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호]대구 경제, 멈추지 않았다…전환의 시점에 서다

김명환 기자 2026. 1. 1. 13: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환율·비용 부담 속에서도 체력은 유지
미래 향한 산업·소비·고용의 변화 조짐
2025년 대구 주요 경제지표 그래프.

2025년 대구 경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녹록지 않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고환율로 원가 부담이 커졌고 인건비·에너지·물류비까지 한꺼번에 올랐다. 건설 경기는 얼어붙었고 소비도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졌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단가를 올리기도, 물량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는 말이 계속 나왔다. 그렇다고 마냥 어두웠던 한 해만은 아니다. 일부 지표에서는 바닥을 다지는 움직임이 포착됐고 산업 구조와 소비 방식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회복 속도는 더뎠지만 최소한 체력을 유지하며 버텨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026년 새해 대구 경제는 얼마나 빨리 반등하느냐보다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수출 부진 속에서도 '전환의 신호'

지난해 대구 산업은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고 구조 변화의 조짐도 함께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2025년 대구 수출은 전년보다 1.1% 줄어든 87억8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수출이 줄긴 했지만 전년(88억8천만 달러)과 비교하면 큰 차이 없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고환율과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급격한 하락은 피했다는 의미다.

눈여겨볼 부분은 신산업이 전통산업 부진 속에서도 전체 흐름을 받쳐줬다는 점이다. 전통 제조업이 주춤한 사이 이차전지 소재, 인쇄회로(PCB), 제어용 케이블 등 3대 신산업은 오히려 성장세를 보이며 수출 감소 폭을 줄였다. 이차전지 소재는 전년보다 11%가량 늘며 플러스로 돌아섰고 인쇄회로는 생성형 AI와 고성능 서버용 부품 수요가 늘면서 약 30% 증가해 6년 연속 성장 흐름을 이어갔다. 제어용 케이블도 스마트카와 전장화 확산에 힘입어 36%가량 급증하며 역대 최고 실적에 근접했다.

이 같은 흐름은 대구 산업 구조가 기존 주력 제품 중심에서 기술 집약형·신산업 중심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신산업이 수출을 크게 끌어올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침체 국면에서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은 분명했다.

반면 자동차부품(-6.3%), 의료용기기(-19.6%), 기타철강금속제품(-11.5%) 등 전통 주력 품목은 여전히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 수출이 12개월 연속 줄어든 점(-12.9%)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단순한 경기 문제라기보다 기술 전환이 늦고 시장이 한쪽에 쏠린 구조적 한계가 누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수출이 무너진 게 아니라, 예전 방식이 더는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고환율 환경에서 물량을 늘리는 전략보다는 수익성을 챙기고 거래선을 안정시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고, 일부 기업들은 거래처를 넓히거나 공정을 효율화하고 신시장을 찾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중장기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변화다.

대구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수출이 줄었다는 수치보다 더 중요한 건 구조 변화의 방향"이라며 "기존 주력 산업의 한계가 드러나는 동시에 신산업이 완충 역할을 하면서 전환의 기반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부담은 줄이고, 투자는 골라서

지난해 지역 기업들이 느낀 경영 환경의 가장 큰 변수는 금리보다 비용이었다. 대구상공회의소 조사에서 지역 기업의 72% 이상이 인건비와 에너지·물류비 등 각종 비용 부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특히 제조업과 물류·유통 업종을 중심으로 "원가 부담이 실적에 바로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기준금리는 한 해 동안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지만 기업들이 체감한 부담은 금리보다 비용 상승 쪽에 더 쏠렸다. 기업 대출금리는 신용도나 담보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금리 수준 자체보다 원가 압박이 경영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중소기업은 대출을 늘리기보다는 기존 자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고 비용을 줄일지에 더 집중했다.

그렇다고 금융 환경이 완전히 얼어붙은 것은 아니다. 정책금융과 보증 제도가 완충 역할을 했고 대구시의 중소기업 경영안정자금 지원도 단기 자금 부담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됐다. 기업들이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재무 구조를 다시 살펴볼 여유를 갖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업들의 경영 전략도 달라졌다. 무리하게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수익성을 우선하고 필요한 공정에는 선별적으로 투자하며 비용 구조를 손질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장의 성장 속도는 늦출 수 있지만 불확실한 환경에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지갑은 닫았지만 쓰는 방식은 바뀌었다

지난 한 해 대구의 생활경제는 물가가 비교적 안정된 가운데 소비 방식이 달라진 모습으로 정리된다. 소비자물가는 연중 2% 안팎의 상승률을 유지하며 큰 변동 없이 흘러갔다. 고환율 영향으로 수입 식재료와 외식 물가는 올랐지만 생활 전반을 흔들 만큼의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소비는 분명 달라졌다. 가전·가구 같은 내구재 소비와 고가 소비는 위축된 반면 식음료와 여가, 소규모 경험 소비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소비가 줄었다기보다 돈을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 대량 소비보다는 체감 만족도를 중시하는 쪽으로 소비 구조가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에 맞춘 대응이 이어졌다. 원가와 임대료 부담은 여전히 컸지만 메뉴를 줄이거나 운영 시간을 조정하고 배달·포장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비용 구조를 손질하는 사례가 늘었다. 일부 외식·서비스 업종에서는 하반기 들어 매출이 조금씩 살아나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 관계자는 "소비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완전히 꺼지진 않았다"며 "2026년은 이런 변화가 지역 상권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보합 흐름 속 시장 안정 신호

지난해 부동산 시장은 하반기 들어 급락 국면을 벗어나 추가 하락 없이 흐름이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대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0.36% 상승에 그치며 사실상 보합 수준에 머물렀다. 서울을 중심으로 가격 변동성이 컸던 것과 달리 대구를 포함한 지방은 과열 없이 조정 국면이 이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시장 상황이 여전히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만 추가 하락에 대한 부담은 다소 줄었다는 신호도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대구의 미분양 주택은 7천568가구로 3년여 만에 8천 가구 아래로 내려왔다. 가격이 크게 오르진 않았지만 급격히 떨어지는 흐름도 멈췄다. 시장이 바닥을 다지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거래는 여전히 실수요 위주로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전세가격은 하반기 들어 조금씩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전세대출 규제와 대출 환경 변화로 일부 수요가 월세로 옮겨가면서 대구를 포함한 지방에서도 임대차 시장의 월세화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일자리는 유지됐고 과제는 남았다

2025년 대구의 고용 상황은 전반적으로 큰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취업자 수는 전년보다 소폭 늘었고 실업률도 2%대 초반을 지켰다. 전국 실업률 역시 2%대 중후반 수준으로 고용 시장 전체가 큰 충격 없이 버텼다는 평가다.

고용 회복은 주로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개인·공공서비스업에서 나타났다. 소비 활동이 완전히 꺼지지 않으면서 지역 서비스 산업이 일자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반면 제조업과 건설업은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남아 있다. 수출 둔화와 건설 경기 침체 영향으로 일자리가 빠르게 회복되진 않았다. 다만 이를 단기 경기 문제로만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산업 흐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2026년 '다음 단계'를 준비하다

전문가들은 2026년을 대구 경제가 본격적으로 반등하기보다는 방향을 가다듬는 해로 보고 있다. 회복 속도보다 지난 1~2년간 버텨온 산업과 기업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2026년 대구 수출을 88억7천만 달러로 전망했다. 증가율은 1.0%에 그치지만 수출 감소 흐름이 멈추고 다음 국면을 준비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급한 반등보다는 안정적인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산업 측면에서는 신산업과 기존 산업 간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차전지 소재는 단기 변동성이 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친환경차 수요가 유지될 경우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 인쇄회로와 제어용 케이블은 AI 서버 수요와 전장화 흐름과 맞물려 비교적 안정적인 수요가 기대된다.

부동산과 고용 역시 회복 속도보다 안정 여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대구는 공급 조정이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급격한 충격보다는 완만한 흐름이 예상된다. 고용도 일자리 수 확대보다 유지된 일자리가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2026년 대구 경제는 단기간의 반등보다는 구조를 정비하며 방향을 가다듬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구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이제는 외형 확대보다 선택과 재편의 시간이 중요해졌다"며 "대구 경제는 느리지만 한 단계씩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김명환 기자 kmh@idaegu.com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