경비를 서도 내 다리 병신 만든 공비 집을 지켜요.
정만철 (무릎을 치며) 맞죠? 96년 강릉!
우국호 피차 아는 척 해봐야 체면만 구길테고, 모른 척 넘어 갑시다.
정만철 이야~ 하필 저승 문 턱에서 적군을 만날게 뭐야?
우국호 살려줬는데 고맙단 인사도 없네?
정만철 살려 달라고 한 적 없어. 그쪽이 멋대로 살려놓고 왜 이래?
우국호 너 쇼한거지?
정만철 뭔 소리야?
우국호 이상하잖아. 죽겠다는 인간이 현관문은 왜 열어놔?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그거 나 좀 살려줘, 그런 뜻 아니야?
정만철 문 잠기면 시체 찾기도 힘들고, 썩는 냄새 어떻게 감당하려고?
우국호 오호! 역시 동대표답게 이웃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시네.
유경험자로서 조언을 하자면, 다음부터는 눈 딱 감고 뛰어내려. 비닐 백에 담아서 바로 실어 갈 수 있게.
정만철 사람들 겁먹어. 재수 없으면 물청소 네가 해야 될걸?
우국후 역시 경비에 대한 배려도 차고 넘치셔.
정만철 동대표니까.
우국호 (손가락으로 만든 총을 관자노리에 대고) 넌 네 동료들을 따라가야 했어. 얼마나 아름다워. 대대손손 공화국 영웅으로 칭송 받고.
정만철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어.
우국호 네 잘못된 선택이 우릴 이렇게 만들었어.
정만철 네 다리도 멀쩡했겠지.
우국호 (끄덕) 네 가족들도 자랑스러워했을 거야.
정만철 수용소 대신 평양시내 고층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겠지.
(우국호를 보며) 처음 보는 순간 난 줄 알았나?
우국호 때린 놈은 잊어도 맞은 놈은 못 잊지.
정만철 왜 날 살려줬어?
우국호 왜 죽으려고 했어?
정만철 먼저 대답해. 왜 날 살렸어?
우국호 내 임무니까. 그때는 무장 공비 사살, 지금은 입주민의 안전.
정만철 이해가 안 돼. 공비 잡다가 절름발이 된 영웅이 왜 아파트 경비 일을 해?
우국호 꼭대기 층에서 굽어본다고 대한민국이 속속들이 다 보일 거 같아? 75평 온실에서는 결코 알 수 없지.
정만철 맞은 놈이 때린 놈의 심정을 알 수 없는 거처럼?
우국호 그래서 묻잖아. 고래등 같은 아파트 내버려두고 왜 죽으려고 해?
정만철 허무.
우국호 (피식) 배부른 소리.
이때 울리는 휴대폰. 냉큼 받는 우국호.
우국호 예, 소장님 우국호입니다. 예, 예, 동대표님 잘 계십니다. 그럼요, 공과금이랑 등기 잘 전달했습니다. 예, 예, 점심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전화 끊고 신발 신는 우국호.
우국호 그래도 각자 입장이 있고 포지션이 있으니까 단지 내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고.
정만철 가려고? 식전이면 앉아. 엊저녁에 돼지 목살 넣고 김치찌개 끓여놨어.
우국호 (어이가 없다) 죽겠단 인간이 목살? 김치찌개?
정만철 인생이 원래 모순투성이 아닙네까? 같이 한술 뜹시다, 동무.
우국호 아무리 속이 없어도 내 다리 병신 만든 공비랑 밥은 안 먹어. (가다가 홱 돌아보며) 그리고 내가 왜 당신 동무야? 엇다 대고.. (간다)
정만철 동무! 그러지 말고 오시라요.
우국호 (혼잣말) 미친놈.
정만철 냉장고에 참이슬도 있습네다!
가던 걸음 우뚝 멈춰 서는 우국호.
우국호 어휴~ 이 종갓나 새끼.
암전.
5장
식탁에 마주한 두 사람.
시장한 듯 게걸스럽게 밥을 먹는다.
먹음직스러운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정만철.
우국호는 정만철이 따라주는 술을 손등으로 탁 쳐내고 스스로 따라 마신다.
정만철 당신 국군수도병원에 누워 있을 때 나 거기 끌려간 거 기억나?
우국호 장관이랑 국회의원들이 당신 앞세우고 기자들이랑 몰려왔잖아. 사과니 화해니 뭐 그런 낯 뜨거운 그림 만들려고.
정만철 정해진 대본대로 내가 먼저 악수를 건넸는데, 당신 나 외면했잖아.
우국호 그 행사에 전사한 김 대령 아들이 있었어. 군이 유가족 대표로 데려온 모양인데, 다섯 살 먹은 녀석이 네가 내민 손을 잡아주더군. 그게 지 아빠 죽인 손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한숨) 세상엔 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어. 군이 그래선 안 되는거야.
정만철 난 정말 몰랐어.
우국호 노루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가마솥 안으로 들어가지. 난 그렇게 버려졌어.
정만철 (본다)
우국호 당신이 악수하자고 손을 건넨 다음날 국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어. 멀쩡한 뼈를 잘라서 조각난 다리뼈에 이식하는 수술인데 결과가 안 좋았어. 초조해지더군. 장애 판정받고 중령 진급 실패하면 군을 떠나야 되거든. 그렇게 성과도 없는 치료 받느라 7개월을 허비했어. 그래서 사령부에 부탁했지. 민간병원에서 재수술 받게 해달라고. 처음엔 군인이 국군병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더군. 근데 수술한 꼬라서니를보더니 바로 허락해 주대. 그 길로 민간병원에 들어가서 병원장을 만났지. 내 다리를 보더니 괴사가 심해서 잘라야 할 거 같대. 그래서 의사 붙잡고 애원했어. 다리를 절어도 좋으니 제발 혼자 걸을 수만 있게 해달라고. 다행히 안 잘라도 될 만큼 수술은 잘 됐어. 절름발이가 됐지만 일곱 달 만에 내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됐거든. 그래도 아쉽더라고. 좀 더 일찍 제대로 된 수술을 받았으면 예전처럼 걸을 수 있었을 텐데..
착잡한 정만철.
우국호 나는 말이야, 군인이 전투에 참가해서 부상을 입으면 완치될 때까지 국가가 다 책임지는지 알았어.
정만철 당연한거 아니야?
우국호 국가가 끝까지 나를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군인은 전투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울 수 있어. 근데 그게 아니었어.
착찹한 얼굴로 술 병 내미는 정만철.
잠시 망설이다가 그 술 받는 우국호.
우국호 군법이라는 게 아주 지랄이야. 작전 중에 부상을 입어도 요양기간을 20일 밖에 보장 안 해. 추가된 기간 동안 쓴 비용은 다 개인이 부담이야.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얼마 안되는 재산에 아들 대학 보내려고 모아둔 돈까지 탈탈 털어서 치료비 냈어. 그때 나한테 조국은 없었어.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어. 목숨 걸고 지켜온 내 조국.. 그냥 망해버리라고.
암전과 동시에 무대 좌우 끝에 켜지는 조명.
무대 상수에는 양복 차림의 국방부 관계자가, 하수에는 국군병원 담당 군의관이 서 있다. 통화하는 두 사람.
국방부 (고압적) 여기 국방분데요, 잠수함 사건 부상자 삼명 오늘 공구 시에 수술받았죠?
군의관 예, 방금 수술방 나왔습니다.
국방부 상부 명령이니까 잘 들으세요. 내일 말입니다, 수도통합병원에서 전사자들 합동 영결식이 있어요. 거기에 환자들 참석해야 하니까 오늘 수술 받은 삼명 이송 조치 부탁할게요.
군의관 원주에서 수도병원으로요?
국방부 내일 영결식에 국방부 장관님이 참석하시거든요.
군의관 그런데요?
국방부 장관님뿐만 아니라 참모 총장님도 오시고 국방위 의원들도 다수 참석해요.
군의관 그런데요.
국방부 마지막 일정에 부상자 위로 방문 행사가 있어요. 기자들도 오니까 간단
한 인터뷰도 할 겁니다.
군의관 의식도 안돌아 왔는데 뭔 인터뷰를 해요?
국방부 내일이면 안 돌아올까요?
군의관 그러다 환자들 큰일나요.
국방부 그럼 행사는 어떻해요?
군의관 차라리 영결식 끝나면 장관님 모시고 원주로 오세요.
국방부 위문 방문 10분 하자고 영감님들 모시고 원주까지 가라고요?
군의관 그러면 10분짜리 행사 때문에 의식도 없는 중환자들을 이송해요?
국방부 행사 끝나면 돌려줄게요.
군의관 환자가 물건입니까? 고속도로에서 쇼크라도 일으키면 어쩌시려구요?
국방부 (짜증) 그럼 대안 있어요?
군의관 대안이 어디 있어요? 막말로 사고 나면 그쪽이 책임질래요?
국방부 그쪽이라뇨! 그쪽이나 이쪽이나 다 같은 쪽 아닙니까? 그리고 내가 부상병들 치료 관찰 보고서 주욱 훑어보니까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습디다.
군의관 군의관이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예요.
국방부 에이, 몰라 몰라. 재수 없게 죽어도 국방부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명령대로 내일 수도병원 이송 조치 시행하세요. 이상!
상수 하수 동시에 암전.
이어서 식탁에 켜지는 조명. 우국호가 소주를 마시며 말을 이어간다.
우국호 결국 난 고속도로를 3시간 달려 영결식장에 도착했어. 간호사 말로는 국회의원들이랑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는데 전혀 기억이 없어.
정만철 (어이없다) 부상자들을 행사장 소품으로 쓴 거네.
우국호 제대로 보상이라도 받았으면 서운하지나 않지. 중간에서 누가 장난을 쳤는지 피 흘린 우리들은 훈장도 못 받고 밀려났는데 작전에 관여하지도 않은 사람들은 훈장에 진급에 꽃길만 걷고 있더군. 목숨 걸고 싸운 우리는 들러리였고, 만신창이 된 몸은 길바닥에 버려졌어.
정만철 그래서 군복을 벗었구나?
우국호 아니. 서운해도 이를 악물고 버텼어. 작전 이듬해가 진급 심사였거든. 주변에서는 공비랑 싸우다 부상을 입었으니까 진급은 확실하다고들 했어. 근데 탈락했어. 장애 때문에 군 생활이 힘들거라는 게 이유야. 백번 이해해. 난 군인이니까. 근데 화가 나는 건 작전 현장에 꼬빼기도 안 내민 인간들이 출신 좋고 인맥 좋다는 이유로 진급에 성공했다는 거지.
정만철 남조선 북조선 다를 게 없구만.
우국호 그래서 벗었어. 목숨 바쳐 싸운 군인들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데 어떻게 제정신으로 군복을 입어. 그런데 군복을 벗었더니 관사 퇴거 명령이 떨어지더군. 모아둔 돈 치료비로 다 쓰고 방 한 칸 구할 돈도 없이 가족들이랑 길바닥에 나앉게 됐어. 정말 막막하더라. 근데 내가 누구야? 그 힘든 훈련 다 이겨낸 특수훈련 교관 아니야. 사회 나가서 뭔들 못하겠어. (웃는다) 근데 밖은 더 지옥이더라. 너무 순진했어. 보훈처에 가서 일자리 좀 찾아달라고 했더니 이력서를 쭈욱 훑어보고는 직원이 이래. “이 경력 가지곤 경비직 밖에 못 구하겠는데요.” 그땐 젊었을 때라 죽으면 죽었지 경비 일은 못하겠더라. 그래서 일가친척들 돈 다 끌어모아서 치킨집 차렸는데 잘될 리가 있어? 세상 물정을 모르는데. 빚만 지고 손 털고 나오는데 하늘이 노~래. 그래도 처자식 굶길 수는 없잖아.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찾아보다가 보험 외판원을 시작했어. 근데 그거 정말 할 짓이 못돼. 주위 사람들한테 자꾸 부담만 주고 민폐를 끼치게 되는 거야.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만 해도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보험 들어 달라고 할까 봐 슬슬 피해. 그래서 관뒀어. 그때 주위를 둘러보니까 아내 자식 다 떠나고 나만 혼자 남아있더라. 그때 신문에서 네 기사를 봤어. 생포 돼서 전향한 거까지는 알았는데 해군 군무원이 된 건 몰랐어. 물론 정만철이 잘 살아 있다고 북에 홍보하려는 목적이 컸겠지. 그래도 이건 아니야. 자넨 아파트도 받고 참모총장이 주례도 서고, 대학에서 석사 학위도 받았어. 무장 공비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치는데, 나라 지키던 나는 길거리에 내팽개쳐졌어. 할 수만 있다면 몸에 폭탄 두르고 나 대신 훈장 받은 새끼들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었어.
이때 울리는 우국호의 휴대폰. 부하 박 대위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박대위 (통화) 소령님, 저 박 대위입니다. 댁에 모시러 갔는데 안 계셔서요.
우국호 (통화) 그래? 내가 사정이 좀 생겼어.
박대위 지금 밑에 있습니다. 관리 사무소에서 알려 줬어요. 얼른 내려오세요.
우국호 박 대위, 나 거기 안가면 안될까?
박대위 아니 왜 이러실까? 전국에서 다 모인다는데.
우국호 그래도 영 그런 자리는 불편해서..
박대위 우 소령님 모시고 간다니까 3사 전우회 애들 총출동 한다고 난리도 아니에요. 우리 쪽 유튜브 하는 애들도 태극기 주렁주렁 달고 카메라 들이밀고 몰려 온다니까요. 참, 행사 중간에 무대 위로 모신다는데 간단하게 연설 한마디 해주실 수 있죠?
우국호 연설? (짜증) 내가 무슨 연설을 해? 거기서?
박대위 그냥 강릉에서 빨갱이들 쏴 죽인 얘기나 좀 실감나게 해주세요. (신났다) 애국이 뭔지 제대로 한번 보여주시라구요.
우국호 박 대위. 아니 동삼아,
박대위 (말 가로채며) 됐구요 형님.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 지켜야 될 조국 아닙니까?
우국호 넌 속도 없냐? 거기서 태극기 흔들면서 대한민국 만세가 외쳐져?
박대위 저는요, 나 하나 희생해서 자유 대한민국 지킬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보상금도 그래요. 나처럼 장애 입은 병사들 일일이 그거 다 챙겨주면 나라 곳간이 뭐가 됩니까? 무기 사서 북괴랑 싸울 돈인데 우리한테 흥청망청 쓰면 나라 꼴 뭐가 돼요? 전 말이죠, 비록 팔 하나 못쓰게 됐어도 절대 내 조국 원망 안 해요. 진짜 미운 놈들은 다 북에 똬리 틀고 앉았는데 왜 엉뚱하게 자유 대한민국, 우리 조국을 미워합니까?
우국호 아이고 애국자 나셨네. 아무튼 난 못가니까 박 대위나 광화문 가서 실컷 풀고 와. 그럼 나 끊네.
이때 벌컥 현관문 열고 들어서는 박 대위. 백팩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하나씩 꽂혀 있고, 한 손에는 휴대폰 장착된 셀카봉을 들고 있다.
박대위 형님 그만 좀 푸세요.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애국은 애국이고, 나라 꼴 이 모양된거 다 북한 괴뢰도당 빨갱이들 때문 아닙니까? 죽을 힘을 다해서 우리가 바로 잡아야죠!
우국호 (놀라서 몰고 나가며) 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박대위 그럼 같이 가요. 광화문.
우국호 (정만철에게) 미안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박대위 부하 힘 한번 실어주세요. 새벽에 KTX 타고 온 정성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같이 갑시다 소령님.
우국호 (밀치며) 가. 얼른 안 가?
박대위 어허, 참 삐지겠네. 아침도 거르고 달려온 부관을 이렇게 내치면 서운하죠.
끼어드는 정만철.
정만철 (박 대위에게) 아직 식전이세요?
박대위 새벽에 믹스커피로 대충 때웠어요. 지금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정만철 돼지 김치찌개 잘 끓었는데 한술 뜨고 갈래요?
박대위 (넉살 좋게 식탁 앞에 앉으며) 아이고 신세 좀 지겠습니다.
우국호 쏴죽일 놈, 나이 먹었다고 이젠 말도 안 들어.
박대위 오메~ 이거 목살 아녜요?
정만철 (공기밥 주며) 제주도 흑돼지 끊어 왔어요.
박대위 (얼굴 보고는) 대낮부터 반주하셨네? 딱 우리 스타일. 우하하하!
정만철 먼저 한잔 받아요.
박대위 오메 좋은 거. 오늘 경찰들이랑 맞짱 뜰 맛 나겄네. 근데 소령님이랑 어떤 관계세요? 대낮부터 대작하시는 거 보면 보통 관계는 아닌 거 같은데. 어라? 근데 되게 낯이 익네. 혹시 누구세요?
정만철 우리 구면일겁니다. 96년 강릉 작전에 참여하셨죠?
박대위 (반갑다) 아~ 그래요?
정만철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내래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 전투 공작요원 정만철올시다.
마시던 소주 그대로 뿜는 박 대위.
잽싸게 한 바퀴 굴러 쇼파 뒤에 몸을 숨긴다.
박대위 소..소령님, 이..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저 인간이 여기 왜 있어요? 아니, 우리가 왜 적진 한가운데 와 있습니까?
우국호 기왕 이렇게 된 거 정식으로 인사나 해.
박대위 (길길이 날뛰며) 뭔 인사를 해요? 공비 새끼한테!
정만철 사과하겠습네다. 팔에 관통상 입힌 거 용서해 주시라요.
박대위 (흥분) 닥쳐! 이 빨갱이 괴뢰도당아!
우국호 어허~ 소리 낮춰. 윗층에서 내려오겠다.
박대위 광화문까지 갈 거 뭐 있어? (무기 될 만한 거 찾으려고 두리번두리번) 가만있어. 정의봉 그런거 없나? 한 방에 가는 거?
우국호 뭘 대낮부터 사람을 때려죽인다 그래?
박대위 공비 때려잡는데 낮밤이 따로 있습니까? 저 말리지 마십시오.
우국호 앉아.
박대위 (여전히 흥분) 저.. 저걸 어떻게 때려 죽이지?
우국호 명령이야, 앉아!
박대위 평생을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었지만 지금은 안 되겠습니다.
우국호 (끌어 앉혀 술 따라주며) 어허~ 고집하고는.. 전향한 사람이야. 이젠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박대위 이중간첩일 수도 있습니다.
우국호 정만철. 우리 박 대위한테 술 한잔 받아.
박대위 (눈을 부릅뜨며) 빨갱이한테 술을 따르라 굽쇼?
우국호 거참 빨갱이 타령 지긋지긋하네. 빨랑 따러. 같이 한잔 하게.
똥 씹은 얼굴로 술을 따르는 박 대위.
술잔에 술이 넘쳐 흘러도 끝까지 정만철만 노려본다.
우국호 어허~ 사랑이 넘친다 넘쳐.
박대위 어이 잘들어. 비록 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술을 따랐지만,
니들을 향한 불타는 증오심은 결코
우국호 (말을 자르며) 건배!
엉겁결에 건배를 하는 박 대위.
분을 못참겠는지 술병 집어 들어 병나발을 분다.
정만철 이런, 술이 부족하겠는데?
냉장고 쪽으로 가는 정만철.
우국호에게 속삭이듯 묻는 박 대위.
박대위 우 소령님,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 저 인간이 누굽니까? (치미는 분노. 울컥하는 감정 애써 억누르며) 소령님도 산속에서 죽은 우리 애들 얼굴 다 기억하잖아요. 그 가족들은 또 어떻구요. 남편 잃고 아빠 잃고 얼마나 서럽게 살았습니까?
우국호 알지. 너 결혼식 앞두고 다쳐서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파혼 당한거 너무 잘 알지. 그래도 박 대위, 평생 이렇게 누굴 원망하면서 살 수는 없어. 그만 끝내자. 이제 지옥 같은 강릉에서 하산하자.
박대위 전 못합니다.
우국호 정말 안되겠냐?
박대위 (눈물 글썽) 이 팔을 보세요. 특등 사수 박 대위가 혼자는 때도 못 밀어요. 뼈가 산산조각 나서 평생 세수도 한 손으로 해야 되구요, 리어카도 두 손으로 못 끌어요. 소령님 작전은 끝났을지 몰라도 내 작전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정만철을 노려보며) 토벌할 무장 공비가 눈앞에 있는 이상, 저 이 작전 못 끝냅니다.
정만철 (술병 갖고 와 앉으며) 종간나 새끼, 개소리 그만 지껄이라우!
우국호 당신까지 왜 이래?
정만철 뭐? 작전을 끝내? 니들이 뭔데? 이 작전은 말이디, 민족의 샛별 김정일 동지가 내린 준엄한 명령이야. 니들 착각하지 말라우. 이 작전, 끝내도 우리가 끝내. 알갔어?
박대위 (눈이 뒤집힌다) 소.. 소령님 보셨죠? 이 새끼 본색 드러내는 거. (셀카봉 들이밀며) 씨발 이건 증거로 남겨야 돼. 해봐, 해봐. 계속 지껄여 봐. 확 아가리를 찢어놓을 테니까!
정만철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님이 말씀하셨디. 우리 최정예 침투조 22전대는 1개 군단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미 앞잽이 병아리 병정들은 말이야, 평생 우리 그림자도 못 밟아. 알간?
골프채 뽑는 정만철. 우국호와 박 대위에게 한 개씩 던져준다.
우국호 이봐.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정만철 (눈 찡긋하며 귓속말) 마지막 생존한 공비가 저 아닙니까? 처리하세요. 지긋지긋한 작전, 이참에 끝내버립시다.
박대위 이게 어디서 귓속말이야?
갑자기 물컵을 박 대위의 얼굴에 확 뿌리는 정만철.
정만철 남조선 아 새끼 겁먹었구만. 배때기에 기름 낀 니들은 평생 우리 못 잡디.
홱 도망치는 정만철.
와락 달려들다가 의자에 걸려 나뒹구는 박 대위.
박대위 (부르르) 저.. 저 잘근잘근 씹어도 시원찮을 빨갱이 새끼. 저 쌍놈의 괴뢰도당!
우국호 (진중한 음성) 박 대위 소총 집어.
박대위 (울고 싶은) 아힝~ 소령님까지 왜 그러세요?
우국호 누가 작전 중에 소리를 질러? 전우들 다 죽이고 싶어!
골프채를 소총 삼아 사방 경계하는 우국호. 명령한다.
우국호 박 대위 엄호해.
박대위 예?
자세 낮추며 치고 나가는 우국호. 재빨리 벽에 기대 거실 쪽으로 접근한다. 우국호의 진지한 표정에 은근히 긴장되는 박 대위. 골프채를 소총 삼아 덩달아 자세를 낮추더니 괜히 안 해도 되는 구르기를 한번 하고 잽싸게 장식장 옆에 몸을 숨긴다. 저만치 거실 끝에 보이는 정만철의 뒷모습. 마치 굶주린 공비처럼 손으로 꾸역꾸역 밥을 집어 먹는다. 발견하고 외치는 우국호.
우국호 꼼짝마!
돌아보는 정만철. 겁에 질린 표정.
그 와중에도 입 속에 밥을 쑤셔 넣는다.
박대위 (골프채 겨누며) 손들어!
겁먹고 두 손 드는 정만철.
정만철 쏘.. 쏘지 마시라요. 며칠째 굶었습네다.
박대위 닥쳐!
우국호 박 대위 포획해.
정만철을 포획하려고 접근하는 박 대위. 이때 갑자기 박 대위를 밀치는 정만철, 허리춤에 숨겨 놓은 TV 리모컨을 마치 권총처럼 잽싸게 꺼낸다.
우국호 (다급한) 박 대위 권총 뺏어!
용감하게 몸을 날리는 박 대위. 정만철이 실수로 휘두른 리모컨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는다. 억! 소리를 내며 코를 움켜잡는 박 대위. 손을 떼자 주룩 코피가 흐른다. 놀라는 정만철.
정만철 (당황) 어? 괜찮아요?
박대위 좆망구, 너 이리 와.
냅다 도망치는 정만철. 죽일 듯 달려가 팔을 꺾어 제압하는 박 대위.
정만철 살려주시라요.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라요.
용서 없는 박 대위. 거칠게 정만철 잡아채 소파에 내다 꽂는다.
골프채로 가슴을 짓눌러 제압하고 휴지 뽑아 콧구멍을 막는 박 대위.
박대위 (거친 숨) 그때 널 잡았으면 2계급 특진에 대통령 훈장 받고 내 인생 꽃길만 걸었을거다.
우국호 수고했다 박 대위. 본부에 보고해.
박대위 우 소령님.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사살하면 안 됩니까?
우국호 (버럭) 무슨 소리야?
박대위 사살하면 후회 없이 완벽하게 작전을 끝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우국호 그건 안돼! 생포된 적군에게는 얻어낼 정보가 많아. 하지만 박 대위의 억울한 사정을 모르는바 아니니 특별히 사살을 허락하겠네. 난 가서 마저 소주를 마실 테니 사살 후 합류하게나.
식탁으로 유유히 걸어가는 우국호.
박대위 골프채가 정만철의 관자노리를 짓누른다.
박대위 살 수 있다는 기대는 마라. 마지막으로 남길 말 없나?
정만철 부탁이 있소. 어차피 죽일거면 내 총으로 쏴주시라요. 사살 대신 자살로 해주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배 안 굶고 살 수 있습네다.
난감한 박 대위. 고개 돌려 우국호 쪽을 바라본다.
후루룩 김치찌개 국물 마시며 좋을 대로 하라고 손짓 하는 우국호.
결국 박 대위, 골프채를 허리띠에 차고 정만철의 관자놀이에 TV 리모콘을 겨눈다.
박대위 잘 가라.
정만철 도.. 동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네다.
박대위 좋아. 근데 민족의 태양 어쩌고 하는 말 튀어나오면 바로 쏴버릴 테니까 각오하고. 시~작.
정만철 류숙 동무. 뱃속의 은애는 잘 크고 있갔지? 내가 죽었다는 소식 들어도 너무 상심 말라우. 하루 세끼 당신이 우리 딸이랑 흰쌀밥 먹는 상상만 해도 나는 행복해. 부디 건강하라우. 그리고 잊디 말기요, 내가 당신을 (글썽)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걸..
이때, 탁! 하고 소주잔을 내려놓는 우국호.
성큼성큼 다가와 박 대위의 TV 리모콘을 빼앗아 들고 정만철 관자놀이에 겨눈다.
우국호 말랑말랑한 개소리 집어 치우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
정만철 (회피) 자, 이제 그만하고 우리 소주나 한 잔 더 합시다.
우국호 (버럭) 어서 말해! 니 눈이 벌써 말을 하고 있잖아!
눈물이 글썽 맺히는 정만철. 눈이 마주치자 우국호가 따뜻한 눈길로 고개를 끄덕여준다. 용기 내 마지막 말을 시작하는 정만철.
정만철 류숙 동무. 우리 은애가 벌써 스물여덟이 됐갔구만. 내 원망 많이 했디? 나 용서하지 말라우. 지 목숨 하나 부지하자고 마누라랑 뱃속에 있는 자식까지 버린 놈은 남편도 아빠도 될 자격 없디. (훌쩍)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 (운다) ..당신.. 죽은 은애 젖 물린 채 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죽었단 얘기 들었어.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날 얼마나 원망했갔어? 부끄럽지만 난 이제서야 죽네. 죽음으로 사죄하네마는 그게 무슨 용서가 되겠나. 날 꾸짖어주게. 미안하네. 저승에서 만나면 부디 모른 체 외면해 주게..
흐느끼는 정만철. 그대로 울게 놔두는 우국호.
우국호 ...일어나.
눈물 훔치며 일어나는 정만철.
우국호 식탁 쪽으로 앞장서.
박대위 (철없이 끼어들며) 소령님 사살 안 합니까?
우국호 중대 명령을 내리지.
박대위 충성! 명령하십시오.
우국호 박 대위는 당장 식은 김치찌개 데우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소주 꺼내
본 대대와 합류하도록.
박대위 (황당한) 네? 사살 안 해요?
식탁 의자 빼서 정만철을 앉히는 우국호.
우국호 정만철. 이제 모든 작전이 끝났다.
정만철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군.
우국호 (끄덕) 너무 오래 싸웠어. 제기랄 내 청춘 다 시들었네.
박 대위,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종전 선언을 하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때?
박대위 너무 성급한 선택 같습니다.
우국호 그럼 거수로 결정하지. 만장일치가 아니면 종전은 물거품이 되는거야, 오케이? 자, 종전에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번쩍 손을 드는 정만철과 우국호.
박 대위는 일부러 팔짱을 끼고 고집을 피운다.
우국호 (은근 겁준다) 생각 잘해. 까딱 잘못하면 이완용 안두희랑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가 있어.
박대위 에이~ 이건 경우가 다르죠.
우국호 뭐가 달라? 이완용, 안두희, 너 박동삼.
정만철 잘 어울리는데요?
우국호 입에 딱딱 달라붙지?
박대위 찜찜하게 왜 그러세요?
우국호 자, 다시 물을게. 종전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손을 드는 우국호와 정만철. 박 대위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든다.
우국호 자, 만장일치로 종전을 선언합니다. 이제 어둡고 긴 전쟁의 터널을 지나,
박대위 (갑자기 셀카봉을 들이밀며) 잠깐만요, 잠깐만요.
우국호 뭐해? 역사적인 순간에.
박대위 (갑자기 캐릭터 모자를 쓰며) 기왕 이렇게 된거 유튜브 라이브 좀 켜구요.
박대위가 캐릭터 모자를 쓰자 대번에 알아보는 정만철.
정만철 어? 혹시 유아독존 채널 운영자에요?
박대위 (설마) ..저 알아요?
정만철 (긴가민가) 오프닝할 때 하는 그 동작 한 번 해볼래요?
박 대위, 정만철이 알아보자 신이 나는 듯 낯 간지러운 오프닝 동작을 해보인다.
정만철 맞네, 맞어! 반갑습니다 유아독존님!
박대위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부탁합니다.
정만철 아이디 비무장 공비 알아요? 내 댓글에 답장도 달아줬잖아요, 아이디 안 바꾸면 죽여버린다고.
박대위 (믿기지 않는) 당신이 진짜 비무장 공비님이야?
우국호 자, 자, 자, 일단 종전 선언이나 마무리 하자고.
정만철 가만히 좀 있어봐요. (박대위에게 술 따라주며) 유아독존님 요즘 왜 그거 안해요?
박대위 아~ 가스통에 불 붙여서 굴리는거? 요즘은 벌금이 쎄서 끊었어요.
노딱도 무섭고.
정만철 (감탄) 와~ 진압 차량 앞에 대자로 누워서 테스형 부른 짤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우국호 (호기심) 박 대위가 그렇게 유명해?
정만철 광화문 유아독존 모르면 간첩이에요.
박대위 (급 겸손) 에이~ 구독자 만 명으로는 어디서 명함도 못 내밀어요.
정만철 경찰에 끌려가는 짤이 정말 유명하거든요.
박대위 (갑자기 푸하하) 당신 그거 봤구나?
정만철 당연하죠. 끌려갈 때 이렇게 외쳤잖아요.
동시에 외치는 정만철과 박대위.
“유아독존 우국충정, 구독과 좋아요 화끈하게 눌러주셈!”
꺄르르 웃는 두 사람. 따라 웃는 우국호.
정만철 (우국호에게) 나훈아 닮아서 화끈하다고 아줌마 연합에서 난리예요 난리.
박대위 (입이 귀에 걸려) 뭘 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만 명 밖에 안되는데.
쎌카 찍을까요?
정만철 아, 좋죠.
우국호 종전 선언 안 해?
박대위 셀카 먼저 찍고요.
낯간지러운 유튜브 채널 오프닝 동작을 하며 사진 찍는 박대위와 정만철.
정만철 유아독존님. 내가 아껴둔 뱀술이 있는데 그거 한잔합시다.
박대위 아~ 조옿죠!
술 가지러 가는 정만철. 어깨에 힘이 들어간 박 대위.
박대위 소령님. 제 인지도가 이 정돕니다. 나 무시하는 사람은 우 소령님 밖에
없을걸요.
정만철 (뱀술 따라주며) 이게 육군 참모 총장이 직접 잡아서 담가준 살모사예요.
박대위 오호~ 비무장 공비님 인싸!
우국호 자, 다 같이 술잔 들고.
술잔을 드는 셋.
우국호 종전 선언에 앞서 우리 건배사 하나씩 합시다. 정만철씨 먼저 해요.
정만철 우국충정님이 평양에서 유튜브 라이브 하는 그날을 위하여~
일동 위하여!
박대위 비무장 공비님의 건강을 위하여~
일동 위하여!
우국호 피 흘리고 죽어간 남북한 전우들을 위하여~
일동 위하여!
우국호 전쟁 없는 이 땅을 위하여~
일동 위하여!
우국호 우리 모두 건배!
일동 건배!
쨍! 하고 술잔 부딪히는 셋.
암전.
6장
아파트 거실을 물들인 늦은 오후의 석양.
술취한 세 사람이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잠들어 있다.
알람이 울리자 떡진 머리 긁으며 스르르 일어나는 우국호. 가방에서 경비복을 꺼내 갈아입는다. 가까스로 눈을 뜨는 박 대위.
박대위 형님, 뭐하슈?
우국호 근무 교대.
박대위 벌써요? 속은 괜찮아요?
우국호 뱀술 좋네. 숙취가 없어.
박대위 같이 가요 형님. 나 약국 문 닫기 전에 혈압약 받아야 돼.
(정만철 툭툭 치며) 어이 비무장 공비, 우리 가요.
하품하며 일어나 앉는 정만철.
정만철 박 대위. 약국 같다가 다시 올 수 있어?
박대위 왜요?
정만철 함흥식 해장국 끓여 놓을게. 우리 고향에서 먹는 속풀이 술국인데 아주 끝내줘. 우 소령도 잠깐 들러.
우국호 근무 시간인데?
정만철 동대표 끗발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소장이 물으면 동대표가 상의할게 있어서 불렀다고 해. 아주 급한 일이라고.
우국호 그거 좋네.
박대위 올 때 막걸리 좀 사올까요?
정만철 그럼, 술은 술로 달래야지. 넉넉하게 사 와.
박대위 나 먼저 가요. 이 따 뵈요 소령님.
마치 오래 사귄 친구들처럼 경쾌하게 대화 주고받는 세 남자.
박대위는 가고 우국호와 정만철만 남았다.
바닥에 떨어진 경비 모자를 줍는 정만철.
우국호의 머리에 씌워준다.
정만철 영광의 모자.
우국호 고마워. 저녁때 보세.
가는 우국호.
몇 걸음 가다가 우뚝 발길을 멈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돌아선다.
우국호 저기..
정만철 응?
우국호 나 고백할게 있어.
정만철 고백?
우국호 어제, 네가 죽으려고 허공에서 바둥대고 있을 때 말이야.
나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어. 너 죽는거 보려고.
정만철 ...
우국호 니가 죽기를 바랬어. 그러면 내 속이 좀 풀릴 수 있을거 같아서.
정만철 결국 구해줬잖아. 덕분에 이렇게 동무도 됐고.
우국호 살아줘서 고맙다.
정만철 살려줘서 고마워.
악수를 건네는 우국호.
악수 대신 와락 끌어안는 정만철.
서로를 끌어안은 두 남자가 석양 빛에 물들고 있다.
막
Copyright © 강원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