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몇 명, 몇 원… 2년간 살펴본 용주골의 ‘진짜 숫자’

유혜연 2025. 12. 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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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용주골은 국가의 달러 창구
영어 말하기도 알려주던 정부의 역사
아이를 보호하기 위함이라 말하지만
여성들의 아이 정작 보호받지 못해

시장과 만나달라 바짓가랑이 잡고
호소한 후 돌아온 집행유예의 시간
유엔 여성기구 보편 인권 호명한 날
단면적 셈법은 해법 될 수 없는 이유

파주 용주골은 집계 가능하고 환산 가능한 수치로 정리되어 왔지만 그것만으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다 헤아릴 순 없다.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전경. /경인일보DB

‘2023년 1월’, ‘14회’, ‘82개동’, ‘22명’, ‘최대 4천만원’

대한민국의 성매매 집결지는 오랜 시간 숫자로 관리돼 온 공간입니다. 폐쇄 시점과 단속 횟수, 대상 구역과 계도한 종사자, 지원 금액까지. 국가는 이 공간을 언제나 집계 가능하고 환산 가능한 수치로 정리해 왔습니다. 역사의 뒤안길 앞에 서 있는 경기도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파주 용주골 역시 이 틀 안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들만으로는 한 사람이 한 장소에서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과 선택, 그 시간을 버텨온 이유까지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행정의 시간표와 법의 기준선은 용주골을 정리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했지만, 그 계산대 위에는 당사자들의 삶의 맥락이 좀처럼 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숫자로만 정리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용주골은 통계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공간입니다. 이곳의 시간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관리되고 활용돼 온 역사이자 인간의 몸이 전쟁과 자본의 논리 속에서 어떻게 돈으로 환산하는 재화로 취급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궤적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미군 달러를 벌어들이는 ‘경제적 숫자’로 환대받았던 이들이 이제는 도시 개발을 가로막는 ‘미관적 감점 요소’로 다시 분류되고 있습니다.

지자체의 명분에는 이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지워져 있다.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전경. /경인일보DB


불법과 낙인.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성매매는 불법이니 집결지를 없애야 한다’는 정책 명분과 ‘부적절한 대상이니 아이들의 시야에서 지워야 한다’는 사회 인식에는 한 가지 간과된 점이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일을 해 온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주골은 분명 불법 행위가 벌어지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수십 년간 사람이 머물며 삶을 꾸려온 주거이자 생활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는 일을 행정 절차로만 다루기에는 부족합니다. 전쟁 이후 국가 정책과 맞물려 형성된 역사적 맥락이 있고 오랜 시간 방치되다 개발 논리와 겹치며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도 얽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쉽게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연대의 대상이 되기조차 힘든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선악 구도나 단속의 시선만으로는 이 공간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시민사회에서 나오는 까닭 역시 이 때문입니다. 결코 성매매 산업을 옹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법이라는 이유로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주거와 생계,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함께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입니다. 용주골을 인권의 문제의 장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이 지점에서 선명해집니다.


당사자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요구가 아닙니다. 불법과 단속의 언어로 계도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대화해달라는 요청입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습니다.” 최근 용주골 사태를 둘러싸고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역시 행정과 사법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짚은 우려일 것입니다.

자활 지원 실적이나 폐쇄율처럼 ‘0’을 ‘1’로 바꾸는 숫자는 행정의 성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치 뒤에는 여전히 그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온 사람들의 얼굴이, 시간이 존재합니다. 하나둘 떠나 이제 66명만이 남은 용주골에 필요한 것은 속도를 앞세운 결단이 아니라 행정과 법의 언어 안에 당사자들의 삶을 담아내는 대화일지도 모릅니다.

‘75년’, ‘19만㎡’, ‘0명’, ‘집행유예 2년’, ‘2025년 3월 14일’.

경인일보는 지난 2년간 용주골 현장을 따라가며, 행정과 법의 계산 속에서 반복적으로 지워져 온 다섯 개의 숫자를 마주했습니다. 이 숫자들은 통계에서 나온 결과값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삶의 맥락이자,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의 구체적인 시간입니다. 용주골 성매매 종사 여성, 파주 연풍리 토박이, 인권활동가…. 2025년의 마지막 날, 경인일보는 용주골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이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섯 가지 삶의 숫자를 통해 다시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여기 살면서 본 게 있는데…” 수퍼마켓 주인 최모씨는 결국 일터를 잃었다. 사진은 파주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전경. /경인일보DB


■ 75년, 역사의 과오… 최씨의 셔터가 내려간 날

“여기는 70년 넘게 나라가 판을 깔고 관리했던 곳이에요. 파주에서 나고 자라며 이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다 본 사람인데, 이제 와서 아무 책임 없다는 듯 ‘불법’이니까 당장 치우라는 말을 들으면 기가 막히죠. 우리가 여기 살면서 본 게 있는데….”

지난 7월 파주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안쪽에서 24년째 자리를 지키던 작은 수퍼마켓이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주인 최모(67)씨는 선반 위에 쌓인 먼지를 닦아낼 기력조차 잃을 만큼 착잡한 심경이었다고 했습니다. 행정대집행이 본격화되면서 단골들은 떠났고 그는 평생의 일터이자 동네 사랑방이었던 공간을 접어야 했죠. 최씨에게 이곳은 누군가 손가락질하는 ‘집창촌’이기 이전에, 67년 평생을 파주시민으로서 살아오며 목격한 삶의 응어리가 서린 곳이었습니다.

자그마치 75년입니다. 파주시 연풍리, 원래 이곳은 대추나무가 많아 ‘대추벌’이라 불리던 평온한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미군 기지촌, 용주골의 역사적 변화: 사회경제적 공간구조를 중심으로’(2020) 연구를 보면 여러 성씨가 대를 이어 모여 살던 집성촌의 운명은 1950년 한국전쟁과 함께 뒤바뀌었습니다. 미군 부대가 들어서며 조상 대대로 일궈온 땅은 군사시설로 수용됐고, 마을은 어느 날 갑자기 ‘용주골’이라는 낯선 이름의 기지촌이 됐죠.

당시 국가는 이곳을 거대한 ‘달러 창구’로 대우했습니다. 나라 곳간이 비어있던 시절, 정부는 성매매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 부르며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외화에 기댔습니다. 정부는 이들에게 영어 회화와 손님맞이 태도를 가르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상 국가가 안보와 경제적 필요에 따라 성매매 산업을 수면 아래서 허용해준 셈이었죠. 용주골은 그렇게 국가의 묵인과 관리 아래 활성화된 공간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법을 근거로 행정력을 투입하는 지자체를 ‘무결한 집행자’로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75년의 세월 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상황에 따라 이곳의 얼굴을 바꾸며 여성들을 관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미군의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해 성병 관리소를 세우고 여성들을 강제로 가둘 때는 ‘철저한 관리자’였고, 법을 핑계로 검진을 거부하는 이들을 처벌할 때는 ‘엄격한 감시자’였습니다. 치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페니실린 과다 투여와 수용 시설 감금은 당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국가적 관리의 단면이었습니다.

국가는 이곳을 달러 창구로 우대했다. 행정력을 투입하는 지자체를 무결한 집행자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전경. /경인일보DB


전환점은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입니다. 수십 년간 외화벌이를 이유로 성매매를 관리해왔던 국가는 법 제정과 함께 이곳을 이제 청산해야 할 범죄 소굴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사회적 격리를 택했습니다. 용주골은 청소년 통행 금지 구역으로 묶였고, 국가는 그 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다시 한번 눈을 감았습니다. 미군이 떠난 빈자리를 내국인들이 채우며 집결지가 유지되는 동안 국가는 여전히 방관자로서 이곳의 영업을 방치했죠.

최씨와 같은 연풍리 토박이들이 의아함을 표출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23년 1월, 파주시가 전면 폐쇄 계획을 선언한 때부터입니다. 75년 전 국가가 앞장서서 여성들을 관리하고 이용할 때는 침묵하던 지자체가 역사의 과오에 대한 성찰 없이 이들을 오로지 불법 행위자로 몰아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자체가 제시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자활 지원금도 이들에게는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가했던 방관과 폭력을 대대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행정의 갑작스러운 인권 감수성은 당혹스럽게 다가올 뿐입니다.

75년. 누군가에게는 지워야 할 오명의 숫자이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을 버틴 이들에게는 국가가 필요할 때 불러들여 이용하고 이제는 불법이라며 등을 돌린 배신의 시간입니다. 성매매가 범죄라면, 그 터전을 수십 년간 방치하고 관리해온 국가와 지자체는 과연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용주골의 시간은 오늘날의 사회를 향해 묻고 있습니다. 이 비극의 마침표를 왜 가장 끝에 내몰린 이들의 희생으로만 찍으려 하느냐고 말이죠.

용주골은 주거권과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복잡하게 얽힌 공간이다.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전경. /경인일보DB


■19만㎡, ‘재개발’이라는 설계도… 지워진 용주골 세입자들

도시화가 한창이던 시절, 판자촌에 살던 도시 빈민들은 늘 철거 앞에서 가장 먼저 밀려났습니다. 문서 한 장 없다는 이유로 주거는 권리가 되지 못했고 삶의 터전은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비슷한 장면이 파주 용주골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조세희 선생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의 모습이 그러했다면, 21세기의 ‘난장이’들은 더 이상 판잣집이 아니라, ‘불법’이라는 계고장이 붙은 공간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파주시 연풍리 일대 약 19만㎡(파주 1~3구역). 이 광활한 땅은 지난 2015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뒤 10여 년간 거대한 설계도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낡은 도심을 허물고 들어설 프리미엄 아파트의 면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이 재편되는 크기였습니다.

하지만 장밋빛 설계도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2021년 시공사 선정 이후에도 경기 침체로 사업성이 악화되며 재개발 사업은 장기 표류했습니다. 결국 조합이 법정 기한인 2024년 12월 27일까지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서, 파주시는 지난 3월 17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정비구역 해제를 고시했습니다. 10년을 끌어온 누군가의 재개발의 꿈이 멈춰선 순간이었습니다.

지자체는 자연스러운 정비 과정을 기다리는 대신 행정대집행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10년 넘게 개발 이익을 기다려온 일부 주민들과 행정 사이에도 날 선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연풍리주민활성화대책위원장 박모(66)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주민들이 직접 경기도청을 방문하고 재개발을 준비해왔는데, 시는 주민 공청회 한 번 없이 철거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민관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장면을 용주골의 세입자이자 성매매 종사 여성들은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개발의 수익 계산에도 행정의 보상 논리에도 포함되지 않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도시화 과정에서 판자촌 주민들이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주거권을 주장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들 역시 도시 정비와 불법 공간이란란 명분 아래 손쉽게 지울 수 있는 퇴출 대상이 됐습니다.

파주시는 올해 집결지 폐쇄 예산으로 46억원을 편성했다. 이중 38억6천만원은 건물 매입비다.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경인일보DB


파주시는 올해 집결지 폐쇄 예산으로 46억원을 편성했습니다. 이중 38억6천만원은 건물 매입비입니다. 일부 건물을 매입해 정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 방식은 건물주에게만 보상의 출구를 열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실제로 거래가 끊긴 구도심에서 지자체가 건물을 사들인다는 소식은 건물주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였고, 일부 건물주가 세입자인 여성들에게 퇴거를 압박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임대차 계약서 한 장 없이 월세를 내며 용주골을 마지막 주거지로 삼아온 이들은 권리금은커녕 실질적인 이주 대책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떠나야하는 상황입니다.

용주골은 주거권과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복잡하게 얽힌 공간입니다. 성매매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거주는 ‘주거’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들의 일터는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파주시는 자활 조례를 통해 전국 최대 규모의 지원을 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성매매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은 오랜 시간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 온 이들에게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19만㎡. 이 거대한 면적 위에서 자본은 이익을 계산하고, 행정은 집행의 성과를 기록합니다. 그 사이에서 어떤 여성들은 세입자로서의 주거권도, 시민으로서의 이름도 인정받지 못한 채 밀려나고 있습니다. 도시 정비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철거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지키고 누구의 삶을 지우고 있는지는 이미 헐린 건물의 잔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21세기의 난장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최소한의 머물 자리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용주골에도 워킹맘이 있었다. 40대 여성 A씨의 아이는 ‘지켜야 할 아이’의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인일보DB


■ 0명, ‘아이들을 위해’ 밀어낸 또 다른 아이

용주골에도 워킹맘이 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2024년 3월8일 용주골에서 만난 40대 여성 A씨는 자신을 가장 먼저 ‘엄마’라고 소개했습니다.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고, 인천에 살면서 8년째 파주 용주골로 출퇴근해 왔습니다.

“아이 둘 키우면서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오늘은 쉬는 날인데도 동료들이 다칠까 봐 인천에서 여기까지 달려왔죠. 그런데 정말 서러운 건 따로 있어요. 세계 여성의 날이라고 다들 ‘빵과 장미’를 얘기하는데, 우리에겐 그 흔한 장미 한 송이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우리도 엄마고, 우리도 여성인데….”

이날은 A씨의 휴무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쉬지 못했습니다. 용주골을 가로막고 있던 펜스를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 대신 현장에는 용역 인력이 투입됐습니다. 용주골과 인근 연풍천 사이를 막고 있던 펜스를 철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24년 3월 8일 오후 1시40분께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에서 파주읍의 펜스철거에 맞서 이곳 종사 여성과 연대단체 시민들이 팔짱을 끼고 바리게이드를 만들고 있다. 2024.3.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여성들은 서로의 팔짱을 끼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지자체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이곳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펜스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습니다. 외부의 시선과 낙인으로부터 자신들을 가려주는 마지막 보호막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리적 충돌은 인근 연풍초등학교 문제와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한 반성매매 시민단체는 학교와 성매매 집결지가 가깝다는 점을 들어 폐쇄를 촉구했고 시위 현장에는 ‘아이들을 위해’라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공간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명분은 분명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구호는 역설적으로 용주골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던 엄마들에게는 또 다른 위협이 됐습니다.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외침이 커질수록 이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과 그 자녀들에게는 정체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쌓여갔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조차 조심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2024년 3월 8일 오후 1시40분께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에서 이곳 종사 여성이 담벼락 위에 올라가 펜스 철거를 막으려 시위하고 있다. 2024.3.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주홍빛연대 차차(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모든 성노동자를 위해 ‘차’별과 낙인을 ‘차’근차근 없애 나가기 위한 당사자들 중심 연대 모임)가 펴낸 ‘2025 용주골 기록집’에는 당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해당 반성매매 단체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연풍초에 다니는 아이 엄마 중에도 용주골 여성이 있느냐고 묻자, 진행자 측은 “용주골 여성들은 아이를 서울의 좋은 학교로 보내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용주골에서 일하며 이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또 다른 엄마의 존재는 질문의 범위 밖에 있었습니다.

용주골 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 대표 별이(활동명·40대)씨는 당시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실제로 그 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한 명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 앞 시위가 계속되니까 엄마가 겁을 먹었죠. 아이에게 낙인이 찍힐까 봐서요. 결국 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떠났고, 아이도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외침이 이어지는 동안 보호가 필요했던 또 다른 아이는 조용히 학교를 떠났습니다. 용주골에는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엄마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매매 집결지를 둘러싼 논의에서 그들의 아이는 끝내 지켜야 할 아이들의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0’입니다. 존재했지만 계산되지 않았고 보호를 말하는 구호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아이였습니다.


■ 집행유예 2년, ‘법의 눈물’은 없었다

“거창한 요구가 아니에요. 우리를, 우리도, 그냥 사람으로…. 여기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대화를 해달라는 거였어요.”

지난 10월 15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복도에서 만난 별이(가명)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서 있었습니다. 파주시가 조례로 책정한 최대 5천20만원의 자활 지원금. 그는 이 숫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돈보다 먼저 인정돼야 할 것은 이곳에 실재하는 주민으로서의 존재와 대화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공무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던 날, 그 절박함의 대가는 재판정에서 숫자로 돌아왔습니다. 별이씨의 귀에 남은 것은 판사의 한 문장이었습니다.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1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재판부는 별이씨와 함께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인권활동가 여름(활동명)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공무원의 다리를 붙잡은 시간이 짧았고 곧바로 대화를 시도한 점 등이 참작됐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씨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6단독(최동환 판사)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성노동자 별이(이하 활동명)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인권활동가 여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2025년 6월 18일 별이씨와 여름씨가 최종 변론을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 /경인일보DB


이 판결을 지켜본 시민사회의 시선은 복잡합니다. 빈곤, 불안정한 노동, 주거 문제라는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행위만을 떼어내 판단한 결과라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날 공판을 지켜보기 위해 대구에서 왔다는 시민 조예지(25)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존권을 사수하려는 소수자들의 정당한 목소리였는데,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것이 과연 사법의 언어로 죄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집회·시위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모이지 말라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어요. 법의 논리로만 재단하면, 그 틀에 담기지 않는 사람들의 삶은 부당함을 호소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우려는 보다 근본적인 지점으로 향합니다. 사회에서 소수자가 부당함을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권수정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은 이번 판결을 두고 이렇게 짚었습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집회·시위 자유가 위축된 수준이 아니라, 행정과 사법이 한목소리로 소수자에게 너희가 설 곳은 없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무릎을 꿇은 시민을 범죄자로 판단한 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마저 법이 금지한 셈이죠. 특히 집행유예가 선고된 이상 앞으로 행정대집행이 다시 강행되더라도 당사자들은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성노동자 별이씨와 여름(이상 활동명)씨에게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무죄가 선고됐다. 이날 공판 방청을 온 시민들은 해당 사건의 맥락을 고려치 못했다며 판결 내용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진은 대구에서 온 조예지(25)씨가 관련해 본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2025.10.15 /김도윤PD kjkdy02@kyeongin.com


별이씨가 지금도 먹고, 자고, 일하는 삶의 터전인 파주 용주골에는 어느새 골목 전봇대 위 감시용 CCTV가 설치됐습니다. 카메라는 이들의 생활 공간을 24시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굴착기가 주인과 세입자가 떠난 건물을 허물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는 집 앞에 당사자의 동의 없이 설치되는 CCTV를 막아 달라며 대화를 요구한 행위조차 ‘폭력’으로 규정된 현실은 많은 질문을 남깁니다. 선지영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이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성노동자라고 해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 당사자들의 확인과 동의 없이 CCTV를 설치할 수는 없습니다. 명백한 인권 침해의 문제입니다.”

누군가에게 이 풍경은 도시 정화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에 주소를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하루하루를 잠식하는 합법적인 잔인함에 가깝습니다. 숫자로 매겨진 형량과 판결은 남았지만, 법정 어디에서도 ‘법의 눈물’은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성노동을 대하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인권 보호 원칙을 강조했다. 유엔여성기구는 유엔 내에서 성평등 및 여성 인권 증진을 담당한다. /유엔여성기구


■ ‘3월 14일’ 유엔 여성기구가 호명한 ‘보편적 인권’ 대상으로서의 용주골 여성

“성매매와 성노동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성노동자도 인권 보호를 받아야 하며, 정책 결정 시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합니다… 매춘과 성노동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며 회원국들이 각기 다른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성노동 및 성매매 정책은 반드시 해당 개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며, 각국의 맥락을 반영하되 포괄적이고 관련 당사자 및 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 마련돼야 합니다.”

2025년 3월 14일,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용주골 사태를 질의한 경인일보에 이 같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불법이라는 이유로 당사자와의 대화를 생략해온 국내 행정 기조에 대해 국제사회가 인권의 최소 원칙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순간이자 이를 환기시킨 중요한 변곡점이었습니다.

이 답신은 한 달 뒤인 4월 18일, 용주골 여성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리게 한 결정적인 근거가 됐습니다. 성매매 종사자의 인권 문제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적 논의 테이블 위에 오른 첫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는 국경을 넘어선 연대의 목소리도 함께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인권활동가 윤(Yoon·32)씨는 용주골의 풍경이 결코 낯설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뉴욕 퀸즈와 뉴저지 일대에서 아시아계 이주 여성 노동자 연합체 ‘레드 카나리 송(Red Canary Song)’ 소속으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2023년 5월 16일 파주시 연풍5길에서 열린 성매매 집결지 폐쇄 조치 항의 시위. 종사자 여성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이 입장문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 2023.5.16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미국에서도 여성의 안전을 명분으로 단속과 추방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여성들의 생계는 무너집니다. 불법 건물 철거, 허가 미비, 도덕적 문제 같은 이유로 성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립니다. 특히 ‘아이들이 보고 있다’, ‘교육에 해롭다’는 말이 반복되는데, 사용되는 말만 다를 뿐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윤씨의 설명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가 단순한 지역 정비나 치안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여성들의 삶의 터전을 지우는 과정에서 개발 논리와 소수자 혐오가 결합하고 그 결과 가장 취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밀려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현재 지자체의 완고한 집행 기조 속에 용주골의 건물들은 하나둘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폐허의 가장자리에는 여전히 66명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화를 기다리며 하루를 버텨내는 23가구의 구체적인 삶입니다.

‘3월 14일’은 이들의 삶이 행정 추진 과정에서 감수해도 되는 희생이나 부수적 문제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분명히 확인한 날이었습니다. 21세기의 난장이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보상이 아닙니다. 불법이라는 이유로 행정의 선 밖으로 밀려나지 않고 한 명의 시민으로서 존중받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화 자리입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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