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탈모, 건보 고갈… 대통령 지시와 '아쉬운 우선순위'

이혁기 기자 2026. 1. 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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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탈모와 건보 고갈론의 함수 3편
희귀ㆍ난치 환자 80만명 시대
건강보험 없이는 연명 힘들지만
재정 고갈 위기로 생존 위기
건강보험 우선순위의 오류
건강보험은 희귀ㆍ난치 환자의 마지막 방파제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 원추각막, 재생불량성빈혈, 척수성 근위축증…. 생소한 병명이지만, 누군가는 이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억'소리 나는 약값 탓에 건강보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최근 재원이 빠르게 말라가고 있어 이들의 상황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최근(2025년 12월 16일) 이재명 대통령의 '탈모 치료' 발언이 아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그로부터 8일이 흐른 12월 24일 이 대통령은 희귀질환 환우와 가족들을 만나 "희귀질환 치료 문제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치료ㆍ진단ㆍ복지ㆍ지원 전반에 걸친 개선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순서'가 바뀌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 더구나 건강보험이 조만간 고갈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어떤 개선책을 논의하든 '사실상 증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희귀질환 치료 개선책으로 "세수를 사회 구성원 간의 협의를 거쳐 늘려야 한다"며 증세 이야기를 꺼냈다. 이 대통령의 '탈모 치료' 발언이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視리즈 탈모와 건보 고갈론의 함수 3편이다.

우리는 지난 1ㆍ2편에서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을 다뤘다. 이 대통령은 16일 업무 보고에서 "젊은 사람들이 보험료만 내고 혜택은 못 받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면서 "요즘은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은 "청년층이 건강보험에서 소외되고 있으니, 탈모 지원을 통해 세대 간 형평성을 맞춰보자"는 견해를 내비친 것일 수 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탈모는 생존 문제'란 대통령의 논리에 수긍하기가 힘들어서다.

우리 사회엔 '진짜 생존 문제'가 걸린 질환이 적지 않다. 희귀질환과 난치질환이다. 업무 보고 자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탈모'부터 테이블에 올려놓은 건 우선순위가 바뀐 측면이 있다.

탈모보다 시급한 희귀ㆍ난치 질환먼저 정의를 보자. 희귀질환은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특정 시점에 특정 질병을 앓는 인구)를 파악하기 힘든 질환이다. 대부분은 유전적 원인으로 발병한다. 유병인구 2만명 이하인 병이 희귀질환인데, 각막이 점점 얇아지는 '원추각막', 골수에서 혈액세포가 감소하는 '재생불량성빈혈' 등 이름부터 생소한 병들이 대개 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현재 국가가 관리하는 희귀질환은 1389개다.

난치질환은 말 그대로 완치가 어렵고 관리가 힘들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뇌의 신경세포가 줄어들어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파킨슨병'이나 '만성신장질환' 등이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이 이 문제를 꺼내들진 않았지만 희귀ㆍ난치질환을 겪는 환자는 적지 않다. 한국희귀ㆍ난치성질환연합회는 국내에 80만여명의 희귀ㆍ난치성질환 환자가 있으며, 그 수가 매년 조금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이는 완치되는 환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발병 환자만 쌓이고 있기 때문인데, 여기엔 이유가 있다. 희귀질환과 난치질환 둘 다 치료하기 매우 어려워서다. 의료 업계에 따르면 현재 치료제가 개발된 희귀ㆍ난치질환은 5.0%에 불과하다. 나머지 95.0%의 병을 앓는 환자들은 치료제 없이 계속 고통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대부분의 희귀ㆍ난치질환 치료제는 일반인이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비싸다. 일례로, 온몸의 근육이 점차 위축되는 '척수성 근위축증'의 치료제 '졸겐스마(Zolgensma)' 가격은 20억원에 달한다. 이 병을 앓는 환자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아 제약회사가 치료제 개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초고가로 책정했다.

다행스러운 건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이하 건강보험)을 통해 희귀ㆍ난치질환 치료비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의료비지원 혜택 중 하나인 '산정특례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건강보험에서 환자의 본인부담금 비율을 5~10% 수준으로 대폭 경감해주는 제도다.

생존권 위협받는 환자들암과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등 3대 질환과 희귀ㆍ난치질환 같은 진료비 부담이 높은 질환이 산정특례제도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앞서 언급한 졸겐스마도 2022년 6월 산정특례 대상으로 지정돼 본인부담금이 기존 20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었다.

2차 방어막인 '본인부담상한제'도 있다. 환자가 상한액 이상의 치료비를 낼 경우, 초과분을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거다. 상한액은 83만원(1분위ㆍ하위 10%)부터 598만원(10분위ㆍ상위 10%)까지 소득 수준마다 다르다.

이 제도를 적용하면 졸겐스마 치료비는 1억~2억원에서 58만~598만원까지 줄어든다. 건강보험이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벼랑 끝에 몰린 서민의 든든한 안전망 역할을 하는 셈이다.[※참고: 산정특례제도와 본인부담상한제는 건강보험 보장범위인 '급여항목'에만 적용된다.]

문제는 이렇게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 건강보험이 수년 내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단 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9월 전진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재정운영위원회 재정전망'에 따르면, 2026년 건강보험 당기수지가 4조1238억원 적자로 전환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도 지난 9월 3일 발표한 '제3차 장기재정전망(2025~2065)'에서 건강보험 준비금이 2033년에 소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 | 뉴시스]

건강보험 재정의 위기는 곧 희귀ㆍ난치질환 환자들의 '생존 위기'로 직결된다. 이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고가의 신약과 최신 치료법은 건강보험의 보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들 환자에게 지원되는 급여비 규모도 작지 않다. 2024년만 6100억원이 쓰였고, 올해도 4800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재정 곳간이 빠르게 말라가는 현 상황에서 이 비용은 '다수를 우선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삭감되거나 지급이 지연되는 타깃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가 희귀ㆍ난치질환 환자를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니다. 질병관리청은 11월 27일 희귀질환 75개(1314→1389개)를 국가관리 대상으로 새로 지정하고, 희귀질환자 진단과 치료지원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예산도 2025년 42억원에서 2026년 55억원으로 29.8% 늘리기로 확정했다. 구체적으론 희귀질환 전문기관 운영(23억원), 희귀질환 등록사업(10억원), 찾아가는 희귀질환 진단지원(13억원)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관리하는 질환 수를 늘리고 조기 진단을 실시한다 해도 치료비를 보조해 줄 재원이 부족하다면 '반쪽자리 행정'에 그칠 뿐이다. 정부가 내년 1월 1일부로 건강보험료율(소득 대비 건강보험료 비율)을 기존 7.09%에서 7.19%로 0.1%포인트 올리기로 결정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란 지적이 나온다. 이 정도로는 가파르게 줄어드는 재원을 회복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종혁 호서대(제약공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다 보면 결국 다수가 이용하는 질환에 밀려 희귀질환자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항암제 기금(CDF)처럼 초고가 신약이나 희귀질환 치료만을 위한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과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투트랙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사진 | 뉴시스]

이 대통령은 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 24일 희귀질환 환우와 가족들을 만나 "희귀질환 치료 문제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치료ㆍ진단ㆍ복지ㆍ지원 전반에 걸친 개선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진국의 조세 부담률은 약 24%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17% 수준까지 떨어져 있다"며 "결국 국가 경제의 볼륨을 키우고 세수를 사회 구성원 간의 협의를 거쳐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탈모 치료든 희귀질환 환자 지원이든 결국엔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얘기다.

늦었지만 이 대통령이 희귀질환 문제를 공론화한 건 다행이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증세는 말처럼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합리적인 명분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도 갖춰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복지부가 '탈모 치료'를 둘러싼 정책적 논의를 진행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과연 이 대통령은 '탈모 치료' 논란을 넘어 본질을 좇을 수 있을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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