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으로 촬영한 곡강. 멀리서 보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 물결은 거칠며 수심 또한 깊다./김시탁 작가/
드론으로 촬영한 곡강. 멀리서 보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 물결은 거칠며 수심 또한 깊다./김시탁 작가/
◇굴곡이 있는 강이 아름답다= 사시사철 실개천을 부르고 하천을 끌어당겨 몸을 불린 겨울 강은 야윈듯하지만 근육질이 단단하다. 강은 그 단단한 몸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등창이 나지 않게 분주하게 몸을 뒤척인다. 강은 그냥 흐르는 것 같지만 흐르는 곳에도 길이 있다. 그 길을 거스르지 않고 쉬지 않고 묵묵히 흘러간다. 잔잔한 걸음으로 가야 할 평길이 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휘몰아쳐 돌아야 할 비탈이 있다. 또한 바짝 긴장한 채 뛰어내려야 할 절벽도 있다. 그렇게 강은 흐르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추락하기도 한다. 잔잔히 흐를 땐 평화롭고, 굽이쳐 흐를 땐 포효하며, 암벽에 부딪힐 땐 비명을 지른다. 강도 우리네 생과 같아서 굴곡이 있다. 굴곡이 있는 삶은 단련과 내공으로 다져지고 성숙되면 빛이 난다. 온몸을 움직여 흐름을 만드는 굴곡이 있는 강도 그래서 아름답다. 우리는 그 강을 곡강(曲江)이라 부른다. 유유히 내려오던 낙동강이 굽이쳐 수산다리를 건너 김해평야를 접수하는 곳 그 빼어난 곡강의 절경 속으로 떠나보자.
곡강정 옆 푸조나무.
곡강정 옆 푸조나무.
곡강정과 수산다리
곡강정과 수산다리
◇밀양 초동면 곡강마을= 창원 대산면에서 수산다리를 건너 부곡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국도변에 ‘곡강정’이라는 석재 표지판이 나온다. 맞은편 목원정 식당 골목길로 올라서면 다리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 다리 옆에 마을을 지키는 보초병 같은 노거수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노거수를 기준으로 좌측 길은 곡강정으로 가는 길이고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야트막한 산등성이가 나타난다. 거기서 상류의 낙동강을 바라보면 본포다리 밑으로 거대한 몸집을 한 강물이 흘러 내려오다 허리를 구부려 마을이 있는 암벽에 와 부딪치는 걸 볼 수 있다. 이곳을 곡강마을이라 부르는데 행정상 주소지는 밀양시 초동면 검암리다.
1545년에 건립된 곡강정
1545년에 건립된 곡강정
곡강마을부터 곡강정을 거쳐 수산다리 근접까지 이어진 암벽은 아랫배에 잔뜩 힘을 준 채 강물을 받아 수산다리 밑으로 밀어낸다. 멀리서 보면 그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 물결은 거칠고 세차며 수심 또한 깊다. 바람도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강물을 가로지르는 것의 근육질이 다르다. 암벽에 부딪혀 시퍼렇게 멍이 든 강물이 허옇게 거품을 토하며 방향을 바꿀 때는 비명을 지른다. 그 굉음을 뼈대가 있는 바람이 덥석 베어 물고 삼킨다. 곡강마을 산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자연이란 화가가 구도를 잘 잡아 그린 그림 같다. 뱃살이 빠진 강가로 빼곡한 억새들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시린 관절을 접지 않고 무릎까지 물속에 잠긴 채 강바람에 생머리 결을 찰랑이며 서 있는 버드나무가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도 이채롭다. 맞은편 대산면의 끝없이 펼쳐진 비닐하우스 평야는 대낮에 한창 햇살을 받을 때는 눈부신 설경과도 같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강물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철새들의 무리인데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고 말미를 장식한 낙관 같다. 그 아름다운 작품을 무상으로 감상하고 싶다면 곡강으로 가면 된다. 따로 입장료를 낼 필요는 없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서 보초병 노거수의 검문에 신분증 대신 답답한 가슴을 열어 보여주면 된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곡강마을.
팔각정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곡강마을.
◇곡강마을에 문학촌을 시도하던 시인이 있었다= 지난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야트막한 산등성이 위에 토목작업을 하고 택지를 조성한 시인이 있었다. 곡강의 절경에 반해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문학을 논하자는 순수한 뜻을 품고 문학촌을 조성하던 시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제일 먼저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 보금자리에서 속살이 차오르고 혈기왕성한 시를 키워내지 못하고 지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바로 故 오삼록 시인이다. 그는 생전에 곡강 언덕에 문학인들의 마을을 만들어보려고 애를 썼다. 그 당시 필자를 비롯하여 창원대학교 국문학과 장성진 교수와 이부용 시인이 뜻을 함께했다. 촌장 오삼록 시인의 뒤를 이어 이부용 시인과 장성진 교수가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당시 필자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망설이다가 결국 장 교수에게 마당 넓게 쓰시라고 터를 넘겼다.
당시 곡강 문학촌의 촌장 오삼록 시인은 암 투병으로 허약해진 몸을 추스르면서도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필자와 시향이란 동아리 활동을 함께하면서 연간지에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했고 10권의 시집을 냈다. 그가 도심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에 전망 좋고 공기 맑은 곡강을 선택한 것도 그곳에서 건강을 되찾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는 강이 바라보이도록 창을 냈고 서재를 만들었으며 찜질방까지 넣은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가혹하게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암 투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가 회복도 하기 전에 백혈병이란 괴물이 다시 덮쳤다.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암덩어리가 전신을 갉아먹는 고통 속에 시인은 겨울 자작나무처럼 앙상하게 말라갔다. 2020년 2월 20일 시인은 힘겹게 쥐고 있던 펜을 놓았다. 그날 곡강(哭江)은 등 굽은 사내가 어깨를 들썩이듯 온종일 철벅 철벅 강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가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부용 시인도 이사를 갔고 이젠 곡강 언덕엔 장 교수만 남았다. 장 교수는 고령의 모친을 모셨는데 모친이 돌아가시자 서울을 오가며 생활했다. 곡강 언덕 제일 후미에는 낙동강가에 있던 찻집 ‘알 수 없는 세상’이 황토집을 짓고 옮겨 왔다는 얘기가 들렸는데, 인적이 없고 빈집으로 남아 있다. 찻집으로 운영한 흔적은 없어 보인다. ‘알 수 없는 찻집’에 대해서는 필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필자와 장성진(왼쪽) 교수가 곡강마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자와 장성진(왼쪽) 교수가 곡강마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낙동강의 아름다운 비경을 품은 밀양 곡강정(曲江亭)= 마을 초입 노거수가 있는 왼쪽 길로 내려가면 낙동강을 바라보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곡강정이다. 낙동강의 아름다운 비경을 품은 이 곡강정은 조선 후기의 정자로 조선 전기 무신이자 중종반정 때 공신이었던 이식의 뜻을 기리고자 아들인 이덕창이 1545년에 지은 건물이라고 적혀 있다. 곡강정 옆으로 임금이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려준 토지 성산군 사패지(星山君賜牌地)가 새겨진 표지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이식은 연산군을 왕위에서 몰아낸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군대를 거느리고 가담해 공신이 된 인물이라고 했다. 그 후 중앙정치가 어려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낙동강 사패지에서 주변 절경과 풍치를 벗 삼아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곡강정은 당시에는 고강정(高江亭)이라 불렀는데 이후 굽이쳐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과 주변 풍광을 음미하는 심경을 뜻하는 곡강정(曲江亭)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곡강정 앞 판문각 정자 옆 강언덕에 세상 풍파를 이겨낸 이백 살이 넘은 팽나무가 위태롭게 서 있다. 곡강정은 해 질 무렵이면 낙동강변을 붉게 물들이고 일몰 풍경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곡강정을 출입하는 철대문은 늘 개방되지는 않는다. 이씨 문중의 후손이 입구 사택에 머물며 관리하는데 대부분 개방되어 있지만 부재중일 때는 간혹 잠겨 있는 경우도 있다. 개방 시에는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다.
보호수로 지정된 200살의 팽나무
보호수로 지정된 200살의 팽나무
◇곡강정의 보호수 푸조나무= 곡강정 뒤쪽 야트막한 산자락에 수령이 삼백 년을 거뜬히 넘긴 푸조나무가 있는데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다. 푸조나무는 따뜻한 지방의 하천이나 강둑에 주로 자라는데 열매와 잎이 팽나무와 흡사하여 개팽나무 또는 검팽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푸조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해 그늘을 만드는 나무로는 아주 이상적이다. 그러고 보면 이름조차 푸조나무라 하니 행여 푸짐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은 아닐지 모르겠다. 마을을 지키는 상징, 당산나무로 많이 쓰이고 특히 여름에 시원하고 풍성한 그늘을 제공해서 정자나무의 역할로도 인기가 높다. 가을에 그 무성한 잎들이 노란색이나 붉은색으로 단풍이 들면 매우 환상적이다. 가장 매혹적인 것은 겨울철 가지마다 내려앉은 설경을 보는 것인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주로 주말에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요즘은 평일에도 찾아와 곡강정을 둘러보고 푸조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 곡강정은 일반인에게도 제법 알려진 명소라고 할 수 있다.
가지가 풍성한 푸조나무
가지가 풍성한 푸조나무
◇3대째 이어오는 가마솥 추어탕집= 곡강정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강바람을 쐬며 푸조나무에게 눈인사를 건네다 보면 서서히 허기가 지는데 그때 허기를 채우기 좋은 식당이 근거리에 있는데 바로 가마솥 추어탕집이다. 고부가 3대째 운영하는 식당이라는데 기존의 시골집에 가마솥을 걸고 장작불을 피워 끓여내는 추어탕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추어탕도 좋지만 미꾸라지 튀김을 안주 삼아 막걸리라도 한잔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지나가는 사람이 발을 밟아도 즐겁고, 차 안에서 싸우며 온 부부도 웃으면서 돌아간다. 가마솥추어탕 집이 있는 위치는 수산다리 건너 부곡 쪽으로 약간만 들어오면 길가에 사시사철 사람들이 북적이는 식당이 있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주차장도 넓고 구 건물 옆에 최신식 화장실도 잘 갖추어져 있다. 부곡온천에 가는 사람들은 추어탕 한 그릇 비우고 속을 넉넉하게 해서 온천탕에 들어가면 땀도 쉽게 잘 나고 마음이 안정되어 좋다.
장성진교수(오른쪽)와 이부용시인의 집
장성진교수(오른쪽)와 이부용시인의 집
◇수심이 깊은 곳은 그리움도 깊다= 시인이 떠난 후 곡강마을 문학촌은 낯선 새 주인들로 바뀌었고 필자의 발걸음도 멈췄다.
가끔 주위를 지나갈 일이 있거나 불쑥 오삼록 시인이 생각날 때면 마음만 곡강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찾은 곡강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시인이 살던 집은 세를 놓았다고 들었는데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마침 장 교수가 곡강마을 자택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잡초가 무성한 텃밭을 삽질하고 내실에서 잠시 쉬고 있다 작업복 바람으로 필자를 맞았다. 오랜만에 회포도 풀 겸 가마솥 추어탕집으로 가 쌀알이 동동 뜨는 동동주 사발을 부딪쳤다. 물론 안주는 흙탕물 일으킨 죄로 기름에 튀긴 미꾸라지 튀김이다. 뜨거운 기름 속에서 마지막 절명의 몸부림이 굽은 곡강을 닮았다. 미꾸라지를 나무젓가락으로 건져 바작바작 씹었는데 입안은 고소하면서도 어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는 까닭은 한 시인을 추억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말을 아끼고 술잔을 비우는 속도를 빨리했다. 수심이 깊은 곡강은 그리움마저 깊은 곳이었다.
‘강물은 모래 속에 발목을 묻고 미리 줄기를 늦추어 흐르고 암벽은 맨몸으로 부딪쳐올 강물을 상처 없이 받기 위해 아랫배에 힘을 준 채 시린 관절을 접지 않는다. 수심이 깊은 곳엔 그리움도 깊어 머물고 싶은 마음과 보내기 싫은 마음 사이로 길이 생긴다. 강물이 굽어 흐르는 것은 떠나온 곳이 그리워 흘러가면서도 자꾸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너에게 닿기 위해 나를 구부리는 일은 눈물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