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간첩죄 개정, 국부 유출 막아야

석재왕 건국대 교수 2025. 12. 3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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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3일 ‘적국’에서 ‘외국’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간첩죄(형법 제98조)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올해 초에는 여야 합의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53년 제정된 이래 약 70년이 지난 후에야 개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 법은 이념이 반영된 만큼, 그동안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그 결과 다수의 인사와 단체가 오랫동안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국회 문턱을 넘게 됐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행 형법체계의 개정 필요성은 몇 가지 이유에서 이미 충분히 입증돼 있다.

첫째, 변화된 안보 환경과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안보 개념은 군사 영역을 넘어 기술·사이버·대규모 재난 등으로 확장되며 양적, 질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조선·방산 등 기술 보호는 이제 국가 안보와 생존에 핵심적 요소가 됐다. 세계 10위권 경제강국 한국은 이미 간첩 활동의 주무대가 된 지 오래다. 우방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첨단기술과 경제 정보, 인력을 빼돌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 군무원이 중국 정보원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반도체·방위산업 관련 첨단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간 경우에도 간첩 행위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었다. 형법 제98조에서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으로 한정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현행 법체계로는 산업스파이를 제대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산업기술보호법은 최대 징역 15년까지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경미한 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다. 반면, 선진국은 간첩죄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17년에 간첩법(the Espionage Act)을, 1996년에는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을 통해 해외로의 정보 유출뿐 아니라 간첩은 물론 미국 공무원, 언론인, 일반인 등 모든 대상에게 적용하고 있다. 독일도 형법 제94조에 간첩죄를 규정해 ‘타국’에 국가기밀을 제공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중국 밖에서 타국을 위한 간첩 행위’도 처벌할 정도로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충격적인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간첩죄의 조속한 제정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고 있다.

셋째, 범죄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간첩 행위에 대한 높은 형량은 기밀에 대한 접근성을 차단하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범죄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영국과 호주 같은 국가들이 강력한 총기규제법을 도입한 이후 총기사고를 현저히 줄인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한국도 정보기관의 선제적 정보 활동으로 핵심기술 유출을 차단하거나 범인 검거에 기여한 사실을 볼 때 간첩법 개정은 한층 효과적인 예방 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간첩법 개정은 단순한 법조문 개정 차원을 넘는 의미가 있다. 안보 이슈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또 다양한 위협요인에 대응해 국익을 수호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가 안보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협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정치권과 정부의 판단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일각에서 인권침해나 권한남용의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는 만큼, 후속 조치 과정에서 ‘국가기밀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범위’를 설정해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간첩죄 개정안이 하루속히 통과돼 경제안보가 한층 튼튼한 대한민국이 구현되기를 기대해본다.

석재왕 건국대 교수

석재왕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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