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자본주의는 독점이다?
현대 역사학의 장르 중 전체사라는 것이 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사건사에 맞서 잘 변하지 않는 역사의 심층 구조를 밝히려는 야심적 시도다. 전체사를 대표하는 역사학자가 ‘역사학의 교황’이라 불린 페르낭 브로델이다. 그의 대표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기층의 물질문명과 중간의 시장경제, 표층의 자본주의라는 3층 구조를 통해 전체사의 문제의식을 실현한 작품이다.
여기서 브로델이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이 독특하다. 보통 자본주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으로 간주되고 때때로 시장경제와 동의어로 이해된다. 그러나 브로델은 그것을 단기적이고 사건적인 수준에서 인식한다. 자본주의는 명백히 투명한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장경제에 토대를 두지만, 그 행태는 오히려 시장에 역행하는 ‘반시장’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큰 이윤을 취하고 빠져나가는 투자(투기)이자 특정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이다. 16세기를 전후로 한 시대 후추, 설탕 등 사치품 시장을 장악한 대상인들이 그 사례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가이자 벤처캐피털 투자자인 피터 틸의 스탠퍼드대 강연을 보면서 그의 자본주의관이 브로델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해 놀란 적이 있다. 틸에 따르면, 자본주의와 경쟁은 상극이다. 그의 조언은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것이다. 독점이야말로 모든 성공한 기업의 현 상태임을 이해하고, 창조적 독점을 추구하라는 것이 그의 강력한 주장이다.
그런 시각에서 종래의 파괴적 혁신도 평가절하된다. 왜냐하면 파괴적 혁신은 신제품으로 기성 제품의 우위를 파괴해 기존 시장을 잠식하려는 경쟁 전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경쟁을 통해 작동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허상에 가깝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독점을 통해 발전한다. 경쟁 전략은 기왕의 하나에 또 다른 하나를 덧붙이는 것일 뿐이고, 진짜 중요한 것은 제로 상태에서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독점이다.
틸은 자신의 주장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에 빗대어 설명한다. 즉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지만, 기업의 경우는 그와 정반대라는 것이다. 행복한 기업은 제각기 다르고 실패한 기업은 천편일률적이다. 요컨대 경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은 실패하고, 독보적인 남다른 기업만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고만고만한 ‘그들 중 하나’가 되기보다 ‘유일한 하나’가 되라는 강력한 주문이다.
틸의 주장은 브로델의 오래된 주장과 유사하다. 자본주의와 경쟁은 대립하고, 독점이 자본주의의 본래적 성향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과연 자본주의란 무엇일까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다. 놀라운 점은 브로델이 수백년 전 과거를 탐구하며 밝혀낸 자본주의의 독점과 투자의 논리가 오늘날의 금융 자본주의와 크게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틸이 일절 브로델을 참조하지 않고도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세계의 경험만으로 브로델의 자본주의관을 재해석한다는 점도 놀랍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브로델과 틸이 고려하지 않은 요소가 있다. 가령 브로델이 탐구한 시대에는 없던 민주주의적 국가와 시민사회는, 시장을 독점한 기업이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지 않고 부당 이윤을 취득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업에 요구되는 사회적·윤리적 책임과 의무도 독점의 특권을 오남용하지 않게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시장을 창출하고 독점하려 노력하겠지만, 최초의 성공을 지속하고 자신의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려면 꾸준히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만일 기업이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판단되면 단번에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어버릴 터이다. 따라서 독점의 힘은 절제되고 신중히 사용되어야 한다.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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