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아,극단적 상황 구조된 뒤 남긴 통한의 글 “왜 미쳐 날뛰는지 얘기하고 싶었다”

박아름 2026. 1. 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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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권민아 SNS, 뉴스엔DB

[뉴스엔 박아름 기자]

권민아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구조된 뒤 대중을 향해 오래 묵혀뒀던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AOA 출신 권민아는 1월 1일 자신의 SNS에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먼저 "이 아이는 1993년에 태어났어요. 친아빠는 저를 아들이 아닌 걸 알게돼 낙태하길 원했으나 엄마가 저를 꼭 낳고 싶었대요"라고 운을 뗀 권민아는 "그렇게 태어나 5~6살 기억은 온통 아버지의 가정폭력이였죠. 6살 때는 엄마가 의식없이 맞아서 쓰러져 있길래 112에 신고를 했는데 너무 어려서 경찰 아저씨한테 집 주소를 최대한 표현하려고 힘들었는데 결국 경찰관 분들이 찾아와주셨고, 그해 아마 이혼을 했을 겁니다. 눈 떠보니 7살에 저와 엄마랑 언니는 바퀴벌레와 쥐랑 온갖 벌레가 섞인 11평쯤 되는 오래된 주택에 지내면서 보일러를 틀 수 없어 저는 찬물 샤워를 못 하는데 매번 어머니가 물을 끓여줬어요. 따뜻한 엄마예요. 제대로 씻지 못해서 떼가 끼어 친구한데 지적도 당해보고.. 그래서 성인이 되고서는 샤워에 강박이 생긴 건지 결벽증이 생겼네요. 아무튼 초등학생까지 저는 수학만큼은 모든 상을 탈 정도로 좋아하고, 잘했는데 다른 과목에는 관심이 없었죠. 언니나 사촌 친척들은 다들 하버드대, 서울대, 고려대 등 스마트한 집안이지만 저는 아버지가 양육비를 주질 않아 6학년 때 고민을 했어요. 아 내가 저 예쁘고 가여운 엄마를 지켜야지 하고 중 1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여러 군데 뛰면서 끝나면 새벽이나 아침이 돼 학교를 점점 빠지게 됐고 저는 결국 좋은 담임 선생님께 솔직하게 털어놓고 자퇴를 했는데 그 무렵 저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고, 저도 마음을 열었는데.. 하필이면 그 친구는 벌써 성에 눈을 뜨고, 남자를 좋아해서 저랑 마찰이 생겼어요. 아니.. 제가 일방적으로 혼냈어요 감히"라며 자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 권민아는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에게 다른 중학교 남자애가 연락이 왔고, 만나러 가려는 그 친구에게 오늘은 우리끼리 있자 했는데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말에 걱정이 돼 같이 갔어요. 도착해서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우리와 동갑인 남자 애들은 열차렷을 하고 있고, 빈 집에 모르는 사이지만 유명한 일진이라 이름은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1살 위 남자 선배가 있었고 무서워서 '저희 집으로 보내주시면 안 돼요?' 말을 뱉는 동시에 무차별 폭행이 시작됐어요. 18년 전 사건인데 그 집의 구조, 그 가해자의 표정, 생생해요. 한 6~7시간 맞았나? 맥주병으로도 맞고.. 그냥 질질 끌려다니며 몸 위주로 맞는데 '아 이게 맞다가 죽는 건가?' 의식이 약해질쯤 갑자기 저를 방안으로 데려가 옷을 벗기더라고요. 그때는 무슨 정신인지 울고 빌며 강간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 강간을 당하고, 옆방에 저를 넣더니 거기엔 무서운 동갑짜리 남자가 저의 온몸을 만져요. 한참 갖고 놀고 놓아줬을 때는 새벽이었고 피 투성이에 온몸에 멍이들어 집까지 7~8분 거리를 기어가듯 그 친구랑 도착했고 엄마가 깨기 전에 긴팔 긴바지로 몸을 가리고, 엄마가 아침돼 가린다고 가렸으나 어딘가 상태 안 좋은 저희에게 무슨 일이냐고 해서 저는 웃으면서 '친구랑 치고박고 싸웠는데 내가 이겼어!' 이 말을 끝으로 가출마냥 숨어다니고, 모든 아르바이트도 멈추고, 병원조차 못 갔고, 회복이 될 때쯤 말이 없어지고 서먹서먹하게 엄마한데 짜증내고.. 게보린 먹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길래 게보린 8알을 삼켰는데 위가 아프고 토하고 다시 제정신이 됐어요"라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권민아는 "그 무렵 엄마도 서울 상경을 원했고, 저도 새 삶을 위해 정말 원했는데 밤 중에 우리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고 잠시 집 앞으로 나와보래서 나갔더니 남녀 열다섯 이상? 그냥 감이 왔으나 도망칠 수 없었어요. 알고보니 나와 함께 힘든 사건을 겪은 그 친구의 배신과 이간질들.. 왜.. 그렇게 마지막 부산은 집단 폭행으로 대소변을 눌 정도로 맞고 엄마에게만 비밀로 해달라 하고 밖에서 회복될 때까지 지내다가 우리 집은 서울에 아주 작지만 그래도 깨끗한 오피스텔에서 새로운 삶과 도전을 꿈꾸며 올라왔죠"라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 사연을 공개한 뒤 "부산의 모든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서울에서만큼은 잘 살자! 성공하자! 그렇게 알바를 다시 하고 직원도 됐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실력은 없지만 당돌했던 저에게 기회를 주셨고 그렇게 연습생이 됐는데 그 때부터 다시 악몽의 시작이더군요"라고 가수 데뷔 후 이야기를 전했다.

데뷔 후에도 힘든 시간이 계속됐다. 권민아는 "원래 이런 제도 이런 생활인 줄 알고 물 떠주고, 욕 먹고, 심부름 해주고 맞고 그렇게 3년 반 뒤에 데뷔를 했고 저 일상은 똑같았지만 무대 위에서 저는 행복했고 심지어 3~4년 뒤 저희는 1위도 하고 제법 성공한 위치였어요. 그 와중에 2014년도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작아진 아빠를 보고, 생각보다 슬펐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해골이 된 아빠를 잠시 보고 온 다음 날 '인기가요'였고, 늘 감정을 잘 숨기기 위해 혼자 산책도 하고 방송도 잘 이겨냈는데.. 하필 그날 헤어 수정을 받다가 소리는 안 냈지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제 옆에는 그 언니가 수정받고 있다가 옷장으로 절 멱살잡듯 끓고 가더니 너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너의 눈치를 봐야하냐며 혼을 냈고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소리에 저는 무섭다고.. '아빠가 곧 죽는 게 무서워 언니' 하고 울었고 그렇게 다시 무대에 서고 연기를 하고.. 팬미팅 시간 때는 회사에서 아버지 병문안 시간을 줬어요. 그래서 몇 번 빠졌었고.. 스케줄 후 본집에 도착했고 눈 앞에는 5분 거리에 아버지가 입원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저도 췌장암에 대해 몰랐는데 점점 더 해골로 변하는 모습에 엄마도 울고, 언니도 울고.. 근데요 저는 안 갔어요. 볼 수 있었는데..아니 못 갔어요. 그것보다 무서운 존재가 저에겐 그 언니였어요. 제가 또 현장에서 자칫 눈물이라도 흘리면 또 혼날테니깐.. 최대한 일에 더 집중해보려고 했죠. '사뿐사뿐' 때였던가 그게? 아무튼 그러다 췌장암 소식을 안 지 2달 만에 위급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아빠에게 갔을 땐 눈 감고 있는 아빠가 보였고 아직 심장은 뛰고 있어서 엄마가 아빠 듣고 있으니 사랑한단 말 해주라고.. 근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내뱉으려고 고민중에 삐 소리와 함께 아빠가 갔어요. 아빠 옆에는 스케치북이 있었고, 소리도 안 나왔는지 연필로 '우리 막둥이 어디있어요?' 적혀진 스케치북을 발견하곤 결국 많이 울었어요. 그래도 개인사정이고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기에 멘탈을 잡고 다시 밝게 활동을 했지만 무엇보다 힘들게 만든 건 그 언니의 괴롭힘과 비속어들이었고, 같은 숙소 같은 차속에서 저는 자낙스나 스틸록스 먹고 최대한 안 듣기위해 행사장 도착전 까지는 잠들기 위해 그렇게 지냈는데 행사장 때 한 번은 약이 좀 안깨서 안무 실수를 한 번 하는 바람에 또 혼났죠. 그냥 어떻게 해도 미움 받고 힘드니깐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있다가 언니가 잠들 때쯤 들어가고 그렇게 버티다가 숙소에 언니 지인이 오고 저는 수면제를 먹은 상태인데 거실에서 한참을 시끄럽더니 절 깨워서 요 앞 놀이터에서 벌칙을 하고 오래요. 하라면 해야죠. 근데 26살쯤 저는 이제 예민함의 끝이고 16~17살의 제가 아닌 저도 이제 어른이었고, 날 왜 싫어하는지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댄스실에서 싸우고 싶더라고요. XX이 입밖으로 나오려는데 다른 멤버가 말렸고 아 다른 멤버들은 진심이겠거니 그들을 보면서 힘을 냈지만 그냥 제 앞에서는 그 언니 욕 그 언니 앞에서는 제 욕 그리고 바라는 건 재계약 근데 그때 헤어라인 시술하다가 마취가 안 깨서 잘못돼 댄스 레슨 시간이었는데 제가 마취가 늦게 깨 아주 큰 잘못을 하고, 댄스 레슨에 이미 늦은 상태였고 그 언니에게 죄송하다고 전화를 걸었는데 갑자기 그 화내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제가 미쳐가는 것 같았고 울음이 터졌고, 숙소로 가달라고 매니저님께 부탁했고, 모아뒀던 스틸녹스랑 자낙스 150개에서 160개 정도 언젠가를 위해 부지런히 모았죠. 유서에는 그 언니 이름을 쓰고 저는 그 용량을 거의 다 삼키던 도중 입안에는 약이 채 안 넘어간 것들도 있었고 기절했었는데 절 좋아해주던 매니저 동생이 불안했는지 다시 숙소에 와서 제 모습을 발견하고 응급실을 다녀왔고 의식은 찾았지만, 몇 일 토 하며 눈 앞이 안보였어요. 그러다 회사에서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붙여줬는데 용기내 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 분께 같이 상담받던 후배가 제 이야기를 알고 그 의사 분은 제 앞에서 그 후배 이야기를 서스럼없이 얘기해주시고.. 아 비밀보장이 없구나 이러다간 모두가 알겠다 싶어서 다시 말을 아끼고, 그렇게 다시 혼자 이겨내려다 재계약 날이 다가왔고 5분간 멤버들만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냥 가장 충격의 기억이었던 아버지 돌아가실 때 '인기가요'에서 언니가 옷장에서 뱉은 말을 말하며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그런 말 할 정도로 나쁜X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고 절 노려보고 나서는 다같이 재계약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거라고 설명하는데 그 순간 저는 그냥 꿈을 포기해야겠다 싶었고 안 하겠다고 단호하게 얘기했고 나머지만 하기로 정리가 되나 싶었고 그들을 바라보며 저는 자해로 시작해 자살시도가 반복됐고 SNS를 통해 제가 겪은 아주 일부의 상황들과 그 언니의 진짜 모습, 아니 나한테 한 모습을 밝히고 싶었고, 그러다 답은 소설이란 두글자 그 후 한 멤버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 언니가 사과하면 받아주겠냐고 너희 집에 가도 되냐고 해서 제가 정말 원하는 건 진심어린 사과. 그거 하나라고 당연히 와도 된다고 그렇게 기대감에 기다렸는데 멤버들과, 그 언니랑 유독 친한 매니저와 남자 팀장까지 들어오면서 다들 녹취를 해요. 그러고 그 언니는 잔뜩 화가난 상태로 '야 칼 어딨냐? 내가 죽으면 되냐?'며 소리를 지르고 어벙벙하다가 다시 침착하게 대화가 시작됐고 저도 흥분이 된 상태로 물었어요. 나한데 갑자기 '얼굴이 X같네', '흔들려' 활동 때 무대 의상 입은 저를 향해 '야 너 몸매가 왜 그래? XX같아' 등 약한 것부터 대체 왜? 이유를 물었으나 기억이 안난대요. 제가 언니는 미워도 언니 아버지는 좋아했었고 그 아픔을 난 먼저 느꼈었으니 장례식장을 갔었죠. 그때 절 보고 울길래 잠시 뭘 느꼈나 싶었는데 제 눈앞에 이 여자는 다시 본성으로 돌아와 있었고, 저도 그 모습에 흥분을 해서 그래 다 녹취하고 찍어라 괜찮다 나? 언니의 아빠와 내 아빠를 걸고 거짓말 한톨 안 붙이고 솔직히 10년간 당한 기억? 나도 전부 못해. 근데 진실만을 물어볼게. 이유라도 알자. 왜 그랬어? 여러 가지의 질문에도 기억이 안 난다 무표정의 미안.. 반복되는 반응에 저는 계속 털어놓다가 아 그냥 여기서 더 바랄 것도 변할 것도 진심어린 사과도 인정도 못 받을걸 느껴서 그냥 가라고 했고 저도 흥분을 가라앉힌 채 괜찮은 척 의리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머지랑 그냥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조금 얘기하다가 바이하고 다 보냈어요. 그 후 갑자기 기사가 떴어요. 그 언니가 저한테 무릎꿇고 사과했다는 내용과 함께.. 뭐지? 같이 온 언니랑 친한 팀장님께 여쭤봤어요. 함께 보고 계셨으니 기사에 왜 벌어지지도 않은 내용이 있어요? 왜 거짓말 하냐고 카톡을 보냈더니 답장이 잠시만 하고 한참 후에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라는 답이 왔고, 외로웠어요. 그 자리에 분명 제 편들도 있었으나 힘이라는 게 있고 없고 위치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 날 저는 또 손목을 긋고 응급실행이었고, 계속해서 나 혼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고 나중엔 대중이 저 때문에 피로해지고 끔찍한 사진들 때문에 정도껏을 넘어선 제게 모두가 돌아섰어요. 그때 든 생각은 '이 여자 만나고 싶다' '나도 때릴래' '나도 욕할래' 미친 상태로 매일 울며 자살시도 하다가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 언니 어딨냐고.. 그리고 그 언니에게 매일 할 수 있는 욕이란 다 보냈어요. 그게 제 복수였고, 언니는 한 통의 답장도 없다가 매체에 원본 아닌 초반도 중간도 없는 끝 내용의 녹취록만 보내놓고 묘하게 제가 연습생 때 말 안 듣는, 왠지 이유가 나에게 있는 것처럼 단독 보도가 됐고 제가 보낸 욕 문자가 전부 공개됐어요. 그러고 나서는 제가 가해자가 됐어요"라고 회상했다.

권민아는 "저는 무너지고, 매일 공황 발작에, 엄마 눈에도 눈물이 나고, 그냥 화풀이를 제 몸에 했어요. 칼로 배를 여러번 쑤셔보고 허벅지는 그어보고 죽을 방법은 손목 아니면 목이라고 생각해서 수없이 있는 힘껏 그었는데 부산대에서 눈을 뜨니 제가 또 살아있고 뭐 전신마취로 수술했다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손가락을 움직여 보래요. 느리지만 움직여졌고, 대신 감각은 못 찾을 거라고.. 그래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게 다행이라며 의사 선생님은 기뻐하시고 위로해주셨는데 저는 그냥 하늘이 원망스러웠고, 아직도 왼손가락 4개는 감각이 당연히 없고 팔에는 쥐가 나는 고통을 매일 겪다가 그래 다시 트라우마들 이겨내고 난 가장이니깐 다시 우리 엄마도 언니도 행복하게 만들어보자 이겨내려고 했고 운좋게 강간 상해 사건도 부산 경찰관 분들이 조사하시면서 상해까지 입증이 되면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말에 희망을 품고 7시간동안 영상진술도 하고 몇 년이 지나 검사 구형은 징역 10년에 얼굴, 이름 공개라는 벌을 내렸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성인이 돼서도 너무 잘 살고 있고, 한치의 죄책감도 없고, 변호사를 3분이나 써가시면서 재판 진행을 했어요. 검사님 덕분에 부산 친구들도 증인으로 나와줬고, 현장에 있었던 안 친한 친구들도 증언해주고.. 저 때문에 다들 고생해서.. 속상했지만 제발 징역 조금이라도 살아.. 내가 느낀 고통을 가해자에게 다 줄 순 없으니 그냥 1년이라도 감옥에 살길 바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결과지도 보내고 재판장님께 진심을 담아 탄원서도 2번 쓴 상태지만 1심에선 강간죄는 인정이 됐고, 상해죄가 인정이 되지 않아 공소시효 지남으로 무죄. 그리고 검사님은 다시 항소를 해주셨고 지금은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민아는 "최근에 면접도 보고 새로운 일을 찾아가며 다시 살고 싶었어요. 아니 그냥 하루 하루 무기력하지만 집안에서는 약으로 버티고 매일 일기를 쓰며 스트레스를 풀고, 밖에서는 일 자리를 얻기 위해 모든 게 회복된 척 밝게 다니고.. 그냥 조용히 살아야지 했는데 어제 저는 모든게 무너졌어요. 나는 나락간 아이고, 정신병자고, 맞아요. 저 좀 알아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해요. 다들 악플을 달고 '제발 좀 죽어라하고 잘가' 하시는데 저도 최선을 다해서 죽음을 향해 더 대담하게 다가가고 이젠 무너졌어요. 정말 버티기도 괴로워요 상황도 좋은 상황도 당연히 아닐뿐더러.. 그나마 그 당시 제 고민과 제 가정사와 비슷했던 유명하고 예쁜 친구가 생겼었는데 먼저 갔어요. 제가 잠시 일본에 혼자 가있는 동안.. 이제 제 주변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사람새끼는 맞는지 정을 주고 잘 대해주면 결국 나는 만만한 인간이 돼있고 강한 척 굴면 쟤는 소문이나 기사 내용대로 미친X이네 하고, 저도 사는 방법과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다 까먹었어요. 강아지로 위로 받고, 그러다 모찌가 무지개 다리 갔을 땐 더 슬펐고, 지금도 엄마랑 뚜니 영상 보면서 유일하게 웃는데.. 사실 제가 너무 고장났어요.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겪은 상황들, 일어난 일든, 오해가 있는 일들에 대해 전부 사실적으로 털어놓고 싶어요. 이제는 내가 외친다고 한들 누가 들어주고 봐줄까요? 저는 그저 관종, 죽어야할 X, 대중이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는 X.. 아니에요. 그냥 제 얘기 좀 누군가는 들어주세요. 관심이 고픈게 아니라 저는 사실을 진실을 알리고 싶고 제가 왜 고장나서 미쳐 날 뛰는지 그냥 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어제 제가 죽었으면 오늘의 이야기도 없었겠지만 저는 또 숨쉬고 또 들어주지 않을 말을 적어봐요. 바라는 거 없어요. 그냥 심장이 답답하고 너무 힘들어요. 슬퍼요. 나도 살고 싶어요. 더 멋지고 화려하게.. 근데 이젠 그 열정마저 안 생겨요. 26살 때부터 자살시도를 하며 이제 곧 34살이에요. 아침에 눈 뜨면 그냥 기분이 없어요. 나는 왜 살고 있나?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잘 모르겠어. 근데도 내가 버티는 이유는 34살동안 행복이라는 건 기억에 없고 나쁜 기억들만 가득하고 죄없이 늘 벌 받는 삶으로 살아온 것 같은데 이제는 하늘이 있다면 좋은 일 좀 생기게 해주시지.. 아니 생길거야 희망 품고 그거 하나로 버텨요. 나도 언젠간 회복되어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사는 거.. 근데 이제는 그 희망조차 사라져서 저 또한 사라지고 싶어요. 안 살려줘도 되는데.. 그리고 다들 그것을 바랄텐데.. 가해자들은 왜 기억을 못할까 정말 기억이 없는 걸까 없는 척 하는 걸까? 피해자는 왜 기억이 생생할까? 기억상실증 그거 어떻게 하면 걸려서 통으로 날아갈까? 지금도 내가 쓴 글은 그저 관심을 위한 발악의 글.. 모두에게 또 저는 상처를 주고 있는 나 자신..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묻고 싶었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뻔하겠지만 저도 제 감정을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내 말을 믿어줄까 하고 써보는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라고 호소했다.

끝으로 권민아는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요. 저는 왜 죽었으면 하나요? 제가 마약을 했어요? 음주운전을 했어요? 사람을 팼어요? 아니면 무슨 범죄를 저질렀나요? 법에서 어긋나는 잘못된 행동을 했나요? 음주운전을 해도, 사람을 패도, 과거가 더러워도 마약을 해도 다시 승소하고 없던일 마냥 잠시 활동 멈췄다가 잊혀질 때쯤 꿈을 펼치고 있는 대다수의 멋진 남자 선배님들.. 여자가 했다간 매장, 잘생긴 남자가 하면 이미 만들어진 팬층 덕에 잘 먹고, 잘 살고, 저지른 범죄는 잊혀지고 TV에 나와 다시 멋진 연기를 펼치죠. 이런 말 뱉어도 되려나 부럽다. 근데 또 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멋지네 나도 연기 잘 할 수 있는데.. 나는 죽어야 되는 존재가 됐고, 온통 거짓말에 가해자가 돼있는데 무슨 범죄와 무슨 죄를 지었나요? 적당한 선을 넘었기에? 당신들을 피로하고 좋은 날에 제가 기분을 망쳐서? 그게 범죄보다 큰 잘못이라면 수긍해야죠. 여자는 마약하면 그 날로 끝이고, 학폭 있으면 활동 못하던데 그리고 저처럼 말 많고 내 몸에 상처내도 나락가는데.. 남자 연예인은 조금 덜 벌 받는 것 같아서 얘기해 봤어요. 나도 정말 잘생기고, 능력 좋고, 연기로 모든 게 용서되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 권민아는 "아 또 뭐가 떠오르네. 그 언니는 악플에도 울고 상처받아, 방송을 안 나갔고 제가 대신 그 리얼리티에 투입되고 전 위로해주고, 언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스케줄도 다 취소하고, 아버지는 1인실에서 언니가 최선을 다했다던데.. 나는 언니 때문에 아빠 딱 2~3번 봤어. 간병도 못 해줬고 감히 내가 스케줄 취소? 나는 못 했는데 너는 다 누리고 다 부리고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면서 댄스 선생님이랑 같이 같은 멤버 욕하고 나한테는 수면제에 취했는지 지금 네 옆에 있는 그 애를 욕하고 따로 대표님을 만난다며 알려주곤 했지. 그리고 다음 날엔 다른 멤버 욕. 그럼 나는 들어줄 순 있지만 맞장구는 못 쳐줬어. 혹시 그것 때문에 날 끝까지 괴롭혔니?"라고 다시 한번 지민을 저격했다.

한편 권민아는 지난 2012년 AOA 멤버로 데뷔, 2019년 5월 그룹을 탈퇴한 후 배우로 전향했다. 2020년 7월 AOA 전 리더였던 지민으로부터 10여 년간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해 파장을 불렀다.

권민아는 최근 모덴베리코리아와 전속계약을 맺었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상호 합의 하에 전속계약을 해지했다. 하민기와의 캐럴로 AOA 탈퇴 이후 7년 만에 신곡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권민아는 내년 1월 첫 단독 팬미팅은 예정대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권민아는 1월 1일 자신의 SNS에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죄송합니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겨 팬들의 걱정을 자아낸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긴급 구조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후 전 소속사 모덴베리코리아는 권민아를 향한 악성 댓글 및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뉴스엔 박아름 ja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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