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대 왕 무덤에 금관이 없는 이유? “그땐 금보다 은이 귀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신라 고분인 황남대총은 북분과 남분으로 구성됐다. 남분에서는 60대 전후 남성으로 판단되는 시신의 유골과 금동관, 금동장고리자루큰칼 등이 출토됐고, 그보다 후에 만들어진 북분에서는 남분에 비해 많은 장신구가 발굴됐다. 이를 근거로 남분에는 왕이, 북분에는 왕비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북분에서는 금관이 출토된 반면, 남분에서는 은관과 금동관만이 출토됐다는 점이었다. 이는 남분에 묻힌 사람이 왕이 아닐 수 있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황남대총이 만들어졌을 4~5세기 신라에는 은의 가치가 금보다 귀했거나 동등했으며, 고급 은제품이 황남대총 남분에서만 발견됐다는 점이 ‘금관 없는 왕의 매장’의 증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홍국 위덕대 연구교수(전 위덕대박물관장)는 한국고대사탐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한국고대사탐구’ 최신호인 51호에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는 왜 금관이 없었나?’를 투고했다고 31일 밝혔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순금 한 돈(3.75g)의 구매 가격은 90만원대이지만 은 한 돈 구매 가격은 2만원에도 미치지 않는다. 박 교수는 “기원전 2500~1700년 무렵까지는 은이 금보다 훨씬 귀했다. 기원전 2000년대까지 은과 금의 교환 비는 2:1로 추정했다”며 “근데 이전에는 납·아연광석에서 은만을 분리하자면 까다로운 회취법(灰吹法)으로 몇 번이나 제련해야 순은에 가까운 은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회취법은 금이나 은이 포함된 광석을 고온에서 녹인 뒤 금과 은을 추출해 내는 기술이다.
은을 생산하는 것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연산군일기>에는 납 2근(약 1.2㎏)에서 추출된 은은 2돈(7.5g)에서 4돈(15g)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박 교수는 “수천년 간 은이 금보다 고가였다는 사실을 신라에도 대입할 수 있다”며 “은의 제련이 위험하고 까다로웠으며, (제련법이 국내로) 전파됐다고 하더라도 광석 산지 확보, 노두 광맥 채굴, 숙련 인력 등에 시간이 걸리므로 1~2세기 동안은 은이 금보다 비싸거나 거의 같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금은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도 한반도 내에 사금산출지가 1934곳이나 존재했다는 점, 신라시대 유물 중에 금이 포함된 것이 많다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은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박 교수는 추정했다.

박 교수는 황남대총 남분에 은제 유물이 유독 많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은제 관, 팔뚝가리개, 펜촉형 판부착반지, 국자 등은 황남대총 남분 외의 다른 국내 유적에서 출토된 바가 없다. 박 교수는 “펜촉형 판부착반지 6점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가진 호화사치품”이라며 “황남대총 남분의 피장자가 최상위 신분이 아니었거나 권력·재력이 부족했다면 호화로운 은반지를 6개나 구해 손가락이 끼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제 유물이 4~5세기 신라에서 더 고가였을 가능성은 다른 유적에서 발견된 은제 유물에서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은제 허리띠에는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또다른 신라 고분인 서봉총에서 출토된 은합에는 서봉총이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있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용무늬 팔찌 한쌍에도 만든 이와 선물 대상(무령왕비), 만든 시기와 재료 등이 글씨로 새겨졌다.
박 교수는 “이밖에 금이나 은 부분에 글씨가 새겨진 유물은 금관총에서 출토된 ‘이사지왕(도)’명 환두대도 정도 뿐”이라며 “금에 비해 은 가격이 낮았다면 글씨를 새기지 않았을 것이다. 은장신구나 은합이 금으로 만든 것보다 더 중요했기에 글씨를 새긴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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