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희망을 싣고 달린다"…병오년 새해 첫차 타는 시민들
각자의 삶을 안고 오른 대중교통
묵묵하지만 힘찬 하루의 출발 알려
"안정된 사회와 가족의 평안을 소망"

이날 오전 4시 40분께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은 새해 첫날 이른 시간이라는 점을 실감케 하듯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전광판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고, 드문드문 모여 선 사람들의 숨결이 차가운 공기 속에 흩어졌다. 그러나 정적 속에서도 새해를 여는 발걸음만큼은 가볍지 않았다.
고속버스 승강장 앞에서는 황재욱·이양심(60) 부부가 두 딸과 함께 인천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의 외투 깃을 여며주며 짐을 챙기는 손길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가족의 익숙함이 묻어났다. 환갑을 맞아 훗카이도로 떠나는 가족여행길이다. 황 씨는 "이제는 바라는 게 많지 않다"며 "매년 이렇게 가족이 건강하고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이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도 서서히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해 첫날 첫차 운행을 앞둔 버스들이 차례로 도착해 줄지어 섰고, 어둠을 가르며 켜진 전조등 불빛이 정류장을 밝혔다. 운전기사들은 차량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무전기로 노선과 운행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하루를 준비했다. 대부분의 노선은 오전 5시 40분 출발을 알렸다.
정류장에는 출근 가방을 멘 직장인과 간단한 짐을 든 승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전광판에 표시된 노선 번호와 도착 예정 시간을 번갈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새해 첫날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의 풍경이었지만, 그 시작이 유난히 이른 새벽이라는 점만이 달랐다.
정류장 한켠에 가장 먼저 서 있던 일본인 야스코(65) 씨는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 버스 도착 안내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인들과 함께 새해 기도 봉사를 마친 뒤 화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30년이 됐다는 그는 "이제는 이곳이 제 삶의 터전"이라며 "새해에는 모두가 조금 더 평안하고,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비슷한 시간 '호남권 최대 관문' 광주송정역도 이른 새벽부터 분주했다. 이날 첫 차는 오전 5시37분 서울 용산행 KTX. 동이 트지 않아 어둑한 시간임에도 수십여 명의 승객들은 기차표와 열차를 번갈아 쳐다보며 본인의 탑승구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영하 6도의 살얼음 같은 날씨 속 패딩과 장갑, 목도리 등으로 중무장한 채였다.
서울 소재 대학생 최영수(26)씨도 그 중 한명이었다. 최 씨는 지난달 30일 고향인 광주에 잠시 내려왔다가 이날 다시 상경길에 오른다. 공모전 준비, 자격증 취득으로 바쁜 와중 찰나의 '짬'을 내서였다고 한다. 최 씨는 "한 해의 마지막은 부모님과 보내는게 맞겠다 싶어 이틀간 광주에 머물렀었다"며 "너무 일찍 올라가니 어머니가 특히 서운해하셨지만, 올해는 꼭 취업해 용돈이라도 쥐어드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지하철 첫차가 도착한 오전 5시 무렵, 광주 동구 소태역 플랫폼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개찰구를 통과한 승객들은 안내 방송이 울리자 서둘러 전동차에 올랐다.
좌석에 몸을 기댄 채 미처 이루지 못한 잠을 청하는 이들, 휴대전화로 오늘 일정을 확인하는 이들의 모습이 교차했다. 새해 첫날이지만 지하철 안 풍경은 여느 평일 아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동산단에서 근무하는 박모(41)씨는 새해 첫날도 일터로 향했다. 쉬는 날이라 크게 바쁠 일은 없겠지만 가족과 새해 첫 아침을 맞지 못하는 것은 다소 아쉽다고 한다. 그럼에도 "다가올 설날 명절 전 5살배기 딸과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그 약속을 버팀목 삼아 열심히 일하겠다"며 미소지었다.
박인자(54·여) 씨는 광산구에 사는 친구를 보러간다. 오후부턴 각자 가족들을 챙겨야 하니 오전에 잠시 찻집을 가기로 했다. 박 씨는 "해가 갈수록 바쁘고 삭막하니 지인들 볼 시간도 없다"며 "새해에는 모두가 따뜻한 순간들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건우 기자·임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