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득권 진보’를 넘어, 이제는 ‘진보의 진보’로

김현철 서울교육자치시민회의 준비모임 대표 2025. 12. 3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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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정치와 교육 현장은 ‘승자독식’의 늪에 빠져 있다. “당선만 된다면 악마에게도 영혼을 팔겠다”는 냉소적 현실이 진보와 보수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 선거는 미래의 방향을 겨루는 장이 아니라 권력을 나누는 게임이 되었고, 정책은 실종됐다. 그 결과 유권자는 늘 ‘최악’ 대신 ‘차악’을 택하는 불행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 낡은 정치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기득권화된 진보’ 자신이다. 교육계를 보면, 여전히 1970·1980년대 학번들이 중심이 된 진보 진영이 교육감 선거를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1980년대의 민주화 경험과 투쟁의 언어로 2020년대의 인공지능(AI)·플랫폼 세대를 이해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헌신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시대는 이미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에게 ‘경험’은 존경의 대상이지만, ‘꼰대의 패권’으로 작동할 때 그것은 분명한 장애물이 된다.

이 현상은 단순한 세대 문제가 아니라, ‘시대 부적합’의 문제다. AI와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젠더 감수성, 플랫폼 경제 등 사회 구조 자체가 변했지만, 진보 진영의 리더십은 여전히 관성처럼 과거의 운동논리에 머물러 있다.

‘중앙집권화된 교육청’ ‘관료적 수직 구조’ ‘형식적 참여’라는 낡은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혁신의 에너지는 제도 속에 갇히고 있다. 이런 구조를 지탱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세대교체’란 단순히 젊은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리더십의 철학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의 진보’가 필요하다. 과거의 진보가 민주화와 공정분배의 이념으로 사회를 바꿨다면, 이제의 진보는 그 과정에서 놓친 가치들을 다시 중심으로 세워야 한다.

첫째는 생태와 기후 정의다. ‘누가 더 많이 성장할 것인가’의 경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함께 생존할 것인가’를 묻는 탈성장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는 교차성과 다양성의 정치다. ‘노동자’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넘어 여성·장애인·이주민·성소수자가 겪는 교차적 차별에 주목해야 한다.

셋째는 디지털 주권과 플랫폼 윤리다. AI와 데이터가 자본이 된 시대에 기술의 공공성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윤리가 진보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은 돌봄과 관계의 사회화다.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임금 인상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돌봄과 관계의 책임을 나누는 일이다. 여성과 가족의 희생 위에 세워진 돌봄체계를 공공의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바로 사회성이고 다른 말로 평화이기도 하다.

이 네 가지 의제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생존 조건이다. 그러나 지금의 진보는 여전히 ‘승리의 기억’에 갇혀 있다. 과거의 투쟁이 만들어낸 도덕적 권위는 이제 스스로를 갱신하지 않으면 권력의 방패가 된다. 과거의 혁신가가 오늘의 기득권자가 되는 순간, 진보는 멈춘다.

이제 ‘진보의 진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과제다. 새로운 진보는 자신이 세운 제도를 성역화하지 않고, 새로운 세대와 가치를 품어야 한다. 정치적 세대교체는 ‘젊은 얼굴 바꾸기’가 아니라 ‘낡은 리더십의 교체’다.

교육감이 지시하고 학교가 따르는 낡은 관료제가 아니라, ‘학교주권’이 실현되고 ‘사회적 합의’가 작동하는 ‘플랫폼(Platform)’을 설계하는 리더십이다.

진보가 자신을 바꾸지 못하면, 결국 변화는 보수의 언어로 흡수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제 우리 사회의 진보가 스스로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진보가 다시 진보하려면, 먼저 자신을 혁신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의 진보’다.

김현철 서울교육자치시민회의 준비모임 대표

김현철 서울교육자치시민회의 준비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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