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無量壽(무량수)

고윤정 청주 이은학교 교사 2026. 1. 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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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용구사

달리는 자동차 위로 따스한 가을 햇살은 부족함이 없다. 동네 소문난 카페의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고 라디오 음악도 최고 옵션으로 장착한 11월의 짙은 가을날, 영주로 향했다. 꽃동네 나들목을 출발하여 평택제천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남제천을 지난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삼과 인견의 도시 풍기에 다다랐다. 사실, 영주까지는 두 시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가보질 않았다니 무심하기 짝이 없다. 작년 가을에는 안동엘 갔었다. 사실 도산서원이 안동에 있었기에 안동으로의 여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도산서원에서의 고즈넉했던 지난가을은 영주의 가을로 이끌었다.

풍기나들목을 20여 분 지나니, 소수서원이 저만치에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서원 입구, 입 딱 벌어지게 하는 놀라운 풍경은 하늘 높이 서 있는 소나무들의 푸르름과 거대함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소나무들은 마치 소수서원을 지키는 철갑 같았다. 그렇게 서원을 두른 듯한 짙고 푸른 소나무들을 지나면 죽계수가 내려다보이는 경렴정을 만난다. 그곳에도 큼지막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는데,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흩뿌려져 한층 멋스러운 경렴정의 자태를 볼 수 있었다.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자그마한 정자, 오래된 그 시간과 함께했을 지혜로운 이들의 숨결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 이런 것이 영원이라 말할 수 있을까?

소수서원을 나와 20여 분 더 달려간다. 조금 더 빨리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영주의 그 유명한 부석사이다. 얼마 만인가? 언제 부석사에 왔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새로우면서도 낯익은 듯한 부석사의 곳곳을 둘러본다. 어느새 해는 저물고, 주홍의 노을빛이 부석사를 감싸 안는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부석사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는 듯하다. 말이 필요 없다. 시간은 멈춰 섰고, 세상은 고요히 하루를 끝내려 한다. 부석사 곳곳을 물들인 오늘도, 이 가을도 다 붉게 타오르는 듯하고, 영원의 순간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의 무량수불에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한다. 무량수불 즉 '끝없는 생명', 아미타불의 영원한 생명을 담고 있다. 아미타불처럼 영원할 수 있다면 순간에 목메어 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또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자주 보면 더 좋을 터인데, 시간을 핑계 삼고 일을 이유 삼아 오래도록 멀리하였다. 참, 부질없이 살아온 듯하다.

평일 한가로이 영주 지역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장기 재직 휴가'란 게 생겨서였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長期 在職이라~ 즉, 오랜 시간 동안 근무를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장기~' 라고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재직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시기는 고3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한 곳에 적을 두고 일을 해왔다. 그때부터 치면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셈이다. 무엇을 목적하며 여기까지 왔을까? 뭐~ 그냥 일하며 살아온 게지.

오래도록 일해 온 나와 우리에게도 아미타불처럼 영원한 생명이 가능할까? 사실,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壽는 아주 먼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렇게 부석사의 무량수전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보는 그 한순간이 영원을 걷는 것 같다. 유한한 시간 속에 주어진 육신으로 일하며 먹고 사는데, 영원한 시간을 만나게 해주는 그런 느낌. 無量壽(무량수)를 바라진 않는다. 무량수전이 내 옆에 있고 붉게 물든 하늘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이렇게 한가로운 휴가를 허락해준 장기 재직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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