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전 국회의장 “협치는 실종됐고 책임은 증발했다…지금 국회는 붕괴 상태”

이효석 기자(thehyo@mk.co.kr) 2026. 1. 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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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전 국회의장 신년 인터뷰
필리버스터 여야 요식행위로 전락
국회의장은 실권없는 사회자 그쳐
야당은 결기·희생 의지 모두 부족
계엄 전후 지도부, 합동 사과 필요
죽어서 다시 사는 사람이 정치인
한동훈·이준석 모두가 보수 자산
장동혁 대표가 좀 더 양보해 통합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30일 매일경제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한국 정치에서 여당과 야당을 두루 경험한 정치 원로다. 그는 1992년 제14대 국회에 처음 진출해 제18대까지 연속 5선을 하며 20년간 국회의원으로 일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소속으로 사무총장, 원내대표 등 당의 핵심 역할을 오래 맡았고, 야당으로 있으면서 주로 여당과 맞서 국회 전략을 수립했다. 특히 2008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맡아 국회 운영 전반을 총괄했다는 점은 여야 양측을 한눈에 보는 기반이 됐다. 그런 그가 새해를 맞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 국회를 “붕괴 상태”라고 진단했다. 과거와 달리 국회가 갈등 조정과 타협, 책임 있는 정치 기능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국회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지금 국회는 한마디로 말해 ‘붕괴’ 상태다. 만약 단어를 하나 더 붙이자면 ‘붕괴와 실종’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도 국회는 충돌이 많았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갈등 속에서도 대화와 타협의 의지, 다시 말해 정치의 기본 자세가 있었다. 국회의장을 맡았던 2008~2010년에도 여야는 날 선 대치를 자주 했지만, 최소한 협상하려는 태도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마저도 실종됐다. 그래서 오늘날 국회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협치의 실종, 책임의 증발, 통제능력의 상실’ 그리고 그 결과로 ‘붕괴’.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이유는 어디에 있나.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고 타협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요즘은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책임이 사라졌다. 정치인은 실수하면 책임지고 사과하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실수를 기회로 삼으려는 태도가 더 자주 보인다. 정치인이 좋은 의미에서 유명(Famous)하든, 나쁜 의미에서 악명(Notorious) 높든 상관없어한다는 뜻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국민이 국회를 신뢰할 수 없다.

―최근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어떻게 봤나.

▷필리버스터는 원래 소수당의 의견을 보호하고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미국 상원처럼 무제한 토론을 통해 진지하게 논쟁하고 설득하고 타협점을 찾는 구조가 핵심이다. 그러나 한국 국회에서는 필리버스터는 ‘24시간 토론 후 표결’이라는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사실상 무제한 토론이 아닌 셈이다. 여당은 이 제도를 절차만 맞추는 요식적 수단으로 활용한다. 다수 의석으로 결국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기에 시간만 끌고 형식만 채우는 것이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책임 회피 수단으로 쓴다. 정작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대응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야당도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필리버스터가 여당에게는 “절차를 다 지켰다”는 명분이 되고, 야당에게는 “할 만큼 했다”는 자기합리화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국회의장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우리나라 국회의장은 헌법상 중립을 지켜야 하니까 당적을 못 가지게 돼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보면, 실질적인 권한이 거의 없다. 회의 사회 보는 거랑 의사일정 조정 정도인데, 그것도 사실상 못 한다. 국회 운영은 원내대표하고 운영위원장, 특히 다수당이 다 쥐고 있다. 결국 국회의장은 말만 중립이고 실제로는 아무 힘이 없는 구조인 거다. 방망이 치는 사회자 역할에 그치는 거다. 지금 국회의장이 국회를 조정하려면 그에 걸맞은 권한이 따라줘야 하는데, 형식만 있고 실질은 없다.

미국은 다르다. 국회의장이 당적 그대로 갖고 가면서 책임지고 국회를 끌고 간다. 그런데 우리는 명분론에 기대서 당적은 빼라고 하면서, 실질적인 권한은 안 준다. 그러니까 여당 눈치 보게 되고, 야당은 의장이 여당 편들었다고 물러나라고 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책임은 의장한테 있는데 권한은 없고, 그러다 보니 국회 전체가 더 경직된다.

국회의장 임기도 국회의원 임기랑 다르게 따로인데, 전반기 끝나면 후반기도 생각해야 하니까 눈치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게 명분과 실질이 안 맞는, 아주 한국적인 구조다. 이제는 이런 헛명분에서 벗어나서 실질과 명분이 일치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국회에서 협치가 이뤄지려면.

▷내가 야당 원내대표였을 때도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은 많았지만, 합의를 통해 처리한 사례가 굉장히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6년 사학법 재개정 논란이다. 2005년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을 개정했는데, 우리 당과 보수·종교계 사학재단에서는 그게 사학 자율성을 무너뜨리는 법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재개정을 요구하면서 한나라당이 국회 일정 전반을 보이콧했고, 갈등이 극심해졌다. 당시 우리 당이 숫자가 부족해서 법을 다시 고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문제로 내 앞에 있던 원내대표 세 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고, 내가 네 번째 원내대표가 됐다. ‘6개월만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최장수 원내대표를 하게 됐다. 나는 여당과 협상해서 사학법의 독소조항을 일부 걷어내는 대신, 여당이 원하는 다른 법안 처리에는 협조하는 방식으로 절충안을 만들었다. 예산안도 합의 처리했다. 여야 간 대립 속에서도 일정한 타협과 조정이 이뤄졌다. 지금은 그런 정치가 보이지 않는 게 아쉽다.

―현재 국민의힘은 소수 야당이다.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나.

▷숫자는 본질이 아니다. 과거 내가 국회의장을 하던 시절 제1야당인 민주당은 고작 89석이었다. 전체 300석 중에 89석이었지만, 민주당은 절대 만만한 야당이 아니었다.

지금 국민의힘은 107석이나 갖고도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 ‘우리는 소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그때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갖고도 아무 것도 못 한다면, 그건 의석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력의 문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30일 매일경제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지금 야당에는 의지도 없고, 결기도 없고, 대국민 호소력도 약하다. 지도부든 의원이든 ‘나를 밟고 가라’는 각오가 있어야 국민이 마음을 움직인다. 야당이 제대로 싸우려면, 대중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단순히 필리버스터 몇 시간 했다고 정치적 결기를 보여줬다고 말하긴 어렵다. 국민은 이미 그런 보여주기식 투쟁에 피로하다.

―보수정당이 위기를 맞이한 이유는.

▷보수는 원래 국가 경영 능력, 책임 지는 정치, 공동체 보위와 국가 안정를 바탕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반이 다 무너졌다. 정작 중도층이 왜 보수를 다시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그동안 국민이 보수정당을 지지해 온 이유는 단순히 이념이 아니라, “이 정당이라면 나라를 맡겨도 된다”는 경영 능력에 대한 신뢰였다. 이제는 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제, 안보, 외교, 치안 등 핵심 국정 분야에서 보수가 무슨 비전을 갖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당 지도부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보나.

▷정치는 결기다. 계산보다 결기가 앞서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 지도부에 필요한 건 이미 말한 것처럼 의지와 결기, 그리고 대국민 호소력이다. 지금처럼 ‘윤어게인과 단절하느냐 마느냐’에만 집중하는 건 정치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그런 논의도 포함은 되지만, 그게 전부가 돼선 안 된다. 중도층을 설득하려면, 프레임에서 벗어나 더 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보수가 왜 필요한가, 보수가 국가를 어떻게 잘 운영할 수 있는가를 국민이 다시 믿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회복은 없다.

정치권엔 ‘죽었다 사는 게 예수님하고 정치인’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한동훈 전 대표·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아직 ‘죽어야 사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 장동혁이든, 한동훈이든, 이준석이든 각자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지만, 지금은 각자도생처럼 흩어져 있고, 당 전체를 끌고 갈 통합의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이해관계 계산보다 먼저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 지도부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공동의 목표’를 위해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 장 대표가 좀 더 많이 비우고 양보했으면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단절론에 대해선.

▷단절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건 ‘누구와 멀어졌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보여주느냐’다. 지금 정치권은 ‘윤 어게인이냐 아니냐’는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있다. 그 프레임에 들어가는 순간 이미 진 거다.

계엄령 문제와 관련해서는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당시 당 지도부에 있었던 사람들, 예컨대 한동훈, 장동혁 같은 지도부 인사들이 함께 나와 국민 앞에 합동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해야한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30일 매일경제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지방선거는 실력과 책임으로 승부
개헌 핵심은 권한 분산·책임 강화
―다가오는 지방선거 전략은.

▷지방선거는 중앙 정치와 완전히 다르다. 지역 살림을 누가 잘 꾸릴 수 있느냐의 문제다. 보수는 원래 행정, 재정, 질서 있는 운영에서 강점을 보여 온 정당이다. 그걸 다시 보여줘야 한다. 구호보다 실력, 추상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윤 어게인이냐 아니냐’를 선거 전략의 중심으로 삼는 건 상대 진영이 짜놓은 프레임에 걸려드는 일이다. 도덕성을 기반으로 해서 국민 앞에 책임지는 자세, 실질적인 정책 능력을 보여주는 게 지방선거의 핵심이다.

―개헌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나.

▷개헌의 핵심은 분명하다. 대통령 권한의 분산이다. 지금처럼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구조는 누구에게나 위험하다. 대통령 혼자 국정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국무회의는 지금 단순한 심의기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걸 실질적인 의결기구로 바꿔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각 부처 장관들이 단순히 대통령 눈치만 보는 게 아니라, 책임 있는 결정을 함께 내릴 수 있게 된다. 감사원은 독립돼야 하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인사도 대통령이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대통령 손 아래 있을 수 없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권한만 커지고 책임은 없는 구조로는 국민 신뢰를 못 얻는다. 예를 들어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법이 있다면, 일정 기간 뒤 사후평가를 의무화하고, 실명으로 책임을 묻게 해야 한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법도 책임지는 구조여야 한다.

또한 국회 윤리위원회도 강화해야 한다. 국회 윤리위원회를 독립적·객관적 기구로 상설화시켜고 위원회에 국회의원을 배제하고 사건이 발생하면 즉각 윤리위를 소집해 조치해야 한다. 그래야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

개헌론은 내가 국회의장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꺼낸 얘기였다. 당시 지금이야말로 개헌의 적기라 봤다. 만약 그때 개헌이 이뤄졌다면 나라 전체도 더 나아졌을 거라고 본다.

“개헌하면 김형오”라는 말이 따라붙을 만큼, 이 문제를 오래 고민해온 사람이다. 지금 여야 모두 개헌 얘기를 꺼내지 않는 건 결국 권력을 놓기 싫어서다. 그러나 언젠가 논의될 수밖에 없다. 그때를 대비해, 본질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개헌의 핵심은 권한의 분산이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

▷정치는 실천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말만 많은 정치, 책임 없는 정치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올해는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정치의 원년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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