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토마처럼 솟아오르는 해…위장 휘젓는 삼치회에 행복한 비명

한반도 끝자락 해돋이 명소
고흥 우주발사전망대도 한눈에
우주 심연 품은 듯 검은 수평선
솟는 해 보며 마음의 소리 경청
기름기 적고 담백한 삼치회
‘바다에서 나는 꿀’ 고흥 굴
세계적 인기 명품 김밥 김
매생이까지 겨울 제철 한상
새 달력으로 갈음하는 첫날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품고 일출 여행을 떠난다. 웅장하게 뜨는 해 앞에서 지난해 상처를 털어내고 새해 각오를 다진다. 2026년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다. 말은 힘과 속도를 상징한다. 2026년은 저마다의 속도로 강약 조절해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채워야 할 해다. 전국엔 해돋이 여행지가 넘친다. 그중 최근 몇년 새 가장 뜬 해돋이 명소는 한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이다. 넓고 단정한 해변, 해변 뒤 울창한 솔숲 등이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인데, 무엇보다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호젓하게 뜨는 해를 감상하기에 좋다. 게다가 ‘고흥 우주발사전망대’도 해와 함께 시야에 들어와 ‘대한민국 우주·항공의 메카’의 감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고춧가루가 이보다 매울까. 스치기만 하는데도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맵기만 한 겨울바람이 지난 12월12일 남열해돋이해수욕장에 불었다.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은 ‘고흥 우주발사전망대’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오른쪽으로 난 나무 데크 길을 따라 내려가면 도착한다. 계절의 변화가 아쉬워 제 몸을 흙더미에 감춘 낙엽이 뒹구는 길이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찰랑찰랑 파도 치는 너른 해변이 펼쳐진다. 아침 7시30분, 바다는 우주의 심연을 품은 듯 고요했다. 바닷속 해초마저 붉은 해를 영접하기 위해 숨죽였다. 10, 9, 8…. 나만의 속도로 숫자를 세자 검은 수평선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듯 해가 제 몸을 드러냈다. 맵디매운 바닷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해가 말을 걸었다. 생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인생 초콜릿 박스’엔 초콜릿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도 말이다. 자신을 믿고 주변에 마음을 내어주라고도 했다. 해돋이의 참맛은 마음의 소리를 듣는 데 있다.




올해도 ‘경험 소비’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맨 앞줄에 있을 전망이다. 자신만의 감흥을 기억에 남길 ‘경험’이야말로 에이아이(AI)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영역이다. 제철 미식이 대표적인 경험 콘텐츠다. 겨울 고흥에선 해맞이 말고도 할 게 많다. 전남 고흥은 삼치, 굴, 매생이, 김 등이 풍성하게 나는 고장이다. 모두 겨울 제철 먹거리다.
방어보다 한수 위 겨울 삼치
지난 12일 아침 8시30분 전남 고흥군 나로도항 옆 수협회센터(고흥군 봉래면 나로도항길 128). 경매가 막 끝난 수협회센터에선 중매인들이 잘 차려놓은 생선 상자가 여행객을 맞았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게 삼치다. ‘1㎏에 1만5천원’이란 글자가 건장한 운동선수 팔뚝만 한 몸뚱이에 적혀 있었다. 땡땡하다. 삼치는 고등어과 생선이지만 고등어를 먹는다. 꽁치, 정어리 등도 먹이다. 5~6월에 산란하는 삼치는 10월 말부터 이듬해 봄까지 맛이 가장 좋다. 씹는 게 송구할 정도로 부드러운 삼치. 붉은 살 생선인데도 회를 뜨면 색이 흰 편이고 다른 붉은 살 생선에 견줘 기름기가 적다. 촉촉하고 담백하다. 지역에 따라 마어(서해), 망어(동해), 망에(통영), 고시(전남)라 불린다.

참으로 맛난 생선이 삼치다. 삼치회 맛을 도시인들이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저 구이로 먹는 생선으로 알았다. 입에 올리기도 구차한 생선이었다. 겨울 미식의 최고봉이 방어라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기름기가 많은 방어는 한두점이면 젓가락을 놓게 된다. 식도락 고수는 삼치를 찾는다. 배가 불러도 젓가락을 놓기 어렵다. 여름에 민어가 있다면 겨울에 삼치가 있다. 삼치 맛을 일찍이 알아본 이들이 있었다. 일본인이다. 일제강점기엔 고흥에 파시(생선 시장)가 열리면 잡힌 삼치 거의 전량이 일본행 배에 실렸다. 약 오르는 일이었다.
전날 저녁에 찾은 ‘헤밍웨이식당’(고흥군 봉래면 나로도항길 110-6)엔 근사한 삼치 한상이 차려졌다. 주인 고임종(74)씨는 “1년 내내 삼치가 잡히지만 겨울 삼치 맛이 최고”라고 했다. “3㎏ 정도 되는 한마리면 4명이 먹고도 남아요.” 수협회센터 중매인에게서 삼치를 사서 회를 떠 오면 상차림 비용 1만원(1인당)만 받는다. 이곳에서 파는 삼치 음식엔 구이와 조림 백반이 있다. 고씨에게 일반 횟집처럼 주문해도 된다. 그가 직접 수협회센터에 가 회를 떠온다. 수협회센터 인근에 있는 순천횟집, 서울식당, 다도해회관, 대동식당 등 대부분의 식당이 비슷한 영업을 한다. 당일 잡은 신선한 회를 메뉴로 내는 데도 많다. 생산지에서 맛보는 미식은 제아무리 세계 최고 ‘미쉐린 가이드’ 셰프라도 차릴 수 없는 경지다. 바다가 몸 깊숙한 곳에 도달한다.


이날은 고씨가 중매인에게 산 삼치로 회 밥상을 차렸다. 삼치회는 아기 볼처럼 통통하고 도톰했다. 두껍다. 씹을수록 감격했다. 삼치 떼가 식도를 향해 적토마처럼 달려오는 듯했다. 위를 장악하더니 마구 휘저었다. 삼치가 위장에서 호쾌한 서핑을 했다. 위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출렁거렸다. 사악한 식탐 마녀도 불러냈다. 한마리를 다 제 것으로 하려는 불손한 욕심이 끓어올랐다. 고씨는 마른 김에도 싸 먹어 보라고 권했다. 또 다른 맛이다. 구이와 조림도 나왔다. 어라, 이게 같은 생선인가! 눈을 질끈 감게 했다. 구수하다. 엇구수하다. 생명을 먹는 죄스러운 마음을 단박에 ‘삭제’하게 한 맛이었다. ‘남해바다’ 등 서울에 이름난 삼치회 식당이 있지만, 생산지에서 잡은 지 몇시간 안 된 신선한 맛과는 견줄 수가 없다. 차원이 다른 맛이다. 그저 이 맛 경험 하나만을 위해 겨울 고흥은 찾을 만하다.


쉽게 되는 일도 없지만 안 되는 일도 없는 게 세상 이치다. 가지 않고도 나로도수협회센터 삼치회를 맛볼 방법이 있다. 수협회센터엔 중매인들이 운영하는 수산업체가 여럿 있다. 거북이수산, 백호수산, 삼팔수산, 칠호수산을 비롯해 대략 17곳이다. 이들 업체는 ‘전국 택배’로 생선을 판다. 주문하면 삼치를 먹기 좋게 정리해 바로 보낸다. 주문한 다음날이면 바로 맛볼 수 있다고 이들 업체는 말한다. 가격은 도시에 견줘 당연히 싼 편이다.
너무 달아서 굴보다 ‘꿀’
삼치가 뜨는 겨울 별미라면 굴은 겨울 미식 왕좌를 굳건히 지켜온 먹거리다. 너도나도 겨울엔 굴을 찾는다. 지난해 1월 정부가 발표한 ‘굴 양식산업 발전방안’을 보면 우리나라는 연평균 굴 30만t을 생산하는 세계 2위 굴 생산국이다. 1위는 약 556만t을 생산하는 중국이다. 수출 순위는 3위다. 국내 굴 생산의 70~80%를 차지하는 경남 통영과 서해안 일대가 주요 생산지다. 이런 이유로 식도락가들은 겨울엔 통영을 찾는다. 하지만 고수는 고흥 굴을 구하려 애쓴다.
금성수산(고흥군 동일면 덕흥리 184-1)의 주인 정춘매(72)씨는 고흥 굴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꿀(굴)은 달아. 고흥이 삼면이 바다인데 공장도 없어. 오염될 데가 읍써. 사람이 없어서 그거이 아쉽지. 달고 달아. 바다에서 100일이면 건져서 까.” 그는 40년 넘게 굴 양식업에 매달려온 이다. 남편은 어부다. 아들 넷을 키웠다. 공무원과 금융업 종사자인 큰아들, 막내아들 빼고 둘째, 셋째 아들과 금성수산을 운영한다. 그의 곁에는 며느리 석수연(43)씨가 듬직하게 있다. “다 법대 나오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이게 좋다고 합니다.” 금성수산은 고흥에서 세번째로 큰 굴 생산업체이자 양식을 지역에서 두번째로 시작한 노포라고 한다.

그는 굴을 ‘꿀’이라고 발음한다. 굴과 꿀은 한끗 차이지만 그에게 같은 의미다. 꿀처럼 단 굴이란 강한 신념이 자동으로 장착된 언어 습관이다.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 불리는 굴이지만 고흥에서 굴은 ‘바다에서 나는 꿀’이다.
그를 만난 이날 금성수산 박신장(굴 까는 일터)엔 20여명이 있었다. 대목이다. 뾰쪽한 도구로 깐 알굴(깐굴)이 시간이 쌓여갈수록 바구니에 수북하게 쌓였다. 비릿한 굴 향이 휘몰아쳤다. 굴은 껍데기를 제거한 알굴이나 껍데기째 파는 각굴(석화)로 유통된다. 금성수산은 삼배체 굴도 생산한다. “거의 전량을 중국에 수출하죠.” 7~8년 전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삼배체 굴은 일반 굴보다 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3세트여서 크기가 2~3배에 이른다. 기술 개발로 세상에 나온 굴이다. 번식을 못 한다. 산란하지 않으니 두툼하고 단맛이 일반 굴에 견줘 몇배다. 파인다이닝(고급 정찬) 레스토랑에 유통되는 굴이다.



그가 작업장 뒤쪽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맛은 봐야지요.” 그가 깐굴과 각굴을 건넸다. 처음 한입에 흥분했다. 바다의 짠맛을 무력화하는 단맛이 입안을 점령했다.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최애’한 먹거리다. 아침마다 생굴 50개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랑을 지속하는 데 최고 식품이란 것이다. 이보다 관능적인 먹거리가 있을까. 물컹한 굴이 혀에 닿아 미끄러지는 순간만큼은 표현할 말이 없다. 실제 굴은 아연, 아미노산 등이 풍부한 식품이다.
고흥 바다는 통영과 달리 수심이 얕다. 매년 오르는 바다 온도를 감당하기 어렵기에 대부분 100일 안에 거둬들인다. 부성수산(고흥군 포두면 오취길 261) 정정운(63) 대표는 35년 경력의 생산자다. “과거보다 수온이 올라 생산은 힘들어졌는데, 인건비는 오르고 어려움이 크네요.” 고흥엔 굴 양식하는 ‘어가’(어부 집안)가 대략 80가구 있다고 한다. 부성수산이 있는 마을에 16개 업체가 있다. 마을 가운데에는 굴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있다.

질 좋은 굴 생산지인 고흥에 전문 식당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전문 식당이 넘쳐나는 통영과 비교된다. 그저 식당 반찬으로 나오는 식이다. ‘우주민속주점’ 한곳만 찜이나 구이 등을 판다고 한다. 정춘매씨는 “밤 8시면 오가는 사람이 읍써. 여수나 통영하고 다르지. 사람이 있어야 굴 파는 식당도 하는 거지”라고 이유를 말한다. 금성수산이나 부성수산 같은 업체 대부분은 전국 택배로 판매한다.
오는 3일 포두면 해창만 오토캠핑장 일대에서 ‘제1회 해창만 고흥 굴 축제’가 열린다. 생산자들이 처한 다양한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고흥군굴생산자협회, 지역자산화협동조합이 주최하고 30~40대로 구성된 취도금사항어촌앵커조직을 비롯해 4개 조직이 축제 콘텐츠를 구성했다. 이날 가면 굴보쌈, 굴전, 굴튀김치킨, 굴라면, 매생이굴떡국 등 굴 요리 10여종과 고흥 전통 음식 피굴 등을 맛볼 수 있다. 피굴은 조리법이 번거로워 사라져가는 우리네 전통 음식이다. 70도 물에 굴을 껍질째 넣어 20~30분간 삶은 다음 알맹이를 파낸다. 삶은 물에 씻어낸 알맹이를 한번 더 끓였다가 식힌 물에 넣어 먹는 음식이다. 쪽파와 참깨가 들어가야 완성이다. 굴 까기 행사, 소원 굴걸이 이벤트, 가수 공연 등 다채로운 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 축제의 백미는 역시 고흥 굴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다의 검은 보석 발포 김
고흥 겨울 여행의 화룡점정은 김 수확 풍경이다. 지난 11일 아침 8시 발포 포구 앞바다. 배 수십척이 해안에 한줄로 도열해 있었다. 양식장에서 거둬온 물김을 육지로 내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배 중 한척에서 작업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14t 배에서 일하는 베트남인들이다. 환한 미소로 물김을 커다란 자루에 담았다. 자루는 크레인에 걸려 육지로 이동했다. 바다의 검은 보석이 포구에 정박한 배마다 가득했다. 고흥은 김밥 김 생산지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발포 김은 질 좋기로 이름나 있다.



발포는 고흥에서도 작은 포구다. 하지만 대표 김 생산지이기에 ‘부자 마을’로 통한다. 11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 생산한다. 이런 이유로 귀어 청년도 많고 도시로 나갔다가 돌아온 ‘아들딸’도 많은 동네다. 부친 김대영(78)씨가 하던 김 양식업을 물려받은 새벽수산 김성수(50)대표도 그런 이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 사업 등을 했던 그는 4년 전부터 부친의 김 양식업을 잇고 있다. 지난해엔 김의 세계적인 인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김은 수확하고 3~4일 안에 제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마른 김은 관리만 잘하면 1~2년은 가요. 그런데 물김을 제품화할 공장이 적어 작년에 폐기도 많이 했어요. 바로 썩거든요.”
박주민(47) 용일수산 공동대표도 부친 박순일(78)씨의 가업을 이었다. “햇볕에 반짝반짝 까만 빛이 나고 만지면 물을 머금은 것처럼 부드러운 게 좋은 김”이라며 “김이 인기라는데 생산자인 우린 사실 별로 못 느낀다”고 했다. 김성수씨와는 다른 의견이다. 중간 상인이나 김 공장 구조를 정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매생이도 대표 겨울 음식이다. 가늘고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인 해조류다. 달큼한 향이 난다. 무침으로 먹거나 떡국 등에 넣어 먹으면 일석이조다. 고흥은 매생이 산지이기도 하다. 중앙식당 등 고흥 식당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전문점은 ‘월포가든’ 한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거금대교 휴게소에 매생이호떡을 파는 가게가 있다.
고흥/글∙사진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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