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이상무 ‘미대출 구역’ ①

경인일보 2026. 1. 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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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립도서관 3열람실 42번 사서 감시망 벗어난 사각지대
책상 왼쪽 모서리 검은 얼룩, 내 지정석 표식 같아 좋다
나는 작가여야 했다… 그러나 노트북은 웹 브라우저로

맞은편 43번 ‘회색’이라 불리는 사내, 역시 와 있었다
그때 볼펜을 딱…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한숨을 쉬었다
내 노트북 화면은 쏘나타… 아직 글 한 줄 쓰지 않았다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장면 1] 42번 좌석의 얼룩

오전 8시 40분. 구립도서관 셔터 앞에는 벌써 다섯 명이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그들과 섞이기 싫어 화단 경계석에 엉덩이를 걸쳤다. 엉덩이가 시려왔지만 참았다. 저 무리―등산복을 입고 무료 신문을 나눠 보는 노인 셋, 패딩 모자를 뒤집어쓴 고시생 둘―사이에 껴서, 셔터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리며 발을 구르는 꼴은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가방에서 읽지도 않을 시집을 꺼내 펼쳤다. 활자를 보는 게 아니라, ‘나는 너희와 다르게 활자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걸 과시하기 위한 비루한 연기였다.

드르륵, 쾅. 관리인이 쇠꼬챙이로 셔터 고리를 걸어 올렸다. 녹슨 철문이 말려 올라가는 소리가 꼭 짐승의 내장이 꼬이는 소리 같았다.

사람들이 좀비처럼 로비로 빨려 들어갔다. 나도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일어섰다. 뛰지는 않았다. 다만 경보 선수처럼 골반을 빠르게 움직였다. 품위와 속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 걸음은 우스꽝스럽게 꼬였다.

키오스크 앞에 섰다. 손가락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3열람실. 42번. 종이 표가 툭 떨어졌다.

3열람실 42번. 기둥 뒤 구석. 사서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사각지대. 그리고 책상 왼쪽 모서리에 누군가 담배빵을 지져놓은 듯한 검은 얼룩이 있는 자리. 나는 그 흉터 같은 얼룩이 좋았다. 그게 내 지정석의 표식 같아서.

열람실 문을 열자 훅, 하고 냄새가 끼쳐왔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먼지 냄새, 락스로 닦은 바닥 냄새, 그리고 덜 마른 빨래를 입고 온 누군가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뒤섞인, 도서관 특유의 ‘습한 침묵’의 냄새.

나는 42번에 앉아 가방을 풀었다. 지퍼 소리가 너무 클까 봐 천천히 열었다. 5년 전, 신춘문예 상금 300만 원 중 150만 원을 털어 샀던 맥북 에어를 꺼냈다. 한때는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어울렸던 은색 알루미늄 보디는 이제 모서리가 찌그러지고, 액정 상단엔 정체불명의 기포가 생겨 있었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팬 돌아가는 소리가 이륙하는 경비행기처럼 요란했다. 나는 황급히 손바닥으로 노트북 자판 위를 덮었다. 소리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맞은편, 43번. 역시나 와 있었다. ‘회색’이라 불리는 사내. 그는 오늘도 회색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모자 테두리가 닳아서 실밥이 너덜거리는 그 옷. 그의 책상 위에는 다이소에서 파는 3천 원짜리 흰색 전자시계, 제트스트림 0.7밀리미터 볼펜 세 자루, 그리고 뚜껑이 살짝 덜 닫힌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그는 내가 자리에 앉든 말든, 코를 책상에 박을 기세로 토익 영단어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킁. 그가 코를 먹었다. 30초 간격이다. 비염인가. 킁. 또다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거슬린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 여기는 침묵이 법인 곳이니까. 나는 대신 내 노트북 화면을 닦았다. 안경 닦이로 액정의 지문을 닦고, 또 닦았다. 글을 쓸 생각은 안 하고, 검은 화면에 비친 내 퀭한 눈동자만 닦아내고 있었다.

부팅이 끝났다. 바탕화면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파일 하나. 장편_최종_수정_진짜최종_V3.docx

파일 아이콘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야, 안 여냐?” 하고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나는 터치패드 위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커서가 화면 위를 무의미하게 배회했다.

이 80센티미터짜리 합판 책상. 내 유일한 영토. 여기서 나는 작가여야 했다. 아니, 작가인 척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내 손은 워드 프로세서가 아니라 웹 브라우저 아이콘으로 미끄러졌다. 검색창에 습관적으로 입력했다.

‘LF 쏘나타 가스차.’ ‘LPG 일반인 이전.’ ‘개인택시 부활.’

화면에 흰색 쏘나타 사진이 떴다. 주행거리 18만 킬로미터. 조수석 문짝 교환 이력 있음. 350만 원. 살 수도 없는 똥차의 스펙을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펜더가 교환됐으면 뼈대는 괜찮은 거 아닌가? 미션 튕김은 없을까? 소설의 플롯을 짜야 할 머리로, 남이 타다 버린 차의 내구성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43번이 볼펜을 딱,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나는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다. 그가 나를 쳐다본 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정수리가 휑했다. 스트레스성 탈모인가.

그의 정수리와 내 노트북 화면 속 쏘나타. 그리고 깜빡이는 커서. 오전 9시 15분. 아직 글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나는 텀블러의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삼켰다. 물에서 쇠 맛이 났다.

[장면 2] 터진 김밥과 사원증의 반사광

11시 25분.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12시가 되면 도서관 바로 옆, 구청에서 쏟아져 나올 ‘진짜 직장인’들과 마주치기 싫어서였다.

목에 파란색, 주황색 사원증을 건 그들. 밥을 먹고 커피를 들고 산책을 하는 그들의 동선은 내 도피처와 정확히 겹쳤다. 가을 햇살 아래서 번쩍거리는 그 빳빳한 플라스틱 카드가 내 눈에는 무슨 면죄부나 승차권처럼 보였다. 나는 그 빛이 싫었다. 그래서 쥐새끼처럼 30분 일찍 움직여야 했다.

나는 지하 매점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졌다. 눅눅한 지하 냄새. 라면 국물 냄새와 젖은 우산 냄새, 그리고 자판기 커피 특유의 달짝지근한 프림 냄새가 엉겨 붙은 패배자들의 냄새.

자판기 옆, 다리 하나가 짧아 덜거덕거리는 테이블이 내 식탁이었다. 주머니에서 2,500원짜리 야채 김밥 한 줄을 꺼냈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사 온 것이다. 매점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면 외부 음식은 최대한 빨리, 은밀하게 처리해야 했다.

바스락. 지하의 정적 속에서 은박지 벗기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 마치 “여기 밥 못 벌어먹는 놈 있습니다!” 하고 확성기로 떠드는 것 같았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어깨를 웅크리고 은박지를 깠다. 김밥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검은 김 사이로 희멀건 밥알과 노란 단무지가 삐져나와 있었다. 꼭 내 인생 같네, 씨발. 나는 터진 부위를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차가웠다. 냉장고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밥알이 모래알처럼 서걱거렸다. 씹을 때마다 턱관절이 뻐근했다.

“어머, 작가님?”

목구멍으로 김밥을 넘기려던 찰나, 등 뒤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꽂혔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컥, 하고 기침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김지연 사서였다.

그녀는 환했다. 지하의 형광등이 그녀 머리 위에서만 켜진 것 같았다. 한 손에는 파리바게뜨 샌드위치가, 다른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는,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구립도서관 사서’라고 적힌 사원증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아… 네. 식사하러 오셨네요.”

나는 입안에 꽉 찬 김밥 덩어리를 햄스터처럼 볼 한쪽으로 몰아넣고 웅얼거렸다. 입가에 혹시 김 가루가 묻었나 싶어 손등으로 쓱 훔쳤다. 손등에 참기름이 번들거렸다. 비참했다.

그녀는 내 맞은편 의자를 빼어 앉았다.

“구내식당 메뉴가 코다리 조림이라서요. 저 코다리 싫어하거든요. 작가님 뵈니까 반갑네요. 요새 통 말씀을 못 나눠서.”

그녀가 비닐 포장을 뜯으며 웃었다. 악의 없는, 1급수의 맑은 미소. 그녀는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중고차 사이트에서 ‘침수차 구별법’이나 읽고 있다는 걸.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걸까? 아니, 그녀의 눈동자는 너무 투명해서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게 더 잔인했다.

“요새 작업은 좀 어떠세요? 아까 보니까 미간을 막 찌푸리시고… 엄청 고뇌하시던데.”

고뇌라. 쏘나타 펜더 교환 비용을 계산하느라 인상을 쓴 건데. 나는 물을 마시는 척하며 뻔뻔하게 대꾸했다.

“뭐… 늘 그렇죠. 이번 소설은 호흡이 좀 길어서요. 지금은… 그래요, 엉킨 실타래를 끊어내는 중입니다.” “와, 멋지다. 실타래.”

그녀가 감탄하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 양상추 씹는 소리가 싱그럽게 들렸다. 내 입안의 눅눅한 단무지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였다.

“저 사실, 작가님 등단작 <심해의 방> 진짜 좋아했거든요. 작가님 저희 도서관 오시고 나서, 제가 팀장님 졸라서 희망 도서로 신청도 했어요. 아시죠?”

<심해의 방>. 5년 전,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단편. 그때 심사평이 뭐였더라. ‘건조한 문체와 우울의 미학’이었나. 그 빌어먹을 ‘우울의 미학’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우울한 지하를 못 벗어나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사서님 덕분에 제 책이 여기 꽂혀있네요.” “근데 좀 아쉬운 게 있어요.”

그녀가 불쑥, 말을 던졌다. 입가에 묻은 마요네즈를 닦으며.

“그 책… 처음엔 신간 코너에 뒀다가, 지난달에 서가로 옮겼거든요? 근데… 아직 대출 이력이 ‘0’이에요.”

순간, 지하 매점 환풍기 소리가 뚝 끊긴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은 팩트였다. 하지만 팩트라서 뼈가 아픈 게 아니라,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대출 이력 제로. 5년 동안, 이 도서관을 드나드는 수만 명의 사람 중 단 한 명도 내 책을 꺼내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활자들은 5년째 캄캄한 책장 사이에서 질식해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순수 문학은 요새 인기가 없으니까요.”

그녀가 황급히 덧붙였다. 나를 위로하려는 말투였지만, 그건 확인 사살이었다.

“괜찮습니다. 뭐, 책도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쿨한 예술가인 척 대꾸했다. 하지만 식탁 아래 내 왼손은 허벅지를 쥐어뜯고 있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맞아요! 언젠가 꼭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힘내세요, 작가님!”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목에 걸린 사원증이 짤랑, 하고 테이블에 부딪혔다. 그 맑은 플라스틱 소리가 내 귀에는 꼭 **‘너는 가짜고 나는 진짜야’**라고 비웃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가 다 먹고 일어설 때까지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척했지만, 종이컵은 이미 비어 있었다.

그녀가 사라지자 나는 남은 김밥 하나를 입에 쑤셔 넣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톱밥 뭉치를 삼키는 기분이었다. 은박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장서 폐기 기준. 도서관학 개론에서 봤던 문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1. 오손이나 파손이 심해 열람이 불가능한 도서. 2. 최근 3년(혹은 5년)간 대출 실적이 전무하여 이용 가치가 상실된 도서.

나는 몇 번일까. 아니, 책이 아니라 인간도 폐기 기준이 있다면. 나는 지금 폐기 직전의 대기 상태일까, 아니면 이미 폐기 도장이 찍힌 상태일까.

입안에 낀 김 가루를 혀로 떼어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의 공기가 폐부 깊숙이, 곰팡이처럼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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