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이야기] 변동불거를 지나 춘풍추상으로

김태형 경남도민일보 고충처리인·변호사 2026. 1. 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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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 해의 시대정신을 압축한 상징이다.

이젠 묵은 해가 된 2025년을 규정한 단어는 '변동불거(變動不居)'였다.

실제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이 진단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위기에 대해 정책과 제도가 쏟아졌지만, 정작 문제의 뿌리를 겨냥하지 못한 채 겉도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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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라 가득한 시대, 원인·책임 통찰 부족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향한 엄정한 잣대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 해의 시대정신을 압축한 상징이다. 단 네 글자에 사회의 표정과 권력의 방향, 시민의 체감 온도가 함께 담긴다. 이젠 묵은 해가 된 2025년을 규정한 단어는 '변동불거(變動不居)'였다. 세상이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요동쳤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이 진단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의 판단 영역까지 침투했고, 미·중 패권 경쟁과 전쟁의 장기화는 국제질서를 뒤흔들었다. 경제는 회복과 침체의 경계를 오갔고, 정치와 사법, 언론과 교육까지 고정불변이라 여겨졌던 제도와 가치들이 하나 둘 흔들렸다. 일상의 안정감은 사라지고, 불확실성은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변동불거'라는 말은 이 격동의 시간을 설명하는 데 그칠 뿐, 그 원인과 책임의 소재를 묻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변화가 많았다는 사실의 나열은 가능하지만, 왜 이토록 혼란스러웠는지, 그 혼란이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은 부족하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어야 할 사자성어가 관조적 보고서에 머문 셈이다.

휘몰아치는 현실 한가운데서 팔짱을 낀 채 "세상은 늘 이러했다"고 말하는 태도는 지적일 수는 있어도 책임감 있어 보이진 않는다. 특히 민주주의와 법치, 공공성의 위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국면에서 선비적 중립은 때로 방관에 가깝다. 현실의 절박함과 시민의 불안은 '변동'이라는 말 하나로는 결코 봉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던진 진단이 더 날카로웠다. 필자의 질문에 오픈AI 챗지피티는 2025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사자성어로 '명존실망(名存實亡)'을 제시했다. 이름은 남아 있으나 실질은 사라졌다는 뜻이다. 헌법과 제도, 민주주의의 외형은 유지되고 있으나 그 정신과 작동 원리는 크게 훼손되었다는 비판적 인식이다. 형식은 존재하지만 내용은 비어 있다는 이 네 글자는 많은 시민의 체감과도 묘하게 겹친다.

구글 '제미나이'가 선택한 '격화소양(隔靴搔癢)' 역시 마찬가지다. 신발을 신은 채 발바닥을 긁는다는 뜻으로, 답답하고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는 처방을 가리킨다.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위기에 대해 정책과 제도가 쏟아졌지만, 정작 문제의 뿌리를 겨냥하지 못한 채 겉도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정치도, 행정도, 사법도 시민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짚지 못했다는 자조가 이 한마디에 응축돼 있다.

2026년이 시작됐다. 앞으로 방향을 가늠할 이정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필자는 고 신영복 선생이 평생 곁에 두었다고 전해지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의 네 글자를 떠올린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되,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는 가르침이다.

지난해 우리가 목격한 혼란의 밑바닥에는 이 원칙이 거꾸로 작동한 현실이 있었다. 타인에게는 추상처럼 냉혹했고, 자신에게는 춘풍처럼 관대했던 이중잣대가 사회 전반을 좀먹었다. 권력은 책임을 회피했고, 제도는 약자에게만 엄격했다. 그 결과 공동체의 신뢰는 빠르게 소진되었다.

변화가 상수가 된 시대일수록 기준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부 윤리에서 나와야 한다. 법과 제도, 기술과 정책 이전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향한 엄정한 잣대다. 2026년, 자신에게는 서릿발처럼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봄바람처럼 너그러운 이 오래된 원칙이 우리 사회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가장 단단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태형 경남도민일보 고충처리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