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화산꽃

화산꽃-임순월
벌레 한 마리가 식탁을 가로지르고 있다. 녀석은 몸을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속도를 낸다. 녀석의 정체는 굼벵이를 닮은 작은 밤벌레다. 딱딱한 껍질 속에서도 저리 통통하게 자랐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녀석의 길을 막고 살짝 건드려본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동그랗게 몸을 말더니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처럼 음흉을 떤다.
어쩌면 밀폐된 껍질 속이 더 안전했을지도 모른다. 속살을 죄다 먹어 치우는 날까지는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내겐 목숨을 건 사투였어.' 꼼짝도 하지 않는 녀석이 항의를 하는 것 같다. '웃기고 있네. 그건 내가 알 바 아냐. 단지 너는 거기에 있고 난 여기에 있을 뿐이야.' 나는 우연을 빙자해 서로의 존재를 해석한다.
어찌 되었건 녀석은 기존의 세계 밖으로 나왔고 나에겐 녀석의 이승을 통제할 권한이 있다. 따라서 녀석의 운명은 나에게 달려 있다. 당장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리든지 창틀에 올려놓고 햇볕에 말라 죽도록 내버려두든지 살해의 방법은 다양하다. 나는 생뚱맞은 상상에 체머리를 흔든다. 꼼짝도 하지 않던 녀석이 다시 몸을 풀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식탁 가장자리에 다다르자 방향을 바꾼다.
'어쭈, 너도 감각이 있다는 거지?' 녀석이 만약 이승의 영토를 식탁으로 고집한다면 녀석의 장지 또한 식탁이 될 것이다. 또다시 길을 막고 이젠 녀석의 몸을 살짝 만져본다. 그런데 생명이 없는 것처럼 단단하다. 유연한 몸에 비해 날카로운 발을 가진 쌀벌레와는 대조적이다. 쌀벌레는 살을 파고드는 그 오싹함 때문에 살생을 꺼리게 되는데 말이다. 나는 밤벌레를 집었던 손가락 끝을 비비며 반항하지 않는 녀석이라서 좀 자유롭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은 꽤나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살욕이란 누군가가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저주와는 다르다. 능동과 수동의 면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다만 죽여버리고 싶은 누군가라는 익명성 속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이 욕망은 어느 날 문득 생겨난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사명감에 가까울 정도로 굳어진 의지이다. 그렇다고 체계적으로 살해 방법을 궁리하거나 살해 대상을 떠올려 본 것은 아니다. 그건 무의식적인 열망일 뿐 나는 어떤 미물에게도 잔인한 힘을 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자꾸만 망치가 그립다. 돌을 깎는 석공처럼 뭔가를 내리치고 싶다. 느닷없이 열이 나고 느닷없이 춥고 그러다가 화가 나고. 신경정신과를 가보라는 친구의 조언은 필요 없다. 내 병은 내가 더 잘 아니까.
거실 입구의 벽면엔 작은 액자가 걸려 있다. 그림보다 표구가 맘에 들어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것이다. 머리는 개(犬)이고 몸은 사람인, 죽음의 신들이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그림이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진짜로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신도 모를 것이다. 죽어본 적이 없으니 어찌 알겠는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고 믿어도 될 것 같다.
나는 밤벌레의 영역을 넓혀주기 위해 약봉지와 김 통, 그리고 책들을 옮겨준다.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노태맹의 『유리에 가서 불탄다』라는 시집은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한 책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주인공이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장면은 싫다. 돈도 없는 주제에 자신이 비범한 존재라고 믿는 창수를 닮았기 때문이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옆차기인 줄도 모르는.
여전히 밤벌레는 방해물들을 피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목적지도 없으면서 언제까지 그럴 거니? 나는 보는 것과 보여짐의 권태에 못 이겨 순간적으로 집어 든 밤벌레를 변기에 넣자마자 레버를 누른다. 회오리치는 물살과 함께 녀석이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물이 차오른다. 한 생명이 이리도 쉽게 없어지다니, 나는 푸우 긴 숨을 내쉬며 '미안해할 것 없어. 녀석의 운명이잖아. 운이 좋으면 또 살겠지.' 나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녀석의 빈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죄책감 때문인지 천장 어딘가에서 거미들이 내려올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허공을 휘젓던 손바닥을 탁자에 탁 내리친다.
그러자 식탁에 놓여 있던 사물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나는 조금 전의 일을 잊기 위해 벌떡 일어나 칼을 빼 들고 거실 바닥에 앉는다. 아직도 불규칙하게 뛰는 맥박을 가라앉히며 밤을 깐다. 세 개째 밤을 까고 있을 때 창수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소변 누는 소리가 찔찔찔, 전립선 비대증이 더 심해진 모양이다. 자궁도 없는 창수는 고추로 생리를 하는지 변기를 붉게 물들일 때가 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창수가 머리를 털던 수건을 발가락 사이에 끼고 문지른다. 아무래도 저 수건은 버려야겠다. 손톱깎이를 들고 내 옆에 앉은 창수가 알밤 하나를 입에 넣는다. 뚜두둑 맑은 고음이 거실의 정적을 깬다. 나는 밤을 까고 창수는 발톱을 깎는다. 깎인 발톱이 알밤 접시에 떨어진다. 또다시 창수의 손이 밤을 집는다. 접시의 발톱은 그대로다. 나는 엉덩이를 밀어 구석으로 옮겨 앉는다. 그래 봐야 같은 시공간이다.
톡톡톡, 여기저기 발톱이 튄다. 창수는 저 발톱들을 그대로 둘 것이다. 제 손으로 제 발톱을 깎은 지도 채 1년이 안 된다. 무좀 때문에 살갗이 하얗게 벗겨지고 진물이 났다. 그제야 나는 더 이상 깎아줄 수 없다고 했다. 그때도 쉬운 말을 어렵게 했다.
"돈 좀 준비해."
"어디서요?"
"그걸 알면 내가 하지."
"얼마나요"
"많을수록 좋지."
"이젠 구할 데가 없는데요."
"그러니까 준비하라는 게지."
준비? 준비란 미래다. 작은애가 죽은 뒤로 나의 미래는 언제나 과거로 향한다. 과거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현재가 되어서 싫다. 창수는 우두둑, 우두둑, 알밤 으깨는 소리에 힘을 실으며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그건 실행을 독촉하는 신호다. 나는 점점 더 밤벌레가 되는 것 같다. 바둑판 위에 알밤 접시를 올려놓고 네모난 칸들을 바라본다.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는 정사각형의 배열이다.
삶의 규칙과 질서도 모르는 창수는 기원에만 가면 다 죽이는 아마추어 3급이라며 자랑을 한다.
"누굴 죽여요?"

나는 돈도 안 되는 바둑 3급의 실력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그래도 한때는 창수와 머리를 맞대고 오목을 두기도 했다. 흑돌 다섯 개를 나란히 붙여놓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사이 번번이 백돌이 이겼다. 아무리 봐도 바둑판에 숨어 있다는 무수한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숨이 막히도록 정교한 바둑판을 보고 있노라니 도끼가 그립다. 무엇이든 내리찍고만 싶다.
열 시! 청명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시간을 알려준다. 작은방으로 들어간 창수는 뭘 하는지 나오지 않는다. 벌써 한 시간째다. 방엔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오래전 방을 따로 쓰자고 했을 때 창수는 각방을 쓰면 일찍 죽는다고 했다. "오래 살고 싶어요?" 내가 물었고 "아니 그럼, 당신은 죽고 싶어?" 창수가 되물었다. 결론은 지금껏 합방이다. 나는 바가지를 들고 작은방으로 향한다. 삶은 서리태를 우유와 함께 갈아 먹으면 하얀 머리 검은 머리 되고, 없는 머리 못자리 된다는 창수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머리숱은 줄고 흰머리는 늘어만 가는데도 그렇다. 냉기가 느껴지는 방바닥엔 주워 온 도토리와 땅콩이 널려 있다. 도토리와 땅콩 사이를 비집고 앉은 창수는 통장을 대조하며 네모 칸에 V자 표시와 숫자를 적어 넣는다. 살기 어린 집중력에 방 안의 공기마저 응고되는 것 같다. 그러나 흰머리를 울타리 삼아 누렇게 번들거리는 정수리, 겨울철 빨랫줄에 걸린 슈트처럼 툭 불거진 견갑골, 귀밑으로 몰려든 주름살, 어느 것 하나 보디빌더 같던 젊은 날의 흔적이 없다. 그 남자가 이 남자인지조차 낯설다. 앉은뱅이 탁자 위엔 서류뭉치가 쌓여 있고 매일 둘러메고 다니는 배낭은 알 수 없는 비밀들로 불룩하다. 다만 태극기와 꽹과리는 학생들 가방의 교과서처럼 공개된 소지품이다. 한 손으론 창수의 턱을 받치고 한 손엔 꽹과리채를 잡고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 따당 따당 따 따당…….
박자에 맞춰 정수리를 때려주고 싶다. 처음 꽹과리를 배울 때 창수가 읊던 소리다. 내 그림자가 빈정거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창수가 엉덩이 한쪽을 들썩이며 킁킁 목기침을 한다. 빨리 꺼지라는 뜻이다.
"빌린 돈은 어디에 써요?"
"보면 모르는가? 농사를 짓는 거지."
"무슨 농사요?"
"부정 선거에 대한 증거를 밝히면 나라도 살고 나도 살 테니까 정치도 농사랑 같은 게지."
창수는 말끝마다 농사 타령이다. 목선이 늘어진 내복 위로 올라온 창수의 목뼈가 점점 더 구부러진다. 서리태 바가지를 들고 서 있는 나의 눈이 부예진다. 누구에 대한 연민인지 나는 보일러 스위치를 눌러주고 방을 나온다. 창수에겐 귀농할 고향도 없고 땅도 한 평 없다.
태어날 때부터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왔다는 창수는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고 어머니는 시집을 갔다고 했다. 술에 취하면 외할머니가 무슨 죄냐고, 동네 사람들의 그 엿 같은 눈빛을 몰랐을 것 같냐며 주사를 부리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것쯤은 창수도 알았을 것이다. 출생의 비밀은 창수의 모든 잘못에 면죄부를 줘야 하는 계시와 같았고 간혹 나를 아내가 아닌 어머니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시대 탓도 부모 탓도 부질없는 일이다.
"안 자?"
안방으로 들어가는 창수의 그림자가 문지방에 멈춰 있다. 방바닥엔 언제나 매트와 이불이 깔려 있다. 나는 창수가 덮어주는 이불 속에 나란히 눕는다. 창수의 가슴은 가시 돋친 방패 같지만 그래도 온기가 있다. 그 품이 안전하다고 믿었고 길들여졌다.
창수가 숨을 쉰다. 냄새 때문에 반대쪽으로 돌아눕자 배에서 꼬르륵 작은 물방울 소리가 난다. 나는 금식 중이다. 의료보험 공단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 것은 건강검진을 받은 지 일주일 만이었다. 건강했던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뒤 나는 죽기 전에 뭔가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큰 병원의 정밀 검사를 권했다. 나는 큰 병원과 작은 병원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고 의사는 어이가 없는지 의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 마나 한 질문에 들으나 마나 한 대답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될 때마다 까스명수 먹는 횟수가 늘어난 것뿐 다른 이상은 없었다. 만약에 예고도 없이 죽음이 들이닥친다면 징징대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이혼보다는 깨끗하고 비밀이 보장되니까.
가게는 상훈이 엄마에게 빌린 돈을 제하고 넘겨주면 된다. 그동안 창수의 사업이 망할 때마다 내 직업도 변해왔다. 독서 지도에서 백화점 매니저, 옷 가게에서 반찬 가게에 이르기까지 노동의 시간과 책 읽는 시간은 반비례 법칙으로 작용했다. 카드 매출은 창수가 봉사활동과 교회 헌금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창수는 가게에 진열된 반찬을 뒤엎거나 호박죽처럼 나를 짓이길 필요가 없었고, 나는 "국밥을 끓이며 잘 구워진 한 손 도마 위에 올려놓고 접시에 탁탁 썰어 담"지 않아도 되었다. 시를 읽으며 별걸 다 알고 있는 시인들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위안인지 통증인지 모를 어떤 감정이 오랫동안 가슴을 저몄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던 환경을 잘 견뎌낸 큰애는 의사가 되고 결혼도 잘했다. 우리의 가정사를 아는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삶은 기적이 아니라 살아내는 과정이고 의지이다. 뒤돌아보면 우리에게도 아슬아슬하게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슬퍼할 새도 없이 삶의 페달을 밟게 해준 작은애가 기어이 세상을 떠나버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세월 굽이굽이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그 끝이 몹쓸 병이라면 그것이 바로 내 운명인지도 모른다. 나는 창수의 입김이 밴 이불깃을 끌어 올리며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날은 유독 진한 산그늘이 마당에 선명한 경계를 그었다. 그 경계가 사라질 무렵에야 읍내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마루 위에 밀가루 포대를 내려놓았다. 밀가루가 묻은 손으로 코를 팽 풀어 나무 기둥에 손을 문질렀다. 코에 하얀 분칠을 한 어머니가 한바탕 연설이라도 할 것처럼 숨을 고르더니 난데없이 시집을 가라고 했다. 상기된 표정과 어투가 단호했다. 그런데 시집갈 대상은 사람이 아니고 어떤 남자의 직업이었다. 두 명의 중매쟁이를 통과한 그 남자는 비닐봉지를 만드는 공장의 사장이라고 했다. 비닐봉지라는 말에 비가 오는 날에 우의로 입었던 비료 포대가 떠올랐다. 직사각형인 비료 포대의 한쪽을 반달 모양으로 오려낸 다음 그 구멍으로 머리를 내놓고 로봇처럼 걷노라면 비닐에서 요소비료 냄새가 났다. 틀림없이 그 남자에게서도 똑같은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남자의 생김새와 학벌은 말할 것도 없이 남자의 이름도 몰랐고 어디에 사는지도 몰랐다. 순진함과 무책임의 구분이 안 되는 어머니는 매양 바쁘기만 했다. 동생들 공부시킬 수 있고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흥분에 새까만 얼굴이 모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 대주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내년에 물에 빠져 죽을 운이구먼."
어머니의 계획에 불을 지피는 무당에겐 이성과 판단을 생략하는 힘이 있었다. 나는 계산이 빠른 주산학원 선생이었지만 스물네 해를 사는 동안 결혼이나 목숨의 길이를 놓고 숫자놀이를 해본 일이 없었다. 나의 시간은 언제나 파편에 불과했고 조립이 불가능했으므로.
예식장의 주례단상에 강창수와 조민자라는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나는 두 번씩이나 만났던 창수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 빨간 넥타이를 맨 남자와 파란 넥타이를 맨 남자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두 사람 중에 빨간 넥타이를 맨 남자가 주례자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며 살 것을 약속합니까?"
"네."
빨간 넥타이가 대답했고 나도 따라 했다.
예식이 끝나갈 무렵 "번갯불에도 콩을 구워 먹는 겨"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혼여행도 없는 결혼식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왔다. 방망이와 긴 끈을 준비한 동네 오빠도 있었다. 키가 큰 강창수는 일어설 때마다 대들보에 머리가 닿아서 매번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사람들은 멧돼지도 잡을 만큼 건장한 사위를 맞이한 아버지에게 연달아 술을 따라주었다. 아버지는 강창수의 족보를 묻다가 기어이 무릎을 꿇게 했다. 그러곤 상을 들어 엎었고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창수의 눈가를 스친 건 순간이었다. 어느새 아버지의 손에는 과도가 들려 있었다. 나의 머리채를 거머쥔 아버지의 반대편 손이 번쩍하더니 과도가 거꾸로 섰다. 강창수에게 칼을 빼앗긴 아버지는 소주병을 밥상 모서리에 내리쳤다. 내 등짝에 깨진 소주병이 꽂히고 색동저고리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느리고 태연한 동작으로 소주병을 저고리 소맷자락 안에 넣었다. 언제나 과도가 들어 있던 자리였다.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여자들이 허겁지겁 방을 뛰쳐나갔다. 방바닥엔 엎어진 음식과 빨간 김치 국물이 조화롭게 섞이고 있었다. 그 광경이 낯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전혀.
창수를 죽이겠다는 아버지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술을 마시느라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아버지는 그날도 용감했고 염소처럼 힘이 셌다. 그런데 염소보다 힘이 더 센 강창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횃대에 걸린 그의 양복 윗저고리는 그대로인데.
돼지보다 못한 어머니는 돼지막으로 숨고 어머니보다 자유로운 돼지는 꿀꿀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방바닥을 닦았다. '벌써 끝나버렸어?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맞아, 끝은 그렇게 빨리 오곤 했지. 하긴, 시작이 있기나 했던가. 알면서도 시작을 한 게 잘못이지.'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겁도 없이 석호 엄마와 영미 엄마가 다시 찾아왔다.
"설마 새신랑이 참말로 가버렸으까? 아적 두밀재 고개는 못 갔을 겨. 어서 쫓아가 봐. 안 그러면 이 길로 민자 인생 끝잉게. 오늘부로 헌 각시가 돼버려서 시집도 못 가고 평생 과부로 늙어야 한다니께."
"그랑께 말여, 후딱 가서 신랑을 델꼬 와야 혀. 싹싹 빌고서 말여."
"아이고 민자가 뭔 죄여? 저리 이쁘고 착한 애가 어딨다고."
"그랑께 말여, 애비가 새끼 잡아먹는다더니 헛소리가 아니구먼. 귀신은 뭐 하는가 몰러. 저런 양반 안 잡아가고."
두 여자의 혀 차는 소리가 울타리 사이로 멀어져 갔다. 나는 양철 굴뚝이 있는 모퉁이를 돌아 깜깜한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저벅저벅 진창을 걸어 작은 도랑을 건넜다. 세찬 바람이 한복을 부풀렸다. 등줄기에 파고드는 냉기의 마찰에 몸은 움츠러들고 그 여백을 채운 바람은 자꾸만 한복을 부풀려 올렸다. 고무신이 질퍽거렸다. 언제부터인지 아버지의 음성이 따라오는 환청에 제자리를 뛰고 있는지 바람에 실려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덧 희끄무레한 신작로에 다다랐지만 들키지 않으려면 산길이 더 안전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높은 봉분이 있는 쪽으로 올라갔다. 그때 봉분 뒤편에 하얀 물체가 얼핏 비치다가 사라졌다. 상여 나갈 때 혼령의 흔적을 남기던 하얀 종이 뭉텅이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보다 귀신, 귀신보다 아버지, 어느 것이 더 무서운지 모를 공포에 그만 치맛자락을 밟은 채 엎어지고 말았다.
"이제부터 저만 믿어요."
뜨거운 입김이 훅,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되고 어떤 무형의 힘이 나의 겨드랑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따뜻한 체온과 감미로운 감촉이 감쌌다. 부드러운 솜 자루 같은 것이 서서히 나를 압축하더니 입구를 봉해버리는 것만 같았다. 작은 점이 되어가는 나의 형체를 상상하며 그대로 죽고 싶은 충동에 의식을 놓아버렸다. 그것은 오히려 황홀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과 남은 날을 다해 그 순간으로 충분했다.
"평생 은혜를 갚을게요. ……다 해서요."
순종의 조건은 그날 밤 그렇게 완성되었다.
병원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수서동의 버스 승강장에 서 있다. 잿빛 하늘이 낮게 내려와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추위를 보탠다. 버스 승강장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포승줄에 묶인 포로들처럼 부동자세다. 하지만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는 SRT 기차역 출입구 쪽의 캐리어 바퀴 소리는 경쾌하기만 하다. 유난히도 화려하게 색칠을 한 젊은 여자가 그들 곁을 지나 누런 풀숲으로 들어간다.
여자는 주황색 캐시미어 코트에서 담배를 꺼내 들고 벤치에 기댄다.
그녀의 입에서 불이 반짝, 몽글몽글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맥락 없이 질투가 난다. 나는 담배를 피울 줄도 모르면서 여자 곁으로 다가가 한 개비를 구걸한다. 엉뚱한 용기를 낸 것에 대해 기분이 우쭐해진 내 입에서도 불꽃이 핀다. 길게 빨고 길게 내쉬며 담배 이름을 '숨 쉬는 빨대'라고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허공에서 서로의 담배 연기가 섞이자 옆에 있는 여자의 색을 입는 것 같아 더 풍성하게 뿜어내 본다. 나무를 받치고 있는 버팀목 사이에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던진 나는 곧바로 후회가 되어 다시 집어 들고 흡연구역으로 향한다. 바람을 등에 진 남자들이 아랫입술을 세워 연기를 불어 올리고 있다.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호흡을 하는 남자들의 동질감이 멋있어 보인다. 나는 담배꽁초를 구멍 뚫린 통에 넣은 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꼬리를 잇는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보였는데 이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보인다. 나는 환자의 징표 같은 마스크가 싫어서 맨얼굴이다. 병원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앞쪽에서 잡아당기는 줄에 이끌려가듯 동일한 동작과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긴 줄을 빨아들이던 병원 버스가 나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그러자 뒤에 남은 사람들은 뒤뚱거리는 펭귄처럼 제자리를 지킨다. 차창 밖, 색을 입은 여자는 아직도 그 벤치에 기대어 있고 진눈깨비를 실은 바람은 하염없이 그녀를 긋고 있다.
작은애를 끝으로 병원도 의사도 작별인 줄 알았다. 흰옷 입은 누구는 치료를 하고 몸이 아픈 누구는 병이 낫고, 흰옷 입은 누구는 치료를 하고 몸이 아픈 누구는 죽었다. 왜 흰옷 입은 어떤 이는 작은애를 살리지 못했을까? 작은애가 죽은 뒤 나는 병원에 가기 전에 죽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이번에도 흰옷 입은 남자가 말한다. 다음번에는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남편이 있다. 강창수라는.
아파트 입구의 계단을 올라오다 그 수를 세어본다. 이 계단을 얼마나 더 밟을 수 있을지? 미끄러운 계단의 난간을 붙잡고 다시 내려간다. 계단은 총 22개다. 그런 건 중요하지도 않다. 그냥 세어봤을 뿐이다.
뚜껑이 떨어져 나간 우편함에도 603호가 붙은 현관문에도 집배원이 다녀간 흔적이 있다. 집배원의 가방엔 언제나 내가 무서워하는 봉투가 들어 있다. 집배원 아저씨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한 다음 사인을 받아 간다. 모른 척해주면 좋겠는데 계속 그렇게 한다. 소파에 놓인 우편물 봉투는 가만히 있어도 괴물이다. 그래도 창수가 없으니 텔레비전을 틀어도 되겠다.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있던 날부터 텔레비전은 싸움의 도화선이다. 계엄령 발표 장면을 보던 나는 충격과 분노에 벌벌 떨었지만 창수의 표정은 결기에 차 있었다.
"이 기회에 간첩들을 싹 쓸어버려야 해."
"지금 군인들이 국회로 쳐들어가는 거 안 보여요? 당신도 비상계엄 겪어봤잖아요?"
"그때 빨갱이들의 뿌리를 확실하게 뽑지 않았기 때문이여."
벌겋게 달아오른 창수의 눈빛은 공포인지 기쁨인지 모를 광채로 번뜩였다. 나는 패딩 코트를 입는 척했다.
"국민 모두 국회로 나오라잖아요."
"그런 정신으로 살 거면 나가서 죽어. 들어오기만 하면 죽을 줄 알고."
"직접 보고서도 무엇이 잘못인 줄 모르면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어요."
그러자 창수가 가까이 다가왔다. 많은 준비가 필요한 사람처럼 느릿느릿 조용히.
"계엄에도 다 이유가 있고 폭력에도 명분이 있는 거여. 한 번만 더 그따위 소릴 해 봐."
어느새 나의 목엔 창수의 발이 올라와 있었고 내 혀는 밖으로 나갔다. 살려달라고 두 손을 비비자 사각사각 마른 소리가 났다. 그날도 창수는 손을 쓰지 않았다. 자기를 닮아서 큰애의 아이큐가 높다고 우기는 창수는 폭력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달인이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용서인지 망각인지도 모를 만큼 간극을 두었으니 아이큐와 양심은 별개인 것 같다. 만약 같다면? 그러면 신이 심심하겠지.
나는 파면 당한 대통령과 국회로 갔던 군인들의 소식이 궁금하다. 텔레비전에 리모컨을 조준하고 힘 있게 버튼을 누른다. 화면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라는 자막이 뜬다. 행복이라는 단어에 채널을 고정한다. 남태평양의 섬나라인 바누아투 부족과 10분마다 분출하는 야수르 활화산의 모습이다. 화산재는 농작물의 거름이 되는 동시에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독이다. 그러므로 용암 분출과 행복은 불가능한 조합이다. 그런데 어느 누가 그들의 행복 지수를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아들들에게 가르쳐주고 그 아들들은 또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 다른 선택이 없는 그들의 운명은 바로 대물림으로 이어질 뿐이다. 갈수록 격렬해지는 화산 폭발에 족장과 주민들은 무당을 찾아가지만, 야수르 화산은 파괴의 신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지켜주는 사랑의 신이라는 말에 주민들은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용암은 뿔난 독룡처럼 더 맹렬하게 솟아오른다. 섬 전체가 폭발하는 것 같은 굉음과 하늘 높이 솟구치는 빨간 기둥, 산산이 부서지는 불꽃의 화려함에 가슴이 뛴다. 폭발할 때마다 내 심장에 뻥뻥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통쾌하다. 어떤 철학자는 화산 분화구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데 나는 한없이 높은 곳으로 튀어 오르고만 싶다. 굉음과 하나가 되는 듯한 착각에 넋을 잃는다. 무아지경이란 고요할 때만 체험하는 경지가 아닌가 보다.
병원 진료실 앞 나란히 앉아 있던 부부가 호들갑을 떨며 진료실에서 나온다. 들었지? 들었지? 축하한다고 하잖아. 서로 부둥켜안고 방방 뛴다. 도대체 암이란 놈은 어떻게 생긴 놈이기에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지 모르겠다. 조민자 님! 간호사의 호명과 동시에 전화벨이 울리고 핸드폰을 귀에 댄 창수는 대기실 밖으로 나간다. 결과는 삶처럼 익숙한 패턴이다. 항암 치료, 수술, 대장암, 나는 단어 뜻을 모르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듣는다. 익숙한 일은 충격으로부터 멀어지는 법이다.
암 병동을 지나 정문으로 가는 통로는 방향을 교차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와 온몸에 줄이 엉킨 환자를 태운 이동 침대가 지나간다. 그냥 슬프다. 그저 아득하다. 경찰서가 병원보다 낫지. 교도소가 병원보다 낫지. 작은애를 데리고 다닐 때 자주 중얼거렸던 말이다.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좋았다.
나는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을 올려다본다. 8분을 기다리면 버스가 온다. 죽음도 그렇게 기다리면 오는 걸까? 7분으로 숫자가 바뀐다.
잘잘한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가방끈을 쥐고 있는 내 손등에 닿자마자 녹아버린다. 그러나 운동화 끈에 내린 눈송이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몸을 키운다. 눈의 기원을 찾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폐쇄된 하늘, 그곳엔 출처가 없다. 서로 엉키는 지점이 기원이다.
노을은 그 사이를 지나 서쪽으로 눕고 나는 선 채로 시간을 먹는다.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한다.
"진료비 정산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시 병동으로 향한다. 창수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지 않다. 아이를 낳을 때도 그랬고 이사 갈 때도 그랬고 작은애 수술 날도 그랬듯이 창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큰애는 그런 아빠와 헤어지지 않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은 믿지 않겠다고 했다. 신부 입장하는 날 아빠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매사 제 마음대로였다. 그래도 이제부턴 무엇이든 믿어줘야겠다. 6개월이든 1년이든.
그렇다고 오진이니 기적이니 그런 건 기대하지 않는다. 과거가 미래를 이기는 나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창수는 비행기도 탈 수 없는 출국이 정지된 사람이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해외여행을 못 간다면서도 88 열차와 바이킹을 탈 땐 의치(義齒)가 빠진 줄도 모르고 즐겼다. 오토바이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주먹 때문이었는데도 나는 속아주고 믿어주었다. 창수는 비닐 공장 사장이 아닌 공돌이였지만 그런 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겨울철엔 방에 있는 창수에게 치약 묻힌 칫솔을 대령하고 문턱 아래에 따뜻한 물을 놓고 머리도 감겨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도망간 사람이 하반신 불구라는 기괴한 소문을 퍼뜨렸지만 상관없었다.
창수는 해수욕장에서 열린 씨름대회에서 일등을 먹은 건장한 남자였고 나는 어머니의 미덕을 본받았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한 줌 머리카락이 낙숫물에 젖던 날의 아버지 밥상은 정갈하고 풍성했다. 생선 비린내와 참기름 냄새가 어머니의 상처를 덮어주는 그런 평온이 머물면 어머니는 멍든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미개인처럼 미련한 아버지와 함께 호롱불 밑에서 이를 잡았다. 그러나 창수는 손이 없는 사람처럼 손을 쓰지 않았고 입이 없는 사람처럼 욕을 하지 않았다. 그에 걸맞은 대우는 마땅하고 옳았으며 창수는 당당했다. 이제 다시 그런 일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끝이 있다는 건 은총이라 했나 보다.
나는 딸의 카톡을 본다. 새로운 사진이 올라와 있다. 영상도 있다. 손자와 같이 걷고 있는 사위는 손만 보인다. 손자는 네 살이 되어 아기 티를 벗었다. 동그랗게 두 팔을 말아 손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쑤욱 올려보지만 빈손이다. 손바닥의 생명줄 돈줄 자식줄이 쭈글쭈글, 손금도 늙었다.
한국을 떠난 지 3년째인 큰애는 오지도 않고 나를 초대하지도 않는다. 너무 독해서 독일로 떠난 독한 년이다. 여자가 무슨 외과냐고 전공을 말릴 때마다 마음보다 몸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 큰애다. 싸워볼 기회도 없었던 작은애의 사진을 본다. 작은애는 스무 해를 못 넘기고 천사가 되었다. 나는 백혈병이라는 이름이 싫어서 하얀 천사라고 불렀다. 머리카락이 없는 민머리에 리본과 스카프를, 모자와 왕관을 씌어준 사진들이 참 많기도 하다. 작은애의 모습은 자꾸만 과거를 향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내일이 있었던 그 기다림의 시간으로.
아 이런, 전화를 걸 때마다 독일 시간을 계산해야 하다니? 한방에 척척 떠오른 적이 없다. 지금 시간이 저녁 8시 18분이니까 프랑크푸르트는 낮 12시 18분이다.
"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 엄마, 왜 이랬다저랬다 해?"
"아빠가 많이 아파서 그렇지. 너도 대학 갈 때까지는 아빠를 좋아했잖니?"
"아직도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 아빠는 매일 너를 태워다 주고 태워 오고 끔찍이도 생각했잖아."
"병원에 근무하자마자 얼마나 돈을 빌려 간 줄 알아? 학자금 대출 갚느라 커피도 맘대로 못 마셨는데……. 그런데 왜 또 아빠를 변호해?"
"변한 건 없지만 아빠도 많이 늙었다. 얼마나 살지도 모르고."
"난 상관 안 해 엄마. 그렇게 아빠가 애틋하면 비밀을 지켰어야지. 나를 낳았을 때 아빠가 없어서 미혼모 취급을 받았다며? 난 태어날 때부터 재수가 없는 아이였어."
"그래도 넌 머리 좋은 아빠를 닮아서 잘 컸고 잘 살잖니? 그리고 너와 외할머니에게 그만큼 잘해준 사람도 없다. 너도 알잖니?"
"그만해. 아빠가 병원까지 찾아와서 돈 달라고 할 때 제발 아빠랑 헤어져 달라고 했는데 엄만 지금도 살고 있잖아. 왜 그래? 엄마."
"친구들은 내가 행복하게 잘 사는 줄 알아. 똑똑한 너의 아빠를 만나서 의사 엄마 되었다며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잖니?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속이고 살면 엄만 행복해?"
"너는 모를 거야. 사람이 얼마나 외로우면 인질범에게도 의지하는지를. 난 내 속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었어. 내가 살아온 세월은 죽기 전까지 비밀이야, 비밀."
"엄마, 그건 병이야. 엄마에게 엄마 자신이 없는 병, 아직도 몰라? 엄마는 전형적인 스톡홀름증후군이라고. 전화 끊어. 나 밥 먹다 체하겠어. 엄마는 왜 밥 먹을 때만 전화를 해? 어떻든 아프지나 말고 아빠랑 길이길이 행복하셔."
"아빠가 없으면?"
"엄마, 왜 또 억지를 부려? 그런 얘기 그만하고 기다려. 내년에 한국에 가서 생일 파티 해줄 테니 화 풀고, 엄마."
나는 뜨거워진 핸드폰을 귀에 대고 엄마, 엄마를 부르던 딸의 여운을 마저 듣는다. 이런 투정 저런 투정 실컷 하도록 기다려주고 싶다. 이미 늦었지만은.
창수는 바쁘다. 12·3 계엄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산다. 담보 대출을 받은 것도 부정 선거를 밝히는 소송비 때문이라고 한다. 소송에서 이기면 대통령이 석방되고 자기는 일자리를 얻는다는 희망에 들떠 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다. 몸이 모래밭의 지렁이처럼 말라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대로 방치하면 나보다 먼저 죽을 것 같다. 그래선 안 되는데 그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켠다.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믿을 수가 없어 텔레비전을 켠다. 대통령의 웃는 표정과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 화면 가득이다. 구속 기간을 날짜가 아닌 시간으로 바꿔서 계산한 결정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웃으면서 바라보는 시선은 상대방이 정확하지 않은 허공이다. 그렇게 붕 떠 있는 눈빛과 과장된 몸짓에서 창수가 보인다. 당당하지 못해 불안한 이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창수도 대통령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절대로.
나는 싱크대 밑 깊숙이 넣어둔 길쭉한 박스를 꺼내본다. 신문지로 말아둔 칼은 그대로다. 오래전 횟집을 그만둔 창수가 들고 온 회칼에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언젠가 그 칼끝이 나를 향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싱크대 하부장을 뜯고 감춰두었다. 그러곤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칼날은 아직도 희게 빛난다. 칼날에 혀끝을 대본다. 쇳내가 번지는 그 섬뜩함이 번개처럼 몸을 찌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교한 바둑판에 칼을 내리꽂는다. 움켜쥔 주먹에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선을 긁어내거나 파내진 않을 거다. 찍고 또 찍고 칸을 따라 반복하자 미친 듯이 힘이 솟구친다.
스르륵, 미닫이 중문이 열리고 창수가 들어온다. 나는 급발진 하는 자동차처럼 돌진한다.
여기 칼이 있어. 내게 내 피를 보여줘. 피의 색깔을 알고 싶어.
내 피도 빨간색인지 궁금했어. 한 번도 빨간 피를 상상해 보지 않았어. 나는 썩었으니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보여줘.
나는 창수를 찌른다. 이렇게 쉬운걸. 그다음엔 눈을 감고 기다린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무엇을.
"이 여편네가 미쳤어?"
거친 힘이 내 팔을 비튼다. 칼은 벌써 창수의 손에 들려 있다.
"그래 미쳤어. 죽는다는데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가 있어?"
"누구나 다 죽어. 그 암 덩어리 나한테 좀 빌려줘 봐. 나야말로 죽고 싶으니까."
창수는 나를 밀어 벽에 처박는다. 벽에 걸린 액자가 떨어진다. 표구가 부서지고 나는 바닥에 쓰러진다. 창수는 내 목을 밟는다. 점점 납작해지는 목은 뼈를 드러낸다. 구멍이 막힐 일만 남았다. 가끔은 스스로 막히기도 했었다. 발에 힘이 실릴수록 혀가 나간다. 그러나 예전 튀어 나가던 혀가 아니다. 예전의 헉헉거림도 아니다. 그렇다. 반항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힘을 뺀다. 모든 것이 평온하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그래 성공이지. 나는 온 힘을 모아 순간적으로 칼을 쥔 창수의 손을 내 가슴에 대고 힘껏 끌어당긴다.
내 피는 용암처럼 솟구치겠지, 빨간 화산꽃이 되어 높이높이 솟아오르면 찢어진 젖퉁이는 흰 꽃이 되어 흩뿌려지겠지. 화려하고 장렬한 꽃들의 향연, 나는 그렇게 죽을 것이고 내 피는 마침내 꽃뱀처럼 길어지겠지, 창수의 목을 조르기 위해.
아, 이제야 그날의 은혜를 갚는군. 고. 마. 워. 강. 창.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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